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종근당 예술지상

이재훈_이해민선_정직성

2023_0921 2023_1002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종근당 예술지상 홈페이지로 갑니다.

 

2023 종근당예술지상 콜로키움 : 회화를 말하다

2023_0923_토요일_02:00pm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관 오픈갤러리

발제 / 이은주(미술평론)_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_조은정(미술평론)

 

주최 / ()세종문화회관_()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1:00am~07:00pm

21_01:00pm~07:00pm / 입장마감_06: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로 81-3번지) 1

Tel. +82.(0)2.399.1000

www.sejongpac.or.kr

@sejongmuseum

 

그 주변들 현대 회화는 너무나 감각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개념적인 예술이 되었다. 높은 수준의 회화는 깊은 사유와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과 모호하지만 풍부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많은 작가들의 세계가 회화 이미지로 수렴된다. 사람들은 회화 이미지에 개인과 세계, 몸과 마음, 생활과 비전을 비춰본다. 이번 기획전 초대 작가들의 회화적 성취도 이러한 현대 회화의 흐름 속에 있다. 이재훈, 이해민선, 정직성 세 작가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감각과 인식을 투영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회화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에 확장된 또는 파생된 것들의 다양한 해석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된다. 회화 본령의 영역과 그 밖 또는 그 주변의 세계와 사물, 감정과 의식이 삼투하며 하나의 심미적 지평선에 녹아든다. 우리는 비밀스런 회화의 길을 따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선다. 우리 자신이 회화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그 밖에서 관계를 맺는다. 잠시 그 세계 안에 편입되어 동조하게 된다. 회화적인 것과 그 주변의 것들은 개인과 세계의 운명을 회화적인 것을 통해 표상하도록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회화 작품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작품의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들과 예술성의 객관적 비교 평가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예술작품이란 시대와 장소, 관람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모든 예술적 활동과 현상은 같은 높이의 미적 지평 위에 놓여 있다. 가깝고 공감이 가는 예술과 멀고 낯선 예술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회화 작가들 가운데 자기 자신에 충실하며 독창적인 회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우리의 관심과 공감의 중심에 있게 된다.

 

이재훈 화면은 조형 에너지와 힘이 치솟는다. 다양한 요소들이 뒤엉키며 거대한 카오스적 형상을 그려낸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단단하게 자리잡고 풍화되어가던 기념물들의 세계가 해체되고 있다. 구체적이었던 상징과 도상들은 모두 사라지고 짙은 음영과 채색과 붓질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물과 에너지가 서로 감응하고 포용한다. 조형력을 통해 작가는 사물과 생명에너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어둠과 불안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필력과 화면 구성은 역동적이며 활력이 넘친다.

 

이재훈_펑펑펑_벽화기법(장지,석회,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200X140cm_2023

작가에게는 현상을 포획하려는 동시에 표현이 생성되어야 한다. 조형적으로 대상은 생동하는 원형적 에너지의 현상으로 수렴한다.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고 그리려고 모색한다. 작가에게 현상이란 몸과 마음, 의식과 대상, 운동과 변화가 모두 뒤섞인 카오스적 현상으로 뭉뚱그러져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가 되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물질과 정신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바탕이 된 현상의 표현이다. 불일치의 세계에서 일치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재훈_와르르르르르_벽화기법(장지,석회,먹,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200X540cm_2023

많은 화가들이 시대를 초월해 '()''기운생동氣運生動'의 미학에 매료되어 왔다. 북송시대 걸출한 철학자 장재(張載 1020~1077)'흩어져 형상화할 수 있는 것으로 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것은 변화의 일시적인 모습'이라고 기()를 설명했다. 이러한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회화 이미지는 시간성과 연결되고, 형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는 변화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마치 기처럼 회화 이미지는 흩어지고 모이고 형태를 이루었다가도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시간 속에서 모든 사물은 변화하며 생성소멸한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과 의식과 꿈, 정념과 이념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며 생성소멸한다.

