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步보步시是-걸음걸음마다 보는 풍경

 

최호철展 / CHOIHOCHUL / 崔皓喆 / painting 

2021_1217 ▶ 2022_0109

 

최호철_2021년 동호대교_캔버스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85&360cm_2021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展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30am~06:3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www.facebook.com/INDIPRESS

 

 

공간 안에 기억을 담다 - 풍경의 겹침 ●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서울에 살면서 한강을 건넌 횟수는 모르긴 몰라도 족히 수천 번은 될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한남대교를 하루 두 번 꼬박꼬박 건너다녔고, 대학교 시절에는 국민학교 때만큼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강을 건너지 않는 날이 이틀은 넘지 않았다. 한강이 없는 서울의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기억한다. 출근하는 어른들 틈에 보온도시락을 껴안고 끼어 선 어린 내 눈 앞에서 아침볕을 조각조각 부수며 빛나던 강물을. 한번 지나간 강물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때의 그 한강은 지금도 여전하다. ● 「2021년 동호대교」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알았다. 서울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한강이다. 백악산과 인왕산 자락에 살며 수시로 야경을 보러 오르기도 했고, 남산 중턱에 자리잡고 틈날 때마다 남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기도 했지만 서울의 전모가 이렇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서울은 내려다보기에는 너무 큰 도시다. 내려다볼 때는 조각조각 나뉘었던 도시가 한강에서 바라보니 물 흐르듯 이어진다. ● 이 작품은 나를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동호대교 초입에 순식간에 세워놓는다. 사진으로는 맛볼 수 없는 감각이다. 사실 우리의 시야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한 곳에 오래 붙들리지 않는다. 한눈에 보이는 경계는 사진의 프레임을 한참 넘어선다. 사진은 그중 극히 작은 한 부분을 과거의 한 순간에 고정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21년 동호대교」은 일상에서 우리가 풍경을 "본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다시 일깨워준다.

 

최호철_2021년 동호대교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85&;360cm_2021_부분

잘 닦인 넓은 앞유리창 이편엔 사람들이 있다. 운전의 편의를 위해 기능적으로 설치된 백미러에 졸거나 핸드폰을 하고 있는 승객들의 얼굴이 비친다. 그러나 내가 차 안에 있다면, 내 시선은 주로 창 너머를 향할 것이다. 풍경은 납작한 한 장이 아니다. 몇 겹의 풍경들이 또 몇 겹의 풍경 위에 겹쳐있다. 세간에서는 "좋은 전망은 일곱 구비 능선을 바라본다"고 한다던가. 그렇다면 이 자리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리라. ● 앞 차에서 이쪽을 돌아보는 아이는 심심하다. 운전하는 남자는 끼어들기를 노리며 뛰어든 오토바이가 신경쓰이고, 오토바이를 탄 남자는 마음이 급하다. 얼른 털어버려야 할 짐이 등 뒤에 바짝 붙어있다. 아이가 뒤돌아보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본다면, 세상 신기한 듯 내다보는 강아지와 눈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앞에 끼어들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건너편 버스에 탄 사람들도 핸드폰 속이거나 창밖이거나, 자기만의 풍경에 들어앉아 같이 있지만 또한 혼자 있다. 한강을 건너는 것은 차만은 아니다. 자전거와 사람들도 부지런히 제 갈길을 간다. 저 멀리, 지나가는 자전거를 향해 사람 품에 안겨 길가던 개가 성을 낸다. 최호철의 풍경에는 개의 구겨진 미간까지 담겨있다. ● 조금 더 멀리 눈을 돌리면 내가 도착할 강변이 보인다. 높이 치솟던 동호대교의 주황색 철골구조는 옥수역이 가까와오면서 몸을 낮춘다. 사람의 얼굴이 없다고 이야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왼쪽 이태원동, 보광동과 한남동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만들어낸 풍경과 가운데 유엔빌리지 고급빌라와 오른쪽 금호동의 아파트의 풍경이 선명하게 갈라선다. 집들 사이로 난 길을 눈으로 좇다보면 내가 아는 곳이 나온다. 적재적소에 랜드마크가 자리잡고 있다. 이슬람사원, 제일기획, 하이야트 호텔, 국립극장, 남산타워... 멀리 한강을 따라 놓인 다리들도 차례차례 특유의 자태를 드러낸다. 길을 놓치지 않으면 광화문과 청와대도 만날 수 있다. 강북에 사는 이라면 자신의 집을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제멋대로 비뚤배뚤 그어진 것 같지만, 길 한 자락도 허투루 그린 것이 없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나와야 할 것이 나오고, 만나야 할 것과 만난다. 그렇게 뻗어간 길이 어디까지 가는가. 놀랍게도 임진강 너머 북한이다.

