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광 Pyromaniac

윤미류/ YOONMIRYU / 尹美柳 / painting

2023_0831 2023_0924 / 월요일 휴관

윤미류_Hunter-Walker 1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23

윤미류 인스타그램_@miryuyoon

 

초대일시 / 2023_083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4~5 전시실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윤미류의 회화(繪畫)와 방화(放火) 윤미류 회화의 구조는 일정하다. 한 인물이 화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물화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통상적인 인물화 장르와는 거리가 있다. 인물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되, 이를 바탕으로 작가가 향하는 종착지는 본래의 인물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회화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물이 환기하는 추상적인 감각을 뾰족하게 드러내기 위해 장면을 직접 연출하고, 연출된 세팅에서 모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내러티브로 허구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번 개인전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가 쌓아온 균일한 흐름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윤미류_Hunter-Walker 2_캔버스에 유채_259.1×193.9cm_2023

* '파이로매니악''방화광'을 뜻한다. 의미만으로 무척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많이 들어보았을 방화범과는 다르다. 방화범의 방화가 금전적이든 개인적이든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방화광에게는 뚜렷한 동기가 없다.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 억제 장애 때문에 방화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타는 광경을 보며 긴장이 완화되고 강한 황홀함을 느끼기도 한다. 윤미류의 기존 작업들은 방화광이 연상케 하는 충동, 긴장, 공격성과는 멀어 보이는데,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파이로매니악'이라는 키워드는 작가의 행보를 읽어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윤미류_Brushing Off 1_캔버스에 유채_227.3×162.1cm_2023

** 페인터로서 윤미류가 감각을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자. '낯익은 대상이 환기하는 사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일련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1Dripping Wet을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어렴풋한 감각을 먼저 키워드로 표현했다. '채비, 다짐, 서늘한, 선명한, 태연한, 굳은, 더듬다, 버티다'와 같은 키워드는 인물을 섭외하고 장소, 의상, 소품, 제스처 따위를 연출하는 실마리가 된다. 연출한 현장에서 인물이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아이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옮긴다. 이번 신작을 준비하면서는 낱개의 모호한 단어들을 늘어놓는 데서 나아가 이들을 조합해 서사를 상상했고, 그런 과정에서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라는 캐릭터로 연상한 장면들, 이를테면 '이유 모를 행동을 하는 주술사의 몸짓과 무언가를 쫓는 사냥꾼의 얼굴, 어느 순간 길을 잃은 산책자의 눈,' '다른 사람은 짐작도 못 할 주문, 목표물을 급습하려는 작전, 하늘을 헤아려 길을 찾는 꾀를 가진 사람' 등의 상상은 한 야산의 현장에서 현실화된다. 두 젊은 여성이 모델로 분해, , 햇빛, 눈발, 나뭇가지 등 자연 환경에 반응해 여러 행동을 취한다. 이들이 디렉션을이 표현하는 시간에서, '이미 예정된 자신의 연출 보다는 연출된 행위를 뚫고 나오는 우연한 형태들' 이 모여 작가가 느끼는 감각은 점차 예리하게 세공된다. 작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인물-환경이 만드는 다양한 조형성, 내러티브' 는 언어로 완벽히 표현할 수 없는 순간에 존재한다. 그 내러티브는 감상자의 해석에 열려 있고, 새로운 자극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여름, 한 동료의 피드백은 작가에게 적절한 환기점을 제공했다. 눈밭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보고 '눈덩이/눈송이/눈가루들은 불타버린 하얀 재, 혹은 폭죽이나 불꽃의 불티처럼' 보이고, 그 이유는 인물의 눈빛이 '뜨거운 느낌'을 뿜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는 감상이었다. 한창 무더운 7월에 겨울의 눈을 그리고, 눈의 차가움이 아주 뜨거운 무언가로 교차되는 순간, 차가움과 뜨거움이 서로 전이되고 뒤섞이는 찰나. 이렇게 감각이 새롭게 확장되는 순간에 작가는 매료되었던 것 같고, 그래서 '파이로매니악'은 단숨에 전시의 제목으로 등극하게 된다. '야트막한 산에 출몰하고, 혼자 무언가를 꾸미고 실행하고, 아닌 척 살고, 붙잡기 위해 쫓고, 붙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순간, 입가의 물기를 닦으며 이제 막 중요한 무언가를 끝내고 숨을 고르는' 누군가처럼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를 통해 떠올린 이미지들은 외부 감상자의 해석이 더해져 방화광으로 확장된다.

