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고 광주정신의 동시대성 탐색을 위한 기획전이

인사동 ‘나무아트’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6일 전시가 열리는 인사동 ‘나무아트’를 들렸다.

요즘 전시장이 조용할 것으로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김진하관장을 비롯하여 화가 최은경씨와 정복수씨 내외,

‘네오록’의 최금수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관람하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조진호씨를 비롯한 광주작가들의 5,18 목판화와 출판자료들이 전시되었는데,

목판화’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울분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 때의 통한을 잊을 수 있겠냐마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철면피같은 전두환이가 아직까지 처단되지 않고 뻔뻔스런 상판대기를 내 밀고 다니니

어찌 5,18 원혼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그 죽일 놈 하나 작살낼 의인 한 사람 없단 말인가.

 

그동안 광주비엔날레에서 5.18을 기억하기 위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이번에 전시되는 ‘민주주의의 봄’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 전에 소개해 온 작품을 한데 모았다.

80년부터 90년 사이 광주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작을 통해 1980년 5월 이후 40년이 흐른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인 ‘광주정신’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주제로 10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해 왔다는데 있다.

광주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작업이라 누구보다 가슴에 쌓인 한과 분노가 컷을 것이다.

1980년 이후 40년이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광주정신’을 되돌아보았다.

 

‘아트선재센터’는 7월 5일까지 열리고 ‘나무아트’는 30일까지 열린다.

다시 한 번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자.

 

사진, 글 / 조문호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1 無有等等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2018_0905 ▶︎ 2018_0921



조진호_오월시 동인지 외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화에 실린 80년대 시집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무유등등無有等等1) - 한과 해원의 목판화 ● 난 지금 판화시집을 보고 있다. 五月詩2) 판화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1983, 한마당)와『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1984, 청사) 두 권이다. 전자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와 조진호와 김경주의 목판삽화가 어우러진 것이고, 후자는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에 디자인된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시인들의 비애와 탄식, 분노와 저항 등으로 엮어진 이 시집에 조진호의 목판화가 어우러지며 억울하게 이승을 떠난 이들에게 한바탕 살풀이와 회심곡을 올리는 진혼제가 된 시집이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래된, 그러나 생생한 80년대의 청년기 기억과 함께 이 시와 판화는 그렇게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만큼 80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불의한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질곡이자, 이를 극복한 희망의 상징이다. 조진호의 목판화도 바로 그 질곡과 희망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정서로 기능한 작품이다. ● 조진호는 80년대 내내 '광주목판화 연구회'와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광미공/공동대표 조진호 홍성담)'을 중심으로 미술운동을 펼친 작가이자 미술운동가다. 목판화를 중점적으로 발표하며 활동했다. 70년대 후반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 80년 광주를 겪으면서 제작한 첫 작품인 80년 「오월의 소리」부터 10여 년간 제작한 목판화는 대략 백수십 여 점에 이른다. 그동안 광주를 중심으로만 활동했기에 그의 이 작품들은 타 지역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묻힌 것에 반비례할 정도의 판화사적인 가치가 있음은 그의 활동상과 작품 모두가 증명해준다. 특히 당시 민미협을 정점으로 진행되었던 중앙 집권적 미술운동의 궤에서 보더라도, 광주미술의 독자적인 지역 활동과 결과는 80년대 미술의 중요한 축이었다. 바로 그 운동의 궤적에서 작가 조진호의 목판화와 여타의 활동도 그런 광주미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로 인해 그의 목판화가 80년대와 한국현대목판화사에서 그가 활동한 만큼의 자리를 잡아야 함은 타당하다. ● 전체적으로 조진호 목판화의 궤와 특성을 보면 시기적으로, 형식적으로, 또 내용적으로 크게 4분화가 된다. 일차적으로는 1980년 목판화를 시작할 때부터 1982년까지의 형식적 모색과 실험기의 작업이 있다. 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것부터 습작기 특유의 각법과 작은 목판에 어울리는 판법이 주축이 되는 시기다. 다색과 단색을 아우르며 일러스트적인 편화와 밑그림에 충실한 각법 등으로 비교적 초보 단계에서의 칼맛과 프린팅의 깔끔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중년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시킨 처녀작 「무제」에서는 제작년도인 1980이란 숫자를 수인번호 명찰처럼 가슴에 새겼다. 중의적 메시지다. 80년 5월 이후 이 땅의 살아 남은 모든 성인 남자는 죄수라는 듯이. 형식과 표현언어에 대한 모색의 바탕에서 이 시기 작업들은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심리와 비판이 동시에 반영되는 작업들이다.


