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or Kin : 작은 차이에 대한 믿음

Belief in small differences

윤여범展 / YOONYEOBEOM / 尹汝梵 / drawing 

2023_0412 ▶ 2023_0419

윤여범_긴 or Kin 2307 앞_순지에 수묵_125×76cm, 양면_20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4(가회동 30-10번지)

Tel. +82.(0)2.3673.3426

blog.naver.com/galleryhanokwww.facebook.com/galleryHANOK@galleryhanok

 

긴 or Kin : 작은 차이에 대한 믿음 ●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적색목록(Red List)을 정리하여 42100종 이상의 멸종 위기 생물을 알린다. 포유류의 경우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지 않으나, 볼품없는 식물이나 징그럽기까지 한 미물들의 존엄성을 수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애 단 한 번도 가볼 일 없는 곳의 이름 모를 존재가, 우리에게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실증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구의 생각이 통념이 되고 있는 것은 실증적 가치를 넘은 일종의 '믿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국제자연보전연맹이 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인 1948년에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인간에게 적용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이론은 왜곡되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정점인 2차 세계대전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자연의 섭리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큰 희생으로 얻은 '생명 존중'이란 교훈은 인간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존엄하게 여긴 결과 생명체 간의 차이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키웠다. 이러한 사고는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20세기 초 추상화가들의 작품으로도 표현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대두되었던 식민주의는 레비나스(Levinas)가 말했듯이 헤브라이즘(Hebraism)을 헬레니즘(Hellenism)으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주체주의 관점에서 기독교적 교리를 이해하였기에 기독교 공동체인 유럽을 주체화하고 타 종교인 타국을 타자화 한 것이다. 타자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주체가 갖는 이러한 사고는 회화에서 투시도법(Perspectiva)과 명암법(Chiaroscuro)으로도 나타났다. 그러나 선교와 식민의 과정에서 마주한 다양한 문화는 유럽 중심주의와 기독교적 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특히 라이프니츠(Leibniz) 등에 의해 유입된 동양의 기(氣) 철학은 만물의 보편성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여 평등사상이 고취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식민주의 화가들은 주체의 특권을 내려놓고 타자와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개체 간의 차이를 줄이려는 실험은 서양의 관습적·물질적 제약 속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색면'으로 개체를 표현하는 서양 회화의 전통이 걸림돌이 되었다. 만물에 적용된 '작은 차이에 대한 믿음'은 동양 사상과 밀접하기에 동양 회화의 전통적 물질과 기법으로 보완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 속에 이루어진 것이 '긴 or Kin'연작이다. 작은 차이를 뜻하는 '긴'과 친족을 뜻하는 'Kin'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들은 만물의 보편성을 토대로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반영하고 있는 조형적 특징은 크게 4가지로 태극 도상을 통한 보편성 표현, 먹의 농담을 통한 다양화, 점선을 이용한 개체의 고립 극복, 먹의 번짐을 통한 관계성의 강조이다. 태극 도상은 초기 추상화의 기하학적 형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개체를 전체의 부분으로 인식하는 구조주의 관념 속에 사용된 사각형, 원,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도상은 개체 간의 극복할 수 없는 이질감을 형성한다. 생명이라는 보편성을 강조하기에 획일화된 도상이 요구되었다. 이에 태극 도상은 흥미롭다. 한 원 안에 음과 양의 두 요소가 물결 모양으로 대립하면서도 어우러지는 태극 도상은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근원을 형상화한다. 그런데 이처럼 음양으로 분화된 2태극은 송대(宋代, 960~1279)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 있기 전까지는 3태극이 일반적 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만물은 세 개의 요소가 작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 요소에 대한 정의는 시대나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 개의 파문으로 이루어진 태극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에서 나타나며 상나라(BC1600~BC 1046)에서부터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갖는다. 또한 삼파문(三波紋)은 서양의 오랜 유물에서도 발견되기에 전 지구적 도상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의 미술 문화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만물의 원리를 표현한 태극 도상의 파문은 만물의 보편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태극 도상이 만물의 보편성을 나타낸다면, 수묵의 농담은 개체 간의 차이를 표현한다. 동양에서 먹은 검은색보다는 모든 색의 함축을 의미한다. 따라서 먹의 농담을 이용한 차이의 표현은 개체 간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차이의 이질감을 줄이기에 효과적이다. 이는 초기 추상화가 다양한 색으로 개체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거나 일률적인 색으로 만물을 획일화했던 것의 대안이 된다. '색면'으로 개체를 표현하는 서양화법은 개체 간의 선후와 우열을 불가피하게 드러내거나 개별자를 고립시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으로써의 개체를 표현하고 먹의 번짐으로 관계성을 강조한다. 특히 점선은 다른 개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개체도 세계로부터 고립되지 않게 표현한다. 이러한 사고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 수많은 존재를 인지하고 살아가는 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양면으로 배접하여 이면의 세계가 드러나게끔 한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즉 양면의 작품은 현 세계를 압축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소우주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전시장은 대우주이다. 대우주와 소우주와의 관계는 작품의 설치에서 나타난다. 대우주 내에서 소우주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이것은 족자와 병풍의 전통적 기능에서 착안했다. '와유(臥遊)'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유동하며 다른 시공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시공간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현 세계의 모습에 적합한 이러한 인식 역시 서양회화의 시공간 개념과 차이가 있다. 벽화를 기본으로 발전한 서양의 그림은 알베르티(Alberti)의 '열린 창문' 개념으로도 알 수 있듯이 고정된 시공간을 기본으로 한다. 그림을 벽에 고정하는 전시 방식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시공간의 우주를 수없이 마주하는 현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동양의 전통적 전시 방식은 더 적합하다. 공감과 이해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세계와의 공생에 필요한 것은 실증적 가치만이 아니다.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 역시 내가 속한 세계와 큰 차이가 없다는 믿음이 우리의 세계를 지탱할 것이다. ■ 윤여범

