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9일 (화) 11:36:07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 황재형, '새벽에 홀로 깨어'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2017



“정말 대단한 작가다.”

'가나아트‘에서 열린 황재형의 ‘십 만개의 머리카락’전을 돌아보며 뱉은 말이다.

그의 작가적 역량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뻔적이는 창의력이나 끈질긴 도전력은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은 멀리서 볼 땐 깔끔한 수묵화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머리카락의 거친 입체감으로 인물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했다. 거기에 고된 삶과 노동의 현장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표현재료를 확장시킨 그의 창의력에 앞서, 작가의 그침 없는 인간 애정에 더 감복한 것이다.




▲ '드러난 얼굴' 작품 앞에서 선 작가 황재형 (사진, 조문호)


황재형씨가 탄광촌에 들어가 광부들과 함께하며 그 가족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담아 온지가 어언 30년이 되었다.

작가가 작업에 꽂혀 한 곳에 눌러 살수야 있지만, 그의 작업이 남달랐던 것은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현실과 하나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재료 또한 물감에 그치지 않고 흙과 석탄을 비롯하여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채용되었는데,

자연적 재질보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겠는가?



▲황재형 '원이엄마 편지' 캔버스에 머리카락, 짚신 1622x97cm 2016


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이 기상천외한 머리카락 작업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격렬한 명암대비에서부터 고도의 감정 표현까지 섬세했다.

붓으로 그릴 땐 의도대로 선이 그어지지만 머리카락은 자체의 독자적인 곡선이 있다,

머리카락이 지닌 힘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으려면 몇 배의 인내가 필요했다.

얼마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집중했으면 눈에 실핏줄이 터졌을까?



▲황재형, '둔덕고개' 캔버스에 머리카락, 128x259cm 2017


그 집념어린 투지에 의해 머리카락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웃의 숨결로 다시 태어 난 것이다.

붓과 물감을 이용한 작업보다 더 강한 표현력을 드러내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감을 제시한 것이다.

작가 황재형을 처음 보면 마치 그림에서나 본 듯한 임꺽정처럼 체구도 크고 얼굴은 수염으로 뒤 덥혀 있다.

얼핏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리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인간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일지라도 마음이 따뜻하지 않고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캔버스에 머리카락 97x1622cm 2016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열정 또한 아무도 따를 수 없다.

작년 오월, '민족 시원에서 강원까지'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함께 바이칼 호수를 다녀 온 적이 있었다.

현장에 다녀와서 두 달 후에 전시가 열렸는데, 그가 내놓은 작품의 규모나 작품 수에 깜짝 놀란 것이다.

바이칼을 소재로 한 작품이래야 다들 한두 점에 불과 했는데, 그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면한 작업에 온 힘을 쏟아 붇는 그의 열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황재형'하모니카 나고야' 캔버스에 머리카락, 100x240cm 2017



이번에 출품된 ‘진여’는 바이칼호수의 침묵을 나타낸 것인데, 물감으로 해결할 수 없어 흑연을 사용했다고 한다.

침잠한 새벽물결을 이보다 더 멋지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작가 황재형은 갱도매몰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황지330’이란 작품으로

‘중앙미술대전’에 입상하며 1981년 두각을 드러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야학교사, 공장 등을 전전하다 돌연 태백에 들어갔다.

태백 탄광촌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로 살았지만, 그는 화가였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낸 작품들은 그를 '광부 화가'로 등극시켰다.



황재형▲'아직도 가야 할 땅이 남아 있는지' 캔버스에 머리카락 191.3x175.4cm 2016


시커먼 광부의 초상인 ‘한 숟가락의 의미’는 경외감을 전하며 새로운 '민중미술'의 길을 텄다.

초창기에는 ‘임술년(壬戌年)’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며 모순된 사회현실에 저항한 ‘민중미술‘ 운동의 핵심작가였다.

초지일관 실천주의 예술가로 살아온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다



▲ 황재형 '변매화' 캔버스에 머리카락 60,6x50cm 2017



그가 탄광촌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을 뒤늦게 고백하였다.

탄광에 들어간 그가 선탄부 아낙들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려다 크게 깨우친 적이 있다고 했다.

비눗물에 검은 석탄가루가 섞여 흐르는 아낙들의 몸을 증거하고 싶었지만,

’이런 장면까지 팔아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고민하다 울면서 포기하였다고 한다.

“타인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구축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고 십 수년째 삭혀지지 않은 부끄러움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또한 그동안 작업을 해 오며 그들의 참된 삶을 온전히 담을 수 없어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고 한다.

영혼이 담긴 머리카락 작업으로 미안한 감정도 덜었지만, 작가 자신에게도 큰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 황재형 眞如(진여) 캔버스에 흑연 162.1x227,3cm 2017


그는 머리카락에 깃든 '평등의 미학'을 말했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이란 사람의 머리에 나는 모발의 평균 숫자입니다.

