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올해의 중점사업으로 계획된 광화문광장 바로잡기와 관련된 내용으로 본회의
감사인 이 성씨가 발간한 “돈바위산의 선물” (P163-166) '광화문광장 유감'을 옮긴 글입니다.

“광화문광장 유감”

광화문 세종로 한가운데 큰 시민광장이 생겨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순신장군 동상 주변에는 분수가 설치되었고, 그 옆으로 지하도와 바로 연결되는
해치마당도 잘 만들었다. 세종로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선 것도 이제야 그 도로의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아 서 좋다. 나무가 없어서 쉴 그늘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본래 광장에는 나무가 없는 것이 맞다. 전 세계 어느 광장에도 그늘이 있는 곳은 보지 못했다.

광화문광장에 나는 특별한 마음을 가질수 밖에 없다. 길 한편이 아닌 복판에 광장을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나였기 때문이다. 세종로 중앙분리대를 없애고 복판에 광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한 것은 2001년에 쓴 내 여행기에도 나와 있는데, 그것을 정식으로 제안한 것은 2002년이었다.
지금의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어 서울시장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서울시에서 국장급 한 명이 책임자로 인수위원회에 파견되었고 그 자리에 내가 선발이 되었다.
인수위원회가 한 달 동안 한 일은 취임준비와 취임 이후 당면해서 할 일들, 그리고 부시장 등
주요 직위의 인사계획 등으로 매일 당선자와 만나고 회의를 하면서 하나식 일을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하나는 서울시청 앞에 광장을 만들자는 것과 두 번째는 세종로 복판에 광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시청앞 광장은 그 전에 이미 조순시장 때부터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교통문제를 걱정하는
경찰청과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무산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 월그컵을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하뎐
2002년이었다. 시민들 기억 속에서 월드컵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시청 앞 광장을 만들지 않으면 또
무산될 것이므로 최대한 빨리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슴드렸고, 그 건의를 받아들여졌다.
광화문에 광장을 만들자는 것은 시청 앞 광장처럼 시도한 적은 없지만 그 전부터 간간이 연구는 되고 있었다.

나는 광화문광장이야 말로 시청앞 광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오백년 긴 역사를 이어온 정궁 경복궁이 이젠 정문 광화문이 아닌
동서의 쪽문으로 드나드는 볼품없는 궁이 되어 버렸다. 왕과 대신들이 드나들던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온통
차들로 덮였고, 광화문은 닫혀 버렸다. 저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서 저 문을 드나들어야 한다.
거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전에 이뤄졌던 세종로 광장에 대한 논의는 서울에 광장이 있어야 한다는 차원의 논의
였을 뿐 육조거리를 복원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세종문화회관 쪽 인도를 대폭 넓혀서 광장을 만들 것이냐
아니면 양쪽의 보도를 모두 넓힐 것이냐를 주로 다루고 있었다. 나는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세종로 중앙분리대를
없애고 한가운데 광장을 만들자고 했다. 인수위원회에 와서 일하는 많은 교수 중 어느 한 분도 내 말에 찬성하지 않았다.
나는 차도 한가운데에 광장을 만드는 것이 말이 되냐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길 한가운데 매우 좋은 광장을 가진
나라가 많다고 일일이 예를 들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람블라스 광장, 체코의 중앙광장, 등은 그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연구원들이 자료를 급히 수집하고 내가 말한 길 가운데 광장도 길 한편, 양편과 함께
하나의 안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후 많은 논의 끝에 내가 제안한 안은 채택되지 않았고
나는 구로구 부구청장으로 발령받으며 그 일을 잊었다.

2006년부터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2008년 초 서울시에 돌아오니 광화문광장 조성이 서울시의 주요 사업으로
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떤 영유로 길 양편에서 가운데로 변경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광장을 세종로
가운데 설치하는 것으로 확정되어서 이미 설계를 하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내 제안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고
드디어 올해는 광장이 열렸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글에 "유감"이라는 제목을 썼다.
광장은 열렸으되 육조거리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아직도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은 율곡로로
단절되어 있어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서 경복궁을 들어갈수 없다. 자금성처럼 광장에서 바로 궁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경복궁과 광화문 복원사업이 완료될 즈음이면 결국은 그렇게 될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사실 그것보다 더 아쉬운 것이 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열린 광장이 아니라 마치 테마공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광장은 비워야 한다.
그런데 너무 많이 채웠다. 아마도 이곳이 시위대들의 전용공간이 될까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십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무엇보다도 유감스러운 것은 세종대왕 동상이다. 동상밑의 지하공간을 이용해서 '세종이야기'라는
좋은 공간을 만든 것은 탁월했다. 하지만 동상은 아니다. 내 생각엔 아니다. 너무 크다. 광장이 넓기 때문에 그만큼
커야 된다고 전문가들이 심의했다지만 내 생각엔 아니다. 물론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동상을 올리기 위한 기단만 해도 높이가 4미터에 이르고 그 위에 앉아있는 대왕의 앉은키가 6.2미터나 된다.
나는 인간 세종대왕이 광장에 서기를 바랐는데 앉아있는 것은 황금빛 신으로 변신하신 세종대왕이다.
높이 4미터, 길이가 10미터에 이르는 긴 기단 밑에서면 대왕의 발꿈치도 크게 보인다. 그 밑에선 광화문도 보이지 않고
북악산도 보이지 않는다. 광장을 남북으로 양분하는 장벽으로 느껴진다. 예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울 때도 논란이 많았다.
너무 높고 크기 때문이다. 그땐 권위주의 시대였고, 그런 것이 잘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세운 세종대왕 동상은
이미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대왕의 동상이 장군의 동상보다 작다고 해서
흠이 된다는 것은 정말 케케묵은 고정관념이다. 그 좋은 광장을 이렇게 두 동강 낼 필요가 있는지, 꼭 거룩한 것을
크기로 재야하는 것인지 마음이 답답하다.

미국사람들은 세계 최초니 세계 최대니 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아폴로 우주선을 띄워 달에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미국을 돌아다니면 곳곳에 그런 설명문이 있다. 세계 최장, 최대, 최초 등등을 자랑하는 것들이다. 미국이 아니라도 큰 것에
대한 숭배는 원시시대부터 세계 어디서나 늘 있어왔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독특한 것은 큰 것에 대한 숭배가
우리나라에선 미륵신앙과 결부되어 은진미륵, 운주사 와불, 팔공산 갓바위등 초대형 조형은 거의 미륵불이라고 보면 된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서 나는 우리 속에 잠재된 미륵신앙의 부활이란 생각도 했다.
저건 대왕이 아니시다. 미륵불이시다. 황금 옷을 입은 것도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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