 

윤미류_Brushing Off 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3

이쯤에서 작업의 핵심 질문을 되짚어본다. 윤미류는 '회화로 표현하는 여러 형태 중에서도 특히 인물에 관심'이 있고, 그의 고민은 '인물을 그린다는 것에 요구되는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그와 환경이 만들어내는 조형성, 내러티브, 그것이 '환기하는 추상적 감각'이다. 윤미류가 추구하는 감각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작가는 그 감각에 도달하기 위해 키워드, 캐릭터, 모델, 사진 등을 동원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 인물도, 사냥꾼도, 방화광도 아니다. 작가는 캔버스에 최종적으로 안착한 회화적 이미지와 본래의 대상이 다르다고 선을 긋지만, 여러 단계들을 차곡차곡 밟고 감각을 다듬으며 도달한 결과물에는 그가 경유해 온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특히 모델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는 작업의 밑바탕 역할을 한다. 작가는 주변 인물을 모델로 섭외하는데, 가까운 이들 중에서도 작가에게 어떤 종류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그 얼굴에서만 볼 수 있고, 끌어낼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이 상상한 미장센을 연출하기 위해 배우를 섭외하면, 그 배우의 해석이 캐릭터에 반영되는 식일 것이다. 또한 그림 속 인물이 주술사다, 혹은 방화광이다,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환원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는 작품을 읽어내는 길잡이가 된다.

 

윤미류_Fists in the Pocket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23

*** 윤미류가 천착하는 감각은 종국에 회화의 물성과 결합하며 완성된다. 작가는 회화의 장면을 조직하는 데 있어 빛, , 질감, 양감, 등의 물성을 무척 예민하게 살핀다. 화면을 넓게 차지하는 어두운 푸른색을 상상하며 모델에게 후디를 입히고, 동물적으로 무언가를 부욱- 찢어 가르는 것 같은 느낌, 반짝이는 텍스처를 떠올리며 가죽 부츠를 고른다거나, 사방으로 산란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모델이 머리를 풀어헤치게 한다는 식이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야산이라는 장소만 같을 뿐, 모델, 날씨, 시간대, 의상, 그에 따른 상황은 모두 다르게 설정했다. 그 덕에 두 그룹이 이루는 감각의 대조가 뚜렷하다. 한 사람은 눈이 내린 다음 날, 한낮에, 캐주얼한 오버 사이즈 후디와 청바지를 입고 포니테일을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머리카락과 옷에 전부 눈이 잔뜩 묻었다. 머리를 거칠게 흔들자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눈발이 후두두 떨어진다. 맨손으로 한 움큼 눈을 쥔 손, 코끝에 맺힌 물방울의 온도가 시리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의 화면은 좀 더 미스테리하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대에 한 여성은 나뭇가지를 쥔 채 이런저런 자세를 취한다. 가죽 블루종과 부츠의 회색빛에는 따뜻함보다는 냉한 푸른기가 감돈다. 저녁 빛이 얼굴에 강한 명암을 드리우며 얼굴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드라마틱하게 나눈다. 모델의 눈빛은 스스로의 역할에 충분히 심취한 몰입을 보인다.

 

방화광은 그림 속 인물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작가는 '사건의 타임라인 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그리기보다는, 마치 방화광이 일을 내기 직전 또는 직후의 상태에 가까운 시간' 을 포착하고자 한다. 어떤 일의 직전과 직후라면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최고조의 순간을 찾아 헤매는 페인터의 모습에 방화의 아이디어를 고르는 방화광을 겹쳐본다. 성기게 존재했던 감각이 현실에서 연출되는 광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경이로운 눈'이 활활 타오르는 불에 환희하는 방화광의 눈과 같다면, 작가가 회화에 대해 느끼는 매혹의 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유한나

 

현실은 메타포 If Reality Is the Best Metaphor

손수민/ SHONSOOMIN / 孫秀旼 / video.installation

2023_0706 2023_0730 / 월요일 휴관

손수민_In God We Trust_HD 영상, 사운드_00:12:09_202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손수민 인스타그램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주관,후원/ 서울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 Julia Schäfer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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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4,5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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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물질 모두 집단 안에서 가치를 갖는다. 돈이란 스스로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고 유용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믿으면 심지어 바다에 빠져 눈에 보이지 않는 돌도, 그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비트(bit)도 화폐로 인정받는다. 잘 만들어진 환상은 사람들이 믿게되고, 믿음이 모이는 순간 엄청난 힘을 가진 현실로 변한다. SeMA 창고에서 개최하는 전시현실은 메타포는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동시에 집단 안에서 본분을 넘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된 가치들의 양면을 재고한다.

