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표구화랑, 파는 건 중국산 기념품
주말엔 여전히 10만명 넘는 인파 몰리지만
“문화거리라 해서 찾았는데 특별한게 없어…”
차없는 거리 지정후 땅값·임대료 천정부지
집세 못 이긴 화랑·골동품점 뿔뿔이 흩어져

 

문화지구 지정 10년을 맞은 인사동 거리. 점포 위 간판은 분명 표구사, 표구화랑이지만 값싼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뒤바뀌었다. 중국 관광객조차 “중국 것 말고, 한국 공예품 없나요?”라고 물을정도로 특색없는 아이템 일색이어서

 ‘전통문화의 거리’를 무색케하고 있다.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인사동 길에 들어서면 가슴이 절로 뿌듯해진다. 오래된 것들이 뿜어내는 아취(雅趣)는 나를 사로잡는다. 밥을 안먹어도 배 부르다.”

문화재위원을 역임한 민속품 연구가 예용해 선생(1929~95)은 생전에 이렇게 인사동을 예찬했다. 어디 예용해 선생뿐인가.

삶 속에서 진득이 우러나온 문화유산이 태부족한 서울에서 인사동은 많은 이들을 매혹시켜왔다. 안국역에서 종로 탑골공원까지 약 700m 거리의 인사동은 전통의 자취가 켜켜이 배였던 곳이다. 둥근 달처럼 너그러워 ‘달항아리’라 불리는 커다란 조선백자며 멋스런 반닫이 등이 자리한 인사동 쇼윈도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었다. 그러나 그 인사동은 요즘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으나 고유한 색채는 외려 자취를 감췄다. 조악한 기념품과 요란스럽게 간식거리를 파는 점포들이 더 도드라지는 형국이다.

▶인사동 문화지구 지정 10년째, 그 현실은?=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거리로 골동품점, 화랑, 표구사가 운집했던 인사동은 2002년 국내 최초의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이후 대학로 등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며 뒤를 이었다. 문화지구란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해 역사문화자원의 보호와 문화환경 조성을 위해 지정된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문화지구 지정 10년을 맞은 인사동은 ‘문화는 간데없고, 상업만 판친다’는 안타까운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인사동 골목에서 만난 독일인 피터 슈미트 씨(56)는 “문화거리라 해서 찾았는데 좀 실망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인사동만의 특별한 것’이 별로 없다. 그나마 골목길엔 전통의 자락이 조금 남아있어 그걸 뒤지는 중이다”고 했다.

요즘 인사동은 주말에는 10만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줄을 잇는다. 걷기도 힘들 정도다. 대세는 중국관광객들. 그들은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에서 “중국 것 말고, 한국 기념품 없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상인들은 “우리라고 중국물건 가져다 팔고 싶겠어요? 근데 어쩔 수 없어요. 매년 다락같이 올라가는 임대료 감당하려면 이런 거라도 가져다 부지런히 팔 수밖에요”라고 호소한다.

인사동의 땅값과 임대료는 1997년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 이래 큰 폭으로 뛰었다. 또 2002년 문화지구가 된 뒤론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이에 화랑, 골동품점은 높아지는 집세를 이기지 못해 뿔뿔이 흩어졌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측은 인사동에 화랑이 현재 200여개라고 하나, 이름만 화랑일 뿐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점포가 적지 않다고 했다.
 

▶삼청동, 통의동에 밀리는 인사동=서울을 찾는 외국인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인사동이지만 전통문화거리로서의 특성은 날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업소가 자취를 감추며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그저그런 거리’가 되자 인사동은 그 선호도 또한 삼청동, 통의동에 밀리고 있다. 부동산 시세도 삼청동 대로변이 평당 1억2000만원을 호가하는 데 비해 인사동은 1억원 선에 그치고 있다.

자본력을 갖춘 기업의 인사동 및 삼청동 진입이 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추세다. 대성산업 사옥이었던 옛 민정당사는 현재 삼성이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인사동에서도 가장 요지요, 부지도 큰 이 곳에 대해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측은 문화예술을 담는 공간, 즉 복합문화센터가 함께 조성되길 희망하고 있다.

북(北) 인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정독도서관과 북촌한옥마을로 연결된다. 그 길목인 옛 주한 미대사관 직원숙소(송현동)는 대한항공이 7성급 한옥 부티크호텔을 건립 중이다. 인사동과 북촌을 잇는 이곳에 대해서도 문화광장이 조성돼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어디까지나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및 인사동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어서 옛 민정당사와 미 대사관 직원숙소가 어떻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향후 인사동 및 북촌의 문화벨트는 그 위상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인사동에 깃든 역사와 스토리를 적극 활용해야=한국인이 봐도 도무지 매력 없는 기념품이며 거리환경 정비는 인사동의 시급한 숙제다. 아울러 인사동에 깃든 역사와 스토리를 적극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요구되고 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궁중화가들의 작업실인 도화서가 위치했던 곳이다. 또 율곡선생의 집이 있었고, 연암 박지원도 탑골공원 옆에 살았다. 게다가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하며 순국한 민영환 선생(1861~1905)의 자결터도 남아있고, 민병옥대감(명성황후 3대손)의 저택이었던 민가다헌도 잘 보존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를 알리는 표지판도 너무 작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극히 소소한 것도 한껏 부각시키는 외국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인사동을 저급한 상업지구로 방치하고 있다.

인사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서울시(종로구)는 물론이고 상인, 문화계, 시민들이 지혜를 모으고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갈래갈래 작은 골목까지 전통과 문화가 살아숨쉴 수 있도록 입체적이고도 실효성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인사동이란 귀한 진주를 더이상 돼지목에만 걸어놓을 순 없으니 말이다.

 

헤럴드 경제 /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