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는 날, 연출가 기국서씨로 부터 술두 통지가 날아왔다.
해 바뀌어 술 한 잔하자는 기별인줄 알고 갔더니,
초저녁부터유목민’에 여러 명이 모여 작당하고 있었다.



연극연출가 기국서씨를 비롯하여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언론인 윤상길씨,

연출가 최유진 교수 등, 다 한 가닥씩 하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성악가이자 배우인 박준석씨, 문화평론가이기도 한 최정철 감독 등

처음 보는 분도 두 분이나 있었다.



명절 덕담으로 시작된 술자리는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비롯하여

문체부, 예술의전당, 국립극단, 한국에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으로 옮겨가며,

예술가 엿 먹이는 기관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언론인 윤상길씨가 말을 꺼냈다.

윤상길씨는 ‘부산일보’에서 시작하여 ‘국민일보’, ‘시사저널’에서 일하다 명퇴하여 조용히 살던 분이다.

이달 초부터 온라인 종합 신문 ‘뉴스코프’ 제작위원과 ‘스포츠 투데이’ 편집위원 자리를 맡아,

다시 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본인의 뜻을 존중해 비상임으로 맡겨 준 대표와 후배들을 고마워했는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기가 막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모니터를 끼고 일하는 모습이 마치 닭 싸움하는 것 같단다.

발로 뛰며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뜨는 이야기 짜깁기하느라 컴퓨터와 싸운다는 것이다.



전람회나 연극공연 등 좋은 기사를 찾아나서지 않아, 왜 가서 취재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그긴 왜 가느냐?’는 것이다. 보도자료를 비롯하여 필요한 정보가 인터넷에 있으니까...


 

문제는 인터넷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기사의 질보다 양이란다.

광고주들이 신문매체의 클릭 수에 따라 광고를 주니, 하루에 수십 건의 기사를 올려야 하는데,

기껏 한 두건 밖에 쓸 수 없는 현장 취재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기사 내용보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쏠리니, 제목과 무관한 기사도 있단다.

예를 들면 이 이야기 제목처럼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야하고,

나무 한 그루를 소개하려면, 가지 따로, 잎 따로, 뿌리 따로의 수십 개 이야기를 만들어,

엉터리지만 많이 올리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란다.



클릭수가 많은 것도 연예, 스포츠, 만화 같은 기사가 주종을 이루는데, 흥미위주의 추측기사가 많단다.

그러니 쓰레기 기사를 양산하는 기레기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검찰개혁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언론개혁이었다.



두 번째는 성악가 박준석씨가 말을 꺼냈다.

‘예술의 전당’에 크게는 년봉 1억이 넘는 수백 명의 직원들이 벌어 먹지만,

그 곳에 과연 예술가가 몇 명이나 있냐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국립극단'과 각종 문화재단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일할 자리를 예술과 무관한 이들이 좌지우지하는데,

심지어 ‘세종문화회관’ 관장도 회계사 출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엄청난 문화예산을 각종 재단이나 관련 기관을 통해 쏟아 붓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지인과 출판사의 권유로 몇 년에 걸쳐 두 차례나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중견작가작품집제작지원’에 신청한 적 있다.

그동안의 작품을 정리하여 묶는 유고집 비슷한 성격의 사진책이었다.



탈락되어 어떤 분들이 받았는지 궁금해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니,

사진부문은 한 사람도 지원받은 사람이 없었다.

더 웃기는 것은 두 번 모두 사진 전문 심의위원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는 쓸데없는 짓거리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런 일에 시간 낭비하고 마음 상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난, 사기꾼 되기 십상인 고상한 예술 따윈 집어 치운지 오래다.

잘 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에 여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놈이다.

그까짓 사진집은 만들어 어디에 쓸 것이며, 팔리지 않는 전시는 해서 무엇 한다 말인가?



그 날 모임에서 예술가들이 정부나 조직에 이용만 당하는 세상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기로 하나 같이 뜻을 모았다. 이니, 공산당 선언 하듯 결기를 다졌다.



예술가를 예우하는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고,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살기 좋은 나라임을 정책가들이 정말 모른단 말인가?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장관은 행정과 관광의 전문가라는데,

도대체 예술행정을 어떻게 하는지 묻고 싶다.



뒤늦게 ‘76극장장’이며 조명전문가인 주성근씨가 나타났다.

이 분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그 속에서 살아나온 분이라 했다.

옆자리의 최유진씨도 '삼풍백화점' 사우나를 매일 이용했는데,

그 날 따라 가지 않아 살아남았다며, 지난 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기국서씨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셨다.

술을 따르기 무섭게 단 숨에 들이켰는데, 그렇게 마시면 항우장사인들 견딜 수 없다.

술기운에 과격한 발언도 서슴치 않았지만,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공산당 선언 같은 메시지를 내 세워, 다들 상복 차려입고 침묵시위를 하자"는 것이다.

옆에 있던 최정철 감독이 좋은 생각이라며, 상복 값은 자기가 대겠다며 맞장구 쳤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입으로 떠벌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행동하는 예술가들이 아니던가?

이제 날 잡아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한 술집에서 세 시간 넘도록 버티면 장사 망친다며, 2차를 가자고 술값을 거두었다.

다들 일어나 옆 골목에 있는 맥주집 ‘예당“으로 자리 옮겼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가자’, ‘아제’, ‘샬라’ 등 다양한 구호들이 나왔는데,

술 취한 기국서씨가 소리 높여 외쳤다. “니미 씨발~”

‘니미’는 추임새에 불과하지만, ‘씨발(始發)’은 최고의 구호가 아닌가?

역시 천재적 기질의 연출가였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뜻밖의 사람이 등장했다.

터키 국립 하제테패대학 도예과 초빙교수로 가 있는 막사발 장인 김용문씨 였다.

지금 막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지만, 일행이 있어 긴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한 달가량 국내에 체류하며 한 판 벌이겠다는데, 무슨 일일지 궁금했다.

개인적인 소모전보다 세상 바꾸는 일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너무 힘들다.

이제 예술가들도 당하고만 살지 않을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박은태씨 전시 보러 광화문에 나갔다가 뜻밖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연히 화가 장경호씨와 성기준씨를 만났는데,
‘민미협’ 회원전 개막식에 왔다는 것이다.
‘광화랑’과 가까운 위치라 한 걸음에 두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전시 포스터는 물론 리플렛 등 인쇄물이 나오지 않았는지,
출품회원이 누구이며 언제까지 열리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전시장에는 민정기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박불똥, 이재민, 김영중,
두시영, 조신호, 변대섭, 박세라씨 등 반가운 분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았다.
전시장을 돌아보던 민정기씨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는지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미협’측 인사도 눈에 띄었다.
반목하는 것보다 서로 축하해 주며 어울리는 것은 좋으나, 전시 오프닝 분위기가 왠지 냉랭했다.
일렬로 줄지은 테이프커팅이나 술도 없이 건배를 제의하는 등
뭔가 '민미협' 답지 않은 전시 개막식이었다.


아래 사진들은 회원전 개막식이 열리는 모습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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