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민 위에 군림해 쪽방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래동안 고질적인 줄 세우기 관행과 고압적인 불친절에 빈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래서 쪽방상담소 업무를 동사무소에 통합하라는 주장을 해 온 것이다.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는 2018년부터 '온누리 복지재단'에 위탁되어 운영되었다.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으나,
그곳에서 하는 일의 하나가 기업체나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문제는 지원품을 나누어 줄 시간을 정하면, 물품을 받기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여름에는 무더운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다.
다들 한 두 시간 고생하는 것 보다, 굴욕적인 모욕감을 더 못 견뎌했다.
물건을 사기위해 줄을 서는 것과 물건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차이란 하늘과 땅 사이다.

줄 세우는 관행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시작된 짓이다.
빈민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자랑질의 오래된 관행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도구로 활용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자동에 입주한 7년 전부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른 일이 줄 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빈민들의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가난의 자긍심에 치명적인 독이었다.

수시로 만나는 쪽방상담소 직원들과 얼굴 붉혀가며 개선하라는 글을 올렸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에는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물건을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쪽방상담소 직원과 주민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갑 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을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와 ’쪽방타운‘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이 읽고 장문의 해명과 원망의 답 글을 올린 것이다.
그 일로 유호연 소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대안을 물어왔다.
하나하나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안이 현실화된 것이다.

모든 일은 정해진 쉬운 방법보다, 빈민들 입장에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개선할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뒤부터 점차 줄 세우는 빈도가 낮아지며, 줄을 세워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직원을 늘리거나 간편하게 처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6월28일엔 매달 줄 세워 나누어주던 식권을 카드로 바꾸었다.

식권은 줄 세워 나누어주는 일만 아니라, 매일 아침 상담소 직원들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전 날 사용한 식권을 수거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코드를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해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기존의 방법처럼,
전산화하라는 요구를 식권 나온 지 일 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아름다운 동행’의 식권사업은 빈민 최고의 복지였다.
안정적인 하루 한 끼의 식사 제공이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이다.
비좁은 쪽방에서 밥해 먹어야 하는 불편도 덜었지만, 귀찮아 밥 굶던 노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외출을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복지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한 끼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먹는다면, 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것이다.
일 년 간의 시행에 따른 호응도에,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복지사업이 되어버렸다.

서울시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한정할 사업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줄여서라도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으로 부상했다.
빈민의 삶은 물론 요식업이나 농민들 까지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뿐 아니라, 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물량이었다.
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량이라면 언제든지 줄 수 있겠으나,
물량이 부족한 것은 선착순으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안으로 소량의 물품은 관할 푸드 마켓으로 보내, 필요한 사람이 순차적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는데,
후암로 57길에 ‘동행 스토어’를 차려 그곳에서 생수와 식료품을 가져가도록 만들었다.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마다 공원에 줄 세워 생수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젠 본인이 필요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동행 스토어에 들려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잘못된 관행을 이처럼 바꾸어 가려면 관계기관이나 직원들의 협력도 따라야 하지만,
개선하려는 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7월 6일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물품 나누기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주는 시간을 정해 두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데로 나누어주니 줄 설 필요가 없었다.
그 오랜 줄 세우기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어제는 유호연 소장께 고맙다는 인사하러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갔다.
또 무슨 일을 문제 삼을지 걱정한 직원이 이유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고마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유호연(59세)소장은 ‘청소년 쉼터’에서 17년 동안 일하다 작년 10월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부임했다고 한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 질하지 말라는 내 글을 읽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주변에서 도와주거나 여건이 맞아 하나하나 바꿀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지만,
오래된 관행을 바꾸려는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현소장과 김갑록소장을 거치는 동안 아무도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소량으로 들어오는 지원품은 ‘동행스토어’로 보내어, 정해둔 상당의 금액만큼
필요한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며,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3월29일 고장 나 중단된 이불빨래 세탁기를 재가동하기 위해
서울시 지원을 다시 요청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서울시에서 수리할 예산이 없어 여태 방치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빈민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 준 유호연 소장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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