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주요 작고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대형 특별전이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명작은 향기가 나는 살아있는 꽃과 같아 많은 사람을 부른다.


향기 나는 꽃을 보기 위해 대형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을 여러 번 찾았다. 어떤 때는 덕수궁에서 시작해서 인사동으로 오고, 어떤 때는 인사동에서 시작해서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또 어떤 때는 가족, 지인들과 한 곳만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좋은 사람은 자꾸 보고 싶고, 재미있는 곳은 자꾸 가고 싶은 법이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1920년~1970년대에 한국 근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주역 57명의 주요 작품 100점을 전시한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이 열리고 있고, 인사동에서는 가나아트센터가 기획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덕수궁에서 5개월간 계속되는 근현대 명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100점에 담긴 내용과 작가 스토리를 접하며 큰 안복을 누리고 돌아간다. 주요 작품 위주로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도슨트의 설명이 끝나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오디오 기기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반나절을 홀딱 보낸다. 신식 남자로 불리던 모던 보이 작가와 신여성으로 불리던 시대를 앞선 작가, 순수 토종 작가와 유학파 작가 57명이 화폭에 쏟아낸 시대상과 개인사, 그리고 한국적 미술을 구축하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웠던 천재들을 만나며 무한한 행복감에 젖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회도서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미술관, 서울대미술관, 홍익대박물관, 연세대박물관 등 국내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걸작이 총동원되었다. 많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 역시 경매시장을 주도하는 박수근(최고가 ‘빨래터’, 45억2,000만 원), 이중섭(최고가 ‘소’, 36억 원), 김환기(최고가 ‘꽃과 항아리’, 30억 5,000만 원) 등 빅3 작가의 작품은 전시 작품의 수도 많고,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힘도 강하여 전시장을 압도했다.

유영국, 오지호, 이인성, 장욱진, 남관, 도상봉, 김흥수, 박고석, 이대원 등의 서양화는 다시 한 번 미술사와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통로를 확장시켰고, 운보 김기창,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과 천경자의 한국화는 서양화에 더 익숙한 현대인에게 전통회화의 가치를 당당히 되묻고 있었다. 미술관 전시답게 시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조병덕, 박상옥, 이달주, 김종태, 박성환, 배운성, 이마동, 안상철 등 근대미술사에 자리매김된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출품되어 학습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었다.

이중섭 부스에 걸린 개인소장품과 서울미술관 소장의 소 두 마리를 보며 홍익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나머지 한 마리까지 모두 전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전시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머지 소가 합류하기로 결정되었다. 중요한 작가와 대표작들을 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조명해주는 것은 시장을 키우고 활성화시키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전시가 해외 평론가와 아트페어에 참석하는 미술계 관계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시기에도 계속 열려 우리 작가들을 알리는 전략으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박수근전은 김환기, 이우환과 함께 경매시장 톱 3작가의 특별전이어서 눈에 익은 작품도 많지만 새로운 작품이 더 많아 안복의 극치를 누릴 수 있다. 박수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1950년대와 60년대 우리 한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패션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박수근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옷,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과 시장에 쪼그려 앉아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당시의 한국 그 자체이다.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난히 여인들이 작품에 많이 등장하고, 앉아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여인과 노인들은 모두 맥이 빠져 있고, 나무조차 벗고 있어 시대상이 그대로 읽혀진다. 박수근의 작품을 보며 관람자는 자신의 삶, 그리고 지금의 풍요와 활력에 감사하게 된다.

박수근전은 한 작가의 전시로서는 대단히 큰 전시이다. 91점의 유화와 25점의 수채화와 드로잉 등 총 116점의 대표작이 대거 전시됐다. 이 중 34점은 경매를 통해 판매된 작품으로 프리뷰와 경매를 통해 공개되었던 친숙한 작품들이고, 다른 작품 중에는 갤러리현대의 2010년 박수근전과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의 양대 경매시장에서 1998년부터 2013년까지 낙찰된 총액을 보면 김환기 588억 원, 이우환 579억 원, 박수근 491억 원이다. 박수근의 34점 낙찰총액이 224억 원에 달하여 전시된 116점의 총액은 대략 이 경매 총액의 3배 정도로 추정된다.

경매로 거래된 작품 중 최고가는 미술시장이 초호황을 누리던 2007년 5월에 서울옥션에서 45억2,000 만 원에 낙찰된 ‘빨래터’이고, 다음은 ‘시장의 사람들’이 25억 원, ‘농악’이 20억 원, ‘아기 업은 소녀와 아이들’이 15억2,000 만 원, ‘목련’이 15억 원, ‘노상의 사람들’이 12억 원 순이다. 박수근 작품이 비싼 이유는 지나간 시간인 1950~60년대 풍경을 세트로 만들 수도 없고, 어떤 패션 큐레이터도 그의 작품과 똑 같은 연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박수근의 ‘빨래터’가 덕수궁에 한 점, 인사동에 두 점으로 모두 전시중이다. 여기에 1934년 종이에 연필로 그린 빨래터의 스케치(홍익대박물관 소장, 18.8x26㎝)만 추가로 전시된다면 박수근 빨래터가 모두 우리 눈앞에 나타나 디테일을 비교해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빨래터는 박수근이 부인을 처음 만난 추억의 장소이다. 박수근은 그러한 의미 있는 공간을 여러 점의 작품으로 남겼다. 구도와 색채의 변화를 보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빨래터를 얼마나 많이 찾았을까, 연분홍 빛깔의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부인일까, 자기 부인의 옷은 실제 색깔과 같게 그렸을까 더 고운 색으로 바꿨을까, 두 그림은 여섯 명을 그리고 한 그림은 다섯 명만 그렸는데 왜 그랬을까, 여인들이 옷을 빨며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는 뭔가를 표현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가장 한국적인 풍경의 대표로 빨래터를 선정했는데 그것이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것일까 등 온갖 상상이 발동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유명한 화가의 전시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 더 없이 행복해진다. 행복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쏟은 정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만족이다. 시간만 나면 작품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작품 감상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트홀릭이다. 작품 앞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감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서진수 교수는 …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2002년부터 미술시장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또 아시아미술시장연구연맹(AAMRU)의 공동창설자이자 한국 대표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공동발전과 체계적 연구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문화경제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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