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오갈곳 없어 죽어 간 그들을 기억하고, 존엄한 삶의 권리를 찾으려는 자리다.

 

'죽음 앞에는 모두 평등하다'는 말도 틀린 말이었다.

연고자가 없어 한 달이나 시체실에 붙잡혔으나, 아무도 슬퍼하는 이가 없다.

 

이 추모제는 동자동사랑방을 비롯한  42개 단체가 모인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역광장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무연고사망자의 이름과

장미 432송이가 놓인 레드 카펫이 깔린 가운데, 홈리스 추모기간 선포식이 있었다.

 

올해 442명의 홈리스가 집도 아닌 험한 곳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파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한채, 차가운 길바닥에서 살다 ‘고독사’란 이름으로 지워졌다.

 

ⓒ 비마이너

그들을 애도하며 기억하려는 추모제도 올해로 22년째다.

‘홈리스추모제기획단’은 지난 12일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동자동사랑방' 윤용주씨의 발언 ⓒ 비마이너

'동자동사랑방' 윤용주씨는 공공임대주택을 속히 추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쪽방 주민들은 지금도 여름이면 화장실 정화조가 역류해 벽에서 똥물이 새어 나오고,

겨울이면 얼어 터진 방 안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기대어 산다”고 말했다.

 

‘2022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2일까지 열흘 동안을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추모팀, 주거팀, 인권팀, 여성팀을 꾸려 여러가지 행사를 추진했다.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문제를 알리는 일인시위ⓒ 홈리스행동

14일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쪽방살이를 들려주는 ‘’동자동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되었고,

15일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촉구대회’가 열렸다,

홈리스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19일은 아랫마을에서 '여성홈리스증언대회'가 열렸다.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가 바로 여성 홈리스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노숙인 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 5명 중 1명이 여성홈리스다.

 

아랫마을에서 열린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 현장 c 일다

20일은 대학로와 아랫마을에서 '창신동쪽방 실태조사 보고'와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좌담회’,

‘홈리스 자리에서 본 빈곤과 차별금지 집담회’가 각각 열렸다.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좌담회 ⓒ 홈리스행동

21일은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주민 토론회가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정부는 국내 최대 쪽방촌인 동자동에 先이주 善순환 방식의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 10개월이 지났지만, 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지정’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주민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삶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쪽방 주민들은 공공개발이 추진될 날만 기다리며 폭염과 한파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토론회는 동자동사랑방,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2022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의 공동주최로 마련되었다.

 

 1부에서는 김호태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동자동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 발제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와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였다.

지정 토론자로는 국토교통부 공공택지조사과,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정비사업처 담당자와

J&K 도시정비 백준 대표가 나왔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토론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참석자가 발언을 신청하여 토론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숙 생활을 하다 몇 년전 쪽방에 입주한 박종근씨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평생 처음으로 집 같은 곳에서 사는 꿈에 부풀었으나, 진짜 꿈이될 것 같아 불안해요.

노숙생활에서 간신히 벗어났는데,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바퀴벌레와 살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더이상 미루지 말고, 빨리 입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동짓날인 22일은 서울역 광장에는 열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2022 홈리스 추모제’가 열렸다.

 ‘코로나 종식을 넘어 홈리스 차별과 배제가 종식된 세계로!’라는 글이 달렸다.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3년 전보다 1.4배 증가했고

10년 전인 2012년보다 3.5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동자동 김정길 씨는  "올해 쪽방촌에서 돌아가신 분만 서른 두 분으로

돌아 가실 때마다 사는게 얼마나 허망한지 모른다"며 먼저 떠난 분을 그리워했다.

특히 친동생처럼 지낸 아우 ‘관석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관석이를 향한 추도사를 읽으며, 동자동에서 돌아가신 서른두 분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동자동 쪽방주민 김정길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하민지 출처 : 비마이너

서울역 부근에서 사는 홈리스 박천석 씨는 먼저 간 동료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강신환 씨를 그리며 추모했다

 

'동자동 사랑방' 박승민 활동가는 “무연고자의 죽음과 장례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운영되고 있는 ‘공영장례’를 국가 차원에서의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영하 15도 한파 속에서 진행된 홈리스 추모제는 추모발언에 이어

무용가 서정숙씨의 위령무와 노승혁  활동가의 연대공연으로 이어졌다

지나치는 이들도 발길을 멈추어 함께 추모했다.

 

비명에 숨져 간 442분을 기억하며, 그 분들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주민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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