윤여범_긴 or Kin 2307 뒤_순지에 수묵_125×76cm, 양면_2023

긴 or Kin: Belief in small differences ●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 organizes the Red List to inform more than 42,100 endangered species. In the case of mammals, it is not difficult to form a consensus, but it is not easy to accept the dignity of unsightly plants or even disgusting creatures. It may be because it is difficult to prove the direct or indirect influence of unknown beings in places we have never visited in our lifetime. Nevertheless, the idea of this organization is becoming a common idea because a kind of 'belief' that goes beyond empirical value is emphasized. This belief is not unrelated to the fact that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was founded in 1948, right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 The theories of Herbert Spencer and Thomas Huxley, who applied Charles Darwin's evolutionary theory to humans, were distorted and used to justify imperialism. World War II, the culmination of which, made us realize that the 'strong diet' and 'survival of the fittest' are not the providence of nature. The lesson of "respect for life" obtained as a result of great sacrifice did not apply only to humans. As a result of respecting all living beings, the belief that the differences between living things are small is nurtured. This thought was also expressed in the works of abstract painters in the early 20th century who opposed colonialism. ● Colonialism that emerged after the Renaissance, as Levinas said, originated from the interpretation of Hebraism as Hellenism. In other words, because Christian doctrine wa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subjectivism in ancient Greece, Europe, the Christian community, was subjectified, and other religions, other countries, were made the other. This kind of thinking, in which the subject has all the right to decide on the other, also appeared in painting through perspective and chiaroscuro. However, the various cultures encountered in the course of missionary and colonialism caused cracks in Eurocentrism and Christian notions. In particular, the oriental ki(氣) philosophy, introduced by Leibniz and others, contributed to an id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and promoted the idea of equality. In this process, anti-colonial painters gave up the power of the subject and tried to overcome the gap with others. ● Experiments to reduce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were limited by Western customary and material restrictions. In particular, the tradition of Western painting, which expresses objects in "color fields," has become a stumbling block. The 'belief in small differences' applied to all things is closely related to Eastern thought, so it can be supplemented with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of Eastern painting. What was created in this consciousness is the '긴 or Kin' series. As can be seen from '긴', which means small difference and 'Kin', which means kinship, these works are based on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There are four major formative characteristics that are reflected to express this: expression of universality through the Taegeuk icon, diversification through light and shade of ink, overcoming isolation of objects using dotted lines, and emphasis on relationships through smearing of ink. ● Taegeuk icon was used to overcome the geometric form of early abstraction. Geometric icons such as squares, circles, and triangles used in the notion of structuralism, which recognizes objects as parts of a whole, create an insurmountable sense of heterogeneity between objects. A uniform icon was required to emphasize the universality of life. Thus, the Taegeuk icon is interesting. The Taegeuk icon, in which the two elements of yin and yang oppose each other in a wave-like shape in one circle, embodies the origin of the universe that creates all things. However, the two-taegeuk differentiated into yin and yang was common until Zhou Dunyi (周敦頤)'s 『Taegeukdoseo(太極圖說)』 of the Song Dynasty (Song Dynasty, 960-1279). In other words, all things are created by the action of three elements. Although the definition of these three elements differs by era or region, Taegeuk, which consists of three wave patterns, appears in various countries such as Korea, China, Japan, and Vietnam, and can be used from the Shang Dynasty (1600 BC to 1046 BC). has a long history. In addition, three wave patterns can be said to be a global icon because it is also found in old relics of the West. The ripples of the Taegeuk icon, which expresses the principle of all things even before the development of art culture in the East and the West, is suitable for expressing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 If the Taegeuk icon represents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the light and shade of ink express the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It means the connotation of all colors rather than black eaten in the East. Therefore, the expression of difference using light and shade of ink is effective in reducing the heterogeneity of difference while maintaining the difference between individuals. This is an alternative to the early abstract paintings, which failed to reduce the disparity of objects with various colors or standardized everything with uniform colors. ● The Western painting method of expressing individuals with 'color fields' inevitably reveals th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between individuals or isolates individuals. To overcome this, the individual is expressed as a line and the relationship is emphasized through the smearing of ink. In particular, the dotted line expresses objects that are not connected to other objects so that they are not isolated from the world. This kind of thinking reflects the current society where we recognize and live in countless beings beyond the physical. This is also shown through the two-sided double-layered material, revealing the world behind it. In other words, the two-sided work shows the present world in a compressed form. ● One work can be said to be a microcosm. As a result, the exhibition hall is a cosmo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crocosm and the microcosm appears in the installation of the work. Within the macrocosm, the microcosm is fluid and variable. This was conceived from the traditional function of scrolls and folding screens. As can be seen from the concept of 'wayu', they are fluid and show other time and space or cross the present time and space. This perception suitable for the present world is also different from the concept of time and space in Western painting. Western painting, which developed based on murals, is based on a fixed time and space, as evidenced by Alberti's concept of 'open windows'. The exhibition method of fixing the painting to the wall reflects this. The traditional exhibition method of the Orient is more suitable to show the present world, which directly or indirectly encounters countless times and space universes. ● It is not only empirical value that is necessary for coexistence with numerous worlds that have no choice but to have limits of empathy and understanding. Our world will be supported by the belief that the world to which I do not belong is no different from the world to which I belong. ■ Yoon Yeobeom

