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인사동에 전시 보러 나갈 일이 생겼다.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건만, 살아 있는 동안은 하던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눈감고 모른 척한다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꼭 가보아야 할 전시도 여럿 있었다.

마치 속세와 인연을 끊을 듯 매몰차게 밀어붙였으나, 몸이 좀 나아지니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옛말이 딱 맞다.

 

그동안 핸드폰은 네비게이션 전용으로 사용했으니, 전화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안 받은 것이다.

유일한 소통 공간이라고는 페이스북 뿐인데, 그마저 가끔 들리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마저 어두웠다.

 

모든 게 사진에서 비롯되는데, 사진을 찍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지난 시간도 기억하는데,

찍힌 사진이 없으니, 할 말은 물론 치매 환자처럼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함께 맞는 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 주흥수감독의 부탁을 받아들였는데, 정영신씨도 유준 화백으로 부터 연락받아 사진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액자를 옮기려면 차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나가는 김에 전시도 몇 군데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삼청동 있는 아트비프로젝트부터 들렸다.

우연히 네오록에서 본 허유진 사진전 제목이 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허유진의 세차장 구정물에서 별 찾기는 7-8년쯤 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이미지들은 이미 별이 된 강용대 화백의 별 그림 같기도 하고,

별 그림의 대부로 부상한 강찬모화백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찬모 화백이야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를 받아 찬란한 별빛을 쏟아냈지만,

허유진양은 세차장에서 흘러내리는 구정물에서 찾아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보낸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가상했다.

 

세차장 구정물은 빛이나 날씨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대부분의 전시작은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연출했다.

찬란한 우주도 버려지는 오물에 다름아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남기며...

 

아래 글은 이선영씨가 쓴 전시 서문의 한 부분이다.

우주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냐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이 전시는 925일까지 이어진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89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마루아트센터부터 들려야 했다.

전시장에는 이미 많은 작품이 반입되어, 설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90년대 불교상징'전에 내걸었던, ’환성사수미단을 준비해 갔고,

정영신씨는 작년에 전시한 어머니의 땅‘에서 고른 작품을 전달했는데.

인사동 도로에 세워둔 차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9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장애학생돕기자선전 함께 맞는 비인사동 마루아트센터 3층 그랜드관에서 열린다.

이 자선전은 장애 학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으며 그들의 삶과 함께하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가격도 기존 가격에서 대폭 낮추어 판매한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저렴하게 소장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다 같이 자선전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을 보러 갔다.

전시장에는 작가 외에도 화가 장경호씨와 사진가 조명환씨도 있었다.

 

전시작품은 분단의 현실을 형상화한 살풍경이었다.

휴지 조각이 굴러다니는 황폐한 땅에 철조망이 솟아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그림에서는 거대한 화석이 공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모든 풍경은 작가가 태어나고 살아온 경기도 김포 북단에 대한 한 맺힌 풍경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처럼 현대미술의 형식론이나 흐름의 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지켜보며 각인시켜 온 역사화나 다름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공간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나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작가 노트가 그의 작업 배경을 잘 말해 준다.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늘의 분단 현실을 까발린다.

긴장과 불안감을 동반한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927일까지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93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강재구 사진전도 보러 가야 하지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오는 928일까지라 다른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가 쓴 강재구론 부분을 소개한다.

 

강재구의 군인 연작은 사진사적으로 바로 이 흐름 위에서 위치한, 충실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20년 동안 군인, 그것도 의무 복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징병제 군인 이등병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가 간부 후보생이나 장교 혹은 여군과 같이 스스로 직업인의 길을 택한 군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민의 의무로 복무해야 하는 군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의 작업이 군인이 무엇이고 어떠한가, 즉 그 정체성과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징병제하에서 군인으로 강제로 끌려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청년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개체성 그리고 반휴머니즘에 사육된 무기력함이다.

 

사진가 강재구의 20년 군인 포트레이트 작업은 군대로 끌려가는 입영 전야의 민간인에서 12mm로 머리카락을 깎은 이등병 군바리가 된 이들을 촬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의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메시지를 무겁게 오랫동안 끌고 온 작업이다. 여기에서 이등병이란 의무 복무를 마친 후에도 흉터처럼 남아 있는 예비역이라는 민간인이 되지 못한 여전한 군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20년의 그 시리즈 작업 가운데 약간은 성격이 다른 것도 있다. 군대 사진관 사진의 사병 증명사진으로 작품을 만든 2009년의 사병증명도 있다. 군의 실용적 필요에 따라 사진의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그러면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군대 내 증명사진들을 통해 군대라는 몰()인간성의 의미를 은유로 다룬 작품이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노박사를 비롯하여 최유진, 정영신씨가 먼저 자리 잡았는데, 뒤늦게는 최석태, 이인섭씨도 등장했다.

