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의 대부로 불리는 박재동화백이 인사동 ‘거리 화가’로 나섰다.

박 화백의 ‘오픈 스튜디오’가 '인사아트프라자'(인사동길 34-1)

건물 초입에 인사동 복덕방 처럼 둥치 튼 것이다.

 

인사동이 예술가 아지트로서 구심점을 잃어가는 현실이라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인사동에 70년대 김상옥시인의 '아자방'이 있었다면, 80년대는 천상병시인의 ‘귀천’이 있었다.

문영태를 비롯한 여러 전사들이 꾸려간 민중미술의 요람 '그림마당 민'도 있었다.

정동용시인의 ‘시인대학’. 흑백 사진만 뽑던 신작가의 '꽃나라', 전유성씨의 ‘학교종이 땡땡땡’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던 아지트들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점포가 상징처럼 인사동에 똬리 틀어,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인사아트프라자'의 배려로 캐리커처 공간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니,

문 닫을 염려야 없겠지만, 노장의 체력이 버텨줄지 모르겠다.

 

그동안 가짜 미투에 걸려  얼마나 곤욕스러운 시간을 보냈는가?

진위야 밝혀졌지만, 땅에 떨어진 작가의 명예는 어떻게 되찾겠나?

더 이상 미투가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순진한 박원순시장의 목숨까지 앗아가지 않았던가?

미투운동이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데는 큰 몫을 했지만,

억울하게 이용 당한 남성의 인권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박화백의 대중 소통을 위한 접근은 권위적이고 물질적인 미술을 인본주의로 돌려놓았다.

미술작품이 가진 자들의 욕망에 컴컴한 수장고에 갇혀 잠자는 것이 좋겠는가?

살아가는 공간 가까이에서 볼 때마다 눈웃음 짖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어디서, 재료값에 불과한 돈으로 박화백의 초상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건 대중을 껴 안고자하는 박화백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수행의 한 방편도 될 수 있고, 이보다 더 치열한 작업도 없겠다 싶다.

 

박화백이 인사동에 ‘오픈 스튜디오’를 차렸다는 반가운 소식은

보름 전 페북에서 보았는데, 한 번 찾아가 기록해 둔다는 게 영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박화백은 목, 금, 토요일만 나오는데다, 난 정선에서 화요일만 나오니 날자가 엇갈렸다.

 

지난 금요일에서야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마침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그런데, 옆 자리에 영화평론가 강익모씨가 앉아 있었다.

“아! 이 얼마만인가?” 강교수와 소식 끊긴지가 10년은 된 것 같았다.

 

아직 사년 정도의 임기를 남겨두고 교수직에서 퇴임했다는 소식과

부친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 주었다.

 

인사동 건물 옥상에서 영화를 상영하던 이야기에서부터

옛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박재동 화백의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스케치하는 눈빛이 내 마음을 뚫어 보는 것처럼 강렬했다.

마치 점쟁이가 사주 보듯 말이다.

 

여지 것 찻집에서나 술집에서 박화백을 뵐 때마다

항상 스켓치북에 누군가를 그리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놓지 못하듯이 항상 그의 손에는 붓이 잡혀 있었다.

나 역시 여러 차례 모델이 되기도 했는데, 

작품 값은 고사하고 수고비도 드리지 못하고 챙겨 둔 초상화가 석장이나 된다.

포인트만 잡으면 척척 그려가는 솜씨가 가히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날도 짧은 시간에 두 장이나 그렸는데, 징그러운 늙은이를 귀여운 늙은이로 둔갑시켜 놓았더라.

영감탱이의 엉큼한 심보가 뽀록 나도록 그렸는데, 화가인지 점쟁인지 도통 분간이 안 된다.

 

한 장은 사 와야 하는데, 큰 그림이라 솔직히 돈이 좀 부족했다.

돈 생기면 살 생각으로 어물쩍 넘겼는데, 거지 손님을 잘 못 골란 죄도 있다.

 

강익모 촬영

 

박재동선생 사진 찍으러 갔다가 도리어 내가 모델이 된 셈이다.

어쨋던, 박화백이 인사동 거리의 화가로 등장해 너무 기분좋다.

지난 달 ‘현실과 발언’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린 '학고제' 현장 작업과 바로 연결된 것 같다.

 

그의 초상화는 언제보아도 정겹다. 그림에 사람의 따듯한 체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박재동 화백의 숨겨진 얼굴 그리기 프로젝트의 따뜻함으로 인사동에 온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박재동 화백만 보면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시사만평 '한겨레 그림판'부터 떠오른다.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 세대의 진보의식을 대변하는 '만화운동가'로 활동하지 않았던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한 메스로 파헤친 그의 만평은 시대 고발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가 보여준 시사만화 세계는 독창적이며 독보적이었다.

신문 만평을 독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기사의 핵심으로 만들었고,

‘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시사만화’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조그만 사각 속에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 고민과 아픔을 웃음과 눈물로 버무렸다.

 

두 번째가 ‘한예종’교수로 일하며 후진을 양성한 시기라면,

이 '숨겨진 얼굴 그리기 프로젝트'는 세 번째의 대변신인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초상화는 인사동 명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많지 않아

오히려 한가하게 이야기 나누며 자기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도 싶다.

박재동 화백의 붓 끝에 탄생한 당신의 초상화가 인사동 문화에 불을 지핀다.

 

인사동 나가는 걸음에 자신의 초상화 한 장 그려 두자.

 

사진, 글 / 조문호

 




그래피티 시사만평가인 닌볼트가 이달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마루갤러리 1·2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 제목은 ‘Don’t run away’로 작가 닌볼트의 다양한 상상력을 캔버스에 옮겼다.

전시회가 시작하는 21일 오후 6시에는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정세훈의 축하오프닝공연이 펼쳐진다.

23일에는 인사아트프라자 지하 2층 공연장에서 드로잉쇼를 비롯해 작가들과 함께하는 토크쇼와 만원 경매 등이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글로벌엔터가 주최하고 아트그룹 ‘동거동락’이 주관하며 미술잡지 ‘미술세계’, CEO강연연구소, 아트스팟 등이 후원한다.
주최 측은 “척박한 국내 미술시장에서의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작가 닌볼트의 끝없는 상상력으로 다양한 삶의 현장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라고 말했다.

초대된 닌볼트 작가는 국내 그래피티 분야의 대표적인 1세대 작가로

최근에는 주간 UPI뉴스+(UPInewsplus)에 ‘닌볼트의 그래피티 시사만평’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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