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물고 대중에 공개된 송현동 열린송현녹지광장
2027년 정식 개장까지 공간 활용 위한 대화 이뤄져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열린 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됐던 '하늘소' 전망대 ⓒ김지나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얼마 전 폐막했다. 2017년 처음 시작해 벌써 4회째를 맞이한 도시, 건축 분야의 전시축제다. 갈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또 복잡하게 변해가는 도시 문제들을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보는 장으로 기획됐다. 그동안 전시공간으로 활용된 장소들도 이색적이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세운상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서울 도시개발의 여러 가지 실험을 이루어졌던 현장들이었다.

주로 실내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던 지난 행사들과 달리, 이번에는 메인 전시장이 야외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이란 곳이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만큼 생경하게 느껴질 법한 이 공간은 서울 송현동에 생긴 넓은 녹지다. ‘생겼다보다는 공개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손대지 못했었던 땅, 부동산 시장에서는 나름 뜨거운 감자였던 송현동 땅이 바로 여기다.

 

하늘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녹지광장과 주변 풍경 ⓒ김지나
'페어 파빌리온'. 비엔날레 기간 열린 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파빌리온 중 하나다. ⓒ김지나

활기 채워가는 도심 속 녹지광장

작년 10월 처음 임시개방이 됐을 때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 드물게 남아 있던 금싸라기 땅이었지만 녹지광장이란 쓰임새는 낯설고 또 당황스러운 결정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올해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결정된 후, 풍경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소라는 거대한 전망대가 가장 먼저 들어섰고 곧이어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설치작품들이 푸른 녹지를 조금씩 채워나갔다. ‘파빌리온이라 불리는 임시 건축물들로, 모두 비엔날레 기간 동안에만 전시됐다가 이후 해체돼 자재들만 재활용될 예정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난 두 달간은 평일 낮에도 찰나의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한 사람들로 녹지광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전시기간동안 광장에 전시된 작품들이 난해한 구조물로 보였을 법도 했지만, 시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늘소 전망대에서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품은 서울 도심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 땅이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데다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북촌한옥마을, 인사동으로 둘러싸인 위치도 사람들을 불러들이기에 부족한 점이 없었다. 비엔날레 관람객이 약 8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하니,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찾은 사람들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송현동은 관광객도, 업무 차 드나드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는 동네다. 하지만 이전에는 녹지광장 자리가 어떤 풍경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년 초까지만 해도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일반 사람들은 들어가 볼 수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이토록 넓은 평지가 개발되지 않고 비어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녹지광장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김지나

공간의 미래 위한 시민 토론 이어져야

지금의 열린송현녹지광장이 되기까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기구하다는 표현 말고는 더 적합한 단어가 없을 정도다. 그 이름에서 나타나듯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경복궁을 보호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집안 소유로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으로서 역할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사택, 미국대사관 직원숙소를 거쳐 개발을 노리고 삼성생명, 대한항공이 차례로 주인이 됐으나 별다른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땅에 얽힌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결국 서울시에서 이를 다시 매입하고 공원으로 개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수순에 가까웠다. 서울 한복판, 우리나라 역사 도심 속 남아 있는 빈 공간에, 공공 공간 말고 또 어떤 용도를 논할 수 있었을까.

이제 여기 새로운 녹지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지난 두 달 동안 보고 느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송현동 땅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돼야 할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충분한 시민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물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처럼 유휴공간이 생겼을 때 임시 개방기간을 가지고 시민들이 실제로 사용해볼 기회가 주어지는 사례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반환 미군기지인 원주 캠프 롱, 벽돌공장 건물이었던 연천 DMZ피스브릭하우스, 이번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시장인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이슈도 다양했다. 이런 시도들이 임시방편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들의 경험을 실제 개발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이 정식 개장하는 2027년까지 이 땅의 미래에 대한 많은 대화가 오고가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북인사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거리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문화재·미술품 2만3천여점 송현동으로…문화계 기대·우려 교차

"장르·시대별 분화 흐름과 안맞아…서둘지 말고 내실 있게 준비해야"

 

(서울=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상속세 납부 시한을 앞두고 공개한 사회공헌 계획에 따라 이건희 회장이 평생 수집한 개인소장 미술품 1만1천여건, 2만3천여점은 국가 박물관 등에 기증된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는 수집작품 중 일부. 2021.4.28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박상현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등 2만3천여 점의 종착지가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으로 정해졌다.

국보와 보물부터 근현대 미술 명작까지 아우르는 '이건희 컬렉션'을 한곳에 모은 새로운 개념의 기관이 서울 한복판에 들어서게 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기대와 환영,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 이건희 컬렉션, 논란 끝에 송현동행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건희 컬렉션'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소문난 미술애호가였던 이 회장이 국보급 문화재와 고가의 근현대 미술품을 대거 소장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남긴 고미술품과 근현대미술 작품 1만1천여 건, 2만3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총 2만1천600여 점의 고미술품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을 비롯한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 1천60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됐다.

