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최대식씨 개인전이 인사동 ‘윤갤러리[02-738-1144]’에서 개막되었다.

전주의 도예가 한봉림씨의 만나자는 연락에 찾아갔더니,
생각지도 않은 최대식씨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최대식씨 내외를 비롯하여 한봉림, 김명성, 유근오, 이명희,
김재춘씨 등 여러 명이 남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술집으로 옮길 채비라, 서둘러 작품을 돌아보았다.






전시장은 화려한 색들이 울긋불긋 수놓고 있었다.
아름답게 펼쳐진 색의 향연은 우리 오방색에서 비롯되었다.
쉴 사이 없이 쏟아지는 영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색의 마술사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예술경영학 교편까지 잡은 사람의 전시법이 특이해서다.
자기 작품을 컬렉션하는 마니아가 많이 확보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여유롭게 미소 띤 그의 모습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전시를 열면 다들 알리기 위해 팜프렛이나 도록도 만들고
보도자료를 보내는 등 난리법석을 떠는데,
여지 것 팜프렛은 물론 리프렛을 만든 것도 보지 못했거니와
언론 프레이는 물론 전시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 받은 적 없었다.






그는 한 때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다, ‘풍덩예술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인사동에서 ‘31갤러리’를 운영했다.
그 갤러리는 본인의 작업실도 겸했는데,
갈 때마다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운영의 어려움은 보나마나다.





그 후 미국으로 이주해버려 페북에서나 가끔 만났는데,
느닷없이 인사동에 나타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최대식씨를 비롯하여 한봉림, '통인' 김완규씨 등,
다들 인사동을 사랑하는 동년배라 남다른 면도 있다.






한봉림씨는 서울 올라오며 자기가 입던 외투를 챙겨왔더라.
쪽방에서 떨고 있을 것 같아 챙겨 온 모양인데,
좀 무겁기는 했으나, 담요를 감은 듯 따뜻했다.

그 정도 옷이면 노숙을 해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부티 나는 옷이라 거지가 입기는 좀 그렇더라.

다행히 내가 있는 방은 낮이 더 춥다.

관리인이 추운 밤에만 불을 넣고 새벽부터 보일러를 꺼버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그 옷을 입고 일하니 안성맞춤이었다.
이토록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다.






오랜만의 회우라 다들 ‘여자만’으로 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갤러리는 한산하지만, 술집은 넘쳐나는 것이 인사동의 현실이다.
하는 수 없이 가까이 있는 ‘옥정’에서 회포를 풀었는데,
할 말은 많으나, 귀도 어두운데다 말까지 어눌하여 소통이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종이에 적어 물어보기까지 했을까.







이차는 ‘유목민’으로 옮겼는데, 그 곳에도 반가운 사람이 많았다.
정영신씨를 비롯하여 공윤희, 허미자, 송미향씨도 있었고,
홍천에 사는 양서욱씨 까지 와 있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마셨더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땐, 목이 터져라 노래라도 불러야 정신이 드는데,
이빨이 빠져 소리가 새는데다, 목도 걸걸거리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젠 술자리 광대노릇도 끝내고, 술도 자제하라는 계시다.
좀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사진, 글 / 조문호





















재미작가 최대식씨의 소품전이 지난1월 24일부터 2월13일까지 인사동 '목인화랑'에서 열렸다.

 

 

 

 

 







미국 살다 인사동에 화랑 차린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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