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 微明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mixed media 

2021_0227 ▶ 2021_0310

 

한상진_무경계無境界-미명微明_2017-1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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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cafe.daum.net/gallerydam

 

 

한상진 작가는 2000년 초반에 「문명의 침실」 연작을 시작으로 2010년 전후 「응시와 명상」 연작을 제작 발표했으며 최근까지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물의 지시성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 2021년 3월, 갤러리 담에서 발표하는 한상진 개인전-미명 微明 은 백두대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 속에서 바라본 풍경 속의 풍경이며 낮과 밤의 경계를 그린 것이다. 소멸과 생성의 시간,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새벽놀이 스미는 강원도의 붉은 숲 그리고 해질녘 지리산의 봉우리에 호흡하는 미명의 순간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의 표정이자 고정된 지시성으로부터 벗어난 사물의 은유이다. 산은 멀어지면서 가까워지고, 침묵을 통해 말하며 자신을 감추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바깥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밖이란, 보이는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며,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이며 지시적인 언어의 내부가 열리는 자리임을 이야기한다. ● 이번 전시에는 전남 순천에서 작업한 painting & drawing으로 된 풍경 신작이 주로 등장할 예정이다. ■ 갤러리 담

 

 

한상진_무경계無境界-소멸消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7

 

 

본인은 자기로부터 달라지는 풍경을 사유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삶 속에서 예술을 만나고 구체화시키려는 여정은 예술이 규정된 양식이나 형식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변화하는 삶과 시간 속에서 발생하며 조우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은 풍경을 통해서 내가 나로부터 달라지는 지점을 통해 새로운 예술과 만나려 한다. 백두대간의 원시림과 산경(山經)은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에게 흥미로운 그림의 소재가 되어왔다.

 

 

한상진_무경계無境界-소멸消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3×72.7cm_2017

 

 

풍경은 잉여의 공간이다. 의미화 할 수 없는 빈 공간인 풍경(존재)은 부재로도 현전으로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의미를 통해 재현 불가능한 존재는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며 언어를 초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는 의미가 아니며 보편성으로도 특수성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빈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빈 공간은 의미에 달라붙어 있는 잉여와 같은 것으로서 보이지는 않으나 존재하는 것이다. 잉여 혹은 나머지로서의 빈 공간은 닫혀있는 집합을 완결되지 못하도록 여는 힘이며 보이지 않는 이 힘은 재현이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의미로의 재현 혹은 환원 불가능성은 라캉(Jacques Lacan)에게 있어서 귀환하는 실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친밀하고도 낯선 외상적인 실재와의 만남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상징화, 단순화 혹은 판타지를 통해 불가해한 빈 공간을 길들이며 적응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풍경을 그리는 것은 고전적 의미의 풍경화가 아니며 풍경과 내가 만남으로써 나를 여는 것이다.

 

 

한상진_미명微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94.5cm_2017

 

한상진_무경계無境界-미명微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8

 

 

불가능한 것과의 만남은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재현 불가능한 순간들처럼 불가해한 삶의 비밀들과 연계된다. 고통과 쾌락이 동시에 작동하는 희열의 공간인 쥬이상스(jouissance)는 파괴적이며 알 수 없는 죽음충동을 동반한다. 일상 속에 사물과 풍경을 뒤틀어 놓는 죽음 충동은 아름다움 이면의 그림자, 잃어버린 조화에 대한 애도를 상기하게 한다. 불가능한 애도의 멜랑콜리(melancholy)한 흔적은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출현한다. 혼자 걷는 길 위에서, 텅 빈 풍경에서, 봄날의 재난 속에서, 친근한 것과의 만남 속에서, 불면의 밤 속에서, 다시 보는 책의 한 페이지에서 친밀하면서도 낯선 이와 같은 경험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며 현실의 이중성 속에서만 이야기 될 수 있다. 의미로 종결되지 않는 죽음은 죽음이후에도 살아남아 유령처럼 출몰한다.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는 현실이 현실 이상이기라도 한 것처럼 사진이 사진을 넘어서는 지점을 이야기 한다. 본인에게 사진은 불가능한 기억과 회화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미지가 이미지 이상이 될 수 있으며 순간의 재현을 담은 재현적 원본의 지표(Index)를 넘어서는 잉여(punctum)를 몸의 회화를 통해서 만나는 것이다. 파여진 결들이 몸으로 스며들어 몸이 열리는 확장, 본인에게 풍경과 사물은 풍경의 결이 몸 안으로 들어오고 적요한 침묵의 틈으로 몸이 열리는 확장이다.