 

최호철_2020년 파주 소라지로 제2순환로 예정지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62&;97cm_2021

 

최호철_2020년 파주 소라지로 제2순환로 예정지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62&;97cm_2021_부분

좋은 카메라로 정교하게 찍은 사진이라면 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을까? 광각이든 파노라마든 현대 기술을 총동원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최호철 그림의 특징은 정밀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걷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풍경의 독특함을 더한다. 걷는 사람은 보면서 다가가고, 다가가면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원근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풍경을 감지한다. ● 그의 그림 속에서 원근법은 정확히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교한 의도에 의해 문득 법칙을 벗어난다. 보광동 언덕을 뒤덮고 있는 빼곡한 집. 앞의 집과 뒤의 집의 크기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그의 그림은 우리가 보는 풍경의 감각을 성공적으로 재현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까마득하게 멀리 있다가 어느 순간 코앞에 다가오는 풍경의 특징을 그는 알고 있다. 「2018년 한남동 우사단길」에서 그의 전략은 좀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최호철_2018년 한남동 우사단길_종이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95&270cm_2018
최호철_2018년 한남동 우사단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95&270cm_2018_부분

'걷는 사람'의 시선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운동감이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직선을 직선이라 여기지만, 걸으면서 보는 직선은 보는 이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움직이며 휘어질 수밖에 없다. 풍경이 흐르기 때문이다. 독특한 그의 선은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다. 그의 '움직이지 않는 그림'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확실하다. 그가 멈추어 서서 그린 그림에서 직선은 확실한 제 자리를 찾는다. 「2021년 성남 원도시 그림 지도」를 보라. 산등성이가 그리는 곡선은 정직하고, 건물의 짧고 굵은 직선들은 단단하게 땅 위에 박혀있다. 걸으면서 그리는 최호철식 공간은 사진보다 경험에 가깝다.

 

최호철_2021년 성남 원도심 지도_캔버스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218&336cm_2021
최호철_2021년 성남 원도심 지도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218&336cm_2021_부분

기억의 축적 ● 그의 그림 앞에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유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그림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에 관해 좀더 많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만큼 더 오래 붙들릴 수밖에 없다. 그는 공간과 기억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공간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기억을 함부로 다루는 것과 같다. 많은 이들이 일상을 한켜 한켜 쌓아온 공간을 대대적으로 갈아엎는 '재개발'은 사회를 기억상실증으로 내몬다. ● 그 기억은 최호철 개인의 기억만은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기억'이 모이면 '정보'가 된다. 다시 말하면, 정보가 정확하면 사람들은 좀더 자신의 기억을 잘 살려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기 위해 꼼꼼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가 잘 활용하는 것은 지도앱이다. 그가 재현해낸 공간 안에서 길은 제멋대로 휘어지고 방위는 엄밀한 나침반을 따르지 않는 것 같아 보이나 그는 어느 길이 어느 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느 곳에 서면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그려나간다.

 

 

최호철_2013년 아현고가도로_캔버스에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5&240cm_2013

 

최호철_2013년 아현고가도로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5&;240cm_2013_부분

당연하게도 그는 직접 걸어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공간이 기억을 담는 그릇이라면 길은 경험을 기억으로 바꿔 저장하는 줄기다. 줄기를 확실하게 잡으면 전체 그림이 잘 자란 한 그루의 나무처럼 우뚝 선다. 그 길 위의 기억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으나, 길을 눈으로 더듬어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그는 말한다."그림을 보는 사람이 자기 삶의 기억을 환기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다루는 게 작가이겠지요." ●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실경산수라기보다 진경산수에 가깝다. 열심히 보고 꼼꼼하게 그리지만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그의 관심은 실제의 풍경을 넘어선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가 보는 세계로 한번 번역하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또 한번 번역하는 것을 지켜본다. 내가 「2021년 동호대교」앞에서 느꼈던 실감은 작가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고 또한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을 것이다. 한 장의 그림이 갖는 세계가 이토록 넓다

