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작가 박유아 `오르골이 있는 풍경` 展

 

결혼이라는 관습에 대한 신랄한 풍자 담아 "박태준의 딸 아닌 내 이야기 하고 싶어"

 



"오늘 참 우울하네요. 명색이 벌써 21번째 개인전을 여는 중견 작가인데 아버지의 딸로만 여전히 비춰지는 것 같아서. 제가 화단에 갓 데뷔한 20대도 아니고 이젠 50대인데요."

그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드리워졌다. 최근 인사동에서 만난 중견 작가 박유아(51)는 헛헛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개인전을 여는 작가에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 세계보다는 여전히 그의 사생활과 아버지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의 관계를 캐묻는 사회적 시선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작가는 "아직 제가 부족한 탓인 줄 알면서도 서운하다"며 "전시는 내가 하고픈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뜻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작년에 작정한 듯 기괴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작품 제목은 `효(孝)`였다. 서울 삼청로 옵시스아트갤러리에서 그는 부모 형제의 초상화를 죽 걸어놓고 생고기와 내장을 칼로 썰고 던지며 거울을 깨는 섬뜩한 행위예술을 펼쳤다. 사방에서 피가 튀겼다.

"제 작업에 전환점을 준 사건이었어요.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예술가인 나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일종의 자기 선언이었죠."

그런 그가 뉴욕에서 작업한 그림 20여 점을 들고 같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오르골이 있는 풍경`으로 부부 간의 관계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들을 걸었다.

태엽을 감아 틀면 감미로운 음악이 나오는 뮤직박스인 오르골은 사회관습적인 부부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으로 궁금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현충원에 가요. 그런 애틋한 관계도 있는 반면에 다양한 관계가 가능한 것이 부부더군요. 부부라는 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작품 속 부부는 우아하게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아 행복한 부부인 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다가올 파국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한 것처럼 하얗게 칠했다. 자신이 유명 변호사인 전 남편과 찍은 사진들에서 친구 부부들의 사진도 소재로 활용했다.

"얼굴을 지우면 그제서야 사람들이 옷이나 손 위치, 배경들을 보게 되죠. 누구 얼굴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형화된 부부 간의 패턴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을 지웠지요."

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 눈을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을 응시하거나 남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이화여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유년 시절 이종상 화백에게 초상화 기법을 배웠으며 지금까지 인물화만 고수하고 있다. 전통 안료인 분채를 사용해 장지기법으로 제작한 채색화들이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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