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설 fotofiction

휘휘(현선)展 / HWIHWI / 翬輝 / photography 

2023_0217 ▶ 2023_0302 / 월요일 휴관

휘휘_대수산봉_피그먼트 프린트_60×100cm_202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연구소_갤러리175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한동안 꿈에서 나는 암살자가 되어 내가 미워하는 무언가를 향해 총을 쏘았다. 꿈속에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아주 멋지고 날렵하게 총을 쏘는 나 자신의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일어나면 무력한 상태의 나만 남아있었다. 이 무력감은 수년간 쌓여 온 것이다. 일어나면 나를 누르고 분노하게 하는 현실 속 무력한 상태의 나만 침대에 남아있다. 나의 무력감은 수년간 쌓여 온 것이다. 80년대생 청년이 가진 무력감, 패배감, 실패감은 기본, 미래에 대한 막막함 아래, 노년에는 육지에서 내려온 자본가들에게 우리의 땅을 뺏기고 반복되는 역사처럼 쫓겨날 것이라는 두려움, 4.3으로 가족이 고생한 역사가 있으니 튀는 짓은 하지 말라는 억압, 그리고 그 무엇을 열심히 해도 이 두 가지는 내가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것.

 

휘휘_목격자_피그먼트 프린트_80×80cm_2021
휘휘_제주하늘#2_피그먼트 프린트_100×60cm_2020
휘휘_시한부 마을_피그먼트 프린트_100×60cm_2023
휘휘_활주로의 북쪽_피그먼트 프린트_60×100cm_2020
휘휘_토성의 고리_슬라이드필름, 40개의 사진과 40개의 글

무엇을 창작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이 답답함을 스스로 뚫어내 보고자, 답답함을 표현하고자 작업을 했다. 이 가정에서 내려오는 이데올로기와 주변 환경들로 인해 나는 어느 순간 당사자는 아니지만 방관자는 될 수 없는 위치에서 객관적일 수 없는 관점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만난 암살자 캐릭터를 주인공을 삼고 내 주변 인물들을 가상 인물로 등장시켜 소설의 구조를 만들고, 현시대 겪고 있는 청년의 재정, 주거 등의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고향인 제주의 현 이슈인 제주 제2공항, 4.3 유가족들의 현 상황 등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다.

 

사실 같은 글을 쓰고, 거짓말 같은 연출 사진들로 소설 사진, 사진 소설이라고 불리는 무엇을 만들었다. 어떤 것이 허구이고 어떤 것이 진짜인지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유추할 수 없지만 사실 모든 게 그냥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 휘휘(현선)

 

Vol.20230217a | 휘휘(현선)展 / HWIHWI / 翬輝 / photography

눈과 눈 사이에서 The Distance Between Eyes

최민경_엘리자베스 웨브 2인展

2018_1216 ▶︎ 2018_1230




아티스트 토크&리셉션 / 2018_12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율곡로 33(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우리가 완전한 하나의 눈이 아니라 두 눈의 차이를 조정하며 세상을 감지한다" 두 눈 사이의 거리가 입체를 인식하게 한다는 사실이 처음 연구되었을 때, 그것은 시각 주체에 대한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이전에는 사람의 시각이 소실점을 마주 보는 단일하고 확고부동한 것으로 가정되었다면, 양안 시각(binocular vision)은 시선의 주체를 하나의 위치에 고정시킬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 두 눈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성은 시선의 주체를 대상과 맺는 관계 속에서 변모하는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인물로 이해하게 하였다. ● 『눈과 눈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시각의 원리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 정체성의 문제, 즉 우리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위치짓고 위치지어지는지에 대한 질문들과 연결시켜보고자 한다. 영원히 불일치하는 두 눈의 시야는 하나의 위치에 고정되거나 합치될 수 없는 시선의 주체와 그 대상을 동시에 은유한다. 이 전시의 두 작가는 양자택일 불가능한, 즉 양분화될 수 없는 위치에서 인종이나 젠더 정체성 문제에 주목해왔다.



