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Buddy-buddy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炯珍 / painting
2017_0621 ▶ 2017_0705 / 일요일,공휴일 휴관



박형진_너에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27.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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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진 카페_http://cafe.naver.com/munijini.caf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노화랑GALLERY RHO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관훈동 103번지)

Tel. +82.(0)2.732.3558

www.rhogallery.com



반려동물과 보낸 정원에서의 일상 ● 박형진의 그림은 재현회화지만 그 형상화 하는 어법이 좀 특이하다. 상큼하고 감각적이며 앙징맞도록 간추려 도상화 한 형태는 실제성에서 벗어나있고 그것들의 크기는 다분히 왜곡되고 역전된다. 입가에 웃음을 거느리게 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키우며 더없이 맑고 예쁜 이미지들이 귀엽게 출현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소녀나 개의 형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잎사귀와 새싹, 딸기나 사과 등이 중심부를 가득 채웠다. 그러면 그와 함께 등장하는 다른 것들은 지나치게 작게 위치해있다. 모든 게 단순, 간략하게 추려지고 자의적으로 변형되었으며 만화나 삽화이미지에 근접해있다. 다분히 '팬시'하고 감각적인 면도 모성애적으로 감싸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반려견과 애완동물, 주위의 식물들을 사랑스럽게 보살피고 그것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도모하는 과정 그 자체를 자신만이 형상 언어로, 이미지로 수집하고 기록하듯이 그린다. 이 행위는 단지 특정한 회화적 행위,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반려견과 애완동물의 보살핌, 사랑과 희생 혹은 나 이외의 다른 존재, 생명체에 대한 이타적 배려란 자아 중심이나 인간 본위의 세계관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 따스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런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사뭇 유달라 보이는 것이다.


박형진_너와 함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1.7×91.2cm_2017


박형진_너와 함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1.7×91.2cm_2017


몇 가지 원색만이 시원하고 대담하게 칠해져있어 평면성이 강화되어 있는 화면에는 부드럽고 약간 눅눅해 보이는 중간 톤의 윤곽선에 의해 형태들이 그려져 있다. 배경은 하늘과 흰 구름, 붉은 땅, 녹색의 풀밭이 거의 전부다. 심플하다. 그 사이로 사람(소녀)과 개만이 한 쌍을 이루면서 흡사 인간과의 관계인 것처럼 다양한 사이를 풍경처럼 연출한다. 자신의 작은 정원 혹은 작업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보내는 비근한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이 문득 그림으로, 마치 싱그러운 아침의 새싹들처럼 '쑤욱' 올라온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은근히 마음이 좋아진다. 의도적인 연출이나 장식자체를 목적으로 해서 그린다면 나오기 힘든 '씬'이다. 그러니까 삶과 마음이 진실 되게 기울어져야 가능한 그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박형진_심쿵멍멍+아이신나+심쿵멍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3cm×3_2017


