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된 빛 그리고 풍경

김태현展 / KIMTAEHYUN / 金太鉉 / sculpture.painting 

2021_0203 ▶ 2021_0223 / 2월 11~12일 휴관

 

김태현_fushun, dakeng 탄광_스테인리스_60×240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 2월 11~12일 휴관

 

 

가가 갤러리

GAGA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4(인사동 183-4번지) 1층

Tel. 070.7758.3025

www.gagagallery.com

 

 

부조(relief)로 각인된 풍경 - 풍경조각 ● 『각인된 빛, 그리고 풍경』展은 조각가 김태현의 첫 개인전 제목이다. 작가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중국 북경의 중앙미술대학원에서 '도시설계디자인 공공미술'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때문에 이번 전시에는 그가 중국에서 제작한 작품과, 귀국 후 한국에서 제작한 최근의 작품들이 함께 출품되고 있다. ● 제목에서 시사하듯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풍경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른바 풍경조각(Landscape Sculpture)이다. 작가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상적으로 만났던 혹은 어떤 의미에서 각별히 자신의 뇌리에 "각인"된 풍경들을 입체적으로, 즉 조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우리가 흔히 만나는 풍경화는 종이나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평면이다. 하지만 작가의 풍경 조각은 주로 스테인레스(stainless)강판이 베이스가 되고 있고 그 위에 다시 스테인레스 등 물질이 입체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그래서 평면이 아니라 조각예술이다. ● 그는 대학 시절부터 철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그 절단과 용접을 통한 형상 조각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스테인레스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스테인레스 강판을 배경으로 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떤 형상으로 오리고 자른 후 그 위에 여러 겹으로 붙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부조(relief)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김태현_선유도 어촌마을_스테인리스에 유채, LED_60×60cm_2020

 

 

부조(relief)로 표현하다 ● 전시 출품작을 관통하는 특징이라면 대부분이 부조로 표현됐다는 점이다. 총 19작품 중 3점을 제외한 16점이 부조작품이다. 아마도 풍경을 표현하기로 하면서 조각예술이지만 평면 회화와 가까운 부조라는 방식이 자연스레 선택됐을 것이다. ● 작품 중에는 「파도 Wave」에서처럼 표면에 미세한 요철을 남기는 저부조(bas relief)가 있는가 하면, 작품 「다컹 탄광 Coal Mine Dakeng」처럼 전면으로 상당히 튀어나와 있는 큰 부피의 고부조(high relief)도 있다. 「파도」 「고랭지 논」 등 저부조는 용접봉을 마치 붓으로 그림 그리듯 사용하여 철판 위에 도톰하게 양각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저부조 작품들은 표면에 색을 올려 하늘과 파도를 구분하는 등 다분히 회화적이다. ● 이와 달리 작품 「다컹 탄광」등 고부조 작품들은 풍경을 묘사하면서도 일체 회화적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 오로지 조각적 표현, 즉 입체적/공간적 표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색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철을 이용한 조각적 기법만 구사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의 철조각 기법, 즉 일렁이는 하늘에선 철판을 두드려 만드는 단조(鍛造) 기법을, 전신주와 철로에선 스테인레스 봉을 자르고 붙이는 용접 기법을, 그리고 산과 언덕 등에서는 스테인레스 강판을 오리고, 붙이고, 지지는 등 다양한 기법을 볼 수 있다.

 

김태현_안반덕 고랭지 논_스테인리스에 유채, LED_60×60cm_2020

 

 

