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일요일들

 

양화선展 / YANGHWASUN / 梁和善 / sculpture 

2022_0608 ▶ 2022_0620

 

양화선_가보지 않은 풍경-17_도자_25×23×2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일요일_12:00pm~05:00pm

20일_12:00pm~04: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gallerydam_seoul

 

 

갤러리 담에서는 6월에 조각가 양화선의 『8월의 일요일』이란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였다. 양화선은 기존의 브론즈라는 빛나고 견고한 재료를 사용해서 작업을 해왔으나 이번에는 작가의 신체 물리적 나이에 맞게 흙으로 부조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흙이 주는 부드러운 물성이 나이든 칠 십대 중반의 작가에게 따스함과 위로를 주고 있음을 작업에서 느낄 수 있다. 도자작업이 주는 가마안에서의 유약의 변화와 터짐등이 작가의 나이에는 자연스레 포용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상시에 책을 즐겨보는 작가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8월의 일요일』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번 전시제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15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 갤러리 담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1_도자_2×47.5×20cm_2022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2_도자_44×31.5×6cm_2022

8월의 일요일-나는 푸른 그늘 아래로 간다 / 세계 위에 / 지붕과 풍경들 위에 / 내 몸을 풀어놓고 싶구나 / 나의 꿈속에서는 쥐를 쫓는 / 불타는 욕망과 함께 - 파블로 네루다, 「고양이의 꿈」 ● 햇살을 가득 머금은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녹촌리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삼십 여년의 봄과 겨울을 견뎌낸 나무는 작업실 벽과 지붕을 따라 고양이에게로 손을 뻗는다. 술래를 찾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은 소녀는 연원을 알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만나고 태초의 바람을 찾아 이정표 없는 길을 따라 낯선 목적지를 여행한다. 그곳은 피안의 세계. 하얀 햇살로 살을 데우는 둑 위에 지중해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가 있는 곳.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과거가 고대 도시처럼 펼쳐진 세계. 하지만 결코 오지 않을 미래. ● 작품 속에는 보드라운 햇살, 비밀을 숨긴 친근한 바다, 푸른색을 머금은 잎과 나무, 그리고 머물다 떠나는 모든 것처럼, 꿈과 인간의 관계처럼 이들 사이를 스쳐 지나는 바람이 있다.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3_도자_19.5×31×18cm_2022

양화선은 1986년 첫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테라코타 이후 30여 년 동안 브론즈, 건축모형재료, 유리조각, 에폭시 등 현대 문화의 산물로 쓰이는 재료들을 혼합하여 풍경조각(landscape sculpture)이라는 장르를 독보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최근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비유처럼 흙에서 다시 흙으로 돌아온 셈이다. ● 조각의 많은 형식은 돌, 철, 나무, 스테인레스스틸 등 재료의 속성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여타 예술 형식과 차이를 갖는다. 그 차별성이 조각을 조각답게 하는 것도 있지만(가령 양감, 질감, 기념비성, 매스 등) 또한 이러한 재료적 특성으로 인해 형식이 제약되기도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재료를 다루는 조각가들은 대부분 강도 높은 육체노동자가 되어야한다. 작가 역시 첫 개인전 이후 오랜 시간 브론즈로 풍경 조각을 해왔다. 세월이 흐르니 강도 높은 브론즈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흙의 유연성으로 변하게 되었다. 흙을 빚고, 긴 시간 천천히 건조시키고, 색을 칠하고, 굽고(작품이 가마에서 익어가는 시간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묘한 설렘과 기대감의 시간이다) 열을 식히는 일련의 창작 과정은 기존 조각에서는 가져보지 못한 가슴 뛰는 경험이다. 마치 품 안에 편안히 안기는 아이처럼 작업은 침착하고 조용하게 전개되지만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은 조각과 회화라는 장르를 넘나드는 희열이 있다.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4_도자_20×37×4cm_2022

최근작들은 자연(풍경)묘사는 어렴풋하고 인물은 어눌하다. 어리눅은 형상, 색상표로 포착되지 않는 색채는 작품이 생명과 흐름, 바람 같은 유동적인 것들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생명의 모습은 포착할 수 없음이다. 너와 나의 경계가 겹쳐 있음이고 대상과 마음이 포개져 있음이다. 풍경조각은 이제 나무와 인물의 형체가 명확한 바깥보다 흐리멍덩한 속살과 맥박으로 표현된 내면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마음이 점액질이듯 풍경은 이제 마음이다. 새로운 풍경조각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 하늘 바다 햇살 나무 바람으로 우주 공간을 포괄하고 시간을 은유하는 것은 자연 영역만이 아니라 정신의 움직임 즉, 자기 초월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삶의 덧없음 vanité과 세상이 비어 있음vacuité을 아는 노년의 작가가 건네는 실존과 자유의 풍경은 아닐까. ■ 정형탁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5_도자_12×63×11cm_2022
양화선_팔월의 일요일들-7_도자_9×44×19cm_2022

2020년에 처음 도자 작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 열린 첫 번째 개인전을 테라코타로 시작했으니, 흙으로 시작하여 30여 년 만에 다시 흙으로 가는 셈이다. 그동안 작업의 내용에 따라서 그 재료를 달리했지만 대부분은 브론즈를 사용했다. 브론즈를 통한 섬세한 표현에 만족하면서도, 점토가 석고 캐스팅과 주물 공장에서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본연의 형태를 잃어가는 것, 그리고 원하는 대로 색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 도자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며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50×50×70cm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가마의 최대 면적이다. 점토를 준비하고 형상을 빚기 전에, 먼저 가마의 면적과 곧 만들게 될 작품의 크기를 맞추어 본다. 흙을 주무르는 손끝에서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발견한다. 작품의 건조와 소성을 마치고 가마의 문을 열 때마다, 불안과 기대, 실망과 환희가 공존한다. 색채는 변화무쌍하며 자유롭다. 다채로운 형태의 정신적 부침을 겪는 과정은 도자 작업이 안겨주는 커다란 기쁨이며 기대감이다. (2022년 5월) ■ 양화선

