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picious Snow

엄효용/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3_0907 2023_0924 / ,화요일 휴관

 

엄효용_2016030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초대일시 / 2023_09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화요일 휴관

 

고공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

Tel. +0507.1358.3076

 

상서로운 눈과 그 눈에 덮인 세상 엄효용은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오는 눈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눈이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작품을 벽에 세워 걸었으니 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온 빛의 입자들처럼 명멸하며 다가오는 눈송이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송이들은 캄캄한 삶에도 간혹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내어 보는 반짝이는 용기 같기도 하다. 때로 화면을 가득 메운 함박눈의 형상은 모든 애틋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함성이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오다가도 문득 고요하게 잦아드는 눈 이미지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으로 조용하게 소란스럽다.

 

엄효용_20171124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171218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302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_삼방로 느티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소양로버즘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18
엄효용_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의 개인전 Auspicious Snow는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와 겨울 숲의 정적으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는 눈을 주제로 한 신작들과 기존 작업 중에서 겨울나무 이미지들만 모아서 엮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눈밭 위에 서 있거나 눈으로 덮인 겨울나무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면, 밤 사이 내린 눈이 그렇게 나무들과 만난 듯하다. 작가의 겨울나무들은 기존 작업 중에서도 그 숨결이 유독 부드럽고 정적이다. 스스로 부차적인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본질만을 남긴 나무의 메마른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혹한 속에 홀로 서서 의연히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는 뜻밖에도 관람자들의 마음에 추위가 아니라 따듯함을 건내준다. 겨울나무 이미지의 이러한 맥락은 신작 눈 연작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눈송이들의 여린 목소리와 겨울나무의 낮고 평화로운 숨소리는 작품 앞에 선 이들의 와해된 마음을 넉넉히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훈기를 지닌 엄효용의 겨울 사진들은 외로움과 결핍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현승

 

엄효용_장성천길 소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3
엄효용_종합 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엄효용_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겨울이 오면눈이 내리길 기다린다.겨울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눈, 바람, 빛이 만나면한 편의 교향곡에 맞추어눈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중력을 가지는 모든 것은신비함을 품고 있으며그것을 숭배하는 마음으로오늘 하루를 채워간다. 엄효용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