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

[방민호 칼럼]

(서울 인사동 찻집 '흐린세상 건너기'. 사진=방민호 위원)

 

'뉘조' 쯤에서 발길을 돌려 새로 이사간 '여자만'집을 바라보며, 이제 나는 골목의 남은 한쪽편을 마저 살펴보기로 한다.

'흐린세상 건너기'는 이 골목 동네의 깊은 연조로 보면 연륜이 가장 짧은 축에 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만'도 그러기는 마찬가지, '흐린세상'보다 더 늦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흐린세상 건너기'에서는 커피나 술을 마실 수 있는데, 막걸리 대신에 약주에 가까운 술을 내놓는다. 뭣보다 주인 분이 직접 선곡해서 들려주는 음악이 좋고, 그쪽에서는 이 골목에서 그중 나은 곳이라 할 것이다. 가게 이름도 좋고, 출입문에 서양문학인인지 배우인지 흑백 사진을 붙여놓은 분위기 덕분에 한동안 자주 들러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만'과 '흐린세상' 사이 막다른 짧은 골목에는 '산유화'라고, 가보지 못한 음식점이 있고. 다음은 작은 전시회도 여는 전통 찻집 '삼화령'이다. '삼화령'은 미륵삼존불이 출토된 경주 남산의 한 지명이란다. 자기, 도기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이 찻집을 나는 고작 두어 번쯤 들어가 보았을 뿐이다.

 

그다음은 한정식집 '옥정'. 나는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는데, 고등학교 9년 후배 이창호 친구가 이 집 단골이라는 말을 들었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이 집 얘기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삶의 영역이 다른 사람들이 애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옥정'을 끼고 좁은 골목 안이라고 보면 제법 골목다운 골목 하나가 가지를 쳤다. 이 골목은 다른 골목들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그런지 갑자기 익선동에서나 볼 법한 고깃집과 신식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 '853'과 '코튼서울'. 둘다 오래전부터 익숙한 풍경과는 다르지만 이렇게 다른 것이 섞여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카페 '소담'. 사진=방민호 위원)

 

오늘 춘원연구학회 실무자 모임이 12시 30분부터 '선천'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다. 나는 이 모임에 책임이 있어서 한 시간은 족히 일찍 인사동에 나왔다. 원래는 인사동 큰 골목의 종로 쪽 끄트머리 '스타벅스'에서 뭐라도 하려 했다. 그런데 문득 양식에 한식 뼈대를 접합한 이 '코튼서울'이 떠올랐다. 일종의 '조양절충식'이다.

 

앉아서 짧은 시간 동안 책을 읽어볼까 한다. 요즘 들고 다니는 책은 중국 작가 샤오홍의 단편집 "생사의 마당"과 라오서의 장편소설 "낙타 샹즈". 요즘 중국소설 읽을 일이 있다. '뜨아'를 시켜놓고 앉았으려니,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잠시 후 흰옷 입은 젊은 사람 하나가 반대편 끝에 들어와 앉고, 또 조금 더 있으려니 그보다 나이가 약간은 많아 보이는 사람이 그 젊은 사람한테 온다.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워낙 나밖에 다른 손님이 없어 대화 내용이 명료하게 전달된다.

 

옛날 같으면 '알바생' 쓸 자리가 지금은 어엿한 정식 직업임을 실감한다. 고용인도 진지하게 묻고, 또 업장의 특성과 업무내용을 설명한다. 일을 찾아 온 사람도 자신의 조건과 할 수 있는 일을 침착하게 밝힌다. 상세한 협의 이후 연봉에 관한 이야기도 오가고, 두 사람은 추후에 채용 여부를 정확히 알려주기로 하고 일어선다. 평화로운 카페건만 이면에 이런 긴장이 놓여 있었다니. 살아간다는 것은 정녕 쉽지 않은 과업이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옥정 다음은 카페 소담. 건물 2층에 있고, 화가들과 문인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곳이다. 내가 농반 진반으로 '난타'(蘭陀)라고 호를 붙여준 시인 박현수가 이 집 주인과 아주 각별하다. 무슨 '염문'이 난 것은 아니고, 어떤 '사연' 으로 두고두고 빚을 갚는 중이리고나 해야할까. 한번의 일도 잊지 않는 이 친구의 염결함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같은 건물 아랫층에는 더 이름난 찻집 '귀천'이다. 천상병 시인이 쓰신 시 '귀천'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투명한 가벼움에 반비례하여 귀하고도 무겁게만 느껴진다.