 

이 날은 차를 끌고 나와 자리만 지키기로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자리다.

 노현덕씨가 주차비와 대리 운전비를 내라며 신사임당을 한 장 내놓는데,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도 마실 일이 있는데, 이러다 다시 드러눕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Flowing Moment-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

허유진展 / HUHYOOJIN / 許有辰 / photography 

 

2022_0919 ▶ 2022_0925

 

허유진_Fancy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초대일시 / 2022_0919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아트비프로젝트

art B project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층

Tel. +82.0507.1358.3076

www.artbproject.com

 

우리 곁에 있는 우주의 깊숙한 곳 ● 허유진의 작품들을 누가 봐도 별이 가득한 신비로운 우주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무엇을 찍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는 나중의 일일만큼 압도적인 유사성을 가진다. 별을 보며 하는 생각은 일상과는 다소 다르다. 일상의 잡다함을 털어내는 초월적 경지로 누군가에게는 황홀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밤하늘을 보는 것은 낭만적이다. 알베르 베갱은 『낭만적 영혼과 꿈 : 독일 낭만주의와 프랑스 시에 관한 시론』에서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것은 우주적 무한과의 소통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응시하는 것은 종교가 없는 사람도 종교를 떠올릴만한 근본적 차원에 몰입하게 한다. 종교는 하루 이틀,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의 시간이 아닌 억겁의 시간에 걸친 진리와 지혜를 말한다. 허유진의 전시 부제 『Flowing Moment-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에는 시간에 대한 키워드가 여럿 들어가 있다. 그것은 별이라는 작품 소재와 관련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주요 매체인 사진도 그렇다.

 

허유진_Fancy 02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9×81.3cm_2021
허유진_Fancy 03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작가가 '순간'을 강조하는 것은 사진이 시공간의 절편을 담아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볼 때 인간은 영원을 생각한다. 물론 우주 또한 생성과 소멸을 겪지만, 워낙 관찰자인 인간의 시간관념을 뛰어넘는 시간을 전제하기에 영원처럼 느껴진다. 길어야 100년 남짓한 인생은 우주적 시간에 비한다면 거의 순간에 해당된다. 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지금 자기 눈에 닿은 별빛으로 그 별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도 온다. 먼 거리를 생각할 때 그 별은 이미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속이 아닌 순간만이 확실하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어온 허유진에게 몸의 연장이나 다를 바 없는 카메라는 무엇보다도 순간을 포착한다. 별을 품고 있는 우주는 그 자체로 존재할 것이지만,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별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는 주체다. 작가는 『Flowing Moment』 전의 사진들이 '나라는 사람을 예술적 표현으로 보여준 사진이고 나의 세상이고 우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허유진_Fancy 04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허유진_Fancy 05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하지만 우주적 풍경처럼 보이는 작품은 그것이 세차 구정물이라는 점에서, 그 낙차에서 오는 충격이 있다. 자동차 세차장에서 발견한 비눗물은 빛이나 날씨의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전시되는 대다수의 작품에서 우주적 풍경이 느껴진다. 최초의 발견은 우연이었지만, 작가는 집중적으로 한 주제에 매달려 작품 형식을 가다듬어 왔다. 현재까지는 자동차 창에 비춰진 거품이 중심을 이루지만 앞으로 넓혀가려 한다. 아직 20대니까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본다. 이 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으니, 최소 7-8년은 넘게 붙잡고 있으면서 심화, 확장 시키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 밖에 작가가 관심을 가진 소재로는 동굴이 있다. 동굴 또한 구체적인 자연이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으로 확장될 수 있는 소재다. 우주나 (아직 발표는 안된) 동굴 이미지는 허유진의 관심이 자연의 이미지에 있음을 알려준다. 과학자들의 도구인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자연을 확대하여 분석한다.

 

허유진_Fancy 06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2
허유진_Blossom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허유진의 도구인 사진은 그 연장선 상에 있다. 복잡한 자연적 현상에서 질서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은 과학과 예술에 공통적이다. 전시된 작품은 자연에 내재한 심미적 차원을 활용한다. 거품이 자아내는 우주적 풍경은 모두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과 관련된다. 가령 기하학자라면 불규칙적인 거품의 형태에서도 규칙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오반 로버츠는 기하학자 콕세터의 평전 『무한 공간의 왕』에서 '모듈화된 공간의 컴팩트화'에 대한 연구의 예를 든다. 이 평전의 주인공은 '최밀 충전과 거품 덩어리'에 대한 강의에서 '거품 덩어리에서 하나의 거품과 접촉하는 거품의 수를 공식화'한다, 과학자가 공통의 규칙을 찾는다면 예술가는 보다 직관적인 시각적 비유법을 구사한다. 허유진의 작품에서 비누 거품과 우주는 시각적인 유사성(resemblance)으로 연결된다. 유사성은 시각예술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중요한 연쇄 고리가 된다.

