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한 해 동안 거리나 시설, 쪽방과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곳에서 죽어 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리다.

 

홈리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는 올해로 21년째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등 많은 단체가 연합한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한 행사다.

 

올해는 비명에 죽어 간 무연고자가 모두 395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시민단체에서 파악한 비공식 집계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알 수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서울 곳곳의 노숙인시설과 쪽방, 고시원 등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가 번져가고 있으나 방역당국은 그 규모조차 공개하지 않는 다는게 추모제기획단의 설명이다.

아마 그동안 치뤄 온 홈리스 추모제 중 가장 많은 숫자로 추정된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집 없는 노숙자나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했다.

정부의 전염병 대책은 안정적 거처를 전제로 한 자가격리와 재택치료인데,

노숙자는 집이 없으니 정부 대책에 포함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엔 주방이 없고 화장실도 한 층에 하나밖에 없어 다들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의 쪽방에는 창문 없는 방이 많아 환기를 위해 방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으니

자가격리나 재택치료라는 말은 허황한 지침에 불과하다.

 

지난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한 후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확진자가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지 못해 방치되는 사이, 바이러스가 고시원 전체에 번져버린 것이다.

나중에는 확진자보다 걸리지 않은 사람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어떤 이는 코로나19에 확진된 후에도 갈 곳이 없었단다.

광장에 머물며 사람들이 다가오면 ‘확진됐으니 다가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쳐야 했다.

감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일 뿐 이었다.

 

추모제가 열린 지난 22일에는 서울역광장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무연고사망자의

이름만 적힌 사진 없는 액자 앞에 장미 395송이가 빼곡히 놓여있었고,

 2021 홈리스 인권 10대 뉴스와 홈리스 추모제 핵심요구안이 적힌 가두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동짓날에는 동지팥죽을 끓여 나누어 주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팥죽 없는 조촐한 추모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노숙하는 이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추모제가 열리는 오후 6시가 가까워오니 서울역 광장으로 추모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나와 빼곡이 나열된 영전에 추모했다.

 

주장욱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교사의 사회아래

춤꾼 이삼헌씨의 위령무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비통한 몸짓 속에 떨어지는 꽃잎은 그들의 넋인 냥 처연했다.

 

추모발언에 나선 동자동 정대철씨는 유영기이사장을 기억하며 그리워했다.

정씨는 좀처럼 쪽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지냈으나 유영기씨 덕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민들을 만나고, 사랑방 소식지를 나누어 주는 등의 봉사활동에 보람을 느꼈단다.

집에만 있을 때보다 몸도 덜 아프단다.

 

‘양동쪽방주민회’에서 장례위원을 맡고 있는 이차복씨는

한 해 동안 양동 쪽방촌에 살다 돌아가신 분이 29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체 주민 400여명에서 29명이 죽었다는 것은 뉴스에 나올 법도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외롭고 쓸쓸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들 평균 연령은 48세란다.

이건 병사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죽인 살인이나 다름없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은 안타깝게 죽어 간 주광석의 사연을 풀어놓았다.

방을 구하거나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각별히 챙겼지만,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부고를 받았단다.

그의 형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보름 전에 들었어나 아직 공영장례 공고가 나지 않아

두 달 가까이 그의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연고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시간은 기약이 없다,

죽어서도 영안실 냉동고에 누워 하염없이 장례 치루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죽은 신체에 관한 권한은 혈연 가족만이 소유할 뿐,

그가 살아 생 전 맺은 숱한 관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민중가수 박준 씨가 나와 ‘전태일 다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학생인 로즈마리와 꺽쇠 씨가 나와 ‘우리가 만든 홈리스 권리선언문’을 낭독했다.

“홈리스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치료다운 치료, 존중받는 밥상, 애도할 권리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했다.

 

추모제가 끝날 무렵, 홈리스추모제 참가자들이 권리선언문이 적힌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 정부와 서울시를 향해 날렸다.

그 종이 비행기에는 눈물겹게 죽어 간 395명의 넋이 실려 하늘나라로 날아갔을 것이다.

 

부디 극락왕생하여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1일 정오 무렵, 밥 얻어먹으려 나갔더니, “형! 술 한잔해요”라며 정대경씨가 손을 끈다.
소주 한 병과 우유 한 팩을 사들고는 구석진 놀이터로 끌고 갔다.
그 때까지 이불을 감고 벤취에 자는 사람도 있었고,
한 쪽에선 열심히 운동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대경씨는 이미 취기가 돌았고, 난 빈속이라 짜리리리 한 기분이 좋았다.
이 맛 좋아하다간 알중 되기 십상이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니는 어디서 자노?”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는 여지 것 장가도 못 갔다고 했으나, 안 가길 잘했다 싶다.

혼자만 고생하지 가족까지 개고생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 갈 때 없는 따라지신세라 방세라도 만들려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않다. 그래서 병원 다닌 진료기록까지 받아왔다며 보여주었다,

고향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의 감정이 격해졌고, 나도 마음이 아파 잠시 자리를 피했다.

소주 한 병과 육포를 사왔더니, 감정을 삭이고 있었다.


보성에서 자라며 집에 불이 났던 일, 광주5,18때, 복날 개 맞듯, 죽을 뻔 했던 일,
서울 올라와 노가다로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 온 사연 사연을 줄줄이 풀어갔다.
그런데, 아픈 데가 생겨 일용직마저 쫓겨났다는 것이다.
받을 돈이 칠십 만원 남았으나,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며 오십 만원만 주었는데,
그 마저 술 마시다 어느 놈한테 털려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단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정대경씨 처럼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가슴 아픈 사연도 다 있다.
몸만 움직이면 굶어 죽을 일은 없으나, 날씨마저 추워지니 걱정인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당쟁보다 빈민부터 구제하자.
사대강을 파헤쳐 자연과 함께 수많은 돈을 수장시키지 않았나?
쓸데없는 일에 국고를 탕진하면서 왜 빈민들의 삶은 외면하는가?


그 낭비한 돈의 몇 억분의 일이라도 빈민복지에 보태었다면, 이런 사람 다 구제할 수 있다.
당장 살길이 급한데, 무슨 형식이나 절차가 그렇게도 복잡한가?
더 날씨 추워지기 전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부터 마련해 주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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