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용, 인도에는 코끼리, 이집트에는 사자가 있듯이 대한민국에는 호랑이가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20세기 초반 일제의 대대적인 사냥 작전으로 사실상 멸종되기까지,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일명 ‘호랑이 나라’로 불렸다.

서울 인사동 무우수갤러리는 지난 1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기획전으로 ‘大韓 호랑이展-호랑이 나라에서 만난 우리 호랑이’를 열고 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마련한 기획전으로 조각가 고선례, 동양화 작가 리강, 미술사가로 요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문인 화가 이태호, 민화 작가 김연우, 문선영, 전지우, 지민선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적 미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호랑이가 까치를 바라보는 표정이나 더덩실 춤추는 모습은 우리 민족 흥과 익살스러움을 표현한 듯 친근하다. 산맥으로 이어지는 푸른 호랑이와 붉은 하늘 아래서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는 신령스럽고 기백이 넘친다.

모란꽃 피어난 호피와 비단 자수처럼 표현된 호랑이 배겟모는 장식적이며 힙(hip)하다.

호랑이 나라답게 호랑이가 갖는 문화·예술적 의미는 실로 크고 그것의 창조적 표현력 또한 감탄스럽다.

 

민초들은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부르며 사악한 기운을 막고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받들기도 했다. 이런 까닭으로 지명, 세시풍속, 설화, 속담, 문학, 예술 곳곳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우리 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사랑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된다. 국제사회에 한국을 널리 알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한국의 마스코트로, 2018년에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수호랑’이 한국을 대표했다.

 

[스크랩] 스포츠경향 / 손봉석기자

단청

무우수갤러리 오픈기념 기획展 

 

2021_0120 ▶ 2021_0228

 

노재학_창덕궁 신선원전 닫집 천정_피그먼트 메트 출력 후 무광 아크릴 접합_61×91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노재학_문활람_이양선_정금율

최경준_최문정_황두현

 

 

무우수갤러리

MOOWOOSOO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층

Tel. +82.(0)2.732.3690

moowoosoogallery.com

 

 

무우수갤러리에서는 전통 미술의 현대화를 탐색하며, 갤러리의 첫 문을 여는 전시로써 지금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단청"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한국의 단청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청이 갖는 예술적 가치와 발전의 역사를 깊이 있게 짚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에 작가선정에서부터 전시내용에 이르기까지 단청의 전통과 현대를 고심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 丹靑은 붉은빛과 푸른빛의 합성어로 색채장식 혹은 회화를 지칭한다. 우리를 포함해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목조 건축물에 다양한 무늬와 그림을 단청이라 일컬어왔다. 단청 색은 음양오행을 통해 동양의 우주관을 함축한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오방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일찍이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여러 기록을 통해, 현존하는 사원과 궁궐의 장식문양을 통해, 단청이 활발하게 행해진 것이 확인된다. ● 우리나라의 단청은 비단 목조건축뿐 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며 특색 있게 발전했다. 상징적인 문양과 五彩의 조화로 변모해 왔고, 주변국과는 차별화된 한국의 색과 문양을 완성하였다. 우리의 단청은 지금 시대에도 공공행사는 물론이려니와 여러 국제 행사에서도 한국 문화의 자랑스런 표상으로 자리해 오기도 했다. ● 이번 전시는 우리 단청의 그 역사적 가치성을 확인하고 다양한 해석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창조 방향을 모색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먼저 전시실 공간에는 단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전통 단청의 역사, 재료, 제작방법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코너를 설정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여러 작가에 의해 다양한 장르로 발전한, 단청 예술의 공간을 중심으로 삼았다. 여기서는 단청이 갖는 예술성을 회화, 사진, 설치, 영상, 음향을 통해서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시도했다. ● 무우수 갤러리에서는 계속해서 '단청'과 관련한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며,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을 빛내고 싶다. ■ 조수연

 

문활람_고구려벽화 강서중묘 주작 복원모사_닥지에 화강암, 천연석채_72×60cm_2021

 

 