 

Vol.20230412b | 윤여범展 / YOONYEOBEOM / 尹汝梵 / drawing

기원(冀願)하다.

 

고은주展 / GOEUNJOO / 高銀珠 / painting 

2021_0107 ▶ 2021_0118

 

고은주_숨은꽃찾기_종이컷팅_330×90cm×3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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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주 홈페이지_http://blog.naver.com/nivea0104고은주 인스타그램_@nivea0104고은주 페이스북_https://www.facebook.com/eunjoo.go.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한옥 청년작가 공모 최우수상 수상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5:3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4(가회동 30-10번지)

Tel. +82.(0)2.3673.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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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상징하는 생명 에너지의 원천 ● 중국의 전통 연극에 그림자 인형극 피영(皮影)이 있다. 전통연극인 경극과 함께 민간에서 시작된 이 인형극은 동물 가죽을 이용해 형상을 만들고 이를 빛을 통해 그림자로 이미지화한다. 여기에 대사와 노래가 함께하는 인형극이다. 고은주 작가의 '숨은꽃찾기' 시리즈 작품 중 흰 종이에 칼로 파서 제작 설치된 작품의 이미지는 마치 인형극 피영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작가는 주로 꽃을 주제로 작업하는데, 꽃이 의미하는 것은 생명의 완전체로서 생명에너지의 원천이자 큰 의미에서 자연을 상징한다. ● 작가는 최근 임신과 출산,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몰입한다. 아이가 생김으로 자신의 소중함도 느끼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도 느끼는 시기가 이 시기이기도 하다. 뭔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매사에 조심스럽게 기도하게 되고 마음이 순화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작품 초기부터 꽃에 대한 관심과 표현을 이어 왔으면서 좀 더 색다른 시각과 표현기법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그동안 비단위에 채색기법을 표현하는 데서 더 발전해 기원과 기복의 의미를 담은 작품설치로 확장되었다.

 

고은주_신체건강부_비단에 채색, 컷팅_91×127cm_2019

 

고은주_신마신장부_비단에 채색, 컷팅_91×133cm_2019

 

고은주_삼재소멸부_비단에 채색, 컷팅_80×60cm_2020

 

 

