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운 '젊은 날의 초상' 사진집 표지 / 168면 / 눈빛출판사 / 28,000원

사진가 장종운씨가 소대장 시절 찍은 국내 최초 병영기록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사진전은 지난14일부터 2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02-722-6635)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ROTC 25기로 임관한 장종운씨가 전방부대 박격포 화기 소대장으로 배치받은

1987년부터 전역한 1989년까지 기록한 생생한 병영기록이다.

 

사진가 장종운

군대 사진으로는 이한구, 이규철, 조성기, 강재구 등 여러 명의 사진가가 발표한 바 있지만,

소대장이 부대에 암실을 차려놓고 찍은 사진도 처음이지만, 그중 오래된 또 다른 기록이라데 의미가 있다.

 

전시가 시작된 지난 6월 14일 오후4시 무렵 갔더니, 작가 장종운씨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인덱스' 안미숙 관장, 사진가 김문호, 정영신, 이 다, 곽명우,씨 등 반가운 분이 많았다.

 

 

작가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집에는 전시된 사진 외에도,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이 많았다.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젊은 날의 초상’사진집 서문에서 발췌했다.

 

인연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을 나는 35년 전인 1989년에 본 적이 있다. 장종운 중위가 전역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인지 아니면 전방에서 잠시 외출을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그는 어느 날 우리 출판사를 방문해 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1989년이면 막 출판사(1988년 창립)를 시작할 무렵이었고, 한두 권 책을 냈을 때였는데 그가 어떻게 우리 출판사를 알고 찾아왔는지 몰라도 고마운 일이었다. 당시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향해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아직 군부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우리 출판사의 첫 책 크리스 마커의 북한 사진집 『북녘 사람들』마저도 억울하게 북쪽을 찬양하는 도서로 분류돼 마포경찰서 정보과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사무실을 이전해 짐을 풀고 나면 반갑지 않은 담당 요원이 제일 먼저 방문하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들의 정보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서슬 퍼런 공안정국도 이유였고, 군 관계 사진은 보안이 필수인데 찍힌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사진을 바로 출판하면 촬영자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갈 우려가 없지 않았다. 또 창업 초기라 출판사 경영도 녹록지 않아 원고를 반려하고 나중을 기약했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당시 사진집을 내고 보도사진계로 진출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사진이 절실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게 그런 힘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때 사진가로의 길을 터주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진가의 길은 가시밭길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은 돈이 되지 않는 매체이니 사진의 길로 인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어쨌건 그는 전역 후 고향에 내려가 한평생 보험업계에 투신하여 2023년 4월 정년퇴임을 했다. 비록 그때 사진집을 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종종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는 우리 출판사에서 나오는 사진집들을 사보며 취미 삼아 사진을 오랫동안 해올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이제 고대하던 사진집을 내게 되었으나 원고를 돌려주며 그때 기약한 ‘나중’이 일제강점기와 맞먹는 35년이나 될 줄은 작가나 나도 몰랐던 일이다. -중략-

 

군에서 공식적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병사는 정훈병이다. 1970년대-80년대에는 고된 훈련과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사진병으로 군 복무를 하기 위하여 사진학원을 다니는 장정들이 많았다. 사진병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통을 따랐는지 통신병과에 소속되어 있다가 2014년 정훈병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병은 주로 간부들을 따라다니며 군대내의 공식 행사 및 교육훈련 장면을 찍는다.

 

군에서 홍보용 화보집을 만들거나 보도기관에 배포하는 사진들은 신형 탱크나 자주포 등 현대화한 군 장비와 난관을 뚫고 용맹 무쌍하게 진격하는 부대의 훈련상황 등을 찍은 공식적인 홍보용 사진들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사진이 유산지에 덮혀 맨 앞쪽에 배치하고 이어서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의 사진이 역시 유산지에 덮혀 머리말이나 격려사와 함께 나온다.

 

사진병은 아니지만 사진 전공자 가운데 군 복무를 하며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는 이규철, 이한구 등이 있다. 이들은 휴가 복귀 중 카메라를 몰래 영내에 반입하여 선임들의 묵인하에 내무 생활을 촬영해 전역 후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 (이한구 ‘군용’)을 통해 공개하였다. 1990년대 초에 울산지역 해안초소에서 근무했던 이규철은 신병 군기 잡기, 얼차려 등 내무 생활 중 벌어지는 군대 폭력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한구는 군용품으로 다뤄지는 병사의 인권 문제를 사진으로 제시했다. 사진 전공자이며 부사관(중사)으로 복무한 특이한 이력의 사진가 조성기는 301특공여단의 교육훈련 과정을 다큐멘트해 1993년 군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여단장의 허락을 받아 촬영한 공식 사진이지만 고된 교육훈련에 지친 훈련생의 모습과 휴식, 장비 점검 등 훈련의 이면을 기록하였다.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에는 용감하고 늠름한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대대장의 허락하에 카메라를 영내에 반입해 사진을 찍었다지만, 그의 앵글은 군의 공식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익히고 임관 전 전시회를 했듯이 카메라를 다루는 그의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일반인들은 다루기 힘든 마미야 중형카메라를 사용하고 독신 장교 숙소인 BOQ에 필름을 현상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을 마련했을 정도로 그는 사진에 빠져 있었다. 초상사진을 찍으며 군용담요를 배경막으로 사용한 것도 이채롭다. 특히 빼당(페치카 당번병), 이발병, 사역병 등 병사들의 사진은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가 독일인들을 직종별로 분류해 남긴 사진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정종운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찍되 훈련상황보다는 청춘을 반납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일상과 내면에 주목했다. 그는 전지적 서술자(Omniscient narrator)로서의 시점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이나 인물 간의 관계를 파악한 뒤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는 소대장실에서 소대원들의 신상 명세서를 보았을 것이고, 또 전임자나 내무반장으로부터 소대원 개개인의 특성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앞의 이규철과 이한구가 내무 생활자로서 직접 보고 목격한 1인칭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데반해 장종운 소대장은 간부(장교)라는 3인칭 시점에서 1980년대 후반의 병영생활과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다.

 

군대라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으나 비교적 자유롭게 촬영한 그의 사진은 대한민국 건군 사상 간부가 찍은 최초의 병사들에 관한 기록이라는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객관적 기록이라해도 사진은 촬영자의 주관을 거치게 된다. 징집된 젊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한 소대를 책임졌던 소대장의 연민과 안타까운 시각이 사진에 묻어난다. 계급을 떠나 카메라를 매개로 병사들의 불안과 상처를 감싸안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도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은 병사들이 그를 형이나 친구처럼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소대장일지라도 군림하려 들면 병사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은 지난날 병사들이 처해 있던 환경과 일상 그리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이 군을 폄훼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영생활의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개선의 필요성을 새롭게 유도한다. 실사구시와 진실은 망각과 환상만을 불러일으키는 경직된 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시할 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지만 젊은 날의 병사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이를 잘 참고 견뎌냈다. 지금은 초로에 접어들었을 이 사진집에 등장하는 소대원이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은 추억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군대였지만 그때는 그래도 청춘이었다. 청춘은 언제나 그립고 아쉬운 법이다.

 

이등병 월급이 3천원에서 6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군의 사정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35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아마 나는 상처 치유와 위안 그리고 생명 복원력이 있는 세월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규상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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