현대미술과 단청(丹靑)  민족과 전통 색채 ● 속도가 관건이었던 근대 이후 현대 인터넷망의 가속도를 경험하는 순간에도 고정적인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전통이 바로 그러한 예에 속한다. 전통은 국가, 민족과 관계되어 있으며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대에 강조되었다. ● 한국에서 전통이란 근대 국민국가 성립기에 강조된 유럽에서와는 분명 다른 경로를 밟는데,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시아라는 같은 지역에 속하며 동일한 한자문화권이었던 일제에 의한 식민지 경험에 기인한다. 대한제국이라는 국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 자리를 대신할 명칭이 필요하였고, 그때 선택된 것이 '민족'이었다. 언어, 역사, 문화, 관습 같은 요소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동질감을 통한 내적인 통합, 더불어 일본이라는 타자와 구분되는 짓는 것 또한 민족이라는 개념이었다. ● 그런 이유로 민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을 때 강조된 공통성, 그것을 표상하는 이미지가 필요하였다. 그런 연유로 '백의민족'이라는 말에는 근대기 민족의 개념, 타자와의 구분, 그 구분을 통한 일제강점에 대한 저항적 의미까지 담겨 있다. 일제에 의해 점령당한 순수한 대상으로서 '흰' 것은 강조되었다. '흰옷'은 전통으로 여겨졌지만 근대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한국인에 대한 인상도 기록되어 있다. 노베르트 베버의 한국인들의 '밝고 화사한 옷을 보니 눈이 부셨다'는 기록(『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나, 선교사 닥터 홀의 "젊은 여성들은 상을 당하여 흰색 옷을 입을 때 말고는 주로 환한 색 옷을 입는다."(『조선회상』)는 전언은 백의민족이 근대기 형성된 정체성임을 증명한다. ● 일제의 압력으로 백의 금지령을 내린 1905년 이후 백의인, 백의민족, 백의동포는 공동체로서 일본과 구분되는 우리를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다. 색복(色服)을 강제하며 거리에서 흰옷 입은 이들의 옷에 먹물을 칠하거나 집안 장롱 속 흰옷에까지 먹물을 들이부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흰옷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제에 대한 저항이자 한민족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행위였다. 양복착용과 색이 있는 옷을 입자는 계몽운동의 결과 약화되어간 백의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은 광복 후 해방공간에서 이데올로기적인 민족의 개념과 함께 재생하였다. ● 오늘날 오방색, 색동과 같은 전통적인 '색'을 통하여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어쩌면 백의민족 개념이 약화된 때문은 아닐까 자문한다. 현대미술에서 전통은 색의 사용과 연관이 있다. 1960년대 후반 모노크롬 회화는 동양적인 허(虛)의 세계를 상징하는 백색, 흑색 등 무채색을 보여주었다. 백의민족의 상대편에 있는 색의 개념은 색동, 단청과 같은 것이었다. ● "『색동만다라』라는 제목이 암시해주고 있듯이 씨는 우리나라 고유의 색동을 통해 보다 풍토적(風土的)인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시도한 것 같다. 색동 또는 단청(丹靑)이 색채에 대해서는 오히려 금욕적(禁慾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 민족(民族)에게는 그만큼 소중하고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유산(遺産)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한 회화작품(繪畵作品) 속에 동화(同化)될 때 그것은 일종의 내면화(內面化)를 통해 작품을 이루는 감각적이자 정신적 기조(基調)로서 숨 쉬는 것이어야 할 것이며 씨의 경우에서처럼 감각에 그치고 표피적인 것으로 머무는 전화(轉化)이어서는 오히려 작품이 경박(輕薄)한 것이 됨을 면치 못한다."(이일, 「색동과 虛의 虛像」, 『동아일보』, 1968. 10. 5) ● 전성우의 전시를 본 이일이 당대 미술을 평하는 데 사용한 '단청'은 전통의 상징으로 금욕적인 흰색의 상대편에 있었다. 단청과 같은 화려한 색채 또한 민족적 정신의 일부로서 이해됨으로써 그것의 감각보다는 의미로서 작동시킬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백색이나 단청과 같은 색은 '감각'이 아닌 '정신'의 위치에 있었다. ● 그런데 단청색, 색동색이라는 고유 색채는 없다. 그것은 색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색의 조합이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색 자체가 상징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색이 없음(모노크롬)과 특정한 기조의 색의 조합(단청, 색동)을 전통의 상징으로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 탱화, 단청, 색동을 우리 민족의 고유의 미의식으로 파악하여 토속적이면서도 장식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이일, 「이석조 백발번뇌전」, 『매일경제』, 1988. 9. 27). 화려한 오방색에 짙은 검정색의 테두리를 가진 이만익의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도 '단청의 색이 타성에 젖은 것'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무채색과 조화를 이룬 새로운 색채의 조합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윤재근, 「70년대화가론10」, 『조선일보』, 1978. 8. 23). 현대미술에서 색채는 전통으로서 오방색의 사용, 이것을 현대적인 조형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양선_조천의 숨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60.6cm_2019

