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사진가 엄상빈 선생과 몇몇 전시를 함께 돌아보기로 약속한바 있었다.

지난 3일 오후1시무렵, 통인동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엄선생을 만났다.






제일먼저 사진위주 류가헌부터 들렸다.

그 곳에는 박찬원씨의 숨 젖 잠이란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돼지 사진들이 걸려있고, 스피커에서 들리는 돼지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돼지우리에 들어 온 느낌을 주었다.


오로지 고기로 왔다 고기로 가는 돼지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 생명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빈선생은 사람 찍기가 어려우니, 그 기에 이르는 과정일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전시 사진들은 눈과 귀는 빠져들게 하였지만,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두 번째는 창성동 온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차장섭씨의 한옥의 ’을 보러 갔다.

이 전시는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보았으나, 시간에 쫓겨 꼼꼼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작가인 차장섭교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운 만남의 시간도 되었다.

건축부문, 전문 갤러리인 온그라운드는 적산가옥 골격을 그대로 살린 독특한 전시장이었다.


한옥 벽의 조형미에 빠져, 10년에 걸쳐 전국400여개 고택에서 찾아낸 한옥 이미지는 매혹적이었다,

자연스런 비대칭구도의 어울림은 마치 선사의 붓길 같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추상화 같기도 했다.

천장 판자 사이로 비쳐내린 햇살의 그림자와 어울려, 한옥의 현장감까지 더해 주었다.

    







그 때 마침 다급한 차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제~ 아제~”라 불렀는데, 유리창 넘어로 고향 친척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전시장을 찾아 헤 메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는데, 두 분 반가운 만남에 슬며시 빠져나왔다.





세 번째 들린 곳은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는 안옥현, 김병규의 넌 벽에 박혔어.

곳에서 작가인 안옥현씨와 사진평론하는 최연하씨도 만났다.


선생님은 여자 가슴사진을 춘화로 알고 오셨구나라는 농담을 받았는데,

내가 여자 밝히는 게, 동네방네 소문난 것 같았다.

”아이구! 너무 그러지마쇼. 여자 안 좋아하는 사내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그래요.“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의 감정묘사 하나는 확실했다.

여인들의 리얼한 표정들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젖가슴을 통해 욕정의 찌꺼기까지 다 보여주었다.

 







네 번째는, 최연하씨의 안내로 일정에도 없던, 구기동 아트 스페이스 풀 퇴폐미술전에 들렸다.

전시 제목 자체가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퇴폐적이라 그럴까? 아니면 퇴폐적인 현실 때문일까?

먼저, 퇴폐미술하면 독일 나치정당이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해 문제를 일으켰던, 1937퇴폐미술전이 떠올랐다.

 

권용주, 김웅현, 안경수, 오용석, 옥인 콜렉티브, 임유리, 장파, 전소정, 정덕현 등의 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비디오, 조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안소현은 나치의 퇴폐미술전과는 반대로, 예술이 먼저 사회의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

사회를 규정해보고자 했다고 적어 놓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바르게 살자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돌덩이 형상에도 실소를 머금었지만,

한나라당이라 세겨진, 긴 나무 현판을 옮겨 놓은게, 더 죽였다.







 

오영석씨의 작품은 남성의 아름다운 신체와 동성애 장면을 마치 흔들린 것 처럼 보여 주었다.

한 화면에 화려한 색감으로 풀어내, 마치 금기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권력자들이 쳐 놓은, 금기의 울타리에 주눅 들어 살아 온 민족이다.

한 번 금기로 정해지면, 그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퇴폐 아닌 퇴폐도 많지만, 퇴폐로 분류되어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들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는 포르투칼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조각가 후이 샤페즈의

멀리 있는 방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러나 너무 불친절한 전시였다.

입장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안내조차 없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의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소재는 강철인데, 강철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공중에 휘두른 듯, 흐드러진 곡선들이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강철 조각들은 육중함을 뽐내기는커녕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어떤 것은 풍선처럼 공중에 뜬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천으로 만든 가림막처럼 천장으로부터 늘어져 있다.