'세기의 기증'에 문화예술계는 환호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언급했다. 이후 정부는 기증품 2만3천여 점을 통합적으로 소장·관리할 별도 기증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부지를 검토했다.

미술계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근대 미술품 등을 활용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요구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서울과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지적하며 이건희 기증관 유치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문화재를 포함한 모든 기증품을 모은 전시관을 송현동에 짓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언론설명회가 열린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참석자가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건희 기증관, 한국 대표 뮤지엄 될까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있던 송현동 부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옛 풍문여고 부지에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 등과 연결돼 문화예술중심지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삼성생명이 미술관 건립을 위해 매입했던 곳이기도 한 송현동 부지는 서울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문화예술 랜드마크 입지로 꼽힌다.

'이건희 컬렉션'은 그곳을 채울 콘텐츠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이건희 컬렉션' 대표 작품 일부는 이미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당대 최고 명작들을 모은 전시에 관람객들이 몰려 연일 매진 행렬을 이뤘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인근에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사동이 있는 송현동에 이건희 기증관이 지어지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일대가 더 짜임새 있는 문화지구가 될 것이다.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미술관을 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송현동은 오래전부터 미술관 부지로 거론된 곳인데 리움의 또 다른 버전인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서게 됐다"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이 지척에 있고, 전통미술 중심지인 인사동과도 연결돼 굉장히 큰 미술 인프라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건희 기증관'의 건축에도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병훈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은 "인사동에 복합 문화시설이 부족한데, 전시는 물론 공연도 보고 휴식도 취할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건물만 보기 위해서도 여행을 가는 세상이니 목조로 멋지게 지었으면 한다. 지역성에 어울리는 건물을 지으면 주변 공간도 다 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 공개회에 주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기대만큼 큰 우려도…해결할 과제 산적

'이건희 기증관' 설립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우려와 비판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 한국 미술과 서양 미술을 망라하는 소장품을 하나의 체계에서 보여준다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간사인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기증관 건립은 장르·시대별로 분화하는 세계 박물관·미술관 흐름과 맞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이해나 성찰 없이 국민 염원이나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당국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창의적인 융·복합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소장품을 제대로 관리하고 연구하려면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양 교수는 "이건희 기증관이 독립적으로 운영될지,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산하 기관으로 운영될지도 관건"이라며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7년 개관 목표를 밝힌 정부가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학계 관계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충분히 연구한 뒤 전시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한다"며 "굳이 2027년이라고 못 박지 말고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전할 때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덧붙였다.

당장은 서울과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지자체 미술관과의 협력 강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건립 확정 (서울=연합뉴스) 이른바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유력 후보지였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세워지는 것으로 결론 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가 송현동 48-9번지 일대 3만7천141.6㎡ 중 일부(9,787㎡)를 기증관 건립 부지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2021.11.9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건립 좌초를 놓고 ‘낡은 규제 vs 학교 주변 유해시설 차단’ 논쟁이 한창이다. 대한항공이 2008년부터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다가 학교정화구역 안이라는 이유로 불허된 사업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관계 부처들이 건립 허용 근거를 만드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30여년 전에 제정된 학교보건법으로 호텔 건립 허용을 막는 것은 낡은 규제이고, 호텔은 유해시설이 아닌 수준 높은 복합 문화 공간인 만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교실과 직선거리로 20~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 대법원까지 “학교정화구역 안의 호텔 건립 불허는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안을 뒤집으려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특혜이고 현행 법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贊]한진수 경희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경복궁·인사동 등 지리적 인접 활용…서울 대표하는 문화 랜드마크 필요

대한항공이 경복궁 인근 송현동의 옛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에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 랜드마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통 한옥 형태의 영빈관급 게스트하우스와 지상 4층 규모의 호텔, 다목적홀, 갤러리까지 포함한 복합시설로, 문화시설 외에도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편안하게 체류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복합문화단지로서의 기능을 갖춘 호텔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 한진수 경희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송현동 복합문화단지 건립이 이뤄질 경우 서울의 고급 숙박시설 부족난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경복궁, 창덕궁, 인사동, 북촌 등 서울의 아름다운 문화 지역들을 하나의 벨트로 묶는 효과를 통해 우리나라의 관광,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송현동 복합문화단지 건립은 학교보건법으로 인해 제동이 걸려 있다. 호텔이 실제로 학생들의 위생이나 면학 환경에 해를 끼치는지 판단할 여지 없이 현행 법으로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 호텔이 유해 업소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미국, 일본, 태국, 중국 등에서도 법률로 학교 인근에 숙박시설 설치를 제한하는 것은 드문 경우다.