정금율(음향작가)_소리, 단청을 울리다_멀티 트랙 루프 플레이_00:02:30_2021

 

 

전통의 단절과 재생 ● 전통의 상징 혹은 기호로서 색은 백색에서부터 단청과 색동으로 그리고 탱화와 민화의 색감으로 전회하였다. 특정 색채에서부터 '조화'로의 이양은 한국의 전통을 보다 구체적인 대상으로 가시화하는 데로 나아갔다. 1963년에 가을철 관광 시즌을 맞아 동대문 등 문화재의 단청을 새롭게 하였다. 남대문이 중국식 청색계열이므로 조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붉은색 계열로 단청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전통은 동아시아 공동의 문화 안에서도 중국, 일본과는 다른 전적으로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적 미의식을 보다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었고 그 속에서 단청의 색과 민화의 형태 같은 것들이 소비되었다. 박생광 회화에서 구체적으로 단청문양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하인두가 한국의 단청과 서양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비교하여 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과 같은 예를 통해 단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우리의 고유한 전통으로 인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단청은 1970, 80년대 한국적인 주체성을 찾으려는 작품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소재이다. 특히 추상회화에서 단청과 같은 색의 조합은 시각적, 감각적으로 한국의 전통을 상기시키며 서구적인 회화의 상대적인 위치에 있게 하였고 그 기능은 조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단청은 건축의 장식과 보존을 위한 기능적인 것이었다. 개인의 작품세계와는 다른 실용성에 있었고, 건축공사에 수반되는 장인들의 세계였다. ● 사실 전통으로서의 단청 기술의 쇠퇴는 궁궐 이하 모든 관공서 건물에 단청 대신 양칠(漆)을 하라는 궁내부의 방침이 알려진 1908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칠 즉 페인트 칠은 간판의 성업을 가져왔고 궁궐에서는 내부는 양실이지만 외부는 한식 건물이었던 1920년 창덕궁 재건 때 그 마지막 꽃을 피웠다. 그리하여 6.25전쟁 후 1954년 재건된 남대문 단청은 사찰 단청을 주도했던 경국사 주지 김보현과 그 제자들이 담당하였다. 1963년에 남대문을 중수하며 내부 목재에서 고식 단청무늬를 찾았다. 그런 탓에 전쟁 후 시행한 외부의 단청은 잘못된 것이라 하여 공사를 맡았던 임천이 창경궁 명정전의 것을 모본으로 다시 제작하였다. ● 이렇듯 한국의 오래된 전통으로 알려진 단청이 물감뿐만 아니라 문양, 색채에서 무엇이 전통인가라는 문제를 안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단청의 탄압에 기인한다. 한국의 무속과 한국불교가 탄압받은 것처럼 한국의 민족적 색채가 강한 이미지들은 부정적인 대우를 받았다. 불화, 무속화, 단청이 미술의 하위에 속했던 것은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단청의 경우는 기능이 앞서는 미술이어서 '장인(匠人)'에 의해 제작, 전승되는 분야라 더욱 그러한 경우였다. ● 한국의 전통에 대한 관심은 단청을 전통의 중심부에 놓게 하였다. 특히 문양과 색의 사용은 장식적 미를 보여주며, 색의 배열만으로도 전통을 회고하게 함으로써 단청은 한국적인 것의 표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가능성으로서 단청에의 조명은 민화와 불화, 무속화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함께하였다. 이는 기층민의 미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는 지배계층인 경우가 많지만 제작하는 이들은 민중으로 보았던 것이다. ● 단청은 장식의 성격으로 인하여 생활용품의 문양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고분벽화와 더불어 오래된 건축에 존재함으로써 민화보다 오래된 전통으로 인지되었다. 또한 궁궐과 사찰에서 사용되었던 탓에 중심부에 있던 기층민의 미술,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 전통사상의 반영 등으로 이해되었다. ● 민화에 비해 단청이 현대미술의 가능성으로 시도되는 과정은 좀더 더딘 감이 있다. 그것은 규칙성과 기본적인 도안을 채우는 기법, 부재에 따른 반복이라는 공예적인 특성 때문이다. 작가의 필치와 경우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민화와 달리 단청은 장식, 패턴이라는 도안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경준_이음, 잇다_미디어아트_00:03:00_2021_스틸컷