 

최호철_2021년 동호대교 버스내부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70&100cm_2021

시간의 중첩 ● 그림 속에 겹쳐져 있는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풍경 속을 걷는 데 드는 시간, 그리고 그 전후의 수년, 수십 년의 시간이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와 무관하게 그림 한 장에 촘촘히 겹쳐있다. ● 일단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다. 규모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빈틈을 꼼꼼히 메우는 사이에 문득 유행은 지나가고 산천은 변한다. 겹겹의 덧칠 사이에는 물리적 시간이 스며든다. 그러나 최호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현재다. 그는 「2021년 동호대교」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기 위해 이미 그린 그림 위에 전면적으로 다시 손을 대야 했다. 그러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2021년을 이야기할 때 마스크를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호철_2011년 부산영도-희망버스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_100&70.7cm_2020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지금 또한 차근차근 쌓인 과거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마스크를 덧그리듯 과거를 쉽게 덧칠로 지울 수 없고, 그래도 안 된다는 믿음이 있다. 2011년 부산 영도에 있는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동안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한 김진숙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그린 「2011년 부산영도-희망버스」는 독특한 시점에서 역사적 현장을 내려다본다. 85호 크레인 정상보다 더 높은 곳에서 멀리 부산타워까지 내다보는 시야에는"희망버스"의 이름으로 그를 찾아온 이들이 다리마다 거리마다 환하게 밝힌 불빛과 내려다보는 김진숙의 뒷모습이 함께 들어온다. 늦은 밤, 김진숙을 지지하기 위해 부산을 찾은 그 많은 사람들을 한눈에 보기에 가장 적절한 자리다.

 

최호철_1970년대 공주제민천 하숙촌풍경_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_35&200cm_2018
최호철_1970년대 공주제민천 하숙촌풍경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35&200cm_2018_부분

역사적 사건의 현장 뿐이랴. 시간은 어디에나 흔적을 남긴다. 그는 '길'에 주목한다. 길의 변천사는 그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과 동격이다. 그는 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기도 하고(「2020년 소라지로 제2순환로 예정지」) 이미 사라진 길의 공중궤적을 그림으로 남겨놓기도 한다(「2013년 아현고가도로」). 「1970년대 공주제민천_하숙촌풍경」은 길 위의 사람들을 드러내어 길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작품이다. 개천가를 걷는 수많은 학생들은 공주가 교육도시의 영광을 구가하던 시절을 증명한다.

최호철_1900년대초 개항기 서울 단원기산풍속산수화_150&40cm_2018
최호철_1900년대초 개항기 서울 단원기산풍속산수화_150&40cm_2018_부분

 

시간의 층을 두텁게 겹겹이 쌓아놓는 한편, 그는 현재로 끊임없이 돌아온다. 근대 개항기의 화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를 두 폭의 족자로 재현한 「개항기 기산단원 풍속산수화」는 옛사람이 그린 당시의 서울을 되살리고 그 위에 현재를 겹쳐 보여준다. 현재의 서울은 그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그가 직접 보고 겪으며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21년 기산풍속산수화」 속의 그곳은 또다시 한강이다. 거듭 확인한다. 서울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한강이구나. 수천 번 겹쳤던 기억이 한 장 한 장 펼쳐져,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떠나지 못한다. ■ 박사

 

 

Vol.20211217h | 최호철展 / CHOIHOCHUL / 崔皓喆 / painting




'족쇄와 코뚜레'

참여작가 :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신민,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전시일시 : 2019,9,5-10-26