 

손수민_In God We Trust_HD 영상, 사운드_00:12:09_2023
손수민_In God We Trust_HD 영상, 사운드_00:12:09_2023

현실은 메타포는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뉜다. 영상 In God We Trust(2023)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시기에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던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회적 사건들을 몽타주 형식으로 엮어낸 무빙이미지다. 영상의 제목인 "In God We Trust(우리의 신을 믿는다)"는 기축통화로 막강한 지위를 누리는 미국 달러에 쓰여진 문구이다. 출퇴근길과 일터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수집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재구성하며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향한 환각에 가까운 우리의 집단적 믿음에 그 만의 방식으로 질문한다.

 

손수민_뮤직박스_퍼포먼스_2023/2018 (촬영_정순영)

손수민_뮤직박스_퍼포먼스_2023/2018 (촬영_정순영)

뮤직박스(2023/2018)는 모더니즘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동부에 위치한 예일대학교 루돌프 홀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세마창고의 공간적 특징을 고려하여 재구성한 관객참여형 설치다. 규격에 맞춰 대량생산된 뮤직박스를 공간과 시간, 인력과 자원을 작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연주함으로서 합리주의 성장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을 점거하고자 했다. 표준화된 세계의 기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객들의 창의적인 가능성을 환영한다.

 

작가는 현실의 무게를 감히 예술이 잊게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서 희망도 발견하기를 늘 기대한다. 손수민은 기술기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조명하는 작업을 만들어왔다. 누군가 직접 겪은 일이나 한 말에서부터 사회의 경계와 균열을 탐색한다. 환경에 반응하며 생산된 정형화되지 않은 언어는 작가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미세한 접촉면은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에서는 그런 작은 교차점의 가능성을 지나치기 마련인데 작가가 관찰자로, 참여자로, 때로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선동자가 되어 그 순간을 좀 더 확대해본다. 손수민

 

일렁이는 직선 Swaying Straight Line

홍세진/ HONGSEJIN / 洪世辰 / painting

2023_0706 2023_0730 / 월요일 휴관

홍세진_이어가다 움푹_캔버스에 유채_194×260cm_2023

홍세진 인스타그램_@sejinnho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주관,후원/ 서울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 양도연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1~3 전시실

Tel. +82.(0)2.2124.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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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직선: 좁고 긴 틈을 지나, 아이러니 1.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명징한 파동이자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청각적 공백을 통해 감각과 인식의 어긋남을 확대함으로써 좁고 긴 틈(slit)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 틈을 통과하는 물질세계를 파동의 상태로 시각화한다. 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손상된 청신경 세포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전기적 장치인 인공와우를 착용한다. 그는 왼쪽의 인공와우, 오른쪽 귀의 보청기와 연합하며 선재적 상태들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감각과 인식의 유비들을 표현한다. 홍세진은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사이보그 선언과 연계되어 기술적으로 보철되는 포스트휴먼적 주체로 소개되어 왔다. 1) 그리고 일렁이는 직선에서 홍세진은 감각, , 지식, 존재가 뒤섞인 가운데 이항대립을 통한 인식으로도 그리고 유비적 추론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는 홍세진이 듣는 소리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인식론적 질문, 그리고 실제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홍세진_매끄러운 네모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23