학교보건법은 30여년 전에 제정된 법으로서 당시의 호텔과 현재의 관광호텔 개념은 판이하다. 현재의 특급호텔은 수준 높은 문화·여가 생활 공간이자 국제회의 등이 열리는 비즈니스 공간, 가족들의 건전한 휴가·레저 공간이다. 게다가 송현동 복합문화시설은 국내 유일의 7성급 전통 한옥 스타일로서 두바이에 있는 버즈 알 아랍 호텔과 같은 세계적인 랜드마크 호텔의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 현 정부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개혁하는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관광진흥법 개정을 통해 유해한 부대시설이 없는 숙박시설을 포함한 문화단지 건립을 허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미 관광 선진국에서는 문화적인 랜드마크를 만들어 지역 명소로 키우는 한편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로 육성하고 있는데 한국과 관광산업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 상하이의 ‘신천지’, 베이징의 ‘동방신천지’, 일본 도쿄의 ‘롯폰기 힐스’ 등은 상업과 주거, 문화시설이 모두 갖춰진 곳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대한항공의 윌셔그랜드호텔 프로젝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준 바 있다. 재건축 공사에 필요한 까다로운 규제들을 완화해 준 것은 물론 호텔 완공 후 25년간 숙박세를 면제해 준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적 공간, 상업적 공간, 호텔 등의 주거 공간까지 갖춰진 복합문화시설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환경과 어우러져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탄생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규제 위주의 현실 때문이며 규제를 풀어 관광산업 활성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의 복합문화시설은 우리의 국악 공연, 전시회, 미술전 및 시화전 등을 국민과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교실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친밀하게 교감하게 하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이 될 것으로 본다. 더 나아가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위한 동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넘어 수천명에 달하는 고용 창출 등의 연관 효과도 기대된다. 호텔은 일자리 창출이 높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24.8명이며 10억원당 10명인 제조업의 2.5배에 달한다. 나아가 수용시설, 사회기반시설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이 건설돼 지역 개발이나 지역사회 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게 돼 국민 경제의 누출 효과가 적은 산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서울시나 정치권 모두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反]백영현 덕성여중 교장

교실과 호텔 직선거리 20m 불과…학생들의 교육 환경 크게 훼손 우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다. 환경이 주는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언제나 이 고사성어를 인용하곤 한다.



▲ 백영현 덕성여중 교장

송현동 일대는 참 좋은 교육 환경을 가진 곳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이 아름다운 좁다란 학교 길, 여학생의 수다가 가득한 떡볶이집들,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 다양한 갤러리와 박물관, 정독도서관. 수십년을 내려오며 만들어진 정겨운 동네 풍경이다. 그런데 여기에 7성급 호텔이 들어선다고 난리다. 5년 전인 2009년부터 대한항공이 호텔을 짓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조용하던 교육 환경이 뒤숭숭해졌다. 대법원 재판에서 패소를 하고 나서 이제는 조용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제 개혁 완화로 또 소란스럽다.

이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을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3심 제도와 함께 가르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국가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일에 반대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학교와 대한항공의 신축 호텔 사이에는 단순히 학교보건법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자들이 연락을 해 온다. 그럴 때면 나는 기자들에게 전화만 하지 말고 학교로 오라고 한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의 출입문에서부터 50m면 절대정화구역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법률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2009년 대한항공 측에서는 모 건축사를 통해 ‘송현동 문화복합 콤플렉스’라는 플랜을 제시하며 학교에 양해를 구한 적이 있었다. 이 조감도에는 대한항공 측이 자랑스럽게 짓겠다는, 정원이 딸린 한옥 영빈관이 교실에서 직선거리로 10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ㄷ자 형태의 7성급 부티크호텔마저도 교실과의 직선거리가 20~30m밖에 되지 않는다. 지형의 생김새로는 이것 이외의 뚜렷한 방법도 없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6층 건물인 우리 학교의 교실에서 4층짜리 호텔을 내려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 객실과 교실과의 불협화음은 또 어찌 해결할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발상이다. 학교를 방문한 기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런 구조라면 지어서는 안 되겠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걱정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학교라는 곳은 늘 소음이 발생하는 곳이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체육 시간, 체육대회, 예술제 등 건강한 소음이 늘 존재한다. 7성급이나 되는 고급 호텔이 들어설 자리로는 애당초 너무 부적합한 환경이 아닌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고급 호텔을 지어 놓고 고객들에게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이건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망신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이런 굴지의 호텔이라면 국가 원수급에 준하는 귀빈들이 묵을 것이다. 그 경호는 또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돌멩이를 가지고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영빈관과 호텔을 지어 놓고 VIP 경호라는 이름으로 교육 활동의 현장을 무차별적으로 점거할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학교다. 집에서 통학하는 거리가 조금 멀어도 어느 것 하나 걱정스러운 환경이 없었기에 무척 만족할 수 있었다. 1만원 안팎의 물건들을 보며 소녀적 감상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키워 나가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날 괴물처럼 들어선 고급 호텔에 필연적으로 따라 지어질 명품 아케이드에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상품들을 보며 혼란해할 것도 염려스럽다.

인성 교육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열성을 다해 온 학교장으로서는 학생들의 예쁜 꿈을 지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맹모삼천지교는 2300년 전에 살았던 맹자 시대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