 

허유진_Blossom 02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1
허유진_Blossom 03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미셀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유사성은 16세기 말까지 서구문화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땅은 하늘을 반영했고 사람의 얼굴에는 창공의 별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화는 공간의 모방이었다. 푸코에 의하면 표상은 반복의 형태로서, 즉 인생의 무대나 자연의 거울로 이루어졌다. 『말과 사물』은 유사성과 공간과의 연쇄에 의해, 말하자면 유사한 사물들을 한데 모으고 인접한 사물들을 동화시키는 힘에 의해 세계는 마치 하나의 사슬처럼 서로 연결된다고 서술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각각의 사물에 주어진 장소를 극복한다. 인간의 그의 지혜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닮아가고, 세계의 질서를 자신의 내부로 전위시킴으로서, 자기의 내면의 창공 속에서 저편의 다른 하늘의 움직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비는 보편적인 적용영역을 갖게 된다. 전 우주의 모든 형상들은 유비에 의해 한데 모여들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길이 나 있는 이 공간상에는 하나의 특권을 가진 중심점이 존재하는데, 이 지점은 바로 인간이다.

 

허유진_Blossom 04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1
허유진_Blossom 05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1

대우주의 질서를 반향하는 소우주로서의 인간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비트루비우스 인간』(1490)으로 유명하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상응 관계에 있어서 위대한 중심점이다. 모든 관계들은 이 중심부으로 집중되며 다시 그 중심부에 의해 새롭게 반사된다. 그렇게 해서 소우주와 대우주와의 조응관계가 성립된다. 푸코에 의하면 소우주라는 개념은 만물의 위계 질서 내의 자기보다 더 높은 등급 속에서 자기의 거울상과 대우주적 정당화를 발견한다. 역으로 말하면 가장 높은 천구의 가시적 질서는 지상의 가장 어두운 심연 속에서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창유리의 거품 세제의 흔적에서 대우주의 이미지를 보는 허유진의 작품 또한 푸코가 이론화한 것과 같은 유사의 연쇄고리를 따라간다.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설거지통 속에도 우주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기원도 품고 있는 저 숭고한 우주의 광경이 그렇게 하찮고 더러운 것이었다니. 하기야 저기 빛나는 별 또한 내 발치에 채이는 돌멩이와 비슷하지 않겠나.

 

허유진_Fantasia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2
허유진_Fantasia 02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2

작가는 '사진작가의 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무심하게 바라봤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두가 거리의 문제다. 미학 또한 낯설게 하기 등의 방식을 통해 거리를 활용한다. 현대과학은 시간과 공간의 밀접한 관련을 말하는 만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시대상과의 관련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사진 매체가 사실을 다루는 범위는 이렇게도 광대하다. 실제의 우주나 별에 대한 이미지는 고도의 천문학적 기구들이 받쳐줘야 하는 피사체이기는 하지만, 허유진은 사진기 하나로 그러한 효과를 찾아낸다. 이 작품 사진을 천문학자들에게 보여주면 여기가 어디냐고 먼저 물을 듯하다. 전문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좌표가 있기에 그 수많은 별들에서 어떤 별이 새로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만이 차이의 감식안을 가질 수 있다.

 

허유진_Fantasia 03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1
허유진_Fantasia 04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2

허유진은 이번 전시의 작품을 자기만의 분류방식에 의해 여섯 갈래로 나누었다. 가장 많이 출품된 『Fancy』 시리즈는 하늘 저편, 우주의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 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지라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quantum foam)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널리 회자되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양자 거품이란 무정형의 빈 공간으로서, 원자보다 훨씬 작은 물질의 거품이 1조의 1조의 1조분의 1초보다 더 짧은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다음백과, 양자거품 항목). 양자 거품에 의해 생겨나는 막(membrane)은 빅뱅에 의해 탄생한 우주에 직관적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허유진_Fantasia 05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2

실제로 우주를 보는 망원경에서 찍은 허블의 거품 성운(NGC 7635)의 이미지는 유명하다. 이 성운만 해도 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었지만, 얼마 전부터 그보다 100배 더 세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새로운 심우주 영상을 송출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은 자연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는다. 시오반 로버츠는 『무한 공간의 왕』에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가정한 '우주라는 완전한 책(grand book)'을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이 완전한 책, 즉 우주에 쓰여 있으며 우리가 계속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그 글자는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 도형이다. 이러한 글자가 없다면 어두운 미로를 헤매게 된다' 자연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도전이었고 그것은 뉴턴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글릭은 뉴턴의 평전 『아이작 뉴턴』에서 자연이라는 책은 질서정연한 양식으로 설계되어 지식을 담는 용기였고, 실재를, 그리고 필경 자연까지도 기호로 부호화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허유진_Fantasia 06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27.9×37.2cm_2021