엘리자베스 웨브_무제, 스테레오 시선들(오펠리카, 앨러바마, 샤를로츠빌, 버지니아, 브루클린, 뉴욕)

_스테레오스코픽 지클레이 인쇄물, 흑연, 선반_가변크기_2017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웨브는 흑인과 백인 혼혈의 관점에서 현대의 미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인종화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그녀의 필름 「파라다이스를 위하여」는 '인종경계선'의 양쪽에 서 있는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이러한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과 동 앨러바마의 복잡한 역사를 추적한다. 작가의 가족이 이주하고 정착해 온 장소들을 담은 「무제, 스테레오 시선들 (오펠리카, 앨러바마, 샤를로츠빌, 버지니아, 브루클린, 뉴욕)」은 스테레오 이미지 시리즈(역주 * 스테레오 이미지: 같은 순간 살짝 다른 각도에서 촬영되어 3-D 뷰어로 비춰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그것들을 입체로 완성시켜주는 스테레오 뷰어 없이 제시됨으로써 이미지들 간의 불일치와 이중성에 초점을 맞춘다.



엘리자베스 웨브_파라다이스를 위하여 (프로덕션 스틸)_HD 영상, 16필름, 사운드_00:25:00_2016


최민경_프로필들 (김윤희)_영상설치, 모니터, 스테레오뷰어_00:07:07_2018


최민경_프로필들 (원동조)_영상설치, 모니터, 스테레오뷰어_00:04:30_2018


한편 시선과 욕망의 관계 속에서 여성의 이중적인 위치에 관심을 가져온 최민경은 최근 귀국 후 변화한 자신의 위치로부터 단편적인 사회적 시선의 한계성에 대해 고민한다. 신작 「프로필들」에서 최민경은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에 대항해 발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퍼포머로 모집해 함께 스크립트를 짜고, 좌우에 그린스크린과 카메라가 배치된 특수제작한 세트에서 이들을 촬영했다. 촬영된 결과물은 두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스테레오 뷰어와 함께 제시되며, 영상 속 퍼포머의 머리 움직임에 따라 관객은 시각적인 혼선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관객의 시각적인 경험을 변화시키는 촬영 조건과 장치들은 보는 행위, 그리고 나아가 한 사람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회적 인식을 재고해보도록 유도한다.



최민경_프로필들 (김윤희)_영상설치, 모니터, 스테레오뷰어_00:07:07_2018


최민경_프로필들 (원동조)_영상설치, 모니터, 스테레오뷰어_00:04:45_2018


최민경_프로필들_Pier2 레지던시 결과전(가오슝, 대만)에 설치_2018


전시작들은 시선의 대상이 쉽게 단순화되거나 물화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 전시는 일치 또는 불일치와 같은 시각의 원리에서 출발해 인정 또는 배제와 같은 시선의 권력과 이분법적인 메커니즘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나아가 관객이 자신의 시각에 대해서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갤러리175



