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

박부곤/ PARKBOOKON / 朴富坤 / photography

2023_0912 2023_0924 / 월요일 휴관

박부곤_위례신도시-8_C 프린트_152×190cm_2020

박부곤 홈페이지_www.bookonpark.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공간 미끌

gallery gong-gan Miccle

서울 종로구 종로 74 B1

Tel. +82.(0)10.3117.0697

www.micggle.com

 

벽이 생긴다면,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페렉은 그의 산문집 공간의 종류들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 공간이라 지칭되는 것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공간이다. 명명함으로써 증식되는 일상의 공간에 대해,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에 대해 페렉의 끊임없이 질문하고 분류하며 기록하는 행위, 즉 그의 글쓰기는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하게 한다. 마치 앙리 미쇼가 "나는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공간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이는 기호로 시작되는 질문이고 의심이다.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모든 공간은 같을 수 없으며 그 이동도 지루하지 않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페렉에게 산다는 것은 하나의 사유에서 다른 사유로 최대한 명료하게 이동하는 것이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3_C 프린트_96×120cm_2020

박부곤의 작업을 지켜본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이 기간을 전, 후로 나누어 보면 먼저, 신도시 개발 현장의 땅을 기록한 "대지(The Land)" 연작과 그 현장을 돌아다니는 자신을 기록한 "트래킹(Tracking)" 연작이 있다. 이후는 현장에 세워지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찍은 사진과 기계장치를 결합해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이 작업의 중심에 있다. 이처럼 그는 인간에 의해 완벽하게 탈바꿈되는 땅의 풍경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열 번의 개인전에서 참으로 성실하게 보여 주었다. 그의 작업은 분명 자본과 결탁한 인간의 욕망이 축조하는 바벨의 탐색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읽기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자는 그의 사진 앞에서 땅의 권리를 혹은 인간 종 아닌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파괴된 땅의 미학적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아이러니한 경험도 가졌다. 특히 장 노출로 빛의 이동 경위를 보여주었던 사진은 구도적 풍경으로까지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성의 확장성을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을지 묻게 된다. 물론 일부 작업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지(The Land)""트래킹(Tracking)" 연작 대부분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했던 작가의 일상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속 촬영지는 그의 집에서 직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신도시 건설 현장이고, 사진을 찍었던 시간은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이었다. ㅡ여기서도 그의 성실성은 드러난다.ㅡ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노골적인 풍경을 의미가 사라진 텅 빈 공간으로 만들었다.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꽤 큰 규모의 설치작품 또한 엔지니어란 그의 직업을 안다면 이해가 된다. 그는 기계장치에 연결된 램프의 점멸로 빛과 어둠을 표현했고, 이는 공간의 왜곡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했다. 연극에서 보이지 않던 공간을 보이게 하는 조명의 효과처럼 말이다. 이렇듯 빛의 강도는 빈 공간을 생성하였고 감상자는 하나로 뭉치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0_C 프린트_64×80cm_2016
박부곤_위례신도시-24_C 프린트_64×80cm_2021

이번 전시, (The Act)에서 새롭게 보여주는 사진 또한 그의 일상과 밀착된 작업이다. ㅡ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 다수이다.ㅡ 그는 몇 해 전 자신이 기록하였던 현장 중 한 군데인 위례 신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의 첫 삽은 대단지 아파트 공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 입주민은 크고 작은 공사 현장에 매일 노출된다. 심지어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창밖 풍경이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파트와 상가 빌딩이 들어서면서 주변 공사 현장에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적나라하게 현전하는 욕망의 장면만 크고 단단한 이미지로 남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빛의 강도로 사진적 공간을 발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림막을 연극의 막(act)과 같은 개념으로 그는 해석한다. 연극에서 막(act)은 공간의 변화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차단/생성하는 작용을 한다. 공사장 가림막의 용도도 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가림막 뒤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가림막에 그려진 자연과 유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공사장에서 쏟아지는 소음과 먼지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면서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유도한다. 그 효과는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단순히 경계를 지을 목적으로 치는 공사장 펜스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틈은 언제나 있다. 가림막 이미지 앞에 멈춰 선 시선 위례 신도시-8, 이미지를 뒤덮은 기이한 덩굴 위례 신도시-23, 이미지와 너무도 완벽한/어설픈 공조 위례 신도시-20/위례 신도시-24은 애초의 의도를 차단하고 다른 이야기를 생성하기 충분하다.

 

박부곤_서울시-10_C 프린트_150×120cm_2022
박부곤_위례신도시-2_C 프린트_64×80cm_2020
박부곤_위례신도-10~15_C 프린트_20×25cm_2021~2

박부곤은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가림막들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가림막에 그려진 그 욕망의 공간에 그는 이미 살고 있다. 그에게 가림막이 새로운 사진적 공간으로 명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발명된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 그에게 그 행위는 사진 작업이다. 그는 가림막 이미지 위에 생성된 공간에서 서성거린다 위례 신도시-8. 가림막을 뚫고 그 이면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위례 신도시-2. 가림막이 무용지물이 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서울시-10. 시간 단위로 공간을 분류하고 기록한다 위례 신도시-10~15. 그렇다, (act)은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act) 하기 위한 것이다. 막의 뒷면에서 새로운 무대를 위해 연출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보다 막을 마주한 관객들이 더 부산스럽다. 조금 전 무대를 잊는다. 다음 무대를 상상하거나 연극이 끝나면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생각한다. 혹은 극 중 인물들은 왜 그래야 했는지 묻는다. ㅡ이 글을 쓰는 순간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디 액트(The Act)가 떠 올랐다.ㅡ 박부곤의 사진 앞에 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사진적 공간을 마주한 우리는 행위(act) 한다. 그가 질문하고 의심했던, 하지만 결코 정의할 수 없었던 그 공간들을 들락거린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한한 공간/우주(space)를 발명하고 이동한다. 나를 돌아다니며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오래전 그에게 그렇게 잠을 줄이면서까지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요, 재미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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