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메멘토, 동백”도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6월 01일 (금) 00:25:1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일 ‘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월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상(象)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작품 앞에 선 화가 강요배


전시되고 있는 “상(象)을 찾아서”는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보여 줄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부 ‘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부 ‘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강요배,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그림의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강요배,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이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강요배,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며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삽화는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요배,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강요배,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자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단다.


이번에 전시한 ‘상(象)을 찾아서’는 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象'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상(象)’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강요배,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강요배,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 우레비, 2017 Acrylic on canvas 259


강요배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강요배,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쌘 제주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강요배,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그런데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뒤풀이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보는 마음이 찡했다.


6월17일까지 학고재(02-720-1524-6)에서 열리는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4,3항쟁을 그린 2부작 “메멘토, 동백”은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열린다.










 

 

다큐사진가 이갑철씨 '제주 1980’

한국인의 역동적인 신명과 삶의 기운을 포착해온 다큐사진가 이갑철(56)씨가 1980년대초 찍었던 제주 작업을 처음 대중 앞에 내놓았다. 서울 강남의 사진대안공간 스페이 22에서 1일 막을 올린 <바람의 풍경, 제주 천구백팔십>이란 제목의 개인전이다.

84년 첫 개인전 <거리의 양키들>로 데뷔하기 전인 79~84년 그가 제주에서 찍은 사진 48장을 선보인다. 뭍의 관광객들이 막 몰려들던 그 시절 제주의 여러 빛바랜 풍광들이 눈에 감기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섬의 풍광과 사람들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의 흔적들까지 포착했다. 언덕에 서서 수평선을 향해 옷을 휘날리며 기원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과 잔디밭을 걷는 아녀자의 너풀거리는 옷자락 등이 바람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2002년 사진계를 뒤흔든 전시 <충돌과 반동> 이래 작가의 등록상표가 된 흔들리는 화면과 기울어진 사선 구도, 초점 없이 흩어지는 대상 등의 특징이 초창기 사진 속에 이미 엿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씨는 “제주에서 마음을 강하게 끌었던 게 바람”이라며 작가노트에 썼다. “바람은 끌고 당기는 힘의 역항을 이루며 제주섬 어디에나 내재되어 있었다. 그 긴장감이 좋았다…이 사진들은 삼십여년 전 내가 바라본 바람의 풍경들이다.”


서울 청량리 588 사창가의 80년대 풍경과 삶을 담은 조문호씨, 84~86년 찍었던 이태원 유흥가 작업을 풀어낸 김남진씨의 전시에 이은 80년대 재조명 흐름의 하나다. 이씨는 지난달부터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1년간의 부산 작업을 모은 <침묵과 낭만> 전시도 하고 있다. 열화당에서 이번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80쪽)도 나왔다. 전시는 24일까지. (02)3469-0822.

[한겨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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