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푸른 말들을 위한 꿈의 공간, 시대를 얘기하다

 

▲ 질주_41.0-31.8_oil_on_canvas

 

[그린경제=장석용 문화비평가]

 

서양화가 박주경 (PARK, JUKYONG, 朴珠鏡)은 서울의 보헤미안이다. 차가운 지성으로 흐릿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라져가는 것들, 깊은 산들, 지친 강들, 통발이 춤추던 개울, 물오른 나무들, 개구리 울음, 주름진 밭 허리를 품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늘 달고 산다. 그녀가 이번에는 금세라도 튀어 올라 은사시나무 숲으로 달려갈 것 같은 청마의 질주에 자신의 욕망을 오버랩 시킨다.

최근 인사동 갤러리 M에서 신작 28점을 포함, 38점을 전시한 박주경은 질주하고자하는 욕망의 상징, ‘말’을 주제로 삼아 올해의 담론으로 상정했다. 모든 말들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동물이다. 어머니는 말띠였고, 아버지는 백마부대 군인이었다. 그녀의 강인함은 부모들을 후방에 두고, 진취적 용맹으로 자신을 투입시키면서 드러난다.

 

▲ 그림자 유희72.7-50.0 oil on canvas

 

▲ 도시남녀53.0-33.3_아크릴_패브릭

▲ 도심의_순례자53.0-45.5_오일

 

그녀는 칼을 쓰는 검사(劍士)가 된다. 캔버스는 칼로 그려진 굵직한 선과 거친 부풀림을 수용한다. 그림 속에서 그녀가 격한 감정으로 끌어안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 감지된다. 박주경은 ‘도시남녀’가 되어 얼굴 없는 사람들(흑색주조)이 차지해버린 도회지에서 부댖기지만 희망(청색주조)을 챙긴다. 별과 물방울이 만들어 내는 작은 즐거움들을 아끼며 살아간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정적 인생 여정을 꾸려온 그녀는 두물머리에서 원주에 이르는 풍광을 기억한다.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그녀의 ‘질주본능’은 푸른 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삭막한 도시공간에 자연의 일부인 말들을 배치, 그 힘찬 기운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고, ‘나는 강하다. 파랑새는 나의 것이다. 쌍무지개 뜬 언덕의 주인공이다.’라고 최면을 건다.

 

 

▲ 바람의 눈 116.7-80.3_오일

 

▲ 별에서_온_그대116.7-80.3

 

영감의 오브제, 말은 ‘청마의 해’에 박주경의 뷰 파인더에 실천적 미학의 상부를 차지한다. 흙먼지 뿌리며 달려오는 한 무리의 청마는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거침없이 질타할 것 같다. 그녀의 상상속의 청마는 ‘백마탄 왕자’의 등장과 같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청마’는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 리듬을 타며 물 흐르듯 유연하고 빠르게 내달리며, 바닥에 구덩이를 만들고, 광채가 이는 눈과 벌렁거리는 콧구멍이 보는 사람들의 질주본능을 자극한다.

 

그녀는 말만 생각하면 발광(發光)한다. 그녀의 또 다른 유토피아 백마는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었던 백마부대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박주경은 아버지의 늠름함에다 아버지를 대체할 가상의 인물 이미지를 말들에게서 찾고, 어느 날 기운찬 말들이 홀연히, 느닷없이 나타나 멋지게 달려오기를 염원한다. 그녀의 말들은 그녀의 삶에서 상상하고 꿈꿔왔던 좋은 일들을 안고 그녀에게로 달려 들 것만 같은 희망을 선사한다.

 

▲ 아름다운_질주_116.7-80.3_오일

▲ 청마_41.0-31.8_oil_on_canvas

 

주경은 ‘바람의 눈’에서 지친 갈퀴, 가려진 눈으로 우울과 고독이 담긴 두 마리의 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죽음과 삶이 한 라인에 공존한다. 그녀는 오늘도 ‘질주’하고 싶고, ‘도심의 순례자’로서 ‘별에서 온 그대’를 그리며 순결의 백색, 희망의 청색과 동거하고 있다. ‘그림자 유희’의 숨바꼭질과 같은 장난기가 발동하다가 ‘자전거를 타는 날’의 풍경같은 이야기가 있는 바람의 전설을 만들어 가며, 아크릴이며 오일로 리듬감을 탄다.

 

박주경은 상명여대를 졸업하고 러시아 레핀미술대학에서 학습시대를 거쳤다. 14회의 개인전과 키아프, 소아프, 부산아트쇼, 아시아 탑갤러리 호텔페어 등 국내 아트페어, 프랑스 앙데팡당, 독일 쾰른, 미국 마이애미, 홍콩 컨템포러리 등 국외 아트페어 26회 출품한 중견작가이다. 그녀는 신미술대전, 서울시 포스터 공모전 심사위원, 세택, 서울아트쇼 운영위원, 대국민화합 미술축제 운영위원, 안중근 추모 중· 한 예술제 초대작가를 거쳐 현재 한국미협 이사, 대한민국공무원미술협회 부회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 자전거_타는_날_72.7-50.0_oil_painting_2014

 

그녀의 수상은 서울미술대상전 특선(‘05, 서울미협) 경향미술대전 특선(‘09)외 다수 입상, 글로벌 유망작가상(‘12. 프랑스 앙드레말로협회, 그랑팔레 살롱데생), 스포츠서울 베스트이노베이션 문화예술부문 선정(‘12), 유나이티드 아트페스티벌 장려상 수상(‘12), 미시코디룩 리센, 성공신화(주) 등 10개 기업체 그림달력제작(‘14), 2013년 국제앙드레말로협회 대상(프랑스, 그랑팔레 앙데팡당전)에 걸쳐있다.

 

박주경의 『아름다운 질주』 展은 수다가 필요 없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아스팔트가 점령한 도회에서 과거의 ‘순수의 시대’를 더듬어 본 에세이이다. 그녀가 붙인 제목에서 어쩔 수 없이 동거해야하는 ‘현재’와의 교감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는 질주하는 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함성으로 와 닿는 예술가의 삶의 예찬이 엿보인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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