 

이재훈_피고,지고,날리고_벽화기법(장지,석회,먹,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183X230cm_2023

우리는 회화의 길 위에서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지향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기도 하고 세속과 사물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는 마음의 경계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살고 죽는 것, 생사유무를 왕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거나 중독되지 않는다. 자유롭다는 것은 마음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다. 근래 확산되는 멀티버스라는 관념은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복수의 세계가 있다는 것으로 이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과 복수성을 의미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변화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하나의 현상에서 다른 현상으로 이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변화가 아니라 성장과 소멸이다. 변화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하며 훈육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표현해왔다. 근래에는 동양 회화의 방법론을 적용한 회화 연작을 통해 동양화의 세계관과 조형원리를 현재화하고 작가 개인의 조형언어로 번안하는 새로운 회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우리는 작가가 동양화의 추상성과 형상성, 표현의 방법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민선 어느날 작가의 눈에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버려진 석고로 만든 깁스들이 들어왔다. 환자의 손과 발과 팔과 다리를 깁스했던 석고들을 수집하면서 사물과 인간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몸이 빠져나간 깁스의 빈 공간을 석고로 다시 떠보기도 한다. 처음 깁스라는 사물에 포함되었던 환자의 흔적이 사라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의 새로운 행위와 흔적이 그것을 대체한다. 심미적 의미가 부여된 오브제로서 치료용 깁스는 기이한 사물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다시 드로잉이나 회화로 재현할 이유가 없다. 석고를 수집하고 가져오는 과정이 이미 작업에 포함되고 보니, 작가는 굳이 드로잉이나 회화를 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환자의 몸에서 나온 각종 분비물들과 병원의 약품들이 뒤섞인 이상한 냄새들.

 

이해민선 _ 덜 굳은 사물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52.5X149cm_2023

한편 작가는 인화용지에 새 그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깁스된 상태처럼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다. 버릴 수 없는, 다루기 어려운 사물들. 얼굴 없는 새를 그리다가 사물로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매끄러운 사진 인화용 종이의 표면과 얼어붙은 강의 표면이 교차한다. 사물의 속성이 표면 이미지의 유사성에 녹아들어간다. 인화용지에 이미지를 새기고 녹이는 화학적 과정은 언 강이 녹는 과정으로 치환된다. 작가는 인화지 표면의 0에 수렴하는 마찰계수의 마법적 기능과 표면질감, 그 감각이 너무도 유혹적이라고 생각한다. 언 강의 표면과 그 밑에 흐르는 강의 관계처럼. 존재의 표면을 흐르는 얼어버린 사물의 쓰임과 그 생명력처럼 말이다.

 

이해민선 _ 고요한 삶-내장재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52.5X188cm_2023

작가의 눈에 들어온 사물들은 사연이 많을 것 같은 것들이다. 할 말이 많은 사물들이다. 수집 후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과정에 작가는 자신이 수집한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를 응시하고 사유하는 과정에 그것들이 주변화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는 모습을 반복한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북미대륙에서 오리 사냥에 쓰였던 오리 형태의 미끼인 디코이, 쓸모 없는 목재, 폐기된 공사장 천과 스티로폼 등 생활과 기능,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있는 것들이 회화 이미지가 된다. 작가는 경계들 사이에서 사람도 아니고 사물이 아닌,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 애매한 경계에 있는 풍경들, 주변화된 사물들을 수집하고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관계들을 사유한다. 작가는 회화에 표현과 재현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우연한 사고사가 넘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주변부의 다양한 경계의 사물과 이미지로 사유한다. 작가는 자신을 동양 여성, 주변부 존재, 약자의 처지에 있는 힘의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시각현상과 인식의 문제와 함께 존재성의 문제를 결합한다.

 

이해민선 _ 살갗의 무게; 언 강과 강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30X151cm_2023

이번 전시도 작가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무료한 이미지들, 깊이 침잠하는 감정과 정서가 느껴지는 새, 거울, 언 강물의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얼굴 없는 새 그림은 상징적이다. 새는 마치 신의 대리자 또는 신 그 자신처럼 우리에게 얼굴을 감춘다. 신과 세계와 새는 상호 은유적이다. 얼굴이 없거나 눈동자가 없어서 도저히 표정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인상의 얼굴처럼, 그렇게 변형되고 탈각되고 사라지는 것들이 세계의 망각된 얼굴이다. 인류는 전 존재를 언어 속에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은 채 문화를 구성해왔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살아가고 있다.

