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26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공식적인 추념행사 외에도 ‘3,1운동 100주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만북울림 문화제‘와

’3.1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추진본부‘에서 주최한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전국에서 약 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북과 장구 등 우리악기를 갖고 나와 만북을 울리며 신명을 일으켰고,

생명평화제전 열 두 마당에서는 전통연회형식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등 많은 구경거리가 열렸으나, 

그 중 눈길을 끌며 마음을 모은 것은 ‘한겨레 큰 줄당기기’였다.





매년 삼일절 마다 경상남도 영산에서 열렸던 줄다리기가 삼일절 백주년을 맞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행사로 서울광장으로 올라 온 것이다.

지난26일부터 청계광장에서 줄 비나리를 시작으로 새끼줄을 엮고 말아 거대한 두 갈래 몸줄이 만들어졌다.





이번 ‘한겨레 큰 줄당기기’는 두 동강 난 우리의 역사를 잇는 거대한 판 놀이로 연출되었다.

암줄과 숫줄은 ‘민족통일 줄’과 ‘생명평화 줄’로 나뉘어져 한민족 공동체 정신을 각인시켰다.

100년 동안 벌어진 틈을 암줄과 수줄로 연결하여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큰 뜻을 품었다.

우리의 전통 줄다리기는 상대를 앞지르지 않고, 뒷걸음치며 끌어 껴안아 둘이 하나 되는 것이다. 



 



3월1일 오후세시부터 청계광장에서 동부 줄과 서부 줄로 나누어 출발한 두 줄이 풍물을 지피며 세종대로에 진입했다.

서낭대 싸움의 진잡이로 신명을 일으키는 가운데,

거대한 비녀목으로 두 줄을 교합하자 시민들의 함성 속에 역사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서낭대와 깃발로 기싸움을 벌이며 “이어~차, 이어~차” 힘겨루기를 한 결과 암줄의 승리였다.





영산줄다리기 전승자인 신수식씨는 “암줄이 이겼으니 풍년이 들겠다”면서

"오늘은 어느 편이 이겼다는 승부보다 모두가 화합하는 의미로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시민들은 줄다리기가 끝나자 암줄의 젓줄을 잘라갔다.

영산에서도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긴 줄을 잘라 자기 집 지붕위에 올려놓으면 한해 집안이 평안하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소에게 먹이면 소가 잘 크고,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한겨레 큰 줄당기기“ 연출로 전래된 영산줄다리기와는 약간 바뀌어 진 부분도 있었다.

줄에 올라타는 장수대신 말뚝이가 올라 춤을 추었고, 줄다리기 시작과 끝을 알리는 총소리도 없었다.

화합으로 이끌어 통일을 이룬다는 의도였지만, 영산 줄다리기의 백미는 승부다.

서로 이기려는 승부욕이 애살과 신명을 끌어내는데, 승부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흥미가 반감된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지켜 본 50여 년 전의 줄다리기로 한 번 비교해 보겠다.

마을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각 대장, 중장, 소장으로 나누어 세 명의 장수를 선발하였다.

그들의 지휘로 모든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그들이 풍물패와 줄꾼의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물주였다.

그 당시는 장수가 이동하면 말을 탔는데, 진잡이를 비롯한 줄 싸움이 얼마나 치열 했는지 모른다.

서부대장의 목검은 두 동강이가 났고, 동부대장은 말에서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평소에는 서로 친한 사이지만, 줄다리기 동안은 원수처럼 적대감을 가져 승부욕에 불태우는 것이다.





주민들의 애살로 만들어진 줄을 지키느라 밤을 지세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여성들에게 큰 낭패 당할 일이지만, 그때는 여자가 줄을 넘으면 진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래서 줄을 넘지 못하도록 밤 세도록 지킨 것이다. 유교의식에서 비롯된 속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했으니, 꼭 여성을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포수가 쏜 신호탄으로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마른 논에서 이는 흙먼지와 함성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젓줄(곁줄)이 끊어져 나뒹구는 사람이 여기 저기 생겨나고, 밀리고 당기기가 한 동안 반복되었다.

다들 논 턱에 힘을 실어 버텼는데, 그 긴박한 순간들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한 쪽이 끌려가 지더라도 모두 이겼다고 풍물을 지피며, 한데 어울리는 한마당을 이루었다.

자기편이 이겼다고 우기면서도, 줄은 이긴 상대의 줄을 잘라가는, 웃기는 짜장면도 속출했다.

승부로 시작되어 승부로 끝났지만, 결국은 대동놀이에 의한 화합이었다.





3,1절 행사인 줄다리기는 세종대로와 광화문일대의 도로가 차단된 가운데 열린 엄청난 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한 축제 한마당이었는데, 그 현장에 중요 언론사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물론, 전날 북미회담 결렬에 따른 시사성에 기인했겠지만,

냄새나는 곳으로만 몰리는 똥파리 근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심지어는 엉터리 보도까지 따랐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점심 식사하러 프레스센터 옆의 중국식당에 들어갔는데, 마침 티브이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앵커가 삼일절 기념행사를 소개하며 오후4시부터 열릴 줄다리기를, 줄다리기가 열렸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편향되고 왜곡된 엉터리 언론을 하루 종일 끼고 사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번 삼일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영산줄다리기는 성공적인 한마당이었다.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부대가 벌이는 격렬한 시위가 맞서는 상황이라 아쉽기는 했으나,

이것이 오늘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아니겠느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축제 마당에 참여한 시민들과 태극기부대 시민들이 줄다리기로 한 판 승부를 겨루면 어떨까? 

