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으로 가는 길.. 

오늘은 김장 배추와 무를 심고 가을 내내 먹을 채소를 심는 날입니다. 밭고랑을 만들 쇠스랑과 괭이, 씨앗을 섬세하게 덮어줄 잔발쇠스랑을 챙겼습니다. 밭을 만들 땐 먼저 밭으로 쓸 경계를 잡고 가장자리 흙을 걷어 올려 주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물에 따라 밭을 좁게 혹은 넓게 만드는데, 쇠스랑의 길이에 맞추어 곧게 흙을 걷어 올리면 밭둑과 골의 경계선이 만들어집니다.

 

 

 

농사는 자연이 해준다라는 말을 많은 분들이 하기도 합니다. 아마 농사는 꼭 사람이 한 것만으로는 다 되지 않는다는 말 일 겁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어도 그 식물의 조건에 맞추어 주는 노력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기에 자연에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올봄에 처음으로 해바라기 씨를 심었습니다. 밭과 길을 걸어 다니면서 해바라기를 보고 싶은 곳에 흙을 파고 씨를 뿌렸습니다. 싹이 났지만 얼마 못 가 시들고 말라버렸습니다. 장소도 적절치 못했지만 흙을 파서 씨만 뿌린다고 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흙을 파고 씨를 뿌린 뒤, 흙을 덮어줄 때 약간 오목하게 해 줘야지만 씨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흙을 팠다가 다시 그 흙을 다 덮으면 수북하게 쌓이게 되는데 그러면 빗물이 씨앗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옆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해바라기는 대가 크고 키가 높게 자라는 식물이므로 주변의 자리가 넉넉해야 하고 모든 씨앗을 심을 때는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오목하게 만들어주어야 싹이 나와 뿌리가 튼튼해질 때까지 마르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씨앗을 뿌릴 밭을 만들 때는 이처럼 이랑을 타고 골을 만들어 씨앗을 뿌립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밭 둑을 만들고 그 위에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심은 해바라기처럼 수분이 부족하여 시들고 말라버리게 됩니다. 이랑을 만들 때도 작은 씨앗은 작게 굵은 씨앗은 더 크게.... 사실 씨앗의 크기가 작거나 크다고 하여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것들을 섬세하게 살피고 가려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몫입니다. 씨앗 크기의 2-3배 정도 깊이로 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거의 1mm 정도 크기의 씨앗이니 2-3mm 정도만 덮일 수 있게 골을 타고 씨앗을 넣는다는 말이 됩니다. 대략 아무렇게나 하는 듯이 보이는 농사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듯 세심하고 정밀함이 필요한 것이 농사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배추모종

 

배추와 아욱싹
김장 무와 가을채소( 상추, 시금치, 아욱)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곳을 올라오는 산길 옆으로는 논이 있습니다. 논둑에는 풀이 뒤덮히고 산자락 옆으로 칡이 엉켜 내려오기도 합니다. 풀 때문에 제초제를 뿌린 풍경은 푸른 벼와 그 옆자락에 있는 잡초는 노랗게 질려 시들어 있습니다. 농약과 제초제를 뿌리는 농민들을 비난하거나 좋지 않게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 많은 풀을 감당할 수 없으니 약을 뿌리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노력할 수 있을까,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농민 분이 혼자 오셔서 벼 사이 풀도 뽑고 논둑의 풀을 예초기로 깍지만 풀은 때마다 무성히 자라는데 그 넓고 많은 논자락을 그분 혼자서 손으로 다 뽑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참외씨

지금은 농사를 짓는 분들도 씨앗을 받아서 심지 않고 거의 종묘사나 농협에서 모종을 사고 씨앗을 사서 심으시겠지요.

그런데 그 종자는 다수확을 목표로 개량한 품종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에서의 적응력이 부족해서 병과 충해에 약한 것이 대부분이라 그 종자를 심으면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지 않고서는 길러내지 못합니다. 재래종 또는 토종이라고 하는 씨앗들과는 특히 이런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이곳에 와서 토종의 열매들과 채소들을 보고 먹게 되었을 때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가 생각되거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이곳에 계신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책이나 자료들을 더러 찾아보기도 하면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은... 토종참외가 꼭 맛이 좋고 우리나라의 것이고..라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토착화된 이 땅에서 살아남은 씨앗이지요. 그러니까 더 건강한 농사에 잘 맞는 씨앗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씨앗을 받아서 보관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듭니다. 지금은 이렇습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호박. 고추, 참외, 오이, 상추 등, 무엇이든 심어 먹으면 그것들의 씨앗까지 받아야만 농사가 마무리 됩니다. 참외를 먹으며 참외씨를 받습니다. 조금 노란빛을 띈 하얗고 조그만 씨앗, 자세히 보면 예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생각하면 참 대단하기도 합니다.

 

08.07 참외밭

 

참외가 막 달렸을 때에는 초록색에서 익으면 노랗게 바뀔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짙은 초록에서 점점 색이 연해지면서 보송보송한 털이 벗겨지고 냄새를 맡으면 달콤한 참외냄새가 날 때 다 익은 것입니다. 지금은 노란 참외 밖에 없지만 옛날에 참외는 초록색이었다고 합니다. 이 참외는 우리나라의 재래종 참외 종류 중 하나로 오류골참외 또는 열 골 참외라고 불립니다. 옛 한양 근교의 오류리(현 서울 금천구 오류동)에서 재배가 많이 되어 오류골참외, 골이 열 개라서 열골 참외로 부른다고 전해집니다.

 

 

08.07참외밭
08.16 참외 

 

 

노란참외와는 전혀 맛이 다를 거라고 말씀하셔서 기대를 하고 먹어봤는데, 정말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알던 참외 맛이 아니었거든요.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감자칼로 깎는 게 편했습니다. 겉에 육질은 메론처럼 부드럽고 단맛이 강했습니다. 안에 있는 씨는 밭에다 심으면 싹이 나는 진짜 씨앗이기 때문에 약간 딱딱합니다. 꼭꼭 씹어먹으면 고소하고 아니면 발라내서 씻고 말려서 보관하면 참외씨앗이 됩니다.

그런데 왜 사라졌을까요? 이 참외는 부드러운 만큼 보관기간이 짧아 다 익었는데 따지 않으면 밭에서 골아버립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여도 2~3일 안에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시장 구조에서는 팔 수 없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참외뿐만이 아니라 많은 농작물들이 이러한 유통구조에 맞추어 개량되면서 옛 우리나라의 재래종 작물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고추는 껍질이 두꺼워지고 토마토도 단단해지고... 즐겨 먹는 들깻잎조차 다수확을 목표로 향이 사라져 가고...

 

 

이렇게 배꼽있는 참외가 맛있다고 합니다.

 

 

 

참외는 마트에서 5~6월경에 나오고 끝납니다. 7월부터는 여름이니 제철과일이라고 수박이 나오지만,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심는 작물의 사정은 좀 다릅니다. 어떤 것이 제철일까요? 봄에 일찍 참외를 심어도 밭으로 나갈 때는 6월에 모종을 심었습니다. 6월에 심으면 넝쿨을 뻗어서 세력도 넓혀야 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달리려면 한 달은 꼬박 잘 자라야합니다. 장마가 끝난 8월이 되어야 비도 마르면서 참외를 먹을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는 한참 전에 참외는 끝났고 이제 수박을 먹을 때인데요 하하. 이 수박은 한 참 수박을 먹을 때 씨앗을 심었더니 아직 손바닥 만합니다. 

가을이면 먹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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