그 많은 머리칼이지만 한날한시에 태어나는 머리칼도 없고, 한꺼번에 다 빠지는 탈모도 없습니다.

그토록 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불평등이 체화된 인간의 몸뚱이에서 어떻게 이처럼 평등한 머리카락이 태어났죠.

왜 인간은 자기가 소유한 머리카락처럼 살지 못하나요?

머리카락은 우리네 현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징표이자 귀히 여길 수밖에 없는 선물입니다.”


이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열린다.

■작품 사진제공= 황재형 작가






 

지난 14일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황재형씨의 십 만개의 머리카락전이 열렸다.

그 날 세미나 일정과 겹쳐 꼭 가기로 했던 개막식에 들리지 못했다.

이틀 뒤 전시장을 찾았더니, 마침 작가와 더불어 아내 모진명씨와 딸 황정아양도 있었다.


 

기대는 했으나, 작품을 돌아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멀리서 보기로는 깔끔한 수묵화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머리카락의 거친 입체감에 살아 꿈틀거리는 듯했다.

그림에 고된 삶과 노동의 현장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표현재료를 확장시켜 온 작가의 창의력에 앞서, 인간에 대한 짙은 애정에 더 감복한 것이다.



그의 작가적 역량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빤짝는 창의력이나 끈질긴 도전력은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황재형씨가 탄광촌에 들어가 광부들과 함께하며

그 가족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담아 온지가 어언 30년이 되었다.



작가가 작업에 꽂혀 한 곳에 눌러 살수야 있지만,

그의 작업이 남다른 것은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현실과 하나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재료 또한 물감에 그치지 않고

흙과 석탄을 비롯하여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자연적 재질보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겠는가?


 

5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이 기상천외한 머리카락 작업은 기존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격렬한 명암대비에서부터 고도의 감정 표현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붓으로 그릴 땐 의도대로 선이 그어지지만 머리카락은 자체의 독자적인 곡선이 있다,

머리카락이 지닌 힘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으려면 몇 배의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얼마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집중했으면 눈에 실핏줄이 터졌을까?


 

그 집념어린 투지에 의해 머리카락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웃의 숨결로 다시 태어 난 것이다.

붓과 물감을 이용한 작업보다 더 강한 표현력을 드러내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감을 제시하였다.


 

작가 황재형의 첫인상은 그림에서나 본 듯한 임꺽정처럼 체구도 크고 얼굴은 수염으로 뒤 덥혀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리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인간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일지라도 마음이 따뜻하지 않고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열정 또한 아무도 따를 수 없다.

작년 오월 민족 시원에서 강원까지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바이칼 호수를 함께 다녀 온 적이 있었다.

현장에 다녀와서 두 달 후에 전시가 열렸는데, 그가 내놓은 작품의 규모나 작품 수에 깜짝 놀란 것이다.

바이칼을 소재로 한 작품이래야 다들 한두 점에 불과 했는데, 그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면한 작업에 힘을 쏟아 붇는 그의 열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작가 황재형은 갱도매몰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황지330’이란 작품으로 중앙미술대전에 입상하며, 1981년 두각을 드러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야학교사, 공장 등을 전전하다 돌연 태백에 들어간 것이다.



태백 탄광촌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로 살았지만, 그는 화가였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낸 작품들은 그를 '광부 화가'로 등극시킨 것이다.



초창기에는 임술년(壬戌年)’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며 모순된 사회현실에 저항한 민중미술운동의 핵심작가였다

시커먼 광부의 초상인 한 숟가락의 의미는 경외감을 전하며 새로운 '민중미술'의 길을 텄다.

초지일관 실천주의 예술가로 살아온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다.


 

그가 탄광촌 사람에 대한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을 뒤늦게 고백했다.

탄광에 들어간 그가 선탄부 아낙들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려다 크게 깨우친 적이 있다고 했다.

비눗물에 검은 석탄가루가 섞여 흐르는 아낙들의 몸을 증거하고 싶었지만,

이런 장면까지 팔아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고민하다 울면서 포기하였다고 한다.



타인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구축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고 십 수년째 삭혀지지 않은 부끄러움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또한 오랫동안 작업 해 오며 그들의 참된 삶을 온전히 담을 수 없어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고 한다.

영혼이 담긴 머리카락 작업으로 미안한 감정은 다소 덜었지만, 작가 자신에게도 큰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머리카락에 깃든 '평등의 미학'을 말했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이란 사람의 머리에 나는 모발의 평균 숫자입니다.

그 많은 머리칼이지만 한날 한시에 태어나는 머리칼도 없고, 한꺼번에 다 빠지는 탈모도 없습니다.

그토록 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불평등이 체화된 인간의 몸뚱이에서 어떻게 이처럼 평등한 머리카락이 태어났죠.

왜 인간은 자기가 소유한 머리카락처럼 살지 못하나요?

머리카락은 우리네 현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징표이자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선물입니다.”


 

이 전시는 내년 128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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