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한 33인의 그림전이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바다에 흘려보내는 방사능 오염수가 자연환경은 물론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과학적이고 안전하다'는 내용의 홍보물까지 제작하여

일본을 대변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국민 세금을 일본 정부의 만행을 감싸는 데 사용해 할 말을 잃었다.

 

인류의 공유 자산인 바다를 더럽히는 건 미래세대에게 대죄를 짓는 일임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하여 중단시키기는 커녕 조장하는 것이다.

 

국민 앞에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친일을 넘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이성을 잃고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윤석렬 정권은 말할 가치도 없지만,

국민의 대변자인 여당의 태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일본의 힘으로 당명부터 바꾸어라.

 

그들 앞에도 닥칠 일이지만, 그보다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치의 비참한 말로를 보지 않았던가.

 

의식 있는 작가들이 마냥 두고 볼 수 없어 먼저 불을 지폈다.

아르떼 숲정요섭씨가 나서서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전시 장소가 한정되어 33명의 작품만 걸었지,

천명이고 만 명인들 나서지 않을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작품을 내건 작가는 다음과 같다.

강용면, 고경일, 김건예, 김봉준, 김용주, 김재홍, 김진열, 류경희, 류연복, 류재현, 박건, 박근수, 박야일,

박은태, 박재동, 서혜경, 성효숙, 아트만두, 유진숙, 윤석남, 이윤엽, 이난영, 이달비, 이소리, 이익렬,

이익태, 이인철, 이현정, 전승일, 정영창, 천광호, 칡뫼김구, 한주연 등 33인이다.

 

아래는 일본 핵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33인 작가의 성명서다

 

결국 일본정부는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말았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이웃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온 인류가 공포에 떨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파괴 행위를 또 저지르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거드는 국가도 있고, 반대하지만 소극적인 국가도 있고, 일본산 해산물 수입을 전면 중지하는 국가도 있지만 이들 국가는 저마다 국제정세를 따져 자국의 이익 계산에 몰두할 뿐, 바다가 망가지는 것에 대하여 마땅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바다가 망가지는 것은 국가 이익을 넘어 지구 생명이 망가지는 것이다.

 

바다는 곧 하늘이다.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고리는 곧 <>이다. 물만이 지구 생명을 살게 한다. 석촌호수 담수량의 4분의 1이나 되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바다에 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자연에게 인류가 저지른 폭력적인 행위 중에 단연 최악이다. 그들은 변명으로 과학을 들고나오지만 30년 동안 버린 뒤에도 지구 생명에게 안전한지와, 100, 200년 뒤에도 안전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커녕 데이터도 없다. 원자로 냉각수와 원자로 폭발로 인한 핵 오염수는 전혀 다르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묻는다.

 

단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핵 오염수를 온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의 터전인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반인륜적이며 반생명적이다. 숱한 생명을 살상한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가로서 자숙하고 또 자숙해야 할 일본의 후안무치한 핵 오염수 폐기행위를 동시대 미술인으로서 강력히 규탄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정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인류에게 숱한 가해를 저지른 일본은 여전히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이 해야 할 배상을 대신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는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마저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국민 불안과 일본 편들기 중에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바다에 버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지 묻는다.

 

핵 오염수 투기를 하는 당사국이 발표하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이에 동조하는 국제기구 및 우리 정부의 데이터도 신뢰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해양투기를 당장 중단하고 이해 관계국을 제외한 제3국이 연대하고, 국제 시민사회가 연대한 기구를 세워서 뭇 생명에게도 공정이 담보된 조사와 감시를 해줄 것을 제안한다. 생명평화예술을 지향하는 전세계 예술인에게도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국제적인 연대 활동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2023923

일본의 핵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작가 33인 일동

 

지난 923일 오후 2시에 열린 작가 발언대에는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고경일, 김봉준, 김용주, 류연복, 박 건, 박재동,

성효숙, 이달비, 이익태, 이현정, 천광호, 칡뫼김구씨 등의 참여작가들이 나와 각자의 소견과

문제점을 제기했고, 출품 작가 외에도 장경호, 김이하, 정덕수, 배경애, 김지소, 황준연씨 등 많은 분이 참여하여

핵 오염수 방류를 성토했다.

 

전시작품들 대부분이 핵 오염수 방류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말하고 있으나,

김재홍작가의 그림은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친일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그리고 이익태 작가의 그림은 사람이 물처럼 흘러 내리는 형상이라 소름 끼쳤다.

 

김봉준 작가는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달비씨 그림은 바다에 편지가 든 병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병 속에는 후쿠시마에서 쫓겨난 소녀가 쓴, 바다에게 사죄하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악몽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올 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현정의 그어지다, 지우다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이 색깔 묻은 붓으로 그리는 족족, 작가는 닦아 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자욱은 남았다.

 

나중엔 사람들이 붉은 뜨게 실에 낚시처럼 걸려들었다.

 

바다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연결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닦아내는 행위에서 위안부는 왜 떠오를까?

 

그 또한 일제가 저지른,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못할 죄악이 아니었던가?

 

성효숙 작가가 상처받은 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에서 한 가닥 희망도 보였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래는 문화비평가 정요섭씨 전시 서문에서 잘라낸 글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빌려 쓰는 세대입니다. 지구를 이 지경으로 파괴시킨 것도 모자라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유의하고, 유의하고 또 유의할 일입니다. 안전하다고 우길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국익을 말하지만, 국민의 생명, 지구의 안녕보다 우선한 국익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잔꾀로 상대를 속인다는 조삼모사를 떠올리는 까닭입니다.