 

(서울 인사동 찻집 '귀천'. 사진=방민호 위원)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무욕'의 삶과 생의 완전한 긍정이 잘 나타난, 명작 중의 명작이라 해야겠다. 천 시인은 삶의 과정을 "아름다운" "소풍"이라 했는데,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가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극히 드물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같은 삶, 정의와 사랑을 위해서도 먼저 싸우는 삶 속에서 '아름다움'은 이 골목 안의 몇 개 폐가(廢家)와 같은 곳으로 숨어버리기 쉬울 것이다.

 

자신을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행복')라고 한 천상병 시인의, 그 완전한 긍정을 되새기며 '한옥찻집'과 한정식집 '가회'까지 이르면 바로 '선천'의 맞은편이 된다. '한옥찻집'에 들어가 나는 요즈음 쓰기 시작한 무슨 여행기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참, '귀천' 지나 한옥찻집과 '가회' 사이에 막다른 작은 골목이 있고, 거기에 지금은 '인사동 그집'이 있다. 글을 쓰는 도중에 깜박 잊었다. 이 집 자리가 원래의 '이모집'이었다.

 

'가회' 다음에는 '선천'의 주차장이고, 그다음은 아무튼 '시가연'(詩歌演)이다. 왜 "아무튼"이냐고 물으신다면 잘 몰라서라고, 궁색한답변밖에 드리지 못하겠다. 카페이면서 갤러리와 소극장을 겸한 곳이다. 생맥주나 마시러 한밤에 들러본 게 전부여서 미안하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무슨 행사라도 여기서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이렇게 해서, 나의 인사동14길 골목안 걷기는 일단락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이 골목에서 30년도 안되었다면 '오래'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하리라. 그러나 국수를 말아먹듯 후루룩 흘러버린 세월이었다.

 

며칠 전 '선천' 주차장에서 대리운전 해주실 분을 기다리는데, 너무 일찍 인적 끊긴 이 골목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뭐라도, 사람이라도 30년쯤이라면 쓸쓸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1994년 『창작과 비평』 제 1회 신인 평론상수상하면서 비평 활동 시작.문학 평론집으로『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문학사의 비평적 탐구』,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행인의 독법』, 『문명의 감각』등이 있다.2001년 『현대시』로 등단,시집으로 『숨은 벽』,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2012년 『문학의 오늘』에 「짜장면이 맞다」를 발표,소설창작을 시작해장편소설『대전스토리, 겨울』, 『연인 심청』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이 있다. 산문집으로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서울문학기행』, 『명주』 등이있다.

 

출처 : 문학뉴스(http://www.munhaknews.com)

지난 23일 늦은 오후, 모처럼 인사동을 사랑한 한량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준영 시인이 비용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며 두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만들어 왔는데,

지난번 모임에는 인사동에 정나미가 떨어져 가지 않았다.

 

변해버린 인사동도 인사동이지만 싫은 사람이 생겨서다

그렇지만 재차 연락해 온 조준영씨의 전화를 깔아뭉갤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적대다 끝날 시간이 되어서야 약속 장소인 ‘바다슈퍼’로 갔는데,

양산에서 온 공윤희씨와 화가 장경호씨는 가버리고 없었다.

 

술자리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전활철, 최석태, 전강호, 노광래,

정영신, 김이하, 김 구, 김수길씨 등 아홉 명이 남았는데, 고정 맴버에서 선수교체도 있었다.

 

‘바다수퍼’라는 술집은 처음 가보았는데, 손님이 제법 북적였다.

조개에 물려 조개탕은 싫어하지만, 우동사리를 안주로 소주 한잔했다.

전활철, 최석태씨 까지 일어 선 파장의 술자리라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최석태씨가 간다는 ‘흐린 세상 건너기’로 건너갔더니,

최석태씨는 물론 장경호씨와 김영진씨도 그곳에 있었다.

김영진씨는 ‘나무화랑’에서 전시 중이었으나, 가보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요즘은 인사동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전시장 출입도 가급적 삼가한다.

‘ 인덱스’에서 열리는 중요 사진전 외에는 일체 가지 않았다.