자연이라는 책. 즉 신이 그 책을 썼고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책에 이미 진리가 쓰여 있다는 사고는 창조가 아닌 발견에 방점을 찍는다. 시오반 로버츠는 과학자들이 신봉했던 객관적 진리라는 관념의 선구자로 플라톤의 예를 든다. '참인 모든 것은 언제나 참이었고 사람들은 그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여 참인 사물들을 재구성해낼 뿐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자연의 패턴에서 보이는 여러 흐름 속에서 '불규칙한 조화가 이루는 변화'를 추적하는 필립 볼의 주장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각각의 성장패턴은 독특하게 장식이 되더라도 주어진 성장 조건에서는 우리가 플라톤적 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 필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사실을 다를 수 있지만 형식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전시된 작품 20여점의 규격은 4x3의 비율로 마치 창문같이 바라보는 시점이 전제된다.

 

허유진_Fresh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발견할 수 있어야 창조도 할 수 있고 창조적인 사람이 발견도 할 수 있지만, 창조/발견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우주는 내 머리 위에 일단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듯 말이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객관적 실재에 대한 강한 기대치가 있다. 허유진이 일상 속에서 재발견한 우주는 실재에 대한 직관을 상상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에서 우주를 발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앞서 인용된 바와 같은 '자연의 책'을 음미하게 한다. 이 우주는 연결되는 시리즈 작업을 통해 환상부터 멜랑콜리에 이르는 인간적 감정을 표현한다. 통상적인 비눗물과 다른 점은 자동차 유리창을 닦은 물의 순간 이미지라서 빛을 투과했다는 점이며, 육안과 다른 시점을 포착할 수 있는 사진의 힘이다. 허유진의 작품은 가장 사진적인 사진 중의 하나다. 작가는 색감이나 밝기 외에 크게 수정한 것이 없다. 과학자가 찍은 실제의 천체 사진도 보다 선명하게 가시화하기 위해 그러한 보정을 하지만, 둘 다 형태 그 자체는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유진_Secret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9×81.3cm_2021

작가는 창조자보다는 발견자의 입장을 택한다. 나머지 5개의 시리즈도 감성 충만한 제목을 가졌지만, 천체 사진 같은 느낌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약간씩 방점이 다르다. 작가는 이 여섯 개의 시리즈가 모두 시간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감각은 무엇을 찍든 모든 사진들이 '찰칵 하는 순간부터 과거'라는 깨달음에서 온다. '하루는 1,440분이고 일 년은 525,600분이다. 매 순간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흘러간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흘러내리는 거품도 반짝이는 별처럼 그 순간에 아름다웠다가 사라져 과거가 된다.' 「Blossom」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색이 더 화려하다. 활짝 핀 꽃이나 그 꽃들이 질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다른 작품에서 별처럼 보이는 입자는 이 시리즈에서 꽃잎처럼 보인다. 비눗 구정물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이 뽑혀 나오는 것은 화학용품이 틀림없을 액체의 색감 자체가 화려해서 그렇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1점만 발표되는 「Fresh」 시리즈는 하나의 색으로만 이루어졌다.

 

허유진_chaconne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디즈니가 1940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판타지아가 떠오르는 제목을 가진 「Fantasia」 시리즈는 입자들이 운율감 있게 배열되어 있다. 음악을 추상화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이 될 듯하다. 영화 『판타지아』가 음악과 이미지의 환상적인 조합이었듯이, 추상미술의 탄생에는 이미지와 음악과의 활발한 교감이 있었다. 비밀을 감춘 듯 베일에 감싸인 풍경이 있는 「Secret」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발견자, 탐사자의 관점이 있다. 자연이라는 책에 쓰여있는 기호들은 그 자체로는 신비하다. 그것은 보는 이가 거듭해서 해독해야 하는 미지의 기호들이다. 허유진의 작품이 모호한 것은 광학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자동차 유리창 뒤로 배경이 깔려있지만, 선택과 집중에 의해 약화되었고, 작품은 평범한 풍경을 우주화 했다는 '비밀'을 간직하게 됐다. 푸른 색감 때문에 어둡고 깊은 느낌을 주는 「chaconne」 시리즈는 「Fantasia」 같은 운율을 유지하면서, 희열부터 우울까지 여러 감정을 이끌어낸다. ■ 이선영

 

Vol.20220919d | 허유진展 / HUHYOOJIN / 許有辰 /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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