 

 

한상진_미명微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1

 

 

의미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물, 의미로부터 벗어난 몸은, 시야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 속의 풍경들에 매료되곤 한다. 흐릿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서, 어른어른하게 굴곡진 비닐 너머의 자리에서,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에서, 흐린 날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미명의 그늘진 풍경 속에서, 목마른 바스락거림 속에서, 눈물 나는 날의 걷기 속에서... 과거의 희미한 기억과 감각을 소환하는 설명할 수 없는 흔적 혹은 얼룩은 풍경 속에 파고 들어와 풍경을 낯설게 한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타자(풍경), 타자에게 열리는 나의 몸은 구분이 불가능하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는 안이자 바깥이며 바깥이자 안이 된다. 몸은 여러 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타자를 향해 열릴 때 유한한 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삶속에서 안과 밖의 경계는 사라지며 풍경이라는 타자를 환대하는 나는 풍경 속에서 살아있는 나일 수 있다.

 

 

한상진_미명微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1

 

 

본인은 무경계(NO-BOUNDARY), 소요(逍遙)-흐르는 풍경이라는 무위(無爲)의 행위(行爲)를 통해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소요는 목적 없이 천천히 걷는 시간이며, 흔적이라는 타자를 환대하는 행위이자 주체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소요(逍遙)를 무위(無爲)를 향한 열림과 고정된 이념(지시성)으로부터 떠남, 타자를 향한 노출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소요는 한가로이 노니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치나 의미화로 환원 가능한 일과 분리된 또 다른 생산, 도래할 것으로서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장의 핵심개념이기도 한 소요와 무위로서의 행위는 자연스러움 안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행위다. 따라서 본인의 작품은 소요를 통한 존재론적인 사유-서양의 사유와 동양의 사유가 만나는 자리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소요는 본인의 작품이 생성되는 자리이며 오늘날의 세계가 필요로 하는 빈 공간이자 멈춤, 중지와 같은 개념들과 연관된다고 본다. 자본의 전체성, 즉 수치화를 통해 모든 존재를 의미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본의 힘은 폭력적이다. 그러나 의미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 자기로부터 달라지는 자기 차이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항해처럼 의미의 집으로 복귀하는 충만함의 원운동이 아니다. 전통적인 서양사유에 있어서 떠남은 경험을 통해 의미를 얻고 자아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립하는 환원적인 내재성으로의 복귀이다. 그러나 소요는 최종적인 목적을 전제로 향해 나아가는 지양(止揚)이 아니며 무위(無爲)를 향한 길 떠남이다. 본인에게 소요, 응시와 명상은 치유(Healing)나 다듬어짐, 정화됨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을 충족으로 보완하려는 의미론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도 종속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떠남이며, 의미의 장소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 즉, 귀향의 불가능성을 포함하는 존재론적인 이끌림이다. ■ 한상진

 

 

Vol.20210227a |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mixed media

2021 CRE8TIVE REPORT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展 

2021_0121 ▶ 2021_0320 / 일,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GR1_김민호_김정은_손승범

이호억_전주연_정철규_천창환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관람시간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내면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자극이 있는데, 그 감정을 표현하자니 적당한 꾸밈말들이 쉽게 쌓이지 않습니다. ● 세상에는 언어로서 표현되지 않는 많은 감정이 존재합니다. 형상을 분석하여 기술하고 누군가의 이력에 기반하여 그 의도를 추리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작가의 시선과 감정을 천천히 쫓아가 볼까요. 그 어디쯤 내 나름의 상황과 감성을 투사해 다소 엉뚱한 생각들을 늘어놓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작품 하나가 내면에 천천히 똬리를 틀기 시작하면 언젠가 우리 일상에서 불쑥, 마치 데자뷔처럼 튀어나오기도 하겠죠. 작품에 담긴 작가의 시선 하나 손길 하나가 어느새 스며들어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정신 활동, 이것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의 힘일 것입니다. ● 2021년 1월,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들의 사유가 작품이라는 다양한 형상과 구조로 재현되어 이곳에 자리합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여러분 내면에 존재하는 감성적 몰입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GR1_2020_종이에 페인트 마커, 액자_각 79×55cm×27_2020

 

GR1은 도심 사이 오래된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그 흔적을 작품 전면으로 촘촘히 드러냅니다. 나날이 집합되어 그 덩치를 키워가는 대도시는 좁은 골목을 밀고 또 밀어 결국 어둡고 스산한 담벼락밖에 남지 않았지만, 언젠가 찬란한 도시를 만들어 냈을 법한 낡은 용광로의 열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쏘시개의 역할은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당장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소수입니다. 다수의 침묵을 깨우는 소수의 고함은 골목길의 담벼락에서 캔버스로 옮겨져 여전히 그 열기를 유지합니다.

