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인사동에 볼만한 전시가 너무 많았다.

아르떼 숲에서 열리는 세계적 오염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후쿠시마 조삼모사전을 비롯하여

나무화랑의 구경숙전 마킹스’, 그리고 김경서의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젖은 땅’,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등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연휴가 끝나는 지난 4일은 서둘러 인사동에 나갔다.

십여 년에 걸쳐 해왔던 일 중의 하나가 인사동 전시 안내하는 일인데,

월말에 나오던 서울아트가이드소식지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을 헛걸음친 것이다.

 

  연휴라 그런지 인사동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 북인사마당은 구경꾼들이 진을 쳤다.]

 

  '아르떼 숲'에서 열리는 '후쿠시마 조삼모사'전에도 관람객이 몰렸다.

방류하는 일본보다, 동조하는 윤정부 대응에 더 분노하는 분도 있었다.

 

  삼일이나 지나서야 서울아트가이드가 나왔는데,

인사동 간 김에 네오록에서 보았던 구경숙의 마킹스보러 나무화랑에 갔다.

 

  전시 보는데, 차 빼라는 전화가 걸려 와,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정복수씨 전시가 열리는 6일에서야 다시 인사동에 나갈 수 있었는데,

마침 전시 작가인 구경숙씨도 만날 수 있었다.

 

  마킹스는 건강을 잃은 작가가 긴 치유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신체적 반응과 살아야 하는 절박함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먼저 몸의 흔적을 판각하고 탁본 기법으로 찍은 뒤,

이를 한지로 릴리프 하여 육체와 정신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노작이었다.

 

 전시장에서 내려와 정복수씨 전시가 열리는

조계사 아래 올미아트스페이스를 가기 위해 인사동 11길로 들어서다

토포하우우스앞에 붙은 김경서의 젖은 땅전시 포스터를 보게 된 것이다.

 

  아는 분이기도 하지만, 한때 몰입했던 늪에 관한 전시라 눈이 번쩍 뜨였다.

90년대 환경사진가회에서 일할 때, 전국 늪지를 찾아다니며 우포늪 사진집을 발간한 적도 있었다.

더구나 우포늪은 고향에서 가까워 어릴 때 자주 드나들던 곳이 아닌가.

 

  전시장에 올라가 보니 작가인 김경서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걸린 작품들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사진처럼 재현했지만,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늪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현장 재현에 머물지 않고, 늪이 숨 쉬는 표현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늪지를 탐사해 낸, 늪에 대한 내공이 대단했다.

 

  문제는 매달 인사동 전시 소개에 공을 들여 온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보지에 사진전문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갤러리의 정보가 등제 되지 않아

레오록이나 페이스북 등 여기저기 뒤져 찾아내기도 하지만,

볼만한 전시를 추려 올리는 과정에서 '인사아트센터''경인미술관', '토포하우스'

대관 위주의 갤러리는 경력 작가들이 잘 찾지 않아 소홀했던 점이 문제였다.

 

  내가 인사동에 관한 기록을 하게 된 것도 어언 40여 년이 되었다.

변해가는 인사동이 안타까워 옛 풍류객을 찾아다니며,

인사동에 관한 전시나 행사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흐르는 물길은 되돌릴 수 없었다.

17년 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이 창립되어,

창예헌카페를 개설한 것이 체계적으로 기록한 시작이었다.

 

  그 뒤 창예헌이 해체되어 이름을 유목민으로 바꾸었는데,

그마저 유목민이란 주점이 생기면서 유목민카페도 폐쇄되었다.

대신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를 개설하여 중요한 기록들은 옮겼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잃어버린 안타까움도 남는다.

 

  다음블로그 인사동 사람들을 운영하기 시작한 십 년전 부터 '인사동과 서울강북지역 전시안내'를

매월 초 올려가며 인사동에 관한 이야기와 전시리뷰를 포스팅해 왔는데,

특정 전시 리뷰를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해, 한 달 동안 로그인을 못 하게 하는 갑질에

네이브블로그인 인사동이야기를 새로 개설한 것이다.