최문정_From Korea with love-유년의정원 Ⅳ_아크릴 믹스_45.5×38cm_2019

 

 

창작예술로서의 단청 ● 창작자 개인의 특성, 작가적 양식이 강조되는 창작 영역의 미술에서 단청은 규정화한 도안화의 결과물로서 창작 회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단청의 색감, 단청에 사용하는 안료, 단청을 작품에 일부 요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창작에 인용되어 왔다. 박생광의 회화는 그러한 전형성을 보여주며, 80년대 한국화에서 채색화 운동과 연관된 작품에서 단청이 즐겨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인두, 이세득, 전혁림 등이 단청을 주요 제재로 이용한 작가군이다. 이들은 정신으로서 한국의 상징을 단청에서 찾았으며, 강렬한 색채로 그것을 가시화한 작가들이다. 특히 전혁림은 단청의 문양을 직접 이용함으로써 장식적인 평면을 나타내었다. ● 면면한 단청의 현대미술과의 관련은 기능에서 탈각한 전통의 상징으로, 장식성을 배재한 순수한 표현의 방식이라는 재맥락화와 탈맥락화의 양가성을 갖는다. 이러한 단청에의 주시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서구에서 건축과 공예가 통합된 미술공예운동에서 장식문양이 발달한 것처럼 건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단청이 장식문양으로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맛, 공예적인 노고를 동반한 단청은 도안을 기초로 함으로써 패턴 아트의 영역에 위치한다. 또한 강한 색채와 친근감 있는 형태들은 대중 취향적인 팝아트와도 상통한다. ● 서구 미술사조에 굳이 대입하지 않더라도 화사한 색감. 강렬한 구획은 '강한 이미지'로 단청의 정체성을 있게 하며, 배열된 색의 사용만으로도 '단청'이라는 상징에 금방 도달하게 된다. 이미 형성된 전통, 장식 그리고 평면의 그리기라는 맥락에 닿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대상의 재현이 아닌 작가만의 아이디어로서 작동 가능성이 열린 '단청'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 문활람은 고구려벽화 모사도를 선보였다. 모사도는 기록의 기능으로서 창작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활동이다. 「강서 중묘 주작도」는 붉은색으로 인하여 강한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문화유산이다. 작가는 그것의 모사를 통해 단청의 오래된 역사를 조망한다. 장식과 의미전달 그리고 빈 벽을 채우는 예술의지(Kinst-wollen)의 소산으로서 고구려 벽화 모사도는 전통의 영역에서 온 단청의 다양한 영역을 드러낸다. 가장 전통에 가깝게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전통 장인의 세계였다. 그 단계를 거친 다음에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러한 모사도 덕에 우리는 전통을 딛고 현대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문화재 보존수리 기술로서의 단청 일을 하는 최문정의 단청은 가장 기본적이며 전통적인 단청을 동시대에 존재케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그의 세밀하고, 계통색을 통한 세련됨을 추구한 '작품으로서의 단청'은 시대적 미감의 변화가 단청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준다. 사찰 건물에서 보는 투박한 단청보다는 또렷하며 분할된 면이 많은 화면은 동일계열 색의 사용으로 귀족적 장식화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고려시대 청자처럼 고려시대 단청이 그러한 모습이었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의식이 단청을 통과하여 공존하는 것이다. ● 서양화를 전공한 이양선은 일찍이 연꽃 등을 단청 색으로 표현하여 주목받았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공간과 사찰, 연못 등 모든 풍경적 공간을 단청으로 재해석한다. 단청의 색채들이 올려진 화면은 그 공간에서 느꼈던 일종의 기운일 수도, 찬란한 빛의 경험일 수도 있겠다. 진채(眞彩)의 동양화와는 달리 단청에서 사용하는 오방색을 사용하는 그의 화면은 민화와는 다른 체계를 보인다. 