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마감하기 전에 ‘좋은 일 더 하자’ 간절”
칠순 넘어 눈뜬 ‘자비행’ 실천

 



월서 스님이 팔순을 맞아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선묵일여(禪墨一如·선과 붓글씨는 둘이 아님)지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서예라고 부르지 않고 서도(書道)라고 합니다. 이 또한 도를 닦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조실(정신적인 지도자)인 월서 스님이 팔순을 맞아 29일~5월5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22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매일 자정에 일어나 새벽 5시까지 6개월 동안 정진하듯 300점의 글을 썼다고 소개했다. 전시회엔 그의 작품과 간직해온 옛 선사들의 작품 등 모두 40점이 나온다. 전시 수익금은 전액 동남아시아 빈민촌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데 쓰인다.


그는 불국사·분황사·조계사 등의 주지를 지내고 선방 참선만 해오다 뒤늦게 어려운 아이들의 실상에 눈을 떴다. 조계종 대표단으로 2007년 방문한 북한에서 굶주리는 동포 어린이들을 본 뒤 그는 생애 첫 자선 서예전을 열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돕기 위해서였다.


2012년엔 캄보디아의 오지를 방문했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과서도 없는 것을 보고 천호희망재단을 설립해 교과서와 학용품을 지원했다. 이어 프놈펜 시아누크왕립불교대학에 컴퓨터를 기증하고, 씨엠립 인근 바탐방 지뢰마을에는 쌀을 보시하기도 했다. 후원이나 협찬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냈다. “자칫 잘못하면 업을 짓기에 부족하면 부족하는대로 하는 게 낫다”는 소신을 실천한 것이다.


출가 이전 한국전쟁 직후 전투경찰로 징집돼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됐던 그는 사흘만에 입대 동기 2명의 전사를 겪었다. 제대한 뒤에도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으로 고승 금오 스님을 찾아갔다. 금오 스님은 “나고 죽는 것보다 큰 일은 없다. 그 생사 일대사를 해결하려면 출가하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았다. 새벽마다 서도로 선정을 닦는 것도 생사의 분별을 넘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했다.


“몇년 전부터 선후배와 도반들이 한명 한명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니 더욱 무상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 생을 마치기 전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보현행원품>에 나온대로 모든 좋은 일을 행해야할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아직 완성되지 못한 글씨나마 내놓게 됐다.”


그는 자신의 글씨에 대해 겸허했다. 그러나 함께 자리한 원로 서예가 구당 여원구 선생은 “월서 스님의 글은 추사 김정희의 서풍을 그대로 이어받아 서체에 기운이 있고, 격이 높다”고 평했다.


고요한 새벽녁 써낸 ‘상락아정’(常樂我淨·내가 맑아지니 항상 기쁘네)을 들어보인 노승의 입가로 오랜 묵빛같은 웃음이 번졌다.

[한겨레신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월서 스님 서예전 4월29일~5월5일 한국미술관
수익금 동남아 학교 건립 및 장학금 기금으로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국제구호단체 ‘천호희망재단’을 이끌고 있는 천호월서 스님이 동남아 오지 학교 건립 및 장학금 조성을 위한 서예전을 개최한다. 4월29일~5월5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천호월서 선사 산수(傘壽)전’은 교육 불사를 통한 자비의 실천이자 오도송과 열반송에 드러난 선사들의 치열한 수행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다. 동남아시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스님의 뜻에 힘을 더하기 위해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가 전시를 주최하고 조계종총무원과 동국대가 후원에 나섰다. 전시 개막식은 4월29일 오후3시다.

 

 

▲ 조계종원로의원 월서 대종사.

 

월서 스님은 2012년 캄보디아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 텝봉 스님을 만나 캄보디아 오지 지역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을 계기로 라오스, 미얀마, 네팔 등 불교국가로 교육 불사 후원을 확대해 왔다. 특히 기부금이나 국가보조 등 일체의 외부 도움 없이 지원을 계속해 왔던 스님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팔순을 넘긴 수행자의 삶에 회향의 의미를 강조한다.
“팔순은 인생의 종착역이다.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할 시점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돌아보니 가진 재주라고는 이것뿐이었다. 비록 완성되지 못해 부끄럽지만 모든 힘을 기울여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교육의 기회가 절실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전시를 앞둔 월서 스님은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재주’라며 작품 내밀기를 머뭇거렸다. 하지만 서예계의 원로 구당 여원구 선생은 “스님의 글씨에는 뼈가 있다”는 말로 극찬한다. “무릇 서필은 골이 단단해야 맑고 생동감을 갖는데 스님의 글씨는 단단한 뼈대와 품격을 갖추고 있다”며 “젊은 사람 못지않은 힘이 있으면서도 품위를 지니고 있어 마치 추사의 후예를 보는 듯 하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는 스님이 직접 쓴 서예작품 400여 점이 전시된다. 지난 해 11월부터 전시를 준비한 스님은 매일 밤을 지새우다시피 작품에 몰입했다. “조용한 시간에 붓을 잡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밤을 새우곤 한다”는 스님은 탈진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선사들의 오도송이나 열반송은 그 자체로도 수행의 지표이며 서예는 번뇌가 끊어진 자리라는 점에서 수행과 접점을 갖는다. 전시를 통해 선사들의 오롯한 수행정신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월서 스님의 서예작 '일체유심조'

 

교계의 큰스님들과 내로라하는 서예계의 대가들도 기꺼이 전시에 동참했다. 월서 스님도 평생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옛 스님들의 글씨들을 기꺼이 내놓았다. 서암, 벽안, 구산, 범룡, 월하, 일타, 청하 스님 등을 비롯해 고정흠, 권의철, 김사달, 도이석 등 저명 작가와 학자들의 작품 27점이 함께해 전시에 빛을 더했다.

경허, 만공, 보월, 금오 선사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받은 월서 스님은 1936년 경남 함양서 출생, 1956년 금오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9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되고 2008년 대종사 법계를 품서 받았다. 현재 서울 봉국사에 주석하고 있다. 02)720-1161

 

[법보신문]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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