 

  그러나 인사동을 비롯하여 사진에 관한 포스팅이 무려 6,300건이 넘어 옮길 재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 곳의 블로그를 같이 운영하게 되었는데,

두 블로그에 매일 한 꼭지씩 올린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자료를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으니, 내에게는 족보나 마찬가지다.

김경서씨 작품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전시 이야기를 하겠다.

 

  정복수씨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보기 위해, 조계사 아래 '올미아트스페이스'로 발길을 옮겼다.

 

  정동지와 오후 5시경 전시장을 찾았는데, 이미 2층 전시실은 먼저 온 분들이 술판을 벌였다.

 

  주인공인 정복수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장석원, 임정희, 조준영, 한상진,

김수길, 전강호, 조해인, 이재민씨 등 많은 분이 모여 있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인간 본능의 원초적 욕망이 이글거리는 투시도 같았다.

바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자궁으로 가는 지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자궁으로 간다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지도가 아니던가?

순간적으로 존덴버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떠올랐다.

시골길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줘요. 나의 보금자리로...”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으로...

 

  신비한 자궁의 세계에 온 것이 아니라, 사주 보는 점집에 온 기분이었다.

손금과 눈이 그려진 손바닥 그림 몇 점이 부각 되었는데,

마치 너 자신을 알라는 듯, 묵시적 가르침의 뉘앙스도 풍겼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출발했으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어찌 보면 길 잃은 인간을 안내하는 지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작가의 자화상도 걸려 있었다.

 

  혼잡스러워 뒤풀이 집으로 정한 부산식당으로 옮겼더니,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최석태, 황준연, 구경숙씨도 와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손님의 술값이나 식사비를

뒤늦게 나타난 올미아트스페이스황순미대표가 계산해 버렸다.

 

  여지껏 수많은 전시 뒤풀이에 다녀 보았으나, 갤러리 주인이 뒤풀이 값 내는 곳은 흔치 않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돈을 쓰면 반드시 돌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정영신사진

와인을 주는 대로 마신데다 소주까지 섞었으니,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사진, / 조문호

 

미처 소개하지 못한 전시나 상세한 전시리뷰는 아래의 인사동사람들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인사동과 강북지역 갤러리, 202310월 전시 일정

https://mun6144.tistory.com/6866

33인이 불 지핀 후쿠시마 조삼모사핵 오염수 투기를 당장 중단하라!”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23369414

구경숙'마킹스 Markings'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25682853

김경서'스스로 살아 숨쉬는 젖은 땅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30335687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다.

https://mun6144.tistory.com/6868

 

스스로 살아 숨쉬는 젖은 땅

김경서/ KIMKYOUNGSEO / 金慶瑞 / painting

2023_1004 2023_1010

김경서_우포 습지 23-1(경남 창녕)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6

(관훈동 184번지) 3전시실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습지를 찾다 습지는 흙이 물과 만나 빚어낸 젖은 땅이다. 흙이 물을 만나 고이면서 온갖 생명을 잉태한다. 자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이 잔잔하게 수면을 덮고 있고 왜가리며 두루미가 한가로이 날갯짓한다. 온갖 벌레울음이 서로 화답하며 일순 비현실적 상상에 젖게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습지는 혼탁하다. 어둡고, 깊고, 질퍽하다. 물과 흙이 뒤엉키며 수시로 서로의 경계를 허문다. 어디까지가 뭍이고 어디까지가 물인지 불확실하다. 돌 하나만 들추어도 스멀거리는 벌레들이 그득하다. 하물며 저 불투명한 심연 어딘가에는 지구의 역사 이래 밝혀지지 않은 괴생물체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섬찟한 느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맑은 물,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기실 그 이유는 깨끗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으로 투명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맑은 물은 다양한 생명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두 해전 60을 훌쩍 넘어가진 첫 개인전에서 나는 내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불광천을 그렸다. 마른 잡풀들이 어석어석 서로의 몸을 부대끼는 겨울 불광천을 차갑게 묘사했다. 처음부터 작정한 주제는 아니었다. 매일 소요하던 불광천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나이 때문일까. 그림을 그릴수록 그 어떤 이념이나 동시대적 미학이 쉽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도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얕고 평범한 천변이지만 온갖 생명의 움틀임이 나를 자꾸 부추겼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했다. 겨울 불광천이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나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긴 공백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제 새로 시작하는 그림은 봄이나 여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을 교사로 지낸 내게 정년퇴직은 자유로운 여행의 시간을 허락했다. 전국의 습지를 찾기로 했다. 기왕이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를 우선하여 책을 읽고 찾아다녔다. 람사르 1호인 강원도 인제의 용늪에서 마지막 24호인 일산의 장항습지까지 대략 반 정도는 다녀온 것 같다. 각각의 습지에는 지형적, 발생학적, 생물학적 특성도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제각각의 사회적, 역사적 서사들을 품고 있어 애틋했다. 인간의 관여가 만들어낸 슬프거나 기특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이미 자연의 역사이기도 했다.