이렇게 작가는 인간과 자연, 생명체 간의 교감을 여러 정황적인 풍경으로 보여준다. 자신과 자신의 반려견, 그 둘이 관계를 맺으며 사는 다양한 양상들을 달콤한 꿈처럼 그려내고 천진한 상상력으로 서술한다. 꿈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의 무식적인 분출이거나 낮 시간 동안 겪어낸 수많은 경험들을 추려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져 나온 것일 텐데 박형진이 보여주는 '꿈같은 장면'은 자신의 반려견 그리고 식물성의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그것들을 진정으로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밀려나온 행복에 대한 희망/꿈일 것이다. 작가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몸과 언어를 지니지 못한 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에서의 소소한 경험, 꿈, 기억을 인상적으로 가꾸어낸다. 삶의 공간을 정원으로 여기고 그 안에 자신과 함께 하는 것들을 배치하고 작물을 심어 가꾸듯이 그려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작가의 작업 주제는 '정원'이었다. 아버지의 옥상정원에서부터 시작해 사과농사를 짓는 시골의 과수원(정원), 개와 고양이를 돌보는 양평의 작업실 공간(정원) 풍경으로 연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원은 파라다이스에서 연유한다. 사막으로부터 나무와 풀과 물이 있는 인위적인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낙원, 파라다이스를 가설한 것이 정원이었다. 그것은 외부와 둘러친 의도적인 벽이다. 불모의 환경에 저항하는 공간이자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화한 흔적이다.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들 속에 있는 정원이란 단어의 어원(ghorto, 라틴어로는 hortus)을 보면, 정원은 우선적으로 닫힌 장소를 지시한다. 정원은 주위의 고장에서 분리되고 끊기면서 내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이는 본질적으로 경계를 필요로 하니, 이 경계로 인해 그 안의 자연은 보호를 받고, 그리하여 자체적으로 완성되면서 다듬어져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정원은 스스로를 억제하면서 격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박형진의 정원이란 자신의 사랑스러운 반려견들과 행복을 도모하는 적극적인 공간이자 뭇생명체와 교감하고 관계를 설정하고 서로 배우고 참고 견디며 조금씩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장소성으로서의 의미가 짙다. 우리는 누구나 참혹한 외부와 격리된 자신만의 정원에서 사랑스런 대상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이해하고 싶고 나아가 행복해지기를 꿈꾼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동물, 식물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박형진_좌쥐우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3cm_2017


박형진_설탕 뿌린 딸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x45.7cm_2016
박형진_설탕 안 뿌린 딸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x45.7cm_2016

근대에 들어와 개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서 인간의 파트너로서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적인 영역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기술 중심적 노동 세계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써 개를 다룬다. 인간이 현대 사회의 소외 조건들로 인하여 갈수록 고립되어 외로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는 애완동물이자 자녀의 대용물로 격상되고 있으며, 그 붙임성 덕분에 인간의 일상생활에 활기를 넣어주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갈수록 계산된 목적성을 띠면서 냉랭한 소외감을 드러내는 시대에 처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접촉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 상호간에 그와 같은 접촉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애완동물을 점점 더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하고 굴곡심한 감정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가 두려워질 때 개는 그 빈틈으로 파고 들어와 대체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와의 피로감 높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대신해 그 자리를 반려동물로 대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무한경쟁사회로 초래된 인간간의 피로감, 굴곡 심한 감정의 교류와 왜곡되고 피곤한 소통으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여러 환멸을 지닌 사람들이 인간 대신 차라리 언어적, 문자적 소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반려동물을 사랑과 애정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정황의 방증이다. 인간과의 매우 까다롭고 성가시며 공을 들여야 하는 감정적, 언어적, 욕체적 관계에 절망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나머지 상처받지 않는 반려견과의 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인간에서 벗어나거나 스스로가 타자화 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반려동물과의 소통은 인간간의 제도적 소통(언어, 문자 등)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반려동물들은 인간이 안기는 여러 잔인한 상처와 배신, 치욕 대신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물론 그만큼 배려와 돌봄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고 외롭지 않기 위해 반려동물에 집착하고 있는 이 현상은 결국 그만큼 현대인들이 인간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 박형진의 그림은 반려견을 키우고 사랑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해 사뭇 보편적인 사회현상 또한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귀여운 강아지가 가족의 일원이 되어 고독과 외로움, 상처를 치유해주면서 삶에 커다란 낙이 되고 자신의 삶에, 감수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서는 희생과 사랑, 배려와 관계 등에 대한 성찰 까지 동반해주는 여러 정황 등을 효과적으로 '시각화' 하고 싶은 것이다. 다채로운 표현기법에 대한 고민의 흔적, 그러니까 비교적 단순한 화면에 회화적인 터치와 붓놀림을 슬쩍 강조하거나 표면의 감각적 효과에 대한 고려 등이 그런 시각화의 흔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표면의 회화적 질이 상당한 감각을 발생시키는 그림이 그것이다. ■ 박영택



Vol.20170621b |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炯珍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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