장식성이 뛰어나고 깊이감마저 표현해내는 색의 띠로서 단청은 전통의 코드를 넘어서 작가적 양식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그것은 실제의 재현을 막는 추상화의 통로로 작동한다. ● 궁궐과 사찰의 단청 사진 작업을 하는 노재학 작가는 말 그대로 단청을 소재로 한다. 그의 사진은 장식으로서의 단청이 아니라 실존하는 장엄한 세계로서의 단청이다. 평면에 경계가 뚜렷한 단청을 깊이감 있게 잡아내어 내부 문양들이 살아있는 것들로 느끼게 한다. 왜곡되지 않고, 부재의 일부로서의 단청이 아닌 그의 사진에서는 그린 이의 열망을 넘어선 시간이 완성한 회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명암을 최대한 수용하여 앵글에 맞춰진 단청은 건축의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회화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운동화와 장난감에 단청을 그려 주목받은 황두현은 이번에도 사물에 단청을 입힌 작품을 선보인다. 캔버스에 그려진 장난감에 단청을 올린 그의 화면은 팝아트를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많이 이들이 알아보고 좋아하는 화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비자연의 색상이라는 팝아트와의 공통점 이외에 인간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불가의 진리를 실현하는 장엄으로서 사찰 단청을 상기한다면, 그의 사물에 올려진 단청은 원효의 해골물바가지처럼 삶을 응시하는 태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 최경준의 미디어는 프랙탈 이론을 적용한 형태, 전통의 악무 음악과 함께 눈앞에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그것은 단청의 형태구조를 파악한 듯 하며 모이고 헤치고 변화한다. 단청의 자재로운 움직임과 더불어 오방색의 의상을 착용하고 오방에서 춤을 추는 처용무의 이미지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그것은 만화경 안의 이미지처럼 반복적이고 움직이며 변화한다. 오래된 놀이의 구조는 과학적이며 동시에 신비적이다. 사찰 툇마루에서 올려다본 단청이 그러한 만화경 놀이의 소재였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전통과 과학은 결코 다른 층위의 것만은 아니다. ● 공간에 존재하는 예술은 조각, 건축 그리고 시간예술이었던 무용이나 퍼포먼스까지도 포함되고 있다. 사운드 아트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만 인지된다는 특성으로 인하여 조각과 같은 장르로 인지된다. 정금률의 사운드 아트는 단청의 청각화라는 점에서 소리조각이다. 단청이 지닌 일정한 도안과 반복성은 소리의 패턴으로 적용되어 주파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처럼 소리로 구축된 단청의 세계는 그려지는 소리를 넘어서 공간에 구축된 색의 청각적 이미지를 전시장에 불러온다.

 

 

황두현_Dharma Figure 1_면에 채색_150×100cm_2019

 

단청은 그것이 갖는 공식적인 규율과 법칙 그리고 관례가 있다. 그 어느 것과도 다르기를 추구하던 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은 과거에서 배우며, 연대하며, 주변부의 것들을 중심으로 불러모았다. 현대미술에서는 형식적인 것이 표현의 특징이 될 수 있으며 장식적인 것이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는 미술로서 평가되기도 한다. 단청은 가장 기능적이며 전통이 중시되는 영역의 것이다. 그런데 반복되는 패턴과 추상적인 색채와 상징적인 형태는 현대 작가들에게 전통의 구현을 넘어선 영감의 자리, 미의식의 한 편을 제공한다. 전통이라는 오래된 공식에서 벗어나는 그 지점에 가장 오래된 단청이 있다. 그 가능성을 모아보는 것, 그 시작지점에서 만나는 작품들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민족 논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우리 시대가 갖는 자긍심의 투영일 것이다. ■ 조은정

 

 

Vol.20210120f | 단청-무우수갤러리 오픈기념 기획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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