소개된 작품은 '설위설경(設位說經)'이라는 전통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종이작업인데, 설위설경은 원래 불경을 해설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무속에서 굿을 하는 굿당을 장식하는 장엄구로 축원의 문구나 악귀를 물리치는 내용을 담아 종이를 오려내어 만든 장식이라고 한다. 꽃을 주제로 하면서 그 꽃은 한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서천꽃밭(西天花田)의 생명의 꽃이라고 하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음양오행에 담긴 뜻과 삼신할미가 결합된 신화에서 각각 성격이 다른 꽃으로 등장한다. 죽은 이들의 전당이면서 동시에 삶이 시작되는 곳인 셈이다. ● 이러한 생명의 꽃밭에 여러 형상을 중첩하면서 새로운 설위설경의 장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향한 축원의 마음을 담았다고 이야기 한다. 보통 종교화에서 보는 것처럼 작품은 삼단구조로 되어있다. 맨 아랫단에는 사람의 형상이 나란히 배치되어 이 세상을 의미하고 축원의 상징들을 떠받들고 있으면서 중간 부분과 상단은 대칭된 형태로 길조라 여겨지는 원앙이나 봉황과 같은 새와 꽃동산을 연상하게 하는 풍성한 꽃밭이 펼쳐져 있다. 배경은 햇살과도 같은 빗살무늬로 축원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칼로 오려낸 부분은 새로운 공간으로 양 공간을 분할하는 것이 아닌 두 공간의 소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로 비쳐진 벽면의 이미지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효과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자극한다.

 

 

고은주_숨은꽃찾기_종이컷팅_330×90cm×3_2020

 

 

작가는 자신의 현재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대자연의 위대한 순간도 어찌 보면 자기 자신,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고 응시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최근 작업들은 근래에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을 경험하면서 모성을 내재한 엄마의 마음, 엄마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는 작가의 말 속에 엄마의 마음은 작은 것 같지만 모두의 마음 같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법보신문 2019.11.5 글 발췌) ■ 임연숙

 

고은주_도적불입부_비단에 채색, 컷팅_80×60cm_2020

 

고은주_북약호력부_비단에 채색, 컷팅_80×60cm_2020

 

 

고대부터 갖고 있던 꽃에 대한 의미는 생명을 잉태하고 생성시키며, 음양의 생성원리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꽃에서 나서 꽃에서 다시 피어난다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이는 자연을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의 사유방식에서는 인간, 동물, 식물 등의 자연의 대상물들은 같은 위계상에 있다. 나의 작품은 이와 같은 동양 전통적인 사유와 맥을 같이 한다. ● 그렇듯 나에게 있어 꽃은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적인 장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자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교감을 나누는 대상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간의 생(生)과 닮아있는 꽃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상징 소재가 된다. 특히 꽃과 여성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본성에 초점을 맞추어 꽃을 통해 여성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 최근 작업들은 근래에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을 경험하면서 모성을 내재한 엄마의 마음, 엄마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에 표현된 꽃의 이미지는 한국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서천꽃밭(西天花田)의 생명의 꽃을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삼신신앙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서천꽃밭은 인간이 쉽게 발 디딜 수 없는 하늘세계 서천서역에 있는 꽃밭으로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삼신할미가 아기를 탄생시키는 꽃을 '생불꽃'이라 하는데 건강한 아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정성을 들여 삼신할미에게 기도를 하면 다섯 가지 꽃 중 한 가지 꽃이 일어나 세상으로 보내지게 된다. 동쪽 파란 꽃은 용감한 아기, 서쪽 하얀 꽃은 슬기로운 아기, 남쪽 붉은 꽃은 복 많은 아기, 북쪽 검은 꽃은 수명이 긴 아이, 가운데 노란 꽃은 예쁜 아기로 태어난다. 그렇듯 이 꽃은 아기를 잉태시켜주는 영력(靈力)을 지녀 생명을 잉태, 출생시키는 꽃으로 생명의 상징이자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복의 대상이 된다.

 

 

고은주_바이러스퇴치부_비단에 채색, 컷팅_80×60cm_2020

고은주_신마신장부_비단에 채색, 컷팅_80×60cm_2020

 

 

이러한 서천꽃밭 위로 또 다른 형상들을 오버랩 시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설위설경(設位說經)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것이다. 설위설경은 굿 장소를 종이로 화려하게 장식한 장엄구를 가리킨다. 일반적인 유래나 역사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 조선초기부터 경문이나 축원을 담은 도상들을 종이에 글로 적거나 칼로 파내어서 제장을 둘러치는 가로막이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설치된 설위설경은 수복축원, 잡신퇴치, 조상천도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한다. 설위설경에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지는데 그 중 주된 문양인 꽃은 상징이면서 동시에 기호로 작용한다. 여기에 새겨진 꽃들은 대개 인간이 나고 돌아가는 우리의 본향을 상징하고 있다. 싱그러운 다양한 꽃들이 만발한 동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둥글며 포용성이 높은 상상의 장소가 된다. 나는 이러한 설위설경의 모티브에 착안하여 종이를 오려 내거나 다양한 꽃으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상징성을 지닌 도상이나 문자, 문양 등을 대칭적으로 배열하고 형상화함으로써 아이를 향한 갖가지 수복축원의 바람을 담은 엄마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 고은주

 

 

Vol.20210107b | 고은주展 / GOEUNJOO / 高銀珠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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