우리는 감각과 인식을 통해 구성된 지식의 본성에 대한 질문, 즉 인식론적 질문만으로 존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소리를 듣다.'를 통해 '소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도달한 소리란 무엇인가? 홍세진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보장하는 감각적 경험의 결핍과 존재론을 함축할 수 있는 인식론에 대한 핍진함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 견지를 더하여 소리를 향해 간다. 물리학적 정의로 소리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 즉 파동이다. 많은 경우 소리에 대한 시각화 또한 파동으로 그려진다. 파동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직선이 필요한데, 바로 좌표계의 축들이다. 두 개의 직선은 X 축과 Y 축으로 평면을 이루고 Z축을 더한 세 개의 직선은 공간 좌표계를 소환한다. 그리고 각각의 직선은 파장과 진폭, 방향으로 규정된 축들로 파동의 성질과 상태를 나타낸다. 홍세진의 평면 작업을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읽히는 수직 수평의 직선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몸에서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소리에 대한 앎을 추동하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소리 경험을 통해 통렬히 포착한 감각과 인식의 틈을 빛의 세계에서 표현하기 위해 그에게 소리를 명징한 파동으로 만들어 줄 직선들을 소환한다. 그에게 직선은 보편적인 감각 경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보편성이 담보된 지시체들의 기입이다. 따라서 그의 평면에 드러나는 그대로 '일렁이는 직선''직선(좌표계) 위 일렁이는 파동(소리)'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홍세진_무제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23

홍세진은 파동의 지시체로서 직선을 자신이 포착한 물질세계에 기입함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이제 질문이 또 생겨난다.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이항대립적 인식, 유비적 추론, 물리학적 견지 모두를 통해서도 해결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에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그 방법론으로 답한다. 홍세진이 포착한 좁고 긴 틈에는 모순된 개념의 전경화로서 나타난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 2), 즉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는 감각과 인식과 존재가 얽혀있기에 추론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를 절단하여 읽어내는 것으로, 다시 말해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일부만을 절단하여 바라봄에서 발견된다. 일렁이는 직선은 그 이름에서부터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통해 소리와 빛, 자연과 인공, 물질과 비물질, 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간의 유비를 지우며 이원론에 도전함과 동시에 감각-인식-존재에 대한 개인 간의 차이와 보편성을 반추하게 한다.

 

홍세진_덩그러니 반원형_캔버스에 유채_62×62cm_2023

2. 일렁이는 직선은 자연 속 유기체들과 공장에 위치한 사물들이 뒤섞인 풍경으로 주도된다. 이는 홍세진이 인공와우를 통해 자연의 소리와 기계의 소리를 겹쳐 듣는 경험과 연계된다. 인공와우는 하루 2회 충전된 배터리의 교체를 필요로 하며, 착용자는 잠을 청하기 위해 인공와우를 탈착해야 한다. 인공와우의 전력 상태와 착용자의 상황에 따라 불연속적인 홍세진의 청감각은 기능을 다하고 멈춰있는 주유소와 기계 장치를 회화 안으로 포섭한다. 홍세진은 간헐적이고 산발적인 감각을 조각모음 하여 실제 세계로 포착한 풍경을 절단하여 읽는다. 이때 그 세계는 홍세진에 의해 도형의 형태로 변환되며, 홍세진은 물감을 통해 대상을 흐리게 하거나, 덮고 긁는 방식으로 회화 표면의 질감을 드러낸다. 그가 자신의 세계로 포섭한 대상들은 표면의 질감, 흐릿함, 투명성, 긁힘을 통해 중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은 평면으로부터 입체 공간의 조형물로 확장되며 대상의 반영보다 차이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한편, 전시 공간 한편에서는 익숙하지 않게 편집된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소리는 홍세진이 2019년 처음 들었던 새소리를 인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홍세진은 처음 인공와우를 착용했을 때 시끄러운 공기 소리, 새소리와 조우했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공기 소리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시간에 의탁하며 감각이 인식으로 향하는 길을 조율해왔다. 홍세진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처음 2채널에서 48채널까지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이면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인공와우의 전기적 신호와 감각과 인식을 일치시키는 매핑(Mapping)을 진행한다. 홍세진이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외부세계와 그에 대한 수용과 조율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좁고 긴 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홍세진이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왔듯, 시각의 영역에서는 우리를 극한의 현실성(Ultra Reality)으로 소개되는 디스플레이 환경으로 견인해 왔다. 홍세진의 새소리 곁으로 향하면 만나게 되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의 형태의 작품은 초당 5 프레임(Frame/sec)의 속도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프락시노스코프는 1876년 에밀 레노(Emile Reynaud)에 의해 고안된 광학장치이다. 홍세진은 먼 과거로부터 초당 5 프레임 속도의 광학장치를 꺼내 초당 30 프레임의 속도로 송출되는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새라는 물()을 향한 홍세진의 특수한 청각적 경험과 함께 시각적 공백의 영역으로 초대된다.

