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동네 기획 시인선 그 첫 번째 시집 김신용씨의 "잉어"가 출간되었다.

 

 

면수:136쪽 | 188*128mm (B6)
정가: 9,000원

출판사: 시인동네


 

익숙한 것은 다른 그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고 굳어버린 규범이다.
받아 쓴 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꿈꾸지 않는 것은 죽은 것들뿐이다.

 

김신용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사반세기 동안 중단 없이 시를 써왔으며 최근 더욱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내놓은 여섯 권의 시집은 평탄치 않았던 시인의 생애를 반영하며 주목할 만한 개성을 드러낸다. 『버려진 사람들』(1988)과 『개같은 날들의 기록』(1990)은 비천한 삶의 체험과 강렬한 육체성의 분출로 우리 시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새로운 면모를 펼쳐 보인다. 『몽유 속을 걷다』(1997), 『환상통』(2005), 『도장골 시편』(2007), 『바자울에 기대다』(2011)에서는 체험의 직접성이 줄어드는 대신 서정성과 자연에 대한 통찰이 강화된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시기와 자연 속으로 거처를 옮겨 살게 된 시기의 차이가 크다. 자연은 삶의 상처와 고통을 인간 사이의 차별적 문제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생명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자연과 함께하며 삶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은 큰 폭으로 확대된다.
이번 시집은 자연에서 생활하면서 쓴 이전 시들과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전 시들에서 자연 현상과 개인의 상처가 중첩되면서 고통의 기억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강화하던 것에 비해 이번 시집에서는 개인적 상념이 소거된 자연 현상에 대한 투명한 시선과 감각이 두드러진다. 자신의 체험을 포함해 삶의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 어른거리던 자연에서 인간적인 자취가 지워지고 자연 그 자체의 양태에 시상이 집중된다. 기억과 감상이 투사되던 자연의 이미지가 독자적인 감식의 대상이 된다. 시인은 자연과 자신의 거리를 뚜렷하게 인식하면서 자연 자체의 메시지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우체함 속에
새 한 마리가 둥지를 짓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마치 날개 달린 편지 같다
벌써 산란 때가 되었나?
올봄도 찾아온, 저 초대하지 않은 손님
마치 제 집에 가구를 들여놓듯,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며
풀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다
바깥의 생을 몸으로 체득한,
우체함 속의 집
지금 새가 알을 품고 있으니 우편물을 투입하지 마시압!
우체함 속에 편지 대신 들어 있는 새 한 마리가
꼭 봄의 농담 같은,
잉크로 타이핑으로 쓰이지 않은,
백지의 난(卵) 속에 실핏줄로 쓴, 살아 있는 편지가
죽은 활자 대신 살아 있는 숨결이 느껴지는 것
봄의 농담이 아니라
濃淡 같은 것
―「편지」, 전문

 

  박형준(시인)

김신용 시인의 「잉어」는 몸으로 글씨를 쓰는 잉어를 ‘물의 만년필’로 세밀하게 묘사해가면서 그 잉어의 표정을 다채롭게 그려나가는 와중에 시인 자신의 삶이 각별하게 와 닿는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물속에서 지느러미로 푸른 글씨를 쓰는 “저 물의 만년필”인 잉어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싶은 시인 자신의 초상화일 것이다. “몸에자동기술(記述)의 푸른 지느러미가 달린/저 물의, 만년필”이라는 마지막 시행에서 시인의 세계에 대한 배려와 열망이 그야말로 온몸이 되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 저자 : 김신용       
수상 :2006년 노작문학상
최근작 :<잉어>,<2013 올해의 좋은 시 100선>,<바자울에 기대다> … 총 23종 (모두보기)
소개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시선집 『부빈다는 것』,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가 있다.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을 수상했다.


김신용의 한 마디
배추의 잎은 몇 겹일까, 그냥 열두 겹이라고 하자.
한 잎 열면 한 잎, 한 잎 열면 또 한 잎
열두 겹의 문을 열어야 얼굴이 보일 것 같은―
그러나 마지막 한 잎이 감싸고 있는 것도, 또 한 잎이어서
한 잎을 감싸기 위해 저렇듯 무수한 잎으로 자신을 감싼
저 한 잎의 생을 만나기 위해, 또 몇 겹의 잎을 벗겨야 할까
마치 피에타, 피에타처럼 마지막 한 잎이 안고 있는 것도
연하디연한 숨결의 한 잎이니……

 

 

 

오래도록 비애와 상처의 미학을 구축해왔던 김신용의 시는 이제 자연에서 찾아낸 새로운 정신과 미학으로 인해 또 다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추측컨대 그는 한동안 『잉어』 의 세계처럼 자연에서 빌려 온 생동감을 통해 미약하고 힘없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관계에 대한 사유를 심화할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잉여”가 되는 시대에 “이 가지는 잘라도 되는 걸까? 정말 괜찮은 것일까?”(「전지(剪枝)」)라는 현실적 맥락의 질문과 함께 자연의 글씨체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삶의 깊은 의미를 탐문하며 시의 긴장을 견인해 나갈 것이다. 자연의 율동을 간파하는 시선만큼이나 섬세하고 풍부해지고 있는 언어 감각이 앞으로의 시에 대한 기대를 배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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