Vol.20181216c | 눈과 눈 사이에서-최민경_엘리자베스 웨브 2인展


Image; Converting; Images 이미지; 변환; 상

이다은展 / LEEDAEUN / 李多恩 / video.photography
2018_0724 ▶ 2018_0805 / 월요일 휴관



이다은_Image Hunting_단채널 영상_00:25:14_2018_스틸컷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626d | 이다은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7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누가 바라보는가. ● 미셸 푸코는 18세기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구조가 시선과 권력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높고 어두운 중앙 감시탑에서 한 명의 간수가 낮고 밝은 원형 수감시설에 있는 여러 명의 죄수를 내려다보도록 설계된 판옵티콘은 간수는 죄수들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간수를 볼 수 없는 '시선의 불평등'에 구조의 핵심이 있다. 언제든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볼 수 없음에서 오는 공포가 죄수들 스스로 지배를 내재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시선의 불평등으로부터 권력이 강화되는 셈이다. 푸코는 감시를 내재화하여 스스로 규칙을 지키는 자율적 존재가 되도록 한 것이 근대적 주체에 다름 아니며, 근대 사회 전반의 국가적 통치는 바로 그러한 원리로 형성된 권력으로 인해 이루어졌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시선에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봄을 당하는 대상이 존재하고 그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이다은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 내 시선의 불평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울어진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고착된 관계에 파열음을 내고자 노력해왔다. 전작(前作)인 모텔을 배경으로 한 두 사진연작은 작업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모텔은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중립적 의미의 숙박업소라기보다 남성 중심의 은밀한 성적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작가는 모텔이라는 남성의 시선이 지배적인 공간을 젊은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재해석한다. 작가 자신이 피사체로 분(扮)해 서울의 여러 모텔을 옮겨 다니며 독서, 명상, 요리 등 여러 여가 행위를 수행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Enjoy : MOTEL」(2014)과 직업상 지방의 여러 모텔을 옮겨 다니며 기거하는 작가의 아버지 모습을 찍은 「M – Father and Motel」(2015)이 그것이다.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 서울과 지방, 여가와 숙박 등 여러 지점에서 다른 이 두 사진 연작은 무엇보다 시선의 주체와 대상의 (불)일치의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후자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 타인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한 사람의 중년 남성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보고자 하는 사진가적 시선이라면, 전자는 이 사회에서 흔히 소비되는 모텔 방 안의 전형적인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깨고 작가 스스로 시선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다은_Image Hunting_단채널 영상_00:25:14_2018_스틸컷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진에서 영상으로 매체를 확장하여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주체와 대상의 고착된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회 전반의 불평등한 구조에 개입하여 균열을 일으키고자 한다. 먼저 「Image Hunting」(2018)은 최근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여성 대상 몰래카메라 범죄를 소재로 한 영상작품이다. 작가는 본인이 지하철에서 겪은 몰래카메라 사건을 토대로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이미지 포획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을 연출해 촬영한 영상, 경찰에 신고 후 해당 사건이 불기소 처리되기까지의 추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여성의 선정적 이미지가 웹상에서 변형되어 확산되는 과정을 가정해 연출한 포토샵 편집 장면 영상, 그리고 최근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위한 혜화역 시위 장면 영상 등을 편집해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30여 분에 달하는 영상작품을 제작했다. 전체적으로 맥락과 형식이 다른 수많은 프레임의 이미지 조각들을 이음새를 그대로 드러내며 매끄럽지 않게 결합한 이 영상은 오늘날 이미지가 생산되어 소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왜곡과 변형을 거치게 되는지를 그 자체로 몸소 보여준다. ● 사실상 이미지의 왜곡과 변형은 회화를 이상으로 삼았던 사진의 탄생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 사진은 회화와 달리 기계에 의한 모방이라는 사실로 인해 현실성을 담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기술로 이어진 사진의 기계적 속성은 현실의 왜곡을 이미지의 기본값으로 만든다. 사진가가 무엇을 재현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디까지 프레임에 담을 것인가와 같은 최소한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미지에 개입하던 것에서 이제 이미지 생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 순간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서부터 비롯된 이미지와 대상의 일치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현실을 은폐한다. 특히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이미지의 경우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불평등한 구조를 가린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이미지들은 익숙함을 넘어 표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여성 이미지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판적 시각을 갖기 전 이미 획일화된 미의 기준과 남성의 왜곡된 시선으로 고착된 선정성에 맞춰 소비되고 그러한 통념이 일상에까지 반영된다. 