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 언젠가는 꽃잎처럼 떨어져 사라진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서러운 것은 쉽게 잊혀진다는 것이다.





힘든 세상사, 어쩌면 죽음 자체가 축복일 수도 있겠다.

난, 초상집이 잔치마당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문상객의 슬픈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까지 만들어 두었다.





죽음이란 떠나가는 망자보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다.
슬픔도 잠시 뿐, 쉽게 잊어버리고 좀처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게 더 슬프다.





흐르는 세월에 잊혀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으나,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아무리 좋아했던 사람도 조금만 지나면 까마득하게 잊혀진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건망증 환자다.






얼마 전, 인사동을 사랑한, 한 여인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지만,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다 가난이 원죄다. 절망의 벽이 너무 높았던 모양이다.






삶을 끝낸 것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무관심한 것은 쪽방촌에 사는 빈민들도 마찬가지다. 강아지가 죽어도 그러지는 않는다.

가족들이 방관하는 시신은 냉동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태워진다.






돈과 명예를 가진 자의 죽음은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시끄럽지만,

그 여인의 자살은 많은 신문의 어느 한 구석에도 실리지 않았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만 무성하지, 가진 것 없는 낮은 사람은 죽어서도 외면 당한다.


더러운 세상, 저주의 굿판이나 벌일까 보다.






꽃잎처럼 떨어져 세상을 등진 정성애씨는 참 착한 여자였다.
지난 여름, 우연히 인사동 ‘유목민’에서 찍은 사진이 그녀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하필이면,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을 배경으로 찍었는데,
80년 5월, 광주에서 죽어가는 엄마를 뿌리친 소녀의 한에 버금가는가?
담배 연기속의 애잔한 웃음에 가슴이 아린다.


우연히 그녀 사진을 만나, 그리운 분의 모습을 찾아 보았다.







“문디 자슥아~ 문디 자슥아~”를 연발하던 천상병 선생은 윙크하고 계셨다.

노자돈 받아 막걸리 사 드시며 흐뭇해 하시던 모습이 그립다.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께서 인사동 고서점을 기웃거리는 사진도 있었다.

말씀 없이 웃으시며, 허름한 봇짐에서 붓글씨를 꺼내 나누어 주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자유분방한 선생만의 필체는 오래된 인사동 가게라면 부적처럼 붙어있다.






선배들은 챙겨주고, 후배들은 다독거리던 ‘민예총’의 거목 김용태씨도 반겼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 바지춤을 추켜 세우며 부르던 청포도사랑이 듣고 싶어진다.

저승에서라도 재기의 깃발 올리는 '민예총'에 힘을 실어주길 부탁한다. 





민속박물관장을 지낸 김동수선생은 점심 먹자는 전화를 가끔 하셨다.

인사동에 작업실이 있을 때인데, 선생께서도 사무실을 인사동에 두었다.

만나기만 하면 인사처럼 하시는 말씀이 조군 사진 값을 줘야 할텐데...”였다.

인사동 사람들전시 후, 선생사진을 전해 드렸더니 그게 마음에 걸렸나보다.





‘인사동, 봄날은 간다’ 사진전에 오셨던 이계익 장관도 보고 싶어진다. 
노 풍류객의 아코디온 소리가 아직까지 귓전에 생생하다.

그 와중에 민영시인과 연극배우 이명희씨가 나누는 밀담은 무엇이었을까?





혼 술로 속세를 마감한 적음선사도 내 눈에 밟힌다.

땡초처럼 살았지만, 마음은 깊다. 그가 기거한 '일소암'에서만 볼 수 있는 속내다.

정선 '만지산축제'에서 불렀던 '긴머리 소녀'도 잊을 수 없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중이 부른 노래라 다들 배꼽 잡았지만, 나는 슬펐다.






별을 그리다, 별 따라 간 강용대 화백,

인사동에서 일원짜리 동전 가진 사람에게 십원짜리로 바꾸어주는 퍼포먼스도 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사동 거지 까딱이를 반기며, 대작해준 유일한 술 친구였다.