 

김민호_결 시리즈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각 140×73cm×32_2020

 

김민호의 시선은 일련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장소 또는 상황이 갖는 다수의 장면을 쌓으며 오히려 사건 자체를 희석시킵니다. 보통 관련 데이터가 모이면 문제의 모양새는 선명해지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연관된 이미지를 흔들고 새로운 수를 둠으로써 완벽한 재현에 그 의미를 가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목전의 사건만을 바라보는 매몰된 시야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인 전개를 통한 다각도의 사유를 권합니다.

 

김정은_물,길_01_필름인쇄, 아크릴채색_130×600cm_2020

 

김정은은 변화된 길의 모습을 기록하고 교차하며 기억과 경험의 보편적 가치를 되새깁니다. 작가가 다루는 물길은 사람이 이용하는 일정한 너비의 공간 아래를 흐릅니다. 과거로 사라진 시간을 품은 채 여전히 그 여정을 지속하는 물길은 어느 산자락을 가르고 이내 자갈 사이를 스쳐 날마다 새로운 흔적을 남깁니다. 작가는 그 과정을 추적하여 과거와 현재의 교차지점을 조형적 시각으로 읽어내고 객관적 지표로서의 지도가 아닌, 개인의 기억과 시간이 담긴 지도를 만들어냅니다.

 

손승범_사라지는 라오콘_장지에 먹, 과슈_227.3×181.8cm_2020

 

손승범은 믿음의 대상이거나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고대 조각상과 함께 바위라는 원형적 형태를 재현하고 한낱 잡초나 곧 부러질 듯 앙상한 나뭇가지로 그 형태를 과감히 지워나갑니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변화라는 새로운 생성 과정의 이면에는 잊혀지고 소외된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작가는 믿음이라는 행위에 앞서 그것이 참이라 여기는 마음 자체를 다시 살펴보길, 피상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가 본질을 좇아 구하고 생각해 보길 제안합니다.

 

이호억_무진(無盡)_종이에 먹과 석채_130×600cm_2020

 

이호억은 자연 속의 고유한 개인으로 천착하여 이미지를 발췌하고 장면을 채집합니다. 자연을 담던 날의 온도, 냄새, 습기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도 입체적인 자료로 활용됩니다. 산맥을 뒤덮은 억센 뿌리를 붉은 실로 꿰매어 상처와 회복에 대해 고민하고, 산보다도 거대한 구름 아래 자신은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자연은 나 자신을 살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이치를 작품에 투사해, 보는 이의 감정과 정신을 일으켜 세웁니다.

 

전주연_묽은 프로젝트_트레팔지 위 수성잉크 프린팅, 투명 아크릴_각 16×21cm×300_2020

 

전주연의 작품은 습기의 막이 한 꺼풀 씌워진 것처럼 흐릿하지만 명료하지 않은 만큼 또 다른 이야기가 스며들 영역을 마련합니다. 어떠한 대상에 비추어 헤아리는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하는 미술언어는 채득을 위한 연속적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언어적 사고의 틀, 인지에 대한 기대효과에 매몰되는 것을 탈피해 텍스트를 다른 감각으로 이행하는 작가는 언어의 세계와 미술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의 과정을 온전히 즐기고 또 실험합니다.

 

정철규_누구든지 오셔도 됩니다_옥스포드 원단 위에 손바느질 드로잉_55×72cm_2020

 

정철규의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제스처가 작품 전체를 아우릅니다. 군데군데 긴 침묵이 끼어들 만큼 조심스러워 진행이 느릴지라도 허투루 풀어놓지 않으며 조금 다르다고 해서 쉽게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거칠고 직접적인 것보다 때로는 꺼질듯한 속삭임과 가느다란 감각들이 더 예리하게 마음을 꿰뚫기도 하죠. 작가는 오래 바라보고 자주 다시 생각해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의 가치를 꺼내 올립니다.

 

천창환_성수대교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20

 

천창환이 읽어내는 공간은 매우 다양한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심한 듯 텅 빈 면적은 곁에 둔 강렬한 틈새 하나로 인해 예민한 긴장감을 가지고, 납작하고 도톰한 붓질이 교차되며 매우 헌신적인 표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감각의 조각들은 스쳐가는 수많은 풍경의 틈새들을 채우며 되풀이된 적 없는 하루를, 서로 닮은 적 없었던 여러 밤들을 떠올리게 해 보는 이의 심리적 공감을 유도합니다. ● 모두를 지치게 했던 지난 한 해, OCI미술관 10기 입주작가들은 우리가 스치듯 지나는 장면을 쉬이 넘기지 않았습니다. 시선이나 정성이 깃들지 않는 곳을 깊게 들여다 보고, 잊혀지고 소외된 것들을 크게 안아 살피며, 섬세한 감각으로 대상을 거두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스며든 이야기를 내어 놓았습니다. 이들의 시선과 손길이 상처입고 지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입주작가들의 다음 행보에도 큰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이영지

 

 

Vol.20210121b | 2021 CRE8TIVE REPORT-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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