줄다리기를 흥겹게 하는 승부욕을 극대화하면서도 결국 화합하여 하나가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꿈에 불과한 일이지만, 꿈이라도 행복해진다.






영산에서 올라온 신수식씨를 비롯한 ‘영산줄다리기보존회’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더구나 3월3일 영산에서 치뤄 질 줄다리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사용할 짚이 없어 전라도에서 짚을 사왔다는데, 그 짚 값이 무려 4천만원이라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축제가 열리는 4일 동안 좁은 여관방에 머물며 줄 만드는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다.

줄 옮길 받침대를 조립하고 해체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다들 칠순이 지난 늙은인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더구나 총책을 맞은 신수식씨의 사명감 넘치는 활약상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 많은 대중을 상대로 줄을 이해시키며, 한 마당으로 이끌어 내는 솜씨가 경지에 달해 있었다.

아마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몸살로 자리에 더러 눕지 않을까 쉽다. 다들 고생은 했지만, 장하고 장하다.





아무쪼록, 영산줄다리기가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 줄이 되기를 축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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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나는 유진규씨는 우리나라 마임의 대표주자다.

또한 축제의 거장으로 그동안 다양한 축제를 성공시켜 왔다.

오래 전 자리 잡은 ‘춘천마임축제’도 그가 성공시킨 축제지만,

지난해에는 김장축제를 난장축제로 이끌어 주목받기도 했다,





다양한 시도로 신선한 변화를 일으키는 그의 몸짓에 독보적인 에너지가 솟는다.

긴 세월동안 마임에 온 몸과 마음을 불어넣었는데, 중요한 것은 예술 행위를 무대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끌어들여 치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입으로만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예술가들이 부지기수인 현실이라

그의 투쟁적 행보가 더 돋보이는 것이다.





2년 전, ‘주류 아닌 예술가들의 시국 퍼포먼스’라는 팀을 만들어

주말마다 촛불집회에서 행한 그의 투쟁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철판을 등에 짊어지고 광화문광장을 행군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철판 끌리는 굉음으로 부도덕한 정권에 야유를 보내며, 그들의 퇴진을 촉구한 것이다.





손자까지 둔 적잖은 나이에도 강행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존경감이 일었다.

촛불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춘천에서 왔는데, 그 것도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끌었기에,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번 삼일독립혁명 백주년을 맞은 시민 축제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대표적 행사인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과 ‘만북울림문화제’ 모두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난 26일 오후5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부대행사인 제주4,3사건의

한을 다룬 입체 시낭송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한을 절감케 했다.

문무병, 허영선, 김수열씨 등 제주 시인들이 읽어 내리는 시 낭송이 무색한 몸짓이었다.





지난 3월1일 오전9시부터 ‘탑골공원’에 모인 ‘만북울림문화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 행사는 전국 팔도에서 약 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북과 장구 등 갖가지 악기를 갖고 모여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기원하며 만북을 울리는 축제였다.





예술가 55명으로 구성된 유진규씨의 ‘몸북’팀은 탑골공원을 출발하여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몸북’은 이름처럼 몸 자체가 북이었다.

개성 있는 다양한 분장으로 변화를 주며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의 연출력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다.





이에 앞서 김발렌티노는 100일동안 독립문에서 삼일독립 정신을 일깨우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드디어 역사적인 날을 맞아 탑골공원으로 합류한 것이다.

서예가 김기상씨가 탑골공원에서 쓴 한반도기와 ‘몸북’, ‘우리는 하나다’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는데,

유진규씨와 전형근씨는 2년 전 촛불집회 때 사용한 붉은 도포에다 고깔모를 쓰고, 등에는 철판을 메고 나온 것이다.





“아! 그 때가 그립다.”

박근혜 퇴진을 외친 그 때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도 있어 싸울 수 있었지만,

이젠 실체가 보이지 않는 돈과의 전쟁이라 암담할 뿐이다.

그리고 정권을 바꾸어 악의 무리를 구속시키는 등 가시적인 변화는 이끌었지만,

아직까지 적폐세력들이 기회를 엿보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항상 북을 두드려 시민을 일 깨울 수 있는 유진규씨 같은 예술가들이 있기에

한 가닥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유진규씨를 보며 생각나는 글귀는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다.



사진, 글 / 조문호





- ‘만북울림문화제’의 '몸북'에 참여한 사람들-

유진규(마임배우), 유홍영(극단사다리대표), 윤시중(극단하땅세연출), 김기상(서예가), 안재근(서커스), 전형근(그냥예술가), 강지수(마임배우), 양길호(현대무용), 김종학(마임배우), 황현성(다큐감독), 장성진(연극배우), 김선미(통미분장연구소), 하택후(타악프로젝트그룹사맛디),홍윤경(독립공연예술가), 서승아(부토), 서우림, 방관철(서승아일행), 한혜민(독립공연예술가),고명희(독립공연예술가), 한준휘, 홍성표, 최원석, 위다은, 신지은, 김초원, 이소라(남북강원도협력협회), 김동효, 양철해, 이창준, 이유현, 이채은, 김태영(교사), 하태웅(학생), 김상인(오케스트라 단무장), 이요한(시인), 김현신(디자이너), 이성희, 최정산 (인형극단봄), 김발렌티노(그냥예술가), Ian John(소리음악가), 권제인, 박광선, 손건우, 고은별, 이은주, 윤혜경, 윤지원, 이두원, 최수라, 최수현, 이재돈, 김국원, 안상현, 정기욱, 문숙경


'몸북' 단체사진(유진규페북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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