 

김경서_밤섬 습지(서울)_캔버스에 유채_65.1×100cm_2023
김경서_운곡 습지 23-2(전북 고창)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23
김경서_운곡 습지 23-3(전북 고창)_캔버스에 유채_80.3×100cm×2. 2023
김경서_용늪 습지 23-1(강원 인제)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23
김경서_우포 습지 23-6(경남 창녕)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23
김경서_조강 갯벌 습지 23-2(경기도 강화)_캔버스에 유채_145.5×97cm_2023

서울에도 람사르 습지가 하나 있다.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사이에 걸쳐있는 밤섬이다. 우리가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오가며 무심코 지나치는 섬이다. 없는 듯 그곳에 늘 있어왔다. 그러나 이 섬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이며,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고, 1960년대에 인간에 의해 폭파된 섬이라는 슬픈 사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밤섬은 원래 밤톨 모양의 바위가 솟아난 돌섬이었다. 1968년 모래섬이었던 여의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밤섬은 폭파되었고, 당시 거주하던 62세대 594명은 강제 이주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밤섬에 점차 퇴적토가 쌓이기 시작했고 떠내려온 씨앗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났다. 그리고 온갖 철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땅을 부활시킨 것이다. 출입이 제한된 밤섬에 나 같은 일반인이 들어가기에는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하는 수 없이 서강대교를 서성이며 먼발치에서 사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인제 대암산에 있는 용늪은 4000년 전에 형성된 해발 1,280m의 고층 습지다. 연중 5개월이나 영하에 머무는 저온 때문에 식물들의 사체가 썩지 않고 켜켜이 쌓여 이탄층을 형성하고 그 위로 빗물이 고이며 생긴 습지다. 산정 높이 분화구처럼 펼쳐진 용늪은 그래서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 보존지구로 지정된 터라 하루에 20명 제한으로 사전 허가를 받고 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래 그들만의 생명의 시간을 견뎌온 산사초, 뚝사초, 이끼류,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들꽃들이 짙은 안개의 습기를 헤치고 겨우 모습을 드러내다 사라지곤 했다. 늪의 깊은 곳에는 엄청난 양의 탄소가 머물고 있고, 그들이 내뿜는 생명의 기운으로 아직 지구는 견디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했다. 한갓 물웅덩이와 겨우 견디고 있는 풀 한 포기가 사라질 때 지구 전체가 요동친다는 걸 깨달았으면 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오직 겸허한 인간의 내면만이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김경서_물영아리 습지 23-1(제주)_캔버스에 유채_100×80.3cm_2023
김경서_불광천 습지 23-2(서울)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23
김경서_운곡 습지 23-1(전북 고창)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23
김경서_순천만 습지 23-1(전남 순천)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23
김경서_용늪 습지 23-2(강원 인제)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23
김경서_장항 습지(경기도 일산)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23