작가는 시대 의제를 상정하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이 해괴한 상황에 대해 작품으로써 발언해야 할 때입니다. ‘아르떼 숲은 시대 의제를 비켜 가지 않고 작품으로 맞서 온 33인 작가의 작품으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의제로 삼아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지구 생명 모두의 부릅뜬 관심과 움켜쥔 참여를 바랍니다.

 

전시는 1012()까지 열립니다.

명절에도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으니, 구경하세요.

그냥 넘길 수 없는 눈 앞에 닥친 심각한 문제기도 하지만, 작품이 아주 좋습니다.

추석연휴를 맞아  도랑 치고 게 잡으러, 가족들과 인사동 나오세요.

 

사진, / 조문호

 

 

 

인사동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전시에 의한 충격이 아니라 앞만 보고 살아가는 스스로의 무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사동을 그토록 뻔질나게 돌아다녔건만, 인사동에 아르떼 숲이라는 갤러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도 골목에 숨은 금방 생긴 것도 아니고, 인사동 큰 길가에 들어선 지가 1년이 되었다고 한다.

하기야! 변하는 인사동거리가 싫기도 하지만, 생겼다하면 옷가게라 아예 건물을 보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사동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좋아해 40여 년 동안 사람을 찍어 왔으나, 요즘은 사람까지 싫어진다.

 

만나는 분이라고는 인사동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예술인 들인데, 요즘은 인사동 사람들 마저 잘 만나지 않는다.

또 다른 인간의 속성에 부딪힌 것이다,

가급적 인사동 출입을 자제하며 인사동을 찍는 일마저 삼가하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사설이 길어진 것은 전시장을 운영하는 문화비평가 정요섭씨와 전시 작가인 류경희씨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 다 폐친 이었다는 것도 전화나 만나기 이전에는 전혀 몰랐다.

페북도 잘 아는 분이 아니면 눈여겨 보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인사동에서 아르떼 숲을 운영하는 문화비평가 정요섭씨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통화할 기회가 생겼다.

잘 모르는 갤러리가 생겨 꼭 가보야 할 부담 같은 것을 안고 있었는데, 마침 인사동에 나갈 일이 생겨 찾아 간 것이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선화랑을 지나치다 보니 처음 본 아담한 갤러리가 나왔는데, 전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건물입구에 고양이처럼 앙증맞게 생긴 여인 조각상이 걸려 있었는데, 일 년 가까이 그냥 지나쳤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알고보니, 조각가 박상희씨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한 쪽 벽을 드리운 전시 현수막이 예사롭지 않았다.

류경희씨의 모른다는 것을 안다 현수막 속의 초상이 왠지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온갖 걱정을 짊어지고 사는 내 모습을 닮아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전시장에 들어가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류경희의 '모른다는 것을 안다' 전시 작품의 폭은 무진장 넓었다.

서양화나 동양화의 범주에 머물지 않으며 서예작품까지 걸렸는데, 작품 속에는 하나같이 슬픔이라는 공통점이 깔려 있었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저마다의 오묘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형상은 있으나 어느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 같지 않았다.

때로는 어린이 작품처럼 천진하기도 했고, 때로는 깊은 경지에 다다른 작품 같기도 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형상은 있으나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즉 기법을 초월하여 작품을 잘 그리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 형상은 말할 것도 없고 조류마저 오염된 환경에 처한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치 물질문명에 의해 죽음으로 치닫는 오늘의 자연환경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름답게 보여야 할 붉은 홍매까지 선혈 같은 처절함이 느껴졌다.

 

구상화도 추상화도 아닌 그의 작품들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로움만 넘실거렸다.

구체적인 묘사의 생략으로 단순하게 드러난 형태만 있었지 비약도 없었다.

그렇지만 작품들이 살아 꿈틀거렸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3층까지 연결된 아담한 공간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한 번 찾아뵙고 싶었던 정요섭선생은 만나지 못했다.

 

일층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마침 전시작가가 자리에 있었다.

방명록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야 반겼는데, 나 역시 작가가 말 걸어와 전시작가 인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는 전업작가가 아니라 일본에서 농업경제학 교수로 일하는 분이었다.

워낙 다양한 재능을 가진 분이라 사진은 물론 못하는 것이 없는 전방위 예술가였다.

서예에서 시작해 수묵화에서 회화로 점차 폭을 넓혀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갖는 네 번째 개인전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3년 동안 천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대단한 노력가였다.

 

제가 그리는 모든 그림에는 기존의 이미지가 없습니다. 그냥 손 가는대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제게 있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붓을 들었을때 제일 행복합니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손이 가면 그리고 안가면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뇌와 신체가 분리된 셈입니다. 전 그런 게 제가 추구하는 예술의 원형이자 궁극적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 류경희(전시작가)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호되게 나무라기도 하고 따숩게 보듬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할까? 그것은 매이고 묶인 바 없는 상태에서 그리는 그림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자아(自我)초월의 상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만나는 진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 / 정요섭 (문화비평가, 아르떼 숲 대표)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23일까지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보실려면 서둘러야 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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