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만들어 처우 개선 논의… “대가 제대로 못 받고 정부 지원 전무”

[경향신문/김여란기자]

서울의 한 미술대학원에 재학 중인 ㄱ씨는 지난해 10월 한 전시 주최 측으로부터 50만원의 ‘아티스트피(fee)’로 신작 미술품을 전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아티스트피는 미술가가 작품을 전시·설치할 때 받는 비용이다. ㄱ씨는 작업에 드는 재료비, 운송비 등은 먼저 자비로 썼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티스트피를 받지 못했다. ㄱ씨는 2012년 7월 지방에서 1주일간 머물며 작품을 설치하고도 20만원밖에 받지 못한 적도 있다.

ㄱ씨는 “전시장의 각목 구입 비용보다도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아티스트피다. 작가들 대부분이 빠듯한 생활에 작업과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정작 작품을 전시해도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작업을 하고 전시를 거듭할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미술사학과 학생 ㄴ씨는 2012년 큐레이터 전공 수업의 일환으로 한 국립미술관에서 200시간 동안 인턴 실습을 했다. 큐레이터 일을 간접 체험한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전시실 청소와 관리, 관람객 제지 등 전시장 지킴이로 일했다. 학기 중 4개월간 평일과 주말에 하루씩 나가 일했지만 무급이었다. 점심은 직접 사먹었다. ㄴ씨는 “주변에서도 돈 거의 못 받고 궂은일을 하는 인턴들이 많으니까 당연하게들 생각한다”며 “억울하지만 미술계는 특히 인적 관계가 협소해 대부분 참고 넘어간다”고 밝혔다.

미술작가로서 먹고살기 힘들고, 자유롭게 작업하기 어려운 한국 미술계에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미술가들이 지난해 ‘미술생산자모임’을 만들어 12월 첫 공개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미술작가들을 중심으로 큐레이터, 인턴, 비평가, 학예사, 시간강사 등 미술생산과 관련된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 모임에는 30대 전후의 미술가 50여명이 모여 아티스트피, 무급 혹은 초저임금 인턴제도, 계약직이 대부분인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임에 맞춰 예술가들의 부당한 처우와, 미술독립기금 구축 방안, 예술인복지법 모니터링 등 미술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담은 ‘미술생산자로 살기’ 자료집도 발간했다.

미술생산자들의 처우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거의 없다. 미술 관련 정부 보조금에서도 미술생산자들의 노동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가들에게 지원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집행 기준에는 지원 당사자의 인건비 책정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미술생산자모임은 지난해 3월 문화부에 지원금 집행 기준 개선 요구안을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불안정한 미술생산자들의 지위는 자유로운 미술 담론을 막는다. 한 큐레이터는 “보통 2년, 5년인 계약기간 만료가 가까워올수록 나도 모르게 관장에게 굽실거린다”며 “이런 사적 권력 관계 때문에 미술관에서 사회, 정치적 담론이 사라진다. 최전선에서 현대미술계의 다양한 담론을 보여주거나 만들어야 할 국공립미술관이 존재감을 잃는 게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미술생산자모임은 오는 3월 두 번째 공개모임을 열 계획이다. 미술생산자모임의 박은선씨(34)는 “미술계의 현안과 불합리한 아티스트피 개선책, 향후 대응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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