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동강할미꽃 축제장에서 뜻밖의 조각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귤암리 사는 지동진씨 소개로 만난 김영철씨는 이웃마을 비룡동에 산다고 했다.
이주 한지가 3년이 넘었다지만 여지 것 모르고 있었는데, 새로운 동지를 만난 것 처럼 반가웠다.

그의 작업들이 궁금해 곧 바로 비룡동 작업실에 처들어 갔다.
'불교미술조각연구소'란 작업실 외곽에는 불상들과 현대조각품들이 앉거나, 서 있었고,
작업실 두 칸에는 불교조각들과 공구들이 늘렸는데, 한 작가의 깊은 내공이 엿 보였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조각가 김영철씨는 혼자 살고 있었다.
산골에서 혼자 살면 외롭지만, 한편으론 자유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는 외로움 보다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실 한 켠의 서재에 낮익은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일곱권으로 만들어진 도록 '한국불교미술대전'인데, 책에 실린 사진들을 필자가 찍었다.

94년 무렵, 몇 년에 걸쳐 찍은 전국 사찰 원고를 ‘한국색채문화사’로 넘겼으나,

출판사가 부도나 천만 원이 넘는 사진 원고료를 받지 못한, 사연 깊은 책이다.

동네 주민들과의 협조는 잘 이루어지냐고 물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을 내려 보내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관청의 무관심이 더 의욕을 잃게 한다고 말했다.
외부와 단절되어 깊은 산속에서 살아 온 정선사람들의 오랜 배타적 습성이라며 위안했으나,

오랫동안 겪어 봤기에 그 고충이 이해 되었다.

이제 정선 비룡마을의 김영철씨 외에도 ‘그림바위’마을의 이재욱씨와

북평면 문곡리 남평분교에 작업실을 둔 이영학씨 등 정선에 거주하는 조각가가 세 사람이나 된다.
나전에 있는 ‘인형의 집’, 신동의 ‘추억의 박물관’에 이어 조각가들의 조각공원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작가들의 작업과 연관된 장터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작업공방들도 만들었으면 한다.

장승공방, 솟대공방, 사진방, 음악방, 문학방 등 다양한 작업실을 오픈하여

관광객들이 또 다른 정선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정선, 작가의 방 투어'라는 관광코스라도 만들면 어떨까?

사진,글 / 조문호

 

 

 

 

 

 

 

 

 

 

 

 

 

 

 

 

 

 

 

 

좌로부터 제주 환경원예조경연구소 김희주 소장 내외와 조각가 김영철씨 그리고 화가 정봉길씨




이 사람의 꿈 ① 조각가 이영학


연탄집게·호미·돌쩌귀 … 그가 만지면 훨훨 나는 새가 된다

​정선 아우라지 골짜기로 들어가
버려진 온갖 농기구에 새 숨결
수만 마리 새떼 나는 미술관 구상

 

 

3년 여 전국을 돌며 땅 관상을 본 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문곡리 강변길 옛 남평초등학교 분교에 여생을

묻을 자리를 잡은 조각가 이영학씨. 평생 모아온 화강암 물확과 돌조각, 농기구 용품 등으로 자연보다

더 자연 같은 미술관을 지을 터다지기에 들어갔다. [정선=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짧지만 긴 인생을 꿈 하나에 걸고 간다. ‘내 멋대로 산다’는 자유와 나란히, 이 땅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의지가 빛난다. 제 이름 하나로 문화예술계에 길을 낸 이들을 만난다. 첫 인물은 전통과 자연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서 한국 조각의 뿌리를 찾는 이영학씨다.


 

청동과 돌2, 화강암·청동·대나무, 2000

물, 돌, 풀. 조각가 이영학(66)씨는 물과 돌과 풀로 세상을 빚어낸다. 물과 돌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돌과 풀, 물과 풀 또한 그렇다. 그들이 한데 어우러져 숨 쉬면 자연이 호흡하는 즐거움이 보인다. 목숨 살아가는 묘가 낭랑하다.

