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 촌에 사시던 김광식(76세)씨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지난 17일 동자동 ‘식도락’에 차린 빈소에는 많은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의 죽음이 남달리 안타까운 것은 가족 찾느라 한 달 동안이나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처음 병원으로 모시고 갔던 ‘동자동사랑방’조합 우건일씨가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루 게 된 것이다.

가족이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시신 포기각서를 써 동자동 사랑방에서 장례를 치루기는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영령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돌아가신 김광식씨는 빚 보증을 잘 못 서서 가산을 날리고 가족까지 잃었다고 한다.
재산 잃고, 가족 잃고, 건강까지 잃어 고생하시다 결국은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이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대개의 주민들 사정이 이와 별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픈 것이다.

장례를 치루는 중에도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자동사랑방에서 장례를 치루면, 주민 모두가 상주가 될 수밖에 없으나,
이 날의 대표상주는 한정민씨가 맡았다.

빈소에는 우건일 조합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김정길, 김정호, 박정아, 선동수,

강병국, 이원식, 유한수, 차재설, 조두선씨 등 많은 사랑방 식구들이 조문했다.

동자동 보안관이신 이창희 경위도 조문하여 저승길 가는 노자 돈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이난순씨를 비롯하여 김규수, 구도원씨가 음식준비하고 돕느라 고생 많으셨다.

그 이틀 날 승화원에서 화장하여 꽃동네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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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봄 단장한 남산을 여러 차례 찾은 적이 있으나, 동자동 가족들과 어울려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지척에 멋들어진 남산이 있다는 걸 알기야하지만,

“꽃구경도 마음이 편해야 된다.” 듯이 잘 가지지 않는 것이 쪽방 촌사람들이다.

지난 12일 ‘동자동사랑방’에서 꽃놀이 간다는 사발통문이 왔다.

갑작스런 소식에 일정을 바꾸어야했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보며 밝게 웃을 이웃을 보고 싶었다.

마치 소풍가는 어린 애처럼 설쳐나갔더니, 사랑방 앞에는 여럿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방 보물 박정아, 허미라님의 미소 따라 김호태, 김정호, 김영진, 김창현, 유한수, 김규수, 구도원씨 등 열 명이 나섰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봄 소풍이 될지도 모른다는 방정을 떨어가며,

산 오르기를 10여 분만에 남산의 진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손쉽게 나설 수 있는 최고의 산책코스이지만, 건강관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 그런지 한 번도 나서지를 못했다.

벚꽃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의 조화는 요염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의 감흥이야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화창한 봄날 겨울털 모자 쓰고나온 김영진씨의 말없는 표정에서도 슬며시 드러나고 있었다.

허미라씨가 챙겨온 박상과자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어가며, 실없는 농담들을 꽃바람에 날렸다.

꽃에 취해 길을 잃어버린 유한수씨 찾느라 잠시 헤매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인원검열이 시작되었다.

자기를 빠트리는 돼지 세끼 세듯...
남산 길에 밝은 김호태씨의 안내로 산을 내려오니, ‘한국의 집’이 있는 충무로에 닿았다.

즐거운 봄 소풍을 끝내고 돌아 온 동자동 골목길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원호씨도 있었고, 함께 다녀 온 김정호씨와 끼어 술잔을 기울였는데,
꽃놀이는 남산에서 하고, 술 놀이는 동자동에서 했던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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