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정원 1F-1

인사동 '선화랑'에 핀 벚꽃은 언제나 절정이다. 설치미술가 심영철(66)의 개인전 ‘댄싱 가든(Dancing Garden)’의 설치 작품 덕분이다.
1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전관에서 열리는 ‘댄싱 가든'은 설치미술, 조각, 조명, 미디어아트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품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화랑 입장에서,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장르의 전시를 대규모로 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 회화와 달리 판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평소 수장고로 쓰던 4층을 전시장으로 개조하는 등 야심 차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흙의 정원 2F-1

심영철 52회 개인전 ‘춤추는 정원’은 작가가 일구어온 40여 년 작품 세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새로운 작품들로 구성된다.자연과 환경은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2002년 ‘환경을 위한 모뉴멘탈 가든’은 그녀에게 자연, 환경 속 인간 존재를 탐구했던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 대지진, 전쟁 등 재난이 가시화된 오늘날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환경과의 공생은 인류에게 주요한 화두이자, 그녀의 작업에 있어서 출발점이다. 환경과 인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일렉트로닉 가든 - 모뉴멘탈 가든 - 시크릿 가든 - 매트릭스 가든 - 블리스플 가든’으로 이어진 작가 심영철의 작업이 이제 ‘댄싱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진다.

 

꽃비 정원 1F-2

그녀의 모든 ‘가든’ 연작에서 미적 대상으로 탐구했던 ‘꽃’은 자연의 상징이자 생명성의 표상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벚꽃’을 주요 테마로 삼아 대규모 신작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설치 작품들은 복합 채널의 다차원적 조형 작업이자 인터렉티브 아트로서 오랫동안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y)를 추구해 온 작가의 예술관을 살펴보기에 족하다. 멀티미디어를 한 편의 교향곡처럼 펼쳐 보이면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물의 정원 3F-2

1층 ‘꽃비 정원’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벚꽃 모양의 조형 작품들과 함께 사방에서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증강현실(AR) 장치를 통해 꽃으로 된 옷을 입고 벚꽃 관을 쓴 자기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작가는 “현실과 꿈이 함께하는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방위로 투사되는 거대한 인터렉티브 공간으로 천장에는 자개로 만든 벚꽃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벚꽃 형상의 거대한 거울 방이 자리한 채 인피니티 이미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춤추는 꽃비 정원은 모두에게 함께하자고 손짓하면서 희망을 전하지만, 누군가는 환희를 누군가는 처연한 슬픔을 읽는 중이다. 희망은 있다. 현대인에게 에덴동산이란 결코 실낙원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구현할 ‘영원한 낙원’이기 때문이다.

 

흙의 정원 2F-3

2층 ‘흙의 정원’에서는 고려청자처럼 생긴 거대한 조각을, 3층에서는 커다란 수조 위에 설치한 3개의 연꽃 모양 금속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4층 ‘하늘정원’에서는 천장에서 내려온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들이 서로 입맞춤하는 형상을 연출한다. 이 모든 공간에서 작가가 작품 테마에 맞춰 제작한 음악이 흐른다. 거문고 뜯는 소리, 물방울 소리, 금속 소리 등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흙의 정원은 흙으로부터 발원한 공간이며 자연이 자리한 공간이다. 역사적 전통을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공간이다. ‘멀티플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 드리운 그림자로 한국의 산하를 표현한 작품, '그림자 산수(Shadow Sansu)'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전시장 중앙에는 벚꽃이 새겨진 고려청자 형상의 조각 몸체로부터 신비로운 빛이 산란하는 작품, '빛의 도자기(Ceramics of Light)'가 자리한다. 가히 흙이 불을 만나 시간의 흔적을 남긴 역사의 공간이라고 하겠다.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실감나는 'VR 아카이브(VR Archive)'로 살펴볼 수 있다.

 

흙의 정원 2F-2
3층은 물이 점유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물은 모든 것을 살리는 신성한 생명수라는 상징이다. 검은색 물이 채워진 커다란 수조 안에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3개의 꽃이 마치 연꽃처럼 자리한다. 검은 수면에 반영된 꽃 이미지로 인해 물의 정원은 실재와 허상을 서로 만나게 하면서 두 간극을 하나의 덩어리로 품어 안는다. 꽃의 몸체를 빠져나온 여러 색상의 빛이 전시장 주변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물들이는 동안, 간헐적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물의 정원 3F-1

4층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늘 정원이다. 그곳에는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들로 만들어진 한 쌍의 연인이 가느다란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서로 입맞춤을 한다.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이브일까? 아니면 1년마다 오작교로 서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일까? 신화, 설화 혹은 현실 속 인간의 사랑은 욕망과 배신, 환희와 비애가 오가는 가슴 먹먹한 무엇이다. 성서의 전언처럼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면서도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하늘 정원은 인간이 떠났던 하나님과 화해하는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늘 정원 4F-1
설치미술가 심영철씨는 “관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미디어를 활용한 '가든'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40여년간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확장해 왔다. 그는 지난 2월 수원대 미대 교수를 정년 퇴임한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늘 정원 4F-2
                                                                                                                 심영철의 'Dancing Garden'은 4월 2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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