전시장소 : oci미술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좀 추슬러 차리니 아무래도 먹기가 편하다.종류별로 나눠 가지런히 담아내니 더 깔끔하고 맛있는 것 같다.갖은 모양을 내어 예쁘게 플레이팅 하니 요리의 급수가 오른 기분이다.음식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수준으로 정성을 들이니, 아까워 먹을 수 없을 정도이다.평생에 다시없을 독창적인 꾸밈새가 나오니, 이건 더 이상 음식의 영역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과 美1의 추구는 전혀 딴판 말고 같은 판에 있다. 숨이 붙어 있기만 하면 산 것이고, 걸치면 옷이고, 씹어 삼키면 다 음식인가? 맛있는 것보다 기왕이면 맛있고 예쁜 걸, 치마 하면 다홍치마를 집어 드는 건, 욕구 단계론이라도 끌어다 논리적인 척할 것도 없이 그냥 ‘본능’이라 퉁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러울 듯싶다. 쾌快의 수많은 가닥 중 굵직한 하나가 단연 美라면, 의식주를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걸, 더 좋은 걸 찾을 것이다. 그런데 美의 추구에는 대가가 따른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데, 너도 나도 찾는 홍상이 동가일 리 있나. 동가에 ‘ㄷ’만 꺼내도 ‘홍상 프리미엄 모르냐?’는 타박만 돌아온다. 제품도 그러할진대 작품이야 말해 무엇하랴. 당장 입지도 못할 홍상을 훨씬 멋지게 짓는 일인 것을. 그런데 어럽쇼? 천신만고 마다않고 다 지어 놨더니 ‘입지 못할 홍상, 매입 사절’이란다. 짓는 족족 팔려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빌붙어 늙는 자식놈처럼 철없이 눌러앉은 치마 더미를 보고 있자니 썩고 타는 건 그저 속이요, 언감생심 다음 치마 넘볼 처지가 못 된다. 치마는 쌓이고, 여력은 깎이고, 확신은 꺾인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작업 하기 더더욱 어려워진다. 연년생 키재기하듯 무럭무럭 쌓이는 울긋불긋 고지서와 갖은 독촉장을 우두커니 바라보자니 휑한 깨달음이 온다. ‘다른 모든 걸 끊고 작업에 매진하다가는 까닥, 작업도 끊게 될 판이구나.’ 이러나저러나 ‘작업을 하려면 작업 아닌 것을, 작업의 ‘여집합’을 열심히, 또 잘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요번에 필feel 한번 제대로 꽂힌 회심의 역작, 하늘을 나는 다홍치마 작업 하려면, 공장에서 바지 백 벌은 기워야 할 성싶다. 모자랄지 모르니 이백 벌 해 놓자. 그냥 넉넉하게 천 벌 할까?’ 여집합에 몰두할수록 든든히 작업을 뒷받침할 수 있으리란 기대 하나로, 치마 지을 힘이며 짬이며 좌우간 있는 대로 박박 긁어다 바지 공장에 기약 없이 들이붓던 어느 날, 인터뷰가 들어왔다! 무려 ‘바지 달인 특집’이란다. 치마 작가 말고. 여집합은, 몰두할수록 작업과 서먹해지는 부작용 표기가 소홀했다. 발목 잡히지 않으려 뛰어든 여집합에 코 꿰어 정신없이 끌려가다 보니 숫제 여긴 어디쯤일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무엇에 취한 듯 덜 깨어 아직 흐리멍덩한 눈, 도통 갈피가 서질 않아 여전히 망설이는 얼굴로 연거푸 두리번댄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족쇄 차고 고군분투 마른 풀숲을 훑어야 할까? 여물 때만 손꼽으며 이름 모를 논두렁 따라 그저 ‘존버 앞으로’ 해야 할까? 갈 힘과 갈 길, 어느 쪽을 저당잡힐는지.족쇄냐 코뚜레냐 그것이 문제로다.

1문두에서 ‘예쁜 것’으로 순화-연수기로 거르듯 ‘연화 軟化, softening’라 하면 더욱 적절하겠다-한 좁은 의미의 ‘美’와 관련, 진리, 보편, 합리, 숭고, 우아, 희소, 비장, 황홀 등 하고많은 모양새를 규정해 왔지만, ‘그럴듯함’이야말로 너무 한정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고 사뭇 적절해 보인다. 앞서 나온 단어들 또한 ‘이런저런 그럴듯함’의 나열이 아닌가.

김영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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