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수제비. 국물 맛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굴이 들어가서 맛이 시원하고 풍부하다.

매콤하고 상큼한 겉절이가 조화를 잘 이룬다.  

 

 


누구나 자신에게 특별한 느낌이 있는 음식들이 있다. 자신만의 추억이 녹아 있는 음식,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소울푸드(Soul Food) 같은 것들이다. 내게는 이 두 가지 느낌을 모두 주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수제비다.

어릴 적 밖에서 놀다 배가 고파서 집에 오면 어머니와 할머니께서는 수제비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밀가루가 넘쳐날 때의 일이다. 쌀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아 정부에서 쌀 대체 식품으로 미국의 밀가루를 수입해 시중에 풀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그때 그 산업화 시절, 일반 가정에서는 싼 밀가루로 수제비를 많이도 만들어 먹었다.

집에서 수제비를 만들 때면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뚝뚝 떼어 국물에 집어넣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나도 달려들어 손으로 쪼물락거리며 거들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만들어본 첫 번째 음식이었다. 꽤 자주 먹었지만 물렸던 적은 없고 항상 달고 맛이 있었다고 기억되는 것을 보면 소박한 음식이라도 맛있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두 분께서 늘 열심히 노력하셨던 모양이다. 하긴 내 기억 속에 그분들께서 만들어 주셨던 것은 모두 맛있었다.

이제는 수제비는 더 이상 대체 음식이 아니다. 다들 별미로 찾는 음식이어서 만들어 내는 식당들도 꽤 있고 유명한 맛집들도 많다. 원래 옛날에는 귀한 음식이었던 수제비가 제자리를 찾았다.


 2 외부 모습 3 내부 모습. 옛날 한옥집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 주영욱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 집은 인사동에 있는 ‘인사동 수제비’라는 곳이다. 20여 년 동안 수제비만 전문으로 해왔다. 요즘 들어 인사동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되면서 옛날에 있었던 정겨운 곳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곳은 지금까지 옛날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중 하나다.

인사동 요식업계에서 오래 일했던 지영운(63)사장이 독립해서 93년 문을 열었다. 본인이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경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쌓아온 눈썰미를 바탕으로 식당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인사동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자신이 요식업계에서 보고 들었던 경험을 종합할 때 수제비라는 단일 품목으로 승부를 보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개업을 하고 나서 친분이 있었던 요리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잘한다는 집들을 다니며 먹어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맛을 잡아 나갔다. 이런 노력들이 고객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입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잘 자리를 잡아 왔다.

이런 성공에는 지 사장 개인의 성실함과 맛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노력이 있었다. 개업 이후 20여 년 동안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이면 가게에 출근을 해서 그날 판매할 수제비 반죽을 하고, 육수를 끓여 국물을 준비하고, 겉절이를 버무리는 일을 직접 해왔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오랜 시간을 그렇게 매일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그렇게 음식을 만드니까 항상 일관된 맛이 유지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곳은 굴 수제비가 특징이다. 국물 맛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 가지 맛이 조화롭게 느껴지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멸치와 다시마를 기본으로 하고 생강·파뿌리·고추씨·무 등을 넣어서 다양한 맛을 더했다. 굴 특유의 짭짤한 바다 향기가 느껴지는 것이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 고급 제면 용 밀가루를 써서 매일 정성스럽게 반죽하는 수제비는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쫄깃거리면서 맛있게 씹힌다.

매일 담그는 겉절이는 이 집의 명물이다. 자칫 심심할 수도 있는 수제비 맛에 매콤하고 상큼한 맛을 더해 주면서 잘 어울린다. 일본의 여행 가이드 북에 이 집이 실리면서 일본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이 겉절이 맛에 반해 돈을 줄 테니까 별도로 싸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날 팔 양만 만들기 때문에 못 판다고 하면 식탁에 있는 것을 몰래 비닐봉지에 싸가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란다.

수제비를 먹을 때면 나는 옛날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 할머니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재미있어 하던 어린 소년의 모습도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는 수제비가 좋다. 그리고 인사동 골목길 구석에 옛날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곳은 정겨워서 좋고, 맛이 있어서 더 좋다.

**인사동 수제비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29-2 전화 02-736-3361 휴일에도 쉬지 않고 영업한다. 예약은 받지 않고 선착순이다. 전체 60석 정도의 작은 규모. 굴 수제비 6000원

출처 [중앙선데이 /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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