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치는 녹색 The Echoing Green

김성남_지용현_파랑 

2023_0712 2023_0725 / 일요일 휴관

김성남_there 0501_캔버스에 유채_72×45cm_20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기획 / 오별아트 @oh_byul_arts

 

나인원 갤러리

NiNE ONE

서울 종로구 인사동49 2

www.goodgallery.co.kr @nineonegallery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은 아마도 예전에 숲이었을 것이다. 그 숲이 도로가 되고 아파트가 되고 호텔이 되고 카페가 되고 도시가 됐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숲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절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숲과 계곡이, 산과 강이, 자연이 부동산에 부속된 프리미엄급 풍경이라는 잉여 가치가 되어 더 비싸게 사적으로 소유되고, 소비되는 것으로 자연이 축소됐다. 그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근원으로서의 자연을 잃어버렸는데, 사람들은 그걸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모른 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결핍감을 채우고자 거의 강박적으로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간다. 그것이 짧고 덧없는 디지털 접속의 연속과도 같은, 뿌리 뽑힌 현재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오별 아트가 처음으로 기획한 메아리치는 녹색전에 참여하는 세 작가는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을 시골이나 산, 숲에 있던 원형적 자연 한 복판에서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훗날 도시의 대학에 가서 회화를 전공한 이들에게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이었을 것이다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손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 월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제 각각 제 방식대로 살아 숨쉬며 하나의 숲을 이루는 자연은 그만큼 원대하고 또 순환적이다. 그 안에는 정말 없는 게 없고 그 모든 게 다 연결된 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손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에서 영원'을 볼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런 곳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았던 화가들의 그림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 결핍감으로 자연을 그리게 된 화가의 그림과 다를까?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도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인 녹색 자연을 그리는 화가는 세상에 많고 많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이들 세 작가의 그림 같지는 않다.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해도 좋을 만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자연과의 일체감이다. 19세기 증기기관차가 생겨 난 이후 풍경은 도시 방문자가 눈으로 즐기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풍경화가 되었고 그것들은 기필코 도시인 눈에 장엄하거나 아름다운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팔렸다. 그 때문에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미술관 그림들이 진부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화가가 서툴러서가 아니다. 화가에겐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중요했고, 그런 그림 위주로 그리니 진부해진 것이다. 시장의 요구가 예술 자체의 요구보다 더 강해서 생긴 결과였다." - 존 버거 김성남, 지용현, 파랑의 녹색 그림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다. 어떤 그림은 무섭다. 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다. 자연 속에 깃든 만물의 신성을 드러내는 그림으로서 가치가 있다. 눈으로 즐기는 자연이 아니라, 온 몸으로 체험하는 자연으로 우리의 감각을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돌려 놓는가 하면 미래나 시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도 데려간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겉으로 보기엔 없지만 더 오래 보면 있을 수 있는 것, 누군가는 볼 수 있지만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 그러니까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 으로서의 녹색 그림, 그게 바로 김성남의, 지용현의, 파랑의 그림이다.

 

김성남_there1803_캔버스에 유채_105×73cm_2018
김성남_Wild landscape2103_캔버스에 유채_117×80cm_2021

1. 파주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며 혼자 숲에 가는 일이 많았다는 김성남의 그림은 "자연 현상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이음새 없이 전체,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에 부분들간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했던 괴테의 자연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숲 속으로, 숲의 웅덩이로, 빠져 드는 게 아니라 녹아든다. 깊이 용해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숲의 물 웅덩이에 사람이 누워 있는 듯한 불분명한 형태의 그림은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드는데 그건 일종의 물을 통한 '치유와 정화의 시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유년의 숲, 태고의 자연을 되살리는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며 그 안에 생존과 귀환을 위한 자기 삶의 험란한 경험들을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jiyonghyun_pink woods 21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21
jiyonghyun_woods 22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6×53cm_2022
jiyonghyun_woods 23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23

2. 서울 출생이지만 어린 시절 관악산 산 속에서 살았고 더 깊은 산골이 좋아 경기도 안성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이주한 지용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속한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 예술이고, 그림은 이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전해 주는 전령들"이라고 했던 존 버거의 말을 다시 한 번 소환하게 된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의 녹색 자연 속에는 눈으로 잘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보잘 것 없거나, 원자 단위의 존재감밖에 없어서 실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을 것 같은, 빛의 파동 같기도 하고 외계 생명체의 불꽃 모양 에너지 같기도 한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우주의 먼지처럼 신비롭게 하찮은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게 뭔지 작가는 아마도 함구할 것이기에 묻지 않는다. 제법 오랜 기간의 재탐색 끝에 모래 한 알 같은 티클에서 무한에 이르는 '우주적 춤'을 추고자 했던 지용현만의 독자적 상상력이 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다시금 실험되고 교신되고 파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뉴스다.

 

파랑_5월의 어느날(뉴질랜드)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7
파랑_Wolf boy and black wolf(꽃밭에서)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22

3. "사람의 유년시절의 추억은 그 사람의 근원이자 뿌리이다. 인간의 삶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공간에 시간과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 parang 문경 세제에서 6살까지 살다가 강원도 태백으로 이주하여 10살까지 살았다는 파랑은 주로 늑대를 그린다. 늑대를 그리지 않을 때조차 늑대가 느껴질 정도로 늑대에게 동화된 삶을 제법 오래 살았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형상과 이미지의 힘으로 시공을 넘어 그 대상과 소통하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커질 때는 인간이 사라지고 오직 동식물들만 평화롭게 공존하는 종말 이후 미래의 낙원을 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딱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낙천적으로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월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순수의 노래에 수록된 '메아리치는 녹색(The Echoing Green)' 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그런 그림들이다. "저렇게들, 저렇게들 즐거웠지. 우리 모두, 소녀와 소년이었던 어린 시절에는 우리도 메아리치는 녹색 풀밭에서 놀았지."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노래중에서

 

파랑_가을 속의 날개_종이에 오일 파스텔_60×89cm_2022
파랑_늑대개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23

보통은 어른이 되면 녹색 풀밭에서 놀던 어린 날의 순수를 잃게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어로 쓰면, '이윽고 어린 아이들은 지쳐, 더 이상 즐겁게 놀 수 없고, 해는 저물어, 우리는 놀이는 끝났다'로 귀결되고 만다. 그런데 이 세 작가에게 '녹색 순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메아리 같다. 해는 저물어 이미 어두워졌는데, 그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둠 속에서 계속 혼자 놀고 있는 아이 같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생계를 위한 그림이 아니라, '인생을 건 놀이'로 계속 그림을 그린다는 것! 해는 저물어 어두워지는데"인간은 충분히 어두워져야 별을 볼 수 있다." 고 했던 괴테의 말로 응원한다!  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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