이 가벼운 강철 조각들 사이에는 과묵한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표정 없는 인물을 관찰하였고, 모니터의 흐릿한 빛들만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멀리 있는 방'이란 조각과 영상 이면의 관념이 공진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러 전시를 돌아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일민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전시가 무료였지만,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돈에 갇혀, 창살없는 감옥에 사는 많은 대중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작가들이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작가들의 예술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도 가슴이 미어터지지만,

무더위에 못 견뎌, 거리에 더러누운 노숙자들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넌 벽에 박혔어 YOU GOT STUCK IN THE WALL
안옥현_김병규 2인展
2016_0715 ▶ 2016_0806 / 월요일 휴관



안옥현_베이지 린넨 셔츠를 입은 미교 Migyo in a Linen Shirt_디지털 C 프린트_90×60cm_2013

초대일시 / 2016_071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7길 12(옥인동 62번지)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늘 자네는 감정이 과대평가 되고 있다고 말해왔지. 그러나 말일세 감정은 과대평가 되고 있는 게 아니라, 너무나 오랫동안 잊혀 왔다네." 미센 먼지가 심하던 늦은 봄 일요일 아침 혼자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칸에서 문득 이 대화가 생각났다. (기억하고 있던 대화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역시 기억에 오류가 있었다. "감정이 과대평가 됐다고 했지. 다 헛소리야. 감정이 전부야. (You say that emotions are overrated. But that's bullshit. Emotions are all we've got)" 그러나 "감정이 전부"라는 말보다 "감정이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는 기억 속의 말이 더 낭만적 울림이 있어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쓰기로 했다. 어차피 기억이란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오류를 늘상 범하니까.)


안옥현_감귤나무와 서있는 여자 A Citrus Tree and a Standing Woman_디지털 C 프린트_150×100cm_2014


안옥현_남몰래 흘리는 눈물_단채널 영상_00:07:10_2012 (in collaboration with 오세현)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의 영화 『YOUTH』에서, 과거 잘나가던 젊은 시절처럼 다시 한번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늙은 영화감독이 그의 친구인 은퇴한 거장 지휘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리고나서 서슴없이 베란다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창 밖으로 몸을 던진다. 2-3 초의 정적 이후 밖에서 사람들 비명이 섞인 소란스런 소리들이 들려오고 방안에 홀로 남겨진 친구는 그제야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의 억눌려진 흐느낌, 오열하는 몸의 흔들림처럼 감정이란 단어가 그렇게 내 안에서 흔들거렸다. ● 감정. 새삼 내가 감정을 얘기하자고 하는 게 어쩐지 하찮으며 불필요한 듯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의 감정이란 것은 과대평가되면서 대량생산되고 과잉되며, 그것은 또한 포르노처럼 전시되고 빠르게 소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감정은 그렇게 역설적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


김병규_자기 얼굴 묘사_유 Self Face Description_You_영상_2016


김병규_공간이동 하다가 벽에 박혔어 You Got Stuck in the Wall While Transporting_혼합재료_2016


김병규_공간이동 하다가 벽에 박혔어 You Got Stuck in the Wall While Transporting_혼합재료_2016


김병규와 안옥현은 영화 『YOUTH』에 나오는 늙은 영화감독처럼 소위 좋은 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로의 모습을 16년 넘게 지켜봐 왔다. 잘나가는 작가는 분명 아닌 우리들은 전시제목 『YOU GOT STUCK IN THE WALL』 처럼 어쩌면 스스로 어딘가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둘의 작업을 여기 한곳에 집어넣고 그 둘을 묶는데 감정이란 단어는 부적절하다. 또한 미술계의 여타 전시들처럼 여기에는 철학적 맥락과 비평적 담론은 없다. 그저 감정과 감각만 표면에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을 농담처럼 한번 던져본다. ■ 갤러리 룩스



Vol.20160715c | 넌 벽에 박혔어 YOU GOT STUCK IN THE WALL-안옥현_김병규 2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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