대상에 더 다가가기 ● 나의 시선이 「다컹 탄광」에 유난히 머무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기법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이나 도시의 풍경화들, 다시 말해 대상물을 먼 시선으로 잡은 산과 들의 지평선 혹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다컹 탄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에선 대상지에 한층 '다가가' 그 지역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작가가 대상에 "다가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단순히 멀리서 본 '경치'와,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고 냄새 맡고 소리를 들으며, 즉 작가가 오감으로 체험하며 제작한 작품이 같을 수는 없다. ● 「다컹 탄광」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절경을 그린 산수화(山水畵)가 아니다. 어찌 보면 우울한 하늘과 부조화스런 파괴된 자연이 있는 황량한 풍경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듯한 풍경 한가운데에 갑작스레 왕복 철로가 건설돼 있고 거기에 전선과 전신주가 서있다. 또한 철로 옆 산등성이를 파헤치고 산업용 대로가 뻗어 있다. 중국 무순시에 있다는(정식명칭:西露天矿)「다컹 탄광」은 지난 2차 세계대전 중 일제가 중국을 침략한 후 전쟁에 쓰기 위한 석탄 등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급히 건설했던 곳이다. 이 역사적 유물을 본 순간 작가는 한반도에서도 있었던 일제의 수탈을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느꼈고, 그래서 작품화 하게 됐다고 술회하고 있다. ● 나는 여기에서 작가가 현장에서 느꼈던 공감과, 그 공감이 작품제작을 추동 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작가는 작품 제작에 앞서 현지에 있는 전쟁과 역사의 자취를 살펴봤고,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비극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처럼 작가가 느낀 공감이 그저 지나는 여행객의 시선을 넘어서 현장에 다가가게 했고, 그 결과 그 역사와 현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독특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다고 나는 해석한다.

 

김태현_곰소 염전_스테인리스에 유채, LED_80×80cm_2020

 

 

LED 빛과의 결합 ● 전시된 작품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풍경에 결합된 LED 빛이라 할 수 있다. LED는 출현 이래 그 안전도, 사용편의성, 비교적 오랜 수명, 다양한 연출 가능성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김태현작가도 「북경 로마 호수」, 「곰소 염전」,「안반덕 고랭지 밭」 등 11점의 작품에서 LED 빛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다양한 색조의 불빛은 직접 드러나지 않고, 도시 빌딩의 뒤편에서 빛나며 인공적 문명을 상징하기도 하고, 산과 들과 물의 주변에서 은은히 빛나며 신비감과 거리감 혹은 어떤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작품에서 하나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 하지만 조각예술에서 LED 빛이 언제나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용 방식과 빈도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가치를 결과하기도 한다. 즉 어느 경우에는 "신의 한 수"가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작품의 본질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장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깊은 생각 없이 새로운 기법이나 유행을 차용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태현_계단식 논_스테인리스에 유채_20×75cm_2019

 

김태현_Beijing · Roma · lake_스테인리스, LED_14×240cm_2019

 

 

이번 첫 개인전을 통해 나는 김태현 작가의 창조적 열정과 두려움을 모르는 실험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흔히 조각 예술은 물질을 다루는 기법과 능력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다양한 실험과 수련을 계속하는 한편 자기만의 주제와 목소리를 찾아가는 작가의 성실한 자세를 보면서 나는 경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한 사람의 동료로써 내가 그에게 큰 기대를 거는 이유일 것이다. (2021년 2월 12일) ■ 이태호

 

 

김태현_구상나무_스테인리스, 혼합재료_42×70×20cm_2020

 

 

일상적 찰나의 조각을 모으면 자연은 내게 경이로운 풍경으로 영감을 준다. 풍경 속 자연물들은 각기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역할을 해내는 사회 안의 구성원들을 생각하게 한다. 지나치는 자연 광경 안의 무심한 나무는 얼마나 모진 풍파 견뎌가며 그 안의 나이테를 만든 것인가. 노동의 장소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이는 작품의 소재가 된다. 육체노동이 오롯이 쏟아지는 시간과 힘의 가치는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 용광로처럼 뜨겁고 쇠처럼 단단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노동집약적인 용접을 이용한 회화적 화면 구성이 삶에 열정을 작품에 각인시킨다. 자연과 사회의 현상을 일상적 삶과 기억들을 재조명하는 프레임으로 적용시켜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사소한 풍경과 그것에 깃든 추억과 기억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그 자연이 가진 일상에 다른 가치를 재해석하고 싶다. 온 세상 만물은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이기 때문이다. ■ 김태현

 

 

Vol.20210204a | 김태현展 / KIMTAEHYUN / 金太鉉 / sculpture.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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