 

홍세진_도는 선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3. 파동은 회절과 간섭이라는 특유의 성질을 지닌다. 회절은 반사와는 다르게 같은 상을 만들지 않고 간섭 현상, 즉 차이에 기반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도나 해러웨이는 회절을 세계 안에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고에 부여된 광학적 은유로 설명했다. 그리고 차이에 집중하여 두 개의 상반되고 다른 개념들의 만남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이항대립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회절적 방법론을 명명했다. 3) 일렁이는 직선은 회절을 통해 홍세진의 비가시적 소리 경험이 가시적 성질의 빛과 얽히는 과정을 표명한다. 그 안에서 자연과 인공의 병치, 채움과 비움, 평면과 입체, 물질과 비물질의 얽힘은 불확실하게 겹쳐진 상태로, 분리된 입자들 사이의 만남을 추동하며 회절적 아이러니로 드러난다. 이는 빠른 제자리, 그림자가 도는 선, 1n분의 1, 오려내는 동그라미를 비롯하여 평면과 설치를 횡단하는 가운데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나며 설치 작품으로 확장된다.

 

홍세진_지저지저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아이러니가 표명하는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은 불확정성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는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입자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하이젠베르크의 연구는 입자가 파동성을 지닌다는 아이러니를 밝힘으로써 양자 물리학의 발전을 태동시켰다. 고전역학에서 불가능했던 물()에서의 입자성과 파동성이 양립이 드러난 것이다.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파동, 회절, 좁고 긴 틈, 아이러니를 관류하며 양자 물리학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이 구성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으로 양자 물리학에서의 '슬릿'과 공명한다. 입자와 파동이 양립한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이중 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은 물()의 기본 단위인 전자가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 파동과 동일하게 슬릿을 통과하며 회절 무늬를 남김을 확인했다. 이를 본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인 기둥이 되는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발표하며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고 했다. 4) 이중 슬릿 실험에서와 같이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대립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아이러니적으로 통합되는 통로이다.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발견된 아이러니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야기하는데, 아이러니를 파악하기 위한 관측은 아이러니의 상황을 숨긴다는 것이다. 5)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 함의를 논한 캐런 버라드(Karen Barad)에게 관측의 아이러니는 세계에 대한 인간 관찰자의 개입이 존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따라서 인식과 존재가 경계 없는 상태로 얽혀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6) 홍세진이 자신의 '좁고 긴 틈'을 통해 물질세계를 포착하는 것은 특정한 얽힘 가 운데 하나의 관찰자로서 절단한 세계를 보이는 것이다. 관측의 아이러니는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존재-인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간 내부의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노트를 통해 "감각을 지각하는 신체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감각하여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라고 전한다. 홍세진이 감각한 대상과 풍경은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일부가 현상으로 홍세진에 의해 인식의 형태로 잘려 물질화되어 드러날 뿐이다. 홍세진의 직선은 좌표계의 축이며 슬릿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다수의 좁고 긴 틈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관측하기 위해 홍세진은 지금도 수 없이 캔버스를 가 로지른다. 임휘재

 

* 각주

1) 대표적인 홍세진의 비평으로는 천미림, 찰나의 순간들을 붙잡는, PUBLIC ART Issue 195, Dec 2022. 정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경계에서, 2020. 김정현, 차갑게 와 닿는 사물, 2021. 이 있다.

2) 해러웨이는 "아이러니는 변증법을 통하더라도 더 큰 전체로 통합할 수 없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필연적이고 참되기 때문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러니는 유머이며 진지한 놀이이다."며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으로 설명한다.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3) 도나 해러웨이, 겸손한_목격자@2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4) 닐스 보어는 1947년 물리학 공로로 덴마크에서 귀족 작위를 받게 되는데 예복에 태극문양을 새기고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Contraria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 문구를 넣었다 한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5)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슬릿에 통과하는 전자에 대한 관측이 개입되면 전자는 입자성만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지 않는다. 반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성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게 된다. 이후 탄소원자 60개로 이루어진 풀러렌(C60)의 이중 슬릿 실험이 성공하였고 유기물, 바이러스, 단세포 생물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이중 슬릿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자 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6) 캐런 버라드,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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