조진호_오월의 소리 1980 Ⅱ_리놀륨판화_24×35cm_1980


조진호_오월시판화_리놀륨판화_22.5×31cm_1983

이어서 '오월시 판화집'으로 타 장르인 시인들과 연대하고 출판미디어를 활용한 1983~1984년의 표현주의적 수법이 독특한 삽화로 기능한 시기다. 「오월시 판화」 연작과 함께 「잡풀베기」 연작도 이런 스타일에 해당된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남도 민중의 거칠고 뜨거운 생명성, 소박한 이웃에의 애정과 서정성… 등이 함께 게재된 시인들의 시어들과 함께 직접적인 판각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당시 작가는 자기 작품만이 아닌 시라는 타 장르와의 어울림에 대한 형식을 찾느라 꽤나 고민이 많았던 듯싶다. 판화가 김경주와 함께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엮은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의 서문에서, 시와 만났을 때의 목판화에 대해서 쓴 다음의 텍스트를 보면, 이런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 "시를 주제로 한 판화작업을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반갑게 시작하였다. 언어로 표현되는 시의 관념이 나의 관념 속에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에로점이 많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었다. 구체적인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어를 하나의 독립된 형상으로 작화시키는 것과, 그 형상이 판화의 독특한 표현 기법 과정을 거쳐 화면에 나타났을 때 시의 본래 뜻이 왜곡되지 않나 하는 의문점이 있긴 하다. 나의 작업과정이 시인의 시 쓰는 과정과 같지 않을진대 양자의 합일점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현실의 아픔을 찾아 따사로운 어머니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시의 느낌을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조진호_고향, 흙-2_목판화_36×49.5cm_1985


온전히 자신만의 형상과 목판언어로 풀어내는 개인적 작품과, 타인의 시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울림에 대해서, 그 형상이나 어법의 차이점을 간파한 것이었다. 이 시기 조진호의 목판화의 특징은 ①대상인 사람의 형태의 왜곡과 해체, ②一刀一劃의 칼질로 인한 강력한 회화적(목판화적) 표현성, ③시적 분위기의 회화적 형상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특히 ②항은 목판화만이 가질 수 있는 칼맛에 대한 회화적 연역이란 점에서 시의하는 바가 크다. 당시 상당부분의 작가들이 오윤의 판법을 전형화한 형태중심의 정교한 선각線刻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 반해, 자유분방하고도 즉흥적인 칼의 즉발적 운용으로 나이브한 원시적 표현성을 보여준다. 덜 다듬어진 상태에서 작가 몸의 궤적이 그대로 형상에 반영되는 칼질은 면面판화의 액티브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그리고 세 번째는 1985년 이후부터 90년까지 전개되는 재현적 양식으로 풀어낸, 이웃과 서민들의 삶과 향토적 정서가 단정하게 드러난 작업들이다. 꼼꼼한 사실적 밑그림, 주로 세모칼의 운용에 의한 섬세한 판각, 오랜 시간 공들인 묘사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주로 주변부 시골 노인이나, 어머니, 고향 등의 소재가 주가 된다. 특히 80년에 가족을 잃은 한을 간직한 듯한 모습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그 중심을 이룬다. ● 마지막으로 86년부터 90년까지의 호방하고도 굵은 필획이 선각으로 두드러지는 풍경이 있다. 이른바 '무유등등' 연작이다. 남도의 한을 넉넉하게 풀어주고 해원시켜주는 어머니 품과 같은 무등산의 장엄함과 생명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시선이 녹아 있는 장면들이다. 또한 80년 광주를 회고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능동적인 여유가 느껴지는 90년대의 이 대작 목판화에서의 서정성은 자기 양식화에 성공한, 무르익은 목판화 기량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이와는 또다르게 '광주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에 츨품한 「학살도」와 「대학살도」의 대하서사적 역사화의 대형 스케일과 다양하게 구사한 기법은 목판화가로서 조진호의 절정기를 반증하기에 충분했다. 무유등등의 담담한 서정성의 배경에 치열한 80년의 한과 역사적 기억과 인식이 여전히 그에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작이었다. 그러니까 90년도의 「무유등등」과 「학살도」연작은 조진호의 목판화양식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는 실례라 하겠다.



조진호_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75×150cm_1990

조진호_대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30×127cm_1990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조진호는 목판화를 멈췄다. 목판화를 중단하고 또 다른 맛의 회화작업으로 작업의 주 매체를 전환한 것이다. 작업 미디어와 내용을 바꾸는 것은 머무르지 못하는 작가의 몸과 의식과 본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한편 광주목판화의 흐름에서 보자면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시대상과 미술문화의 흐름이 바뀌고,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5공 청문회를 통한 특별법으로 전두환 세력의 응징(너무나 미약한 것이긴 하지만)이 있었기에 80년대식의 목판화운동은 80년대식의 지나간 미디어라는 인식이 보편화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이때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목판화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던 시기였다.) 아무튼 이 기점에서 조진호의 목판화는 80년대와 함께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한편 자연스런 것이기도 했다.