그뿐이 아니다. 돌은 돌이고, 물은 물이며, 풀은 풀이다. 돌을 쪼아 사람을 만들어도 돌은 돌로 돌아간다. 얼굴은 풍상(風霜) 서린 돌로 변용된다. 물처럼 흐르고, 풀처럼 눕는 그의 조각은 작품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을 통해버린 허정(虛靜)의 말이다. 소설가 한수산은 그런 이영학의 조각세계를 ‘정적과 회귀’라고 요약했다.

 한동안 이씨는 서울 수유리 공방에 돌과 마주앉아 한국인 얼굴로 노자(老子)의 말씀을 빚었다. ‘모가 나면 좀 무디게 한다’는 ‘좌기예(挫其銳)’를 육화한 그의 얼굴 조각에는 시간이 물처럼 고여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 모아 새를 날렸다. 소설가 박완서는 생전에 “이영학의 작업실에서 나는 새가 된 나의 연탄집게와 식칼을 만났다”고 썼다. 낫과 호미와 쇠스랑이 접 붙어 새로 퍼덕이고, 엿가위가 소머리로 환생했다. 사진가 강운구씨는 “고물 쇠 쪼가리들을 훨훨 날게 하는 그이의 상상력은 새처럼 자유롭다”고 감탄했다.

 

 

 

호랑이, 청동·대나무·철사, 1991

 

 

 

 물, 돌, 풀처럼 침묵하던 그가 강원도 정선으로 마음을 옮겼다. 북평면 문곡리 폐교에 평생 목숨처럼 끌어안고 살던 조각과 재료들을 모시고 새 길을 보고 있다. 흉금을 정에 담아 쪼음질을 하던 그가 이제 한국 땅을 두드려 국토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무엇이든 고향으로 돌아가지요. 나는 정선 아우라지 골짜구니에서 고향을 봤습니다. 어디에 뿌리를 내릴까 참 많이 쏘다녔습니다. 작업실에 들어앉아 돌만 만지고 있을 때도 세파를 느끼며 주유했지요. 여기만은 내가 지키고 싶어요. 한국인의 얼굴과 마음으로 세계인에게 평온과 기쁨을 줄 수 있어요. 자연에 스며들어 그저 돌처럼, 물처럼, 풀처럼 보이는 미술관을 쪼고 있습니다.”

 

 

 

새, 철·나무, 1999

 

 

그는 5년 여 전부터 차근차근 돌을 옮기고 물길을 끌어들여 길을 내고 있다. 강에 떠내려가는 죽은 나무를 건져내 말렸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폐가에 버리고 간 농기구를 챙겨 쟁여놓았다. 기둥과 문짝 사이에 끼어 닳아버린 돌쩌귀, 만삭의 아낙이 김을 매다 힘없이 놓쳐버린 호미, 어느 집 가장이 나뭇결에 대못을 박던 장도리, 모두 모여 작가의 손이 자신에게 영혼을 불어넣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다른 것도 많은데 왜 새를 만드는지 아십니까. 저것들은 그저 물건이 아닙니다. 사람 손끝에서 길들여 지면 정이 쌓이고 혼이 고이죠. 그들이 새가 되어 날아가게 해주고 싶어요. 물건으로 살아온 설움을 황홀한 비상으로 풀어주는 거죠.”

 그는 정선군 장터에 비어있는 옛 대형 곡물 창고를 새떼 수만 마리로 채운 미술관으로 꾸미는 꿈을 내비쳤다. 오만 가지 농기구가 각양각색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모습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장관일 것이다. 몇 가지 도구에 최소한의 손길만 준 뒤 딱 감이 오는 순간에 손을 떼는 그의 새 작업은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돌려주고픈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지극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없습니다.”

 조각가 이영학과 그의 새들이 물, 돌, 풀과 만나 강원도 정선 천혜의 자연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중앙일보/ 정선=정재숙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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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학=1948년 부산 출생. 서울대 조소과 졸업 뒤 이탈리아 로마 예술원과 시립 장식미술학교에서 공부 . 서울대 대학원에서 ‘마리노 마리니 작품 연구’로 석사학위. 인체 두상 조각에 집중하며 250여 점이 넘는 한국 사회 대표 인물 조각상을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생활 폐품을 이용한 새와 호랑이 조각으로 일가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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