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단풍철까지 겹쳐 주말이면 전국이 축제로 들썩인다. 탐스럽게 익은 가을 날씨를 즐기러 나온 행락객을 잡기 위해 각양각색의 축제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봄가을에 유독 많긴 하지만 축제는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1년에 열리는 축제만 전국에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 주에 평균 20여개의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문화 관련 축제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 미술, 영화, 대중음악을 주제로 한 축제가 유독 많다. 이번 달만 해도 대규모 문화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공주, 창원에선 현재 격년제 미술제인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11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22일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열리고 29일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개막한다. 30일엔 올해 처음 열리는 가톨릭영화제가 막을 올린다. 대중음악 축제도 있다. 18, 19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에선 이소라, 이적, 윤상 등이 참여하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 열린다.

문화 관련 축제가 늘어나는 현상의 배후에는 대중의 요구가 아니라 업계나 지방자치단체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 정도를 따지면 영화제가 한 발 앞서 있고 미술제와 음악 페스티벌이 뒤를 따르는 모습이다. 영화제는 수년 전 거품을 터트리고 한 차례 교통정리를 했다. 지역 이름과 규모만 내세우는 영화제들은 이제 점점 자취를 감추는 대신 음악, 종교, 건축, 환경, 동물, 노인, 해양 등 전문적인 주제를 내건 영화제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미술ㆍ음악 축제는 아직 거품 단계다. 비엔날레와 록페스티벌은 여러 행사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콘셉트로 경쟁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행사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관객의 만족도도 낮아지는 건 자연스런 결과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와 이기웅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지난해 국내 음악 페스티벌을 검토한 뒤 “2013년 한해 동안 30개 이상의 중대형 페스티벌이 개최됐는데 시장의 저변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많은 숫자”라며 “성장을 넘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거품은 성숙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민간 업체들이 상업 논리에 따라 경쟁하는 음악 페스티벌과 달리 비엔날레는 국고 지원과 지자체 예산을 함께 받을 수 있어 수익에 대한 부담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만큼 거품이 낄 여지도 많고 방만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인력의 확보와 조직적 운영이 전제되지 않은 채 큐레이터의 역량과 인맥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지역 작가를 배제하고 특색 없이 미술계의 최근 경향만 좇는 일이 허다하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는 “유명 작가는 많지 않고 비엔날레는 많다 보니 작가들이 중첩될 수밖에 없고 결국 비슷비슷한 행사가 열리게 된다”며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실수요자를 생각할 때 국내 비엔날레는 지나치게 많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고경석 기자 kave@hk.co.kr 인현우 기자 inhyw@hk.co.kr



광주·부산 등 전국서 잇단 개최

 

올 가을 대한민국은 미술관이 됐다. 비엔날레가 서울부터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한꺼번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어로 ‘2년 마다’를 뜻한다. 말 그대로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국제전시회로 전 세계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도 조망할 수 있다.

◇그림부터 조각·사진·미디어아트까지=국내 양대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광주비엔날레는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로 지난 5일 개막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인 제레미 델러 등 스타작가를 비롯해 39개국 작가 115명(106개팀)이 참가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큐레이터인 제시카 모건이 총감독을 맡았다. 11월 9일까지 열린다.

20일 개막하는 부산비엔날레는 ‘세상 속에서 거주하기’를 주제로 삼았다. 프랑스 마그재단 관장인 올리비에 케플렝 전시감독이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메인전시를 이끈다. 30개국의 작가 160명이 참여한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문화회관, 고려제강 수영공장 등에서 11월 22일까지 계속된다.

미디어, 사진, 조각 등으로 장르를 특화한 비엔날레도 만날 수 있다.

지난 2일 개막한 ‘미디어시티 서울’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다. 17개국 42명(팀)의 작가들이 예술에 과학과 인문학, 테크놀로지를 덧입힌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다. 8회째인 올해 전시제목은 ‘귀신, 간첩, 할머니’다. 귀신은 아시아의 잊혀진 역사와 전통, 간첩은 냉전의 기억, 할머니는 여성과 시간을 의미한다. 미디어작가 겸 영화감독인 박찬경씨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다.

지난 12일 개막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다음달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예술발전소, 봉산문화회관에서 다양한 사진작품을 만날 수 있다. 31개국 250여 명의 작가들이 ‘사진의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 급변하는 사진의 표현방법과 정체성을 다뤘다.

올해로 2회째인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달그림자’를 주제로 25일부터 11월 9일까지 열린다. 국내·외 41명(팀)이 참여해 창원시립문신미술관, 돝섬, 마산 원도심(창동), 마산항 중앙부두 등에서 조각부터 건축과 조경,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자연미술을 전시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지난달 일찌감치 시작했다. 14개국, 작가 26명의 작품이 11월 30일까지 충남 공주시 금강쌍신공원과 금강국제자연미술센터,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전시된다.

◇미숙한 운영에 끊이지 않는 잡음=지방자치단체들이 공적을 쌓기 위해 무리하게 비엔날레를 개최하는데다 운영 미숙으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비엔날레는 본행사와 별도로 8월에 시작한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가 유보됐다.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세월오월’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결국 작가는 걸개그림을 자진 철수했고 책임큐레이터와 비엔날레 대표는 사퇴했다.

부산비엔날레도 끊임없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지난해 감독 선정위원회에서 1위를 차지한 김성연씨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2위 프랑스 출신 케플렝에게 공동 감독직을 제안한 게 문제였다. 부산문화연대는 부산비엔날레 보이콧에 나섰고 지난 6월 오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본 전시 작가 77명 중 3분의 1이 넘는 26명이 케플렝 감독과 국적이 같은 프랑스(프랑스령 포함)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그나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부산과 광주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생 비엔날레는 예산 부족으로 운영인력조차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대구사진비엔날레의 경우 개막 당일 해외 작가의 통역을 해 줄 사람이 없어 현장에서 의사 소통이 가능한 동료 작가가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대구비엔날레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2년 전의 18억원에서 14억원으로 줄었다. 광주비엔날레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이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광주·부산비엔날레 사태에서 보듯 예술 행사라는 순수성은 잃어버렸고 정치적 이벤트와 이해관계에 따른 이벤트로 변질됐다”면서 “해당 지자체 성과를 과시하는 것 외에 무슨 기능을 하는 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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