 

정직성 정직성 작가는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와 세속적 욕망이 충돌하고 뒤섞이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작업의 주제로 다루어 왔다. 평균적인 주거 현실과 노동의 현실을 기하학적 추상과 융합한 회화가 작가의 시그니처였다. 동시에 여성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부대끼며 여성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내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미술사적으로 사회현실로부터 벗어나 미술 본래의 본질 또는 조형원리로 환원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형식과 작가 개인과 사회의 여성성의 문제를 융합시키는 시도는 역설적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맥락들이 교차하면서 새로운 혼종의 형태와 낯선 감각을 제시하는 방식이 작가의 회화에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술사적 맥락을 벗어나 작가 고유의 장소특정적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려는 치열한 태도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과 연결된다. 작가는 그 소재와 형식에 있어서 현대 회화의 개별적 역동성과 전통적 도상의 집단적 상징성을 충돌시키며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전통적 도상의 상징이 지닌 전승된 의미를 해체하고 현재 작가의 삶의 경험과 새롭게 형성된 관점을 융합하며 새로운 방식의 회화 이미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정직성 _ 용 Dragon 202301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130.3X193.9cm_2023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통 회화와 공예에서 다뤄져왔던 구름과 용과 꽃 등 상징성이 깊은 도상을 가져와 개인의 삶과 현실을 연결하는 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화면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확산되고 응축되는 추상표현주의적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동양 전통의 다양한 화론을 살펴보고 그 사유 방식을 회화에 적용하면서 서구 미술사의 기하추상적 미술의 정신적 맥락에서 이탈한다.

 

정직성 _ 상서로운 꿈 202331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259.1X193.9cm_2023

이러한 작업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이미 14년 이상 전통 옻칠과 자개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가구에는 오래된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 문화의 정서와 상징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군자에서 가져온 대나무 이미지, 활짝 핀 목련, 매화를 장소특정적 상황에서 집중할 때의 달라지는 필법과 이미지, 동양의 신령스런 존재인 용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동양에서 용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이 고약한 현실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강력한 초월적 힘을 지닌 정령으로 특히 가뭄과 같은 농업사회의 천재지변을 해결하는 존재이다. 불이 난 후 새롭게 싹이 핀 숲의 이미지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조형적 상징에 멈추지 않고 작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로지르는 개인사를 회고하고 미술사적 맥락을 교차시키고 그 과정에 작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회화를 모색한다. 작가는 삶의 경험에 관련해 표현하는데 한국 전통 상징의 맥락을 가져오고 현대미술사조의 내용과 연결해서 장소특정적 관심 속에서 표현하려 하고 있다. 나아가 명리학적 관심과 연결해보려는 생각도 피력한다.

 

정직성 _ 불탄 후 다시 202335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193.9X259.1cm_2023

삶이 고통이라면, 회화는 그것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회화 이미지는 작가와 관객의 상호관계 속에서 대화를 한다. 대화와 공감, 소통의 장으로서 새로운 회화의 의미가 생성한다. 의미 있는 형식으로서 회화가 공감을 받고 평가받는 것은 창작자의 시각과 표현 방식의 다양성과 자유를 회화라는 장르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자신의 일상 현실에 철저하게 밀착해 사유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관점과 창작 태도는 자연생태의 문제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생활을 꾸려가고 생명을 키우는 일들의 유의미한 균형을 회화 속에 용해시킨다. 그렇게 화면의 다양한 도상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회화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종합된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공감을 욕망한다.

 

회화의 숨은 길 현대미술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보면 회화를 둘러싼 미학적 사유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형성된 추상미술과 그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적 변화와 대중의 수용은 현재 우리의 시각예술의 토대가 되었다. 현대 회화작가들은 이러한 미학적 유산을 잘 선용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미술과 우리 전통의 미술이 만나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감이 표현된 미술이 만들어져 왔다. 그 시간은 우리 미술의 다양한 예술적 도전과 성찰을 거듭해온 시간이었다. 우리 미술문화에서 회화는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미감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리고 예술이 세계와 현실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이미지와 이념적 이미지 모두는 크게 보면 몽상적 사유에 기반한다. 독창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몽상적 감각과 비전을 우리는 이번 작가들의 회화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은 생활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승패가 있는 경쟁도 아니다. 예술과 삶은 서로 균형을 잡고 상호 성장을 한다. 회화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관습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아주 잠시 맛볼 수 있다. 회화는 지극하고 현묘하다. 우리는 회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수많은 길을 따라서 작가들의 치열한 감각과 조형의 힘을 경험한다. 김노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