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이미지를 새겨 넣는 최울가의 뉴욕 스튜디오
최울가라는 아티스트의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고, 소품 몇 점도 뉴욕의 군소 아트 페어에서 본적이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최울가를 카자흐스탄이나 우츠베키스탄 출신의 교포 아티스트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우연히 작가 오프닝에서 만나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뜬금없이 러시아 역사나 과거 소련의 동방정책 등과 같은 이슈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한 것이 최울가가 부산 출신 나보다도 더욱 완벽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다 못해 넌지시 개인 신상에 대해 물었더니, 파리, 서울, 동경, 뉴욕을 중심으로 오래 동안 활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출신지도 카자흐스탄이 아니라 대한민국 부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못된 선입관이 불러 일으킨 어이없는 오해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의의 근원이 이름 “울가”를 “올가”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최울가의 해명을 들으면서 납득은 했지만, 사람의 그릇된 고정 관념이라는 게 얼마나 맹목적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울가는 지난 20여 년을 파리를 베이스로 해서 유럽, 동경과 서울을 베이스로 해서는 아시아, 그리고 뉴욕을 베이스로 북미 지역을 넘나들며 작업을 해왔다. 삶과 작업 장소의 이동이라는 유목성이 최울가 예술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중복되는 이미지와 중첩적인 텍스트 사이의 유동성이 최울가 예술의 다른 축을 이룬다. 인생 그 자체처럼 예술도 본질적으로는 흐르는 움직임 자체이지만, 유동성 그 자체가 특정한 감각적 방식으로 고정되어 형식화 되면서 하나의 구체적 형태를 가진 이미지로서 포착되고 이해되어 재현된다. 흐름과 고정이 내용과 형식이라는 틀로 짜이고 엮이면서 그 틀 자체가 다시 더 큰 흐름 속으로 흘러 들고, 더욱 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구성되면서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반복적 확장이 궁극적으로 인생과 예술을 하나의 거대한 내용과 형식으로 직조되어서 인생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인생이 되는 것이다. 물론 꿈 같이 이상적이고 몽롱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꿈 같은 이야기가 최울가의 예술적 꿈이고, 야욕이며, 예술의 여정이다. 그 꿈 때문에 최울가는 지난 10년 동안 겨우내 익숙해 진 삶의 공간을 떠나서, 스스로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키면서 뉴욕에서 홀로 살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굳이 스튜디오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뉴욕에 두고 혈연단신, 말 다르고 물 다른 곳에서 혼자 밥을 지어먹으면서 궁상스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명한 세계에서 자기를 떼어 내고, 낮 선 장소, 이질적 공간에 자신을 투입하고, 자신이 투입된 새로운 세계를 다시 자기 스스로 관조하고 의심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주체를 대상처럼 재구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타자화하여 자기 내면을 이질적 세계로 만들면서 외부 세계를 동질화시켜, 그 낮 선 이질적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여 다시 동질적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현실적 공간이 최울가의 몸을 통해서 회화적 공간으로 다시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다지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 데도, 낮 선 세계, 새로운 장소에 거주하는 경험 자체가 작품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최울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여름의 끝 무렵이었다. 스튜디오는 맨하탄 섬 북서쪽 끝, 워싱턴 하이츠(Washington Heights)와 인우드(Inwood)라는 지역의 접경에 있었다. 한국 작가의 스튜디오가 그다지 미술과 상관이 없고, 게다가 도미니컨과 아이리쉬가 밀집한 지역에 작업 공간과 생활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부터 아시아 출신의 작가에게는 드문 일이다. 맨하탄 북서쪽 끝에 있는 거리는 전통적으로 아이리쉬와 유태인 중산층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지난 수 십 년간 세계 각국에서 유입된 이민자들로 인해 거기서 한 블록만 더 동쪽으로 내려가도 영어가 공용어가 아닐 정도로 스페니쉬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좀 요란스러운 동네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도미니칸 마약 카르텔이 밤의 거리를 장악하던 흉흉한 동네였다. 그러나 그런 도심의 전장 같은 곳을 맨 몸으로 이민을 와서 구멍가게나 동전 세탁소를 운영하던 한국 교포들의 서바이벌 무용담이 전설처럼 녹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물론 옛 말이다. 맨하탄 자체가 재개발(gentrification)되면서 섬 전체에 거주 비용이 비싸지고 치안이 강화되어 지금은 대체로 맨하탄 대부분 지역이 안전해졌다. 최울가의 스튜디오가 있는 블락은 이전에도 이런 야성의 세계에서부터 분리된 일종의 섬 같이 평온한 지역이다. 가게 하나 없이 길 한쪽으로만 이차 대전 이전에 지은 오래된 성채같이 견고한 아파트가 줄지어 있고, 몇 블록 위, 북쪽에는 포트 트리언 파크(Fort Tryon Park)라고 대단히 아름답고 숲이 울창한 공원이 있다. 그 공원의 북쪽 끝에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중세 유럽 미술품과 건축물을 소장하고 있는 클로이스터(cloister)라는 분관이 있다.
이렇게 오래된 동네에 정착한 최울가는 맨하탄 기준으로는 상당히 넓은 원 베드룸 아파트의 리빙 룸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아파트 자체가 이차 대전 이전에 지은 것이라 요즘 아파트와는 다르게 벽도 두껍고 천정도 높다. 그다지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높은 천장 때문에 화실은 실제 면적보다 상대적으로 넓어 보였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최근 몇 달간 작업을 했던 그림들이 벽에 기대어 새워져 있었다. 블랙 엑스피 씨리즈라고 한다.
