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들의 자존감을 짓밟아 온, 줄 세우기의 오랜 관행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주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연 것이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 줄 세우기 폐지를 요구한 대안으로 기존 남영동 ‘푸드마켓' 형식으로

물건을 배분할 것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에게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유소장은 서울시의 협력을 얻어 그보다 훨씬 유익하고 편리한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를 만들었다.

 

온기 창고 개소식이 열린 날에는 이른 시간부터 매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개소식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아, 공공주택사업을 환영하는

쪽방촌 주민들과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건물주 측 사람들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건물주 측에서는 ‘남의 가게 장사 안 되게 왜 매장을 만드냐?’고 삿대질을 하며,

온기 창고 개장과 상관없는 쪽방 주민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쪽방 건물주들은 긴 세월 비싼 방세로 폭리를 취해왔다.

현금으로만 선 월세를 받아 탈세까지 했는데, 방세가 한 달만 밀려도 쫓아내는 돈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다.

 

“국세청은 당장 쪽방 건물주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

 

벼룩에 간을 빼 먹는 이런 몰염치한 악덕 건물주들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번, 선의의 부자들마저 도매금으로 나쁜 사람 취급 받는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4만원인 월세를  30만원으로 계약서를 써 줄테니, 월세는 28만원을 내라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월세 계약서 금액 따라 책정되는 것을 악용해 방세 올리려는 속셈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거절했으나, 더러는 차액이 탐나 승낙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살아 온 7년 동안 한 번도 건물 주인을 본 적이 없고, 관리인을 통해서만 방세를 주었다.

하수인에 불과한 건물 관리인은 쪽방 주민이라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분명한 불법이며, 승낙한 빈민까지 범법자로 만드는 범죄행위다.

 

그 뒤 남영동사무소 주거복지 담당자를 찾아갔다.

두 달 전 주거 조사원에게 월세가 만원 인상되었다고 했더니, 변경된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아 본래의 계약서에 금액만 가필하였기에, 다시 정상적인 계약서로 교체하러 간 것이다.

 

두 달 전에 만원을 올려놓고 또 인상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건물주를 고발하며

주거비 책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담당자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란 말을 했다.

 

불법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난처한 일이기도 하지만, 공무원이 법 개정에 나설 입장도 아닐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계약서 금액 따라 지급할 것이 아니라, 일률적인 금액으로 통일해야 한다.

 

민영 개발을 강요하는 건물주들의 집단 패악질에 열 받아 촛점이 빗나갔는데,

다시 '온기창고' 개장 소식을 전해야 겠다.

 

‘온기창고’ 입구에는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판식 준비하느라 바빴다.

 

온기창고 매장에 들어가 보니, '세븐일레븐'에서 후원 받은 갖가지 생필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매장 안쪽에는 개소식 준비로 서울시 관계자를 비롯한 많은 분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는 창고형 매장으로 쪽방 주민을 위한 수요맞춤형 물품배분 시스템이었다.

 대형 냉장, 냉동고,  전자식 금전등록기 등의 기자재를 준비해두고,

편의점처럼 물품을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매장에 붙어 있는 이용약관을 살펴보니, 개인이 배정받은 적립 포인트 내에서 물품을 자율적으로 골라가는 방식이었다.

 

이용 대상은 ‘서울역쪽방상담소’ 등록 회원에 한해서다.  

회원에게 적립금 카드를 발부하여,  월 10만점의 적립금만큼 필요한 물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또는 자선단체로부터 후원물품을 전달 받았으나,

대개 물품 수량이 주민 숫자보다 모자라 후원품이 들어올 때마다 줄 세워 선착순으로 배부했다.

 

물품을 배분하는 날은 주민들이 일찍부터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춥고 더운 날씨에 따른 고통은 차지하고라도, 주민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이미 있는 물품을 이중으로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비좁은 쪽방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널려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약자들이 배분 과정에서 항상 불이익을 받아왔다.

 

업체에서 보내주는 후원품 외에도 사업 취지에 공감한 ‘세븐일레븐’에서,

원활한 운영을 위해 향후 3년간 월 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하기로 했다.

 

여름철마다 쪽방촌 주민들의 여름 나기 물품을 후원해 온 ‘세븐일레븐’의

정기적인 후원을 약속 받으면서, 안정적인 운영의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물품 후원 외에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인 '세븐카페' 운영을 지원하기로 했다.

세븐카페 운영 수익금은 온기창고 운영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에서 20,210,000원의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태 임의로 지원한 물품들은 수량도 부족했지만, 심지어 유효기간이 임박한 식료품도 많았다.

이젠, 후원물품을 보낼 것이 아니라 가급적 ‘서울교통공사’ 처럼, 현금으로 후원하라.

‘온기창고’에서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여 비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주민들이 가장 절실한 물품이지만, 여태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일회용 부탄가스나 일회용 믹스 커피, 화장지 등인데,

‘온기창고’ 메니저는 주민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도 항상 점검하길 바란다.

 

문을 연 ‘온기창고’는 상시 문 열 것을 목표로 하지만, 당분간 주 3회 이상 운영된다.

전담인력(매니저) 1명과 참여주민 2명(공공일자리)이 함께 꾸려갈 예정이다.

 

지난 20일 개소식을 가진 동행스토어 ‘온기창고’의 본격적인 운영은 8월 1일부터다.

 

이날 개소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

이재훈 '온누리복지재단' 이사장, 강석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유만희 부위원장,

그리고 쪽방 주민과 기자 등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개소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이사가 업무협약서에 사인한 뒤,

서울시와 ‘세븐일레븐’이 동행 스토어 ‘온기창고’ 운영을 위한 업무 협약식도 가졌다.

 

오세훈 시장은 인사말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동행식당이나 온기창고를 주민분들께서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다시 원상 복귀시킬 일은 거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이런 변화를 원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해주시면 제가 늘 신경 쓰면서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자동의 공공개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 숙이는 오세훈 시장의 자세에서 그의 진심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공공개발만 성사된다면, 더 이상 동자동에 머물 필요가 없다.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작업을 끝낸 후, 당사자들에게 사진집을 전해주는 대로

시골 농장에 빌붙어 죽을 자리 마련할 일만 남았다.

 

그 날 '온기창고' 개소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식수에 소원 카드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오는 9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온기창고’ 2호점을 개소할 예정이라며,

두 곳을 1년가량 운영해 본 후, 나머지 3개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개소식을 끝낸 후,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생필품을 대신 구매하여 쪽방을 방문했다.

 

 윤용주씨 방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며. ‘약자와의 동행’이란 붓글씨를 받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오세훈 시장과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을 비롯한,

‘온기창고’ 마련에 힘쓴 직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쪽방의 주거 문제만 남았다.

서둘러 동자동 공공개발을 착수해 주기 부탁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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