서울의 중심인 종각에서 동대문 쪽으로 500m만 가면 사적 제354호인 탑골공원이 나옵니다. 이곳은 조선의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 본사로 세웠다가 세조가 중건한 원각사가 있던 자리로, 일제시대 이후에는 파고다공원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마련된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며 3·1운동의 발상지로 불리는 탑골공원에는 어떤 의미 있는 나무들이 있는지 둘러보았습니다.

탑골공원의 정문인 삼일문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3·1운동 기념탑이 보입니다. 기념탑 옆으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선 200년 된 낙우송과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 낙우송(왼쪽)과 느티나무(오른쪽)


3·1운동 기념탑의 왼쪽에 놓인 석상 주변으로는 참나리와 왕원추리가 불쑥 꽃대를 밀어 올렸고 그 뒤쪽으로 참느릅나무가 보입니다.


 

                                                   ▲ 참나리(앞쪽)와 왕원추리(뒤쪽)


참느릅나무는 느릅나무와 달리 잎이 작아서 비술나무나 시무나무와 비슷하지만 나무껍질이 비늘조각처럼 벗겨지는 특징이 있어서 금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꽃이 가을에 피는 점도 특이합니다. 우리가 잘 몰라봐서 그렇지 서울 시내의 하천 주변에 간간이 심어져 있고, 서울 시민의 휴식처인 서울숲에도 아주 많습니다.


 

                                                     ▲ 석상 뒤편의 참느릅나무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 뒤쪽으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손병희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대표 33인의 중심이 되어 독립선언을 이끈 분이고,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다 보니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여겨집니다.


 

                                                    ▲ 손병희 선생 동상과 소나무



좀 더 뒤쪽으로 가면 의미 있는 소나무가 보입니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이자 달성군 명예군민인 송해 씨가 주선해 심었다는 소나무입니다.

 

                                                   ▲ 송해 씨가 주선하여 달성군이 기증한 소나무


탑골공원에 벚나무는 멀쩡하게 서 있는 반면에 소나무 3그루가 낙뢰를 맞아 고사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송해씨가 달성군에 기증을 요청했고, 종로구가 수락하면서 2013년 10월 달성군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라고 합니다.

손병희 선생 동상에서 왼쪽의 서문으로 가다 보면 사이좋게 자라는 고욤나무와 뽕나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집니다. 특히 뽕나무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뽕나무 심기를 권장했을 때 심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어느 정도 유서 깊은 나무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 뽕나무


손병희 선생 동상 뒤쪽의 오른쪽에는 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가 자리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가로등과 키재기를 하면서 한쪽으로 휘어져 자란 벽오동이 꽃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수령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보이고 벽오동이라고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나무껍질이 덜 푸른 편입니다. 이름에 ‘오동’자가 들어가니까 벽오동이 오동나무와 비슷한 나무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 벽오동


벽오동은 벽오동과의 나무로, 현삼과의 나무인 오동나무와 비교해 잎의 모양만 좀 비슷할 뿐 꽃이나 열매는 사뭇 다른 나무입니다. 황진이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벽오동 심은 뜻은…’으로 시작되는 시조를 읊어주기에는 격이 조금 떨어져 보입니다.

그 뒤쪽에 팔각정 쪽으로 귀신처럼 산발한 머리로 드리우고 서 있는 비술나무 쪽으로 발길을 옮겨 봅니다.


 

                                                   ▲ 팔각정 오른쪽의 비술나무


팔각정 양 옆으로 비술나무가 마치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서쪽에 있는 커다란 비술나무는 종로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수령이 150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운동이 벌어진 1919년에는 아마 청년 나무였을 겁니다. 이 비술나무는 어린 시절에 식민지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을 외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것 같습니다.


 

                                                   ▲ 팔각정 왼쪽의 비술나무



두 그루의 비술나무 사이에는 팔각정이 놓여 있습니다. 3.1만세운동 주도자들이 원래 계획과 달리 인사동의 태화관으로 변경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자 학생대표가 이곳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고 합니다. 민족대표 33인보다 그 학생대표가 더 멋졌다고 두 그루의 비술나무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뒤쪽으로는 국보 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히는 석탑으로, 탑골공원 내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최고참입니다. 하지만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훼손이 가중되어 지금은 보호유리막을 설치하였습니다.


 

                                                   ▲ 원각사지십층석탑


탑골공원은 3·1운동의 발화점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쉼터나 주민들의 나들이 공간으로 이용될 뿐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워야 할 청소년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장학습을 하러 많이 찾는 수목원이나 식물원과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탑골공원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킬 만한 나무라고는 소나무 외에 석재유구 뒤쪽의 흰색 무궁화가 전부입니다.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의미 있는 풀꽃나무가 있는 장소로 가꾸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조선비즈 : 이동혁 / 풀꽃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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