우포는 원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내륙 습지다. 신생대 빙하가 녹으며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물이 흘러들어 형성되었다. 우기나 홍수 때 과다한 수분을 습지 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지속해서 주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우포를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습지에는 자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 부들과 창포가 빼곡히 덮여있다. 먼발치에서 두루미와 왜가리, 따오기,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유유히 서 있거나 푸덕거리며 날아오르곤 했다. 3일을 그곳에 머물며 태곳적부터 이어온 생명의 신비를 만끽했다. 제집을 빼앗기고 인간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곳에 오면 늪 속으로 스며들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화의 매화마름 습지는 원래 농경지였으나 멸종 위기의 매화마름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성되어 람사르에까지 지정된 사례로 의미가 깊다. 반면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넘치도록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람사르에 등록되지 못하였다. 환경 문제는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욕망을 비껴갈 수 없음을 안타깝게 깨닫는다. 경기 북부의 DMZ와 임진강변은 여느 습지보다도 온전한 생태계를 갖춘 습지이다. 가장 풍요로운 다양성과 순환성이 숨쉬는 곳, 그러나 우린 가 닿을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김경서_불광천 습지 23-3(서울)_캔버스에 유채_65.1×100cm_2023
김경서_물영아리 습지 23-2(제주)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23
김경서_불광천 습지 23-1(서울)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23
김경서_난지천 습지 (서울)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23

습지를 그리다 내가 습지를 그리는 이유는 습지의 신산한 느낌과 내음과 소리가 좋아서이다. 스스로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하모니가 아름답고 고마워서이다. 그 어떤 미적 이념과 감성보다 소중한 가치가 그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라고 말해 놓고 보니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를 깨닫는다. 저 습지의 심연이 '어떻게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언제나 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방식대로 편집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도 자연은 엄연히 작동한다. 들숨과 날숨, 피돌림으로부터 세포와 기관들의 조응, 그리고 욕망과 분노와 경탄의 감정들. 그것들 또한 알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이다. 그래서 습지의 생명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자연이 함께 운율을 맞춰주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의 연륜이 짧은 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꾸 다듬고 개칠을 한다. 습지의 생명감 있는 기운이 아니라 풀잎 하나의 형태에 자꾸 얽매인다.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생명 존재들의 화음을 놓치곤 한다. 늘 불만스럽다. 오래 창작해 온 작가들의 거침없는 필치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항간의 미적 이념이나 독특한 방법론 따위의 주장들에 선뜻 동조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습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다. 불만스럽고 지난한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내 안의 자연이 스스로 그들과 호흡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자꾸만 '대상의 재현'에 빠져든 듯한 내 작업이 종종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하지만 이 재현적 이끌림이, 적어도 지금의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의 발로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김경서_우포 습지 23-8(경남 창녕)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23
김경서_우포 습지 23-3(경남 창녕)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23
김경서_우포 습지 23-4(경남 창녕)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23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대미술은 은연중 '재현(再現, representation)''표현(表現, expression)'보다 낮은 등급의 창작 태도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일단 '재현'을 대상에 대한 일차적이고 시각적인 유사성으로 제한하여 보기 때문이며, '재현'의 원본성을 객관화된 자연에 두기 때문이다. 타자로 전락한 자연에서 경외감을 느끼거나 진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기실 재현과 표현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며, 근대 이전에는 그 분리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다. 재현은 '자연의 재현'이며, 표현은 '주관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부재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며, 주관이 부재한 재현이 성립될 수 있을까. 자연은 모든 생명들이 조응하며 늘 변화할 뿐이다. 자연에 원본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오만일 뿐이다. 그래서 근대 이후의 미술은 자연을 알 수 없는 신화의 세계로 규정하고 작가의 주관적 인식과 감성을 앞세운다. 작가에게 '천재' 또는 '독창성'의 작위를 부여한다. 온갖 실험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쏟아내도록 한다. 경제 발전 지표가 1을 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신화는 붕괴한다고 한다. 이 신화는 체제의 지속을 위한 믿음의 체계이다. 인공지능과 우주산업, 그리고 유전자 공학에 대한 엄청난 투자는 새로운 문명과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체제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신화 창조일뿐이라는 해석들이 현대의 미술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모종의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예견한다. 나아가 예술의 주체적 자율성 신화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지구의 환경도 급격히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의 이름으로 생태학과 자연 미학에 대한 글을 써왔다. 뒤늦게 이론을 접고 그림을 그린다. 뜻대로 되어줄 리 없다. 그림은 때로 내 생각을 거스르며 나를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생태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림 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내 그림이 고리타분한 풍경화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그리는 몸부터 만들라는 충고를 듣는다. 늦었지만 조금씩, 그 몸을 만들어 가야겠다. 김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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