 

전시만 보면 될 텐데, 메주 알 고주 알 올린 전시리뷰가 거슬린 모양인데,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욕까지 먹어, 뭐 대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이젠 나잇값도 해야 할 때라, 전시장 출입을 자제하니 일이 줄어 너무 편했다.

 밀쳐 둔 내 일에 전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긴 세월 찍어 둔 인사동 사진들을 정리해 책도 마무리해야 하고, 오래된 필름 정리에서부터

동자동 작업 등 죽기 전에 마무리할 일이 태산 같아,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귀천’이 있는 인사동14길은 젊은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반가운 분들이 콩깍지처럼 끼어 있었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옆집 ‘삼화령’ 안을 들여다보니 소리꾼 김민경씨와 배성일씨가 앉아 있었다.

너무 반가워 합류했는데, 이런 게 인사동의 매력 아니겠는가?

 

벽치기 골목 ‘유목민’을 아지트로 삼으며, 이 골목은 한동안 발길이 뜸해졌는데,

‘흐린 세상 건너기’나 ‘삼화령’은 수십 년 된 오래된 가게다.

 

정희성 시인을 비롯한 원로작가들이 가끔 들리는 곳으로, 그중 인사동의 풍류가 남은 곳이다.

 

소주를 마신데다 ‘흐린 세상 건너기’에서 내놓은 약주를 마셨더니, 속이 거북했다.

이젠 술도 아무 술이나 마시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참새방앗간 ‘유목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유목민’에서 운명철학가 신단수씨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술을 깰 겸 콜라를 한 병 시켰는데, 콜라 값도 계산하지 않고 병 채로 들고 와 버렸네.

치매도 이런 치매는 곤란하다. 이 나이에 무전취식으로 종로경찰서 갈 수야 없잖은가?

 

사진, 글 / 조문호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인사동이 인사동 같지가 않다.

인사동이 삭막하게 변한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지만,

정든 사람마저 볼 수 없으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인사동 풍류객들은 세상을 등졌거나 대부분 떠나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거리도, 여느 거리와 다를 바 없다.

서울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기도 싫어졌다.

 

지난17일 오후무렵,  유목민전활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홍천 사는 양서욱씨가 인사동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를 본지도 오래되었지만, 술 생각이 간절한 터라 하던 일을 덮어버렸다.

 

유목민에 갔더니, 전활철, 양서욱, 고은우씨가 있었다.

가게 안쪽 전등이 꺼진데다 주변이 어수선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 날이 정기휴일이란다.

 

홍천에서 집 짓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서욱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뒤늦게 도언탁, 장은하씨가 등장하며 술자리도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 그런지, 벽치기길 입구의 담배포가 문을 닫아버렸다.

술 마시며 담배를 참아야 하는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또 한 곳인 '예당은 술집이라 사러가기가 민망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이 예당에 담배 사러 갔더니, 도처에 아는 사람들이 콩알처럼 박혀 있었다.

 

최유진, 이만주, 이두엽, 김태서씨 등 반가운 분들이 많았으나, 사진만 찍고 나와 버렸다.

 

돌아오다 새로 생긴 술집에도 잠시 들려 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경호, 박원규, 노현덕씨가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쌍다구에 그들이 더 놀란 것 같았다.

 

반가운 인사동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앉아 있으니, 모처럼 인사동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전 인사동이 정겹듯이, 사람도 오래된 사이가 정겹다. 농익은 술이나 곰삭은 된장처럼...

 

새로 개업한 집에서부터 예당유목민을 오가며 첨벙거리던 중에

흐린 세상으로 건너오라는 이두엽씨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술에 절었지만, 그 쪽 사정이 궁금해 안 갈수가 없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흐린 세상 건너기로 갔더니,

이두엽, 최유진, 이만주씨와 잘 모르는 여시인도 한 분 계셨다.

 

한 때 방송피디로 일하다 신문사사장까지 두루 거친 이두엽씨는

세상을 떠난 여운화백과 더불어 인사동 밤안개로 불렸다.

밤안개처럼, 밤 새도록 인사동을 휩쓸며 새긴 사연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데, ‘뿌리 깊은 미래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따끈한 소식을 주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사동이라며, 인사동의 뿌리를 찾아 나서겠다는 말에 가슴이 부풀었다.

 

인사동의 매력은 정이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하면 인사동의 인정이니, 결국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사람아 사람아~ 인사동 사람아~"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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