몰래카메라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현대의 판옵티콘 현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몰래카메라는 기본적으로 바라보는 주체가 겨누는 카메라 렌즈를 찍히는 대상이 볼 수 없다는 시선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 탈의실 등 공적 장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적 몰래카메라의 경우 생산된 이미지들이 일정 공정을 거쳐 무차별적으로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자본으로 치환된다. 그와 같이 생산된 여성 이미지들의 소비는 이미지와 대상을 일치시키려는 남성들의 고정관념에 의해 작동한다. 수없이 많은 변형과 편집의 단계를 거쳐 유포됨에도 불구하고 렌즈의 관음증적 시선으로 인해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별다른 비판 없이 기본상(像)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이 사회의 비틀린 남성중심 문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이다은_#골뱅이_피그먼트 프린트_45×30cm_2018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가의 다른 두 영상은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모순적 실상을 작가 개인의 서사를 통해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모텔 연작에서 우리 사회 내 젊은 여성에 대한 편향된 시선에 저항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초라한 중년 남성으로 대상화하였다면, 이번 전시의 두 작품 「Deserted House_제사음식」(2017)과 「 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2018)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적 근원이 되는 조부모의 집과 가문의 선산을 배경으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보다 구체화시킨다. 가부장제는 남성만이 온전한 주체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출생과 동시에 수많은 배제와 차별을 배태함을 의미한다. 집안의 첫 아이로 태어난다 해도 장자가 될 수 없고 집안의 모든 행사에서 첫 줄에 설 수 없으며, 설령 결혼 전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해도 결혼과 동시에 본래 자신의 집안에서는 배제되고 새롭게 진입한 집안의 보조자 자리에 서게 된다. 작가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 평리공(評理公)파의 혈통을 물려받은 집안의 첫 아이지만 여성이기에 잠재적 이방인으로서 다른 성을 가진 실질적 이방인인 문중의 다른 모든 여성에 감정적으로 동조한다. 일종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작가는 경주 이씨 평리공파의 집성촌 중 하나인 전라북도 정읍으로 내려가 지금은 폐허가 된 조부모의 집에서 조모의 한복을 입고 스스로 실질적 이방인으로 분해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가부장제의 핵심을 비틀어 전형성을 깨뜨린다. 「제사 음식」에서는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차례로 공들여 만들지만, 상을 차린 후 본인이 음식을 모두 먹고 방바닥에 구토를 하는가 하면, 「무덤의 위상학적 지도」에서는 쓰개치마를 쓰고 선산의 공동묘지를 방문하지만 다른 성씨를 가진 문중의 여성들의 묘지만을 들러 헌화하고 묘비의 탁본을 떠 그녀들의 공적을 새겨 넣는 새로운 기념비를 만든다. 「Image Hunting」과 달리 「Deserted House」 연작은 모든 장면이 철저하게 기획된 영화적 형식을 따른다. 작가 자신이 피사체가 된 「Enjoy : MOTEL」처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영상에서 작가는 자신의 조모 혹은 유교사회의 익명의 여성으로 분해 다른 삶을 연기하고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작가 자신과 관련된 실제 이야기이며 배경이 되는 장소와 소품, 다른 등장인물까지도 모두 실제 그대로이다.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은 자막을 통해 제시된다. 북을 들고 집을 나가 오랜 세월 떠돌아다니다 돌아온 조부 대신 조모가 홀로 집안을 건사하였고 그런 조모가 죽자 조부는 새로운 여성을 집에 들여 함께 살다 죽었으며 그런 조부가 경주 이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집안의 큰 어른(여성)보다 더 좋은 명당자리에 묻힌 사실을 작가는 자막을 통해 무덤덤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작가의 조부모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지만 유교 문화를 토대로 형성된 남성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코 특별한 경우로 인식되지 않는다. 가부장제의 근간이 되었던 호주제가 폐지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자녀의 성은 기본적으로 부계를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많은 가정에서 부계의 제사만을, 그것도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해 지내고 있다. 작가는 그렇게 살다간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로한다. ● 모든 이미지는 바라보는 자의 시선을 담지한다. '누가 바라보는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표면적으로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일 경우에도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의도는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이다은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계속하여 우리 사회 젠더와 관련된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진에서 출발한 작가의 매체적 접근은 언제나 시선의 주체와 대상에 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작가 스스로 이미지의 대상이 됨을 자처함으로써 대상과 이미지의 일치를 당연시하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식이다. 인터넷상의 포르노 이미지를 자신의 신체에 합성한 이번 전시의 사진작품이 단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보이는 이미지 안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고자 하는 그녀의 작가적 개입은 소재와 시대를 넘나들며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그녀의 등장이 반갑고 그 열정이 쉽게 식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 신혜영