조진호_무유등등_목판화_18×48cm_1990


글을 쓰다가 보니 조진호의 80년대 여러 형식의 목판작업 궤적을 가로지르면서도 이를 동시에 관통하고 꿸 수 있는 수사가 떠오른다. 80년대 군사독재의 불의한 힘에 대한 격렬하되 "따뜻한 저항"이 그것이다. 조진호는 그와 함께한 동료, 이웃, 서민들 삶에서의 비애까지를 따뜻하게 아우르는 시선으로 비판적 형상성을 견인했다. 광주를 모티프로 비극적 서사의 바탕에서, 좀 더 애잔한 시선으로 이웃에의 애정을 덧붙였다는 것. 소박한 태도다. 부드러운 감성의 발현이기도 하다. 저항적 운동가였지만 운동의 근원인 사람과 세계에 대한 여린 공감의 시선을 가져서다. 미술과 운동 이전, 사람 냄새 나는 부드러운 성격과 감성을 지녀서 그런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진호의 80년대 목판화가 2018년에 발굴되고 체계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성은 거기에 있다. 80년대 목판화사에서 지역미술운동의 활동, 작품으로 드러나는 조형적 독자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 작가의 심성과 통일된 조형적 방법이 주제로 연결되는 진정성의 과정은 관객의 소통에의 집중을 강하게 만든다. 저항과 투쟁이 필요할 땐 그리 실천하고, 그 저항의 이면에선 恨을 넘어선 해원解寃의 넉넉함으로 서로 위무하고 보듬어주는 심성의 발현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무유등등의 무등산과 닮았다. 저항으로 날이 서있으되, 평화를 위한 보편적 세계정신에 이르는 광주시민의 의식처럼, 성숙한 품성이자 너비다. 그 근저에 무등산과 어머니를 같은 품으로 여기는 믿음이 있다. ● 조진호의 목판화는 현실적으로 광주의 자연과 문화와 정치적 기질을 소탈하게 담아낸 함지박이다. 엎어놓으면 무유등등한 형태로 무등산의 완만한 능선을 닮았다. 무기교의 소박한 칼질과 흔적은 풍상을 겪은 할머니의 손등이나 어머니의 눈빛과 비슷하다. 거기에 남도의 손때와 정서와 상흔과 삶의 힘이 담겨있다. 기록이자 기억이고, 내면이자 일상이기도 한 그런 힘이 조진호다움으로 그의 80년대 목판화에 질박하게 남아있다. 오로지 결과적인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소탈한 정서가 귀하고 반갑다. 나무아트의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에 조진호 작가를 소환한 건 바로 그런 작품의 제작과 소통과정에서의 미감이 증명하는 진실성을 보아서다. ■ 김진하


* 각주1) 無有等等 : 반야심경 '무등등(無等等)'에서 어원을 찾는다. '부처님은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한 것이요', '무등등'은 '부처님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으로 '무유등등'은 부처 아래 있는 모든 만인은 평등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어원의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자 모산(母山)으로 백제 때는 '무당산'으로 고려 때는 '서석산'으로 조선시대에는 '무등산'이라 불리웠다. 무등산은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 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너나 나나 같은 산' 이라는 평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 '無有等等'과 '無等山'은 오랜 세월 속에 눅눅하게 녹아 들어 이제는 광주의 정신이자 상징이 되었다. -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 GMA' 개관展 설명 중에서.2) 五月詩 : 21cm-23cm. 75면-300면 가량 등으로 판형과 면수가 다양하게 발행되었다. 1981년 7월에 1집이 나온 이후, 1985년 5월까지 총 5권이 발행되었다. 시 동인지인 이 잡지는 시를 주로 실었으며 3집부터는 동인의 평론과 산문 등도 함께 실었다. 각 권은『이 땅에 태어나서』(1집),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2집),『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3집),『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4집),『5월』(5집) 등으로 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처음에는 김진경, 박상태(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가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는 윤재철, 최두석, 나해철, 고광헌이 합류하여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였다.


Vol.20180905c |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전시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안내] 문승현展 "서정"  (0) 2018.09.23
김승희展 "Window II"  (0) 2018.09.21
김상표展 "NIRVANA"  (0) 2018.09.14
[전시안내] 문 호展 "Sweet Peace"  (0) 2018.09.13
[전시안내] Jeppe Hein展  (0) 2018.09.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