 

Vol.20220608f | 양화선展 / YANGHWASUN / 梁和善 / sculpture

영원과 하루


황인란展 / HWANGINRAN / 黃仁蘭 / painting
2015_0415 ▶ 2015_0428

 

 

황인란_영원과 하루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46×492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311g | 황인란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사색과 신념의 평면 ● 회화에서 투시, 음영, 심도 등을 없애는 게 예술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것이 19세말과 20세기 초 서구 회화론이었다. 그러다 60년대에 와서는 화면 자체보다 화면을 만드는 안료까지 예술의 진실로 만들었다. 포스트모던을 지나면서 이러한 모든 예술적 전복과 비판은, 사실 좀 지겹기도 하다. 우리는 아방가르드의 텅빈 제스처 같은 작품들이 컨템포러리의 우량주였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 자리에 지금 무엇이 있는가. ● 20세기 초 사라진 음영은 황인란의 평면에서 작품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되살아난다. 담이나 건물의 벽면을 배경으로 나뭇잎과 나뭇가지의 그림자, 반쯤 열린 창문과 창틀, 파드득 날갯짓 하는 새, 언어와 기억을 상실한 듯한 인물 등이 그려져 있다.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의 영화제목처럼「영원과 하루」는 고요와 적막의 풍경 혹은 인물화다.

 

 

                                                              황인란_영원과 하루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97×162cm_2015

 

 

우선 청색 바탕을 기저로 하면서 화면의 전체 배경이 되기도 하는 벽면은 치밀하게 구성된 가로와 세로선, 사선으로 구획된다. 그 위에 그려진 새와 인물, 나무 풍경은 평면적인데 아마 캔버스가 벽면 역할을 부여받음으로 인해 그 위에 새겨진 그림자가 각인된 효과 때문이지 싶다. 또 벽면에 그려진 선들은 한 공간 속에 그려진 개별 사물들을 미묘한 차이의 시간 속에 앉힌다. 실루엣이나 그림자로 표현된 나뭇가지나 나뭇잎 등은 계절과 바람 등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준다. 새의 날갯짓은 움직임의 표현으로 인해 그 화면의 주위 공간에 떨림을 만든다. 하지만 그 파장이 멀찍한 인물에게까지 가닿진 않다. 그래서 화면 내에서 인물은 외롭다.

 

                                                        황인란_피안의 세계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12.2×162.2cm_2015

 

 

마치 단조로워 보이는 청색 바탕의 벽면은 여러 겹으로 덧대고 흘린 흔적으로 시간성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작가 자신이 캔버스와 노동하고 투쟁하면서 보낸 시간을 동시에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이 또 하나의 작품 형식이 되었다. 작품의 이미지들이 풍경의 역할을 해내면서도 고독이라는 원형적인 심리를 품게 만든 것은 이러한 미적 형식을 버리지 않아서다. 평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구상을 그린 힘겨움은 아마 작가의 신념일 테다. 무상한 것들을 거머쥐어 간직하고, 집중하고 응시하여 화면에 새기고, 다시 그것과 일체가 되어 보는 것, 이는 사색과 신념의 평면이다.

 

                                                             황인란_피안의 세계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5

 

 

고독을 꿈꿀 권리"나로서는 잘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고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따금 천국처럼 그것을 꿈꿀 권리가 사람에게는 있을 것이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고독을 꿈꿀 때가 있다. 그러나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두 천사가,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언제나 금하였다. 한 천사는 친구의 얼굴을 하고 있고, 또 한 천사는 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진실로 사는 것은 몇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까뮈,『안과 겉』 에서)

 

                                                                        황인란_영원과 하루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12.1×193cm_2015

 

고독은 어쩌면 영원성과 맞닿아 있다. 고독과 침묵이 조화롭게 배치된 실루엣의 세계로서 황인란의 견고한 평면은 온갖 부조리와 불의, 악다구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림이다. 물론 이는 순전히 구체적인 현실을 대비시켜서만 한정지어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호함과 혼돈, 형식과 의미가 과잉된 시대에 염증을 느낄 때 우리가 눈을 돌리는 것은 원형에 대한 갈망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 자체, 사랑 혹은 고독의 시원, 시기와 질투의 본연에 대해 투명하게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그리스 고전에 대한 재생이나 포스트모던 시대에 18세기 낭만주의를 소환하는 경우가 그렇다. 변화무쌍하고 아우성의 현실에서, 온통 새롭다 못해 새로움이 지겨움이 된 현대예술에서 원형의 욕망은 영원성과 맞닿고 이는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미적 신념이 된다. ● 도덕과 종교, 정치적 저항이 있듯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 혹은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황인란이 추구하는 침묵과 고독으로 동결된 이미지는 현실의 아우성들로 덧난 악다구니의 하루에 영원이라는 순수한 시간성을 부여하는 거 같다. 순간은 소중함으로 인해 영원하다고 말이다. 사실 우린 모두 청명한 날을 위해 태어났는지 모른다. ■ 정형탁

 

 

                                                        Vol.20150415h | 황인란展 / HWANGINRAN / 黃仁蘭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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