이른 새벽의 하늘 빛 같은 어두운 바탕색을 칠한 캔버스 위에 화려한 색색으로 형상화된 조형들이 빽빽하게, 마치 바위에 정으로 새긴 듯이 그려져 있었다. 그 새기듯이 그려져 있는 이미지 때문에 언뜻 보면 동굴이나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암각화 같기도 하고, 또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프리카나 남미 원주민들의 토기 위에 새겨져 있을법한 문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최울가의 작품이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하고 평한다. 그러나 내 눈 앞에 놓여있는 최울가의 그림 속 이미지는 더 없이 세련되고 숙련되어 보였다. 그 이미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티스트로 엄격하게 훈련된 숙련된 손과 엄밀하게 단련된 세련된 눈이 아니면 재현될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속에서 프리미티비즘이 미친 영향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프리미티브스(the primitives)에게 프리미티비즘이란 존재하지가 않듯이, 프리미티비즘은 프리미티브스가 아닌 사람이 프리미티브하다고 생각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동시대적 표현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닌가. 프리미티비즘은 서구 미술사에서 스스로의 미술에 대하여 만들어 낸 대항적 이미지(counter-image)로 서구 미술사에서 분리될 수 없는 서구 미술의 하나의 경향이며, 동시에 비서구 사회에서는 서구 사회 같은 미술의 역사가 부재할 것이라고 하는 자폐적인 미술에 대한 담론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엉성하기도 하고 설렁설렁 그린 것 같은 개나 늑대의 얼굴을 한 남자와 물고기, 새, 그리고 그것들을 감싸는 다양한 채색 배경이나 나선 같은 도형과 그것들의 배치는 다분히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울가의 머리 속에서 자라나서 그의 눈과 손 아래에서 재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울가에게 중요한 것은 캔버스 위에 그려질 조형 자체가 아니라 그의 머리 속에서 새겨지는 이미지들이다. 손이 그렇게 많이 가는 캔버스에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머리 속에 이미지를 새겨내는데 사용한다. 이렇게 머리 속에 새겨지는 그림이라는 게 현실적인 이미지라기 보다는 특정 이미지에 대한 아이디어인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실에서 우리 관념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라기 보다는 이미지의 이미지, 즉 메타 이미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최울가에게 이미지를 이미지 자체로 직접 이해하는 것과 이미지 일반의 본질에 대한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울가가 재현해 내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사실상 최울가의 머리 속에서 일상 이미지 자체가 이중화되어서 재귀적으로 구성된 아이디어, 관념으로서 이미지인 것이다. 마치 카메라 옵스큐라의 비유처럼, 감각작용과 사유작용을 통하여 현실에서 보이지 않거나 부재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적으로 지각 되지 않는 대상을 머리 안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이미지가 어둠 속에서 투영되는, 일종의 “정신의 그림”을 최울가응 스스로 그려나갔다.
그렇지만, 지각과 상상력으로 정신에 새기는 그림이 카메라의 원리처럼 광학적으로 전도된 수동적 이미지가 아니다. 정신 속에 새겨진 그 이미지가 그대로 자동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문지르고 그리는 신체를 통해서, 또 그 신체를 훈련시킨 문화적 필터를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서 재구성 된다. 통상적인 카메라 옵스큐라의 전도된 이미지가 신체의 수행적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적 생활과정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재조정되어, 그 자체가 원래 아이디어에서 독립된 것으로 작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그 과정에서 역으로 아이디어로 환원될 수 가 없는 독자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환원이 불가능한 비가역성 속에서 최울가의 작품은 작가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한국적” 그림이라는 역사 사회성을 획득한다.
여기서 “한국적”이라는 형용의 내용이 한국적 소재를 대상으로 했다거나, 한국적 오방색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국적 미술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최울가와 동시대의 한국인들이 이미지를 이중화 시키는 방식, 즉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묘사하고, 상상력의 활동을 상상하고, 형상화의 실천을 형상화하는 패튼 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작품의 구상을 머리 속에서 도면처럼 차곡차곡 엄밀하게 배치하여서, 그 전체 설계도에 입각해서 건물을 짓듯이 하나하나 촘촘하게 밑 공사가 끝난 캔버스 위에 채워 놓는 것이다. 워낙 노동의 강도가 높은 고밀도로 색을 칠하고 그려놓았기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턱턱 숨이 막힐 정도다. 엉성한 듯이 그려져 있고, 느슨한 듯이 배치된 형상들이 피상적으로 보면 마치 어린 아이가 그려놓은 낙서처럼 보이지만, 좀 느린 호흡으로 집중해서 보면 그야말로 천라지망처럼 물 샐 틈도 없이 촘촘하다. 그 촘촘한 세계야말로 우리가 숨막히게 바쁘게 살아가는 공간인 것이고, 최울가는 그렇게 팍팍하게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천진난만하고 헐렁하게 그려 숨통을 트이게끔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장난스럽고 유희로 꽉 차 있는 것 같은 최울가의 작품 세계는 사실 심각하고 우울하여 슬프기 조차한 진지함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그런 아이러니로 꽉 찬 세계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스튜디오 안을 이리저리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따끈따끈한 그림들을 보고 또 보면서, 커피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포트 트리온 파크로 걸어갔다. 그 공원 내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늦여름 오후 맨하튼 북쪽 끝 나무 밑에 앉아서 먹고 마시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마칠 무렵,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다가다 못하고 공원에 갇혀서 부득불 이른 저녁까지 먹으면서 미술계나 연예계의 가십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최울가와 보낸 여름 한나절 현실 세계는 그의 작품 세계와는 반대로 삶과 작품을 둘러싼 심각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가십과 허망한 농담으로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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