 


이다은_Deserted House_제사 음식_2채널 영상_00:13:00_2017_스틸컷



과거의 사건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사실 나의 머릿속과 세상의 시공간에 이미 자리 잡은 이미지들을 마주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이 이미지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돌고 돌아 축적되며, 시간이 오래 흘러 그 존재가 희미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사실은 여전히 거대한 세계의 데이터베이스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세계에 각인된 이 이미지들 -너무나 주류적이고 거대해서 폭력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을 묵도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이미지 위에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들을 덧씌울까를 고민한다. ● 나는 여러 매체들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내보내는데, 이러한 재현 행위 속에서 이미지들은 수많은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이 일련의 과정- image taking – converting – making – outing- 에서 기존의 이미지들은 그 이미지들을 담고 있던 매체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이미지 생산의 방법들을 차용하며 서로를 미러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들은 기존의 맥락을 이탈한 새로운 이미지로서 재탄생하기도 하지만 이미 고정된 과거의 이미지를 확증편향 하는 방향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재현되는 때에도 엄밀히 말해 이를 과거의 이미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에게 있어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것은 기존의 이미지들-그것이 관념적인 것이든 실제 물질성을 획득한 것이든-을 원 소스로 가지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미지와 기억을 재창출해 내는 일인 것이다.



이다은_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_2채널 영상_00:12:26_2018_스틸컷



나는 이번 전시에서 수많은 이미지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과 관련된 이미지들의 다시쓰기를 시도한다. 첫 번째 영상 작업 Image Hunting(2018)은 지하철에서 '몰카'를 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년간 사건을 추적한 모습을 담은 영상 기록과 이미지들이 재현되는 방식을 차용하여 연출한 장면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준다. 작업 과정에서 모으고 만들어진 영상 조각들은 그 자체로 기억이자, 영상의 타임라인 위에 새로이 배치되어 전혀 다른 맥락과 물질성을 획득한 변환-이미지라는 두 가지 지위를 가진다. 두 번째 영상작업인 Deserted House_제사음식(2017)에서는 과거 할머니의 집에서 제사를 지냈던 기억을 토대로 과거의 장면들을 재현하고, 그사이에 기존의 서사나 기억 속 장면들과 다른 장면들의 삽입을 시도했다. 세 번째 영상작업인Deserted House_무덤과 비석의 위상학적 지도(2018)에서는 아버지의 성을 가지지 않는 가문의 외부인인 여성들이 묻혀있는 묘지의 위치를 보여주며 그 안의 위계구조를 드러내고, 가문의 공적비를 그들의 이야기에 맞춰 다시 쓰는 새로운 기념비 제작 과정을 선보인다. 또한 이 세 가지 영상작업 과정에서 파생된 사진, 드로잉 작업도 함께 설치하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들이 서로 연계되게 구성함으로써 작업의 내용과 의도를 보다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세상에 내놓은 이미지들은 원작자나 창작자의 의도를 벗어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미지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이미지들이 미치는 영향이나 이미지 변환 과정의 결과는 예측하기가 힘들고 이 행위를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미지 생산 흐름의 속성을 긍정하며 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 이다은



이다은_새로운 기념비_1_닥종이에 탁본, 서체 드로잉_75×143cm_2018



Recalling past events amounts to being faced to and examining the images already located between the boundaries of one's mind and the time-space of the world. These inextinguishable images never ceases to circulate and accumulate, and will always remain somewhere in the small crevice of the massive world database, even when their existence seems to have worn out over time. While witnessing the images engraved in the world, which are so prevalent and massive that they even seem violent, I contemplate on the ways in which I could overwrite the existing image from the past with new images. ● I produce and release images through various media—the acts of representation through which the images undergo numerous types of conversion. In these processes of image taking, converting, making and releasing, sometimes the media that contain the pre-existing images become transformed, or sometimes these images are mirrored* by adopting various methods of image production. Through this, the images are not only reborn through decontextualization, but also represented based on the confirmatory bias against the fixed images in the past. Strictly speaking, distinction has to be made between the represented images and the pre-existing images from which they derive. In my work, the production of images amounts to re-creation of images and memories that are qualitatively different from their original source: the pre-existing, material or ideational, images. ● In this exhibition, I attempt to overwrite images related to the female subject. Image Hunting (2018), which is based on the personal experience of having been a spycam victim, combines the footages of the two years of investigation into this case and the staged scenes that narrate the various ways in which images are represented in our world. The accumulated footages acquire a dual status: as memories themselves, and as converted image, by virtue of being arranged in the timeline of the video, which ascribes them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and materiality. Deserted House_Ceremonial Foods (2017) reenacts the memories of jesa at my grandmother's house, and inserted between the scenes of reenactment are deviations from the actual memories or the conventional narrative surrounding jesa. Deserted House_The Topological Map of the Graves (2018) reveals the locations of the graves where the women, who do not share patrilineal surnames, and thus are outsiders to the clan, are buried. While this work exposes the clan hierarchy, at the same time it presents the construction of new memorial that rewrites the clan's accomplishments in the narrative of these women. Along with the three video works, photographs and drawings that were produced en route are installed at the exhibition space, constructing a cross-medial web that consolidates the links between all the work and augments both the content and the intent of the work. ● The released images will flow in an unpredictable direction, regardless of their author's—or creator's—intention. They exist in a realm of the uncontrollable. Since the influence or the result of image conversion process is unpredictable, anyone trying to assess this ethically would find herself in a predicament. Nevertheless, I plan to continue this practice as I affirm the nature of the flow of such image production. ■ LEEDAEUN



Vol.20180724e | 이다은展 / LEEDAEUN / 李多恩 / video.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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