김용문씨의 '옹관장전' 퍼포먼스에서는, 왜 온 몸을 칭칭 감은 시신 역활을 자처했을가?

일찍부터, 더러운 세상 살고 싶지 않았나보다.





인사동 콧수염으로 통하는 김영수는 성질 한번 고약하다.

그는 마음이 상하면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성격이다.

괴팍한 그의 박치기에 나가떨어진 사람도 여럿 보았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장례식장 가다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도 당했다.

장례식장에 구급차 타고 갔던 귀 막힌 사연이다.





 

문영태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지인들 전시에는 빠지지 않는 의리파다.

그가 그린 심상석을 보여 달래도 끝까지 보여주지 않더니,

결국 죽고 나서 모든 작품을 보여주었다.

저승에서 빙그레 웃고 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천상병 선생 뒷바라지로 고생하셨던 '귀천'의 목순옥 여사 모습도 안스러웠다.

천상병 선생 기리는 사업을 그렇게 악착스레 밀어 붙이더니, 결국 빚더미에 오르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돈을 못 구해 전전긍긍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신을 위한 삶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가련한 분인데...





온갖 기행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중광스님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만나뵈러 댁에 갔더니, 조기를 갈비처럼 뜯어 드시며 어린애처럼 식탁을 어지럽혔다.

사진처럼, 허접한 것들을 보여주며 이게 바로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업실에선 들통에 가득 담긴 먹물을 샤워하듯 온 몸에 부어 쑥대밭을 만들기도 했다.

자우지간 괴짜였다. 저승에서는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다.





'인사동 밤안개'로 불리는 목탄화가 여운도 그립다.

인사동 카페 '산타페'에다 양주를 맡겨두고, 술 값 없으면 그 술 마시라는 멋쟁이다.

자신을 위해선 남에게 부탁 한 번 않지만, 어려운 친구를 위해선 손발 걷어 부친다. 

자칭 '전푼련"(전국푼수연합회) 회장이시다. 






온 몸을 비틀며 시를 토해낸 이선관시인,

공단 폐수에 썩어가는 바다를 절규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썩어가는 인간들 정신에 통곡했을 것이다.





기타 하나 둘러메고 인사동을 떠돌던 유랑객 이종문씨는

대마초 한 모금에 세상 시름 다 녹이며, 아름답게 살다 떠났다.





정남규와 홍수진은 둘 다 병들어 떠났지만, 죽는 방식은 달랐다.

정남규는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 매달아 죽었지만, 홍수진은 병원에서 끌려갔다.

다들 정남규를 나무라지만, 누가 더 현명했는지는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홍수진의 시 처럼,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잠들지 않았다.





마지막 사진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이다.
민속극과 인사동을 온 몸으로 껴안고 사셨지만, 허허롭게 떠난 것이다.

넋전춤으로 선생의 넋을 기리는 제자 양혜경씨가 있어 그나마 위안된다.






그러나 죽는 것만 죽은 것이 아니다.

아무 일도 못한 채, 병석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 더 불쌍하다.
어눌한 말로 낄낄 거리던 이청운화백 모습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이 원망스럽더라.






우리 모두, 그리운 사람들 추억이나 씹자.
죽는 것 보다 더 서러운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백남이 (시인)

 

 

신동여 (도예가)

 

고) 이선관 (시인)

 

 

김언경 (설치미술가)

 

 

이청운 (서양화가)

 

 

 

고) 김영수 (사진가)

 

 

고) 천상병 (시인)

 

박신정 (조각가)

 

 

김신용 (시인)

 

고) 홍수진 (시인)

 

윤희성 (카페주인)

 

장 춘 (불화가)

 

 

윤소정 (영화배우)

 

김상덕 (무직)

 

고) 박재삼 (시인)

 

최울가 (서양화가)

 

배평모 (소설가)

 

고) 이종문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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