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강산도 바꾸고 학번도 주민번호 앞자리도 바꾼다. 평점은 대개 10점 만점이다. 장수의 상징 하면 또 십장생이다. 변화와 만개, 영속이 모두 ‘10’에 담겨 있다. OCI미술관의 지난 10년은 일일이 손꼽기 힘든 많은 작가들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업, 그들의 손으로 꾸린 각양각색의 전시로 반짝였다.

작가들의 목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려 늘 고민하는 것이 전시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들도 마주치면 더 크게 진동하지 않을까? 따로 볼 때 미처 몰랐던 색다른 면모가 보다 또렷해지고, 서로 한층 돋보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각자 왼손 혹은 오른손이 되어, 짝과 둘씩 마주 어우러진다. 깍지 끼는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팽팽하게 맞서다 때론 기대어 서고, 꼬치에 꿰어 도는가 하면, 거미줄로 두루 얽는다. 넌지시 이어지는 시각적 박자 속에 저마다 무언가 확장하고 뛰어넘는 ‘초월 얼개’를 심지처럼 품는다. 영 딴판이면서도 어딘가 자못 통하는 다섯 쌍의 작가들. 의기투합 깍지 끼고 쭉 뻗어 서로 밀어주는 양손을, OCI미술관을 빛낸 ‘금손’들을 다시 만난다.

 

김영기 (선임 큐레이터)




'족쇄와 코뚜레'

참여작가 :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신민,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전시일시 : 2019,9,5-10-26

전시장소 : oci미술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좀 추슬러 차리니 아무래도 먹기가 편하다.종류별로 나눠 가지런히 담아내니 더 깔끔하고 맛있는 것 같다.갖은 모양을 내어 예쁘게 플레이팅 하니 요리의 급수가 오른 기분이다.음식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수준으로 정성을 들이니, 아까워 먹을 수 없을 정도이다.평생에 다시없을 독창적인 꾸밈새가 나오니, 이건 더 이상 음식의 영역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과 美1의 추구는 전혀 딴판 말고 같은 판에 있다. 숨이 붙어 있기만 하면 산 것이고, 걸치면 옷이고, 씹어 삼키면 다 음식인가? 맛있는 것보다 기왕이면 맛있고 예쁜 걸, 치마 하면 다홍치마를 집어 드는 건, 욕구 단계론이라도 끌어다 논리적인 척할 것도 없이 그냥 ‘본능’이라 퉁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러울 듯싶다. 쾌快의 수많은 가닥 중 굵직한 하나가 단연 美라면, 의식주를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걸, 더 좋은 걸 찾을 것이다. 그런데 美의 추구에는 대가가 따른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데, 너도 나도 찾는 홍상이 동가일 리 있나. 동가에 ‘ㄷ’만 꺼내도 ‘홍상 프리미엄 모르냐?’는 타박만 돌아온다. 제품도 그러할진대 작품이야 말해 무엇하랴. 당장 입지도 못할 홍상을 훨씬 멋지게 짓는 일인 것을. 그런데 어럽쇼? 천신만고 마다않고 다 지어 놨더니 ‘입지 못할 홍상, 매입 사절’이란다. 짓는 족족 팔려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빌붙어 늙는 자식놈처럼 철없이 눌러앉은 치마 더미를 보고 있자니 썩고 타는 건 그저 속이요, 언감생심 다음 치마 넘볼 처지가 못 된다. 치마는 쌓이고, 여력은 깎이고, 확신은 꺾인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작업 하기 더더욱 어려워진다. 연년생 키재기하듯 무럭무럭 쌓이는 울긋불긋 고지서와 갖은 독촉장을 우두커니 바라보자니 휑한 깨달음이 온다. ‘다른 모든 걸 끊고 작업에 매진하다가는 까닥, 작업도 끊게 될 판이구나.’ 이러나저러나 ‘작업을 하려면 작업 아닌 것을, 작업의 ‘여집합’을 열심히, 또 잘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요번에 필feel 한번 제대로 꽂힌 회심의 역작, 하늘을 나는 다홍치마 작업 하려면, 공장에서 바지 백 벌은 기워야 할 성싶다. 모자랄지 모르니 이백 벌 해 놓자. 그냥 넉넉하게 천 벌 할까?’ 여집합에 몰두할수록 든든히 작업을 뒷받침할 수 있으리란 기대 하나로, 치마 지을 힘이며 짬이며 좌우간 있는 대로 박박 긁어다 바지 공장에 기약 없이 들이붓던 어느 날, 인터뷰가 들어왔다! 무려 ‘바지 달인 특집’이란다. 치마 작가 말고. 여집합은, 몰두할수록 작업과 서먹해지는 부작용 표기가 소홀했다. 발목 잡히지 않으려 뛰어든 여집합에 코 꿰어 정신없이 끌려가다 보니 숫제 여긴 어디쯤일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무엇에 취한 듯 덜 깨어 아직 흐리멍덩한 눈, 도통 갈피가 서질 않아 여전히 망설이는 얼굴로 연거푸 두리번댄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족쇄 차고 고군분투 마른 풀숲을 훑어야 할까? 여물 때만 손꼽으며 이름 모를 논두렁 따라 그저 ‘존버 앞으로’ 해야 할까? 갈 힘과 갈 길, 어느 쪽을 저당잡힐는지.족쇄냐 코뚜레냐 그것이 문제로다.

1문두에서 ‘예쁜 것’으로 순화-연수기로 거르듯 ‘연화 軟化, softening’라 하면 더욱 적절하겠다-한 좁은 의미의 ‘美’와 관련, 진리, 보편, 합리, 숭고, 우아, 희소, 비장, 황홀 등 하고많은 모양새를 규정해 왔지만, ‘그럴듯함’이야말로 너무 한정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고 사뭇 적절해 보인다. 앞서 나온 단어들 또한 ‘이런저런 그럴듯함’의 나열이 아닌가.

김영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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