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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도예가 윤광조, 서체추상 오수환 화백 2인전
21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서…그림·도예 40점씩 선봬



도예가 윤광조 씨(왼쪽)와 추상화가 오수환 씨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78년 서울 현대화랑에서 열린 장욱진 화백의 도화전(도자기그림전)에서 젊은 작가 둘이 처음 만났다. 장 화백의 도화전에 참여한 도예가 윤광조 씨와 화가 오수환 씨였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곧바로 단짝 친구가 됐다. 조각과 회화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전통의 정신에 현대성을 녹여 넣는 작업에 서로 공감했다. 이들은 요즘도 술자리에서 서로를 ‘윤 도사’ ‘오 대인’으로 부르며 전통과 현대미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야기한다. 

해방 후의 혼란한 사회와 전쟁, 독재와 민주화 시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겪은 두 작가는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 윤씨는 현대적 분청사기의 대가로, 오씨는 역동적인 서체 추상화가로 유명하다. 올해 만 70세가 된 이들은 지금도 소년 같은 순수함과 감수성으로 매일 10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의 70년 생애와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가나문화재단이 오는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여는 ‘놀다 보니 벌써 일흔이네-유희삼매(遊戱三昧) 도반 윤광조·오수환’전이다. 두 원로 작가의 예술 인생과 철학을 한눈에 보여줄 작품 40여점씩을 엄선해 내놓았다. 이들은 “50여년에 걸친 작업은 일방통행식 서양미술에서 벗어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미학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한목소리로 설명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윤씨는 한국의 전통적인 민예정신과 분청사기의 미학을 계승해온 작가다. 2003년 영국 런던에 있는 도예전문 화랑인 베송갤러리에 초대된 데 이어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2011년에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열린 분청사기전에 참여해 주목받았다.

그는 초기에 흙의 물성을 깨워 불교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도자기에 담아냈다. 그러다가 1994년 경주 안강 도덕산 기슭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무위자연’ ‘자연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 ‘산동(山動)’ ‘혼돈(混沌)’ ‘심경(心經)’ 등 그의 최근작에선 일흔의 나이에도 ‘고뇌하는 순수’와 ‘노동의 땀’을 조형언어로 표현하려는 작가정신이 느껴진다. 물레도 없이 직접 흙가래를 쌓아올리는 기법으로 도예 작업을 하는 그는 “작업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작업한다”며 “죽을 때까지 흙과 불을 붙들고 예술적 삶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전통서예와 추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 화백은 50년의 화업을 ‘선(線)과 선(禪)의 통합 과정’이라고 압축했다.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베트남 파병군인 출신이다. 이후 1970년대에 5년간 구상작업을 하던 그는 사회 현실이 마뜩잖아서 그림보다는 포스터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구상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허무함을 느끼고 추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검은 필선에 선(禪)을 응축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필획에서 느껴지는 기운생동과 에너지, 모든 형식, 생각까지도 무한대로 헤엄치는 대로 내버려 둔다. 붓질은 단순하지만 힘이 충만하고 그야말로 자유자재의 경지를 일필휘지로 내닫는다. 바탕 색감도 강약을 주면서 예전보다 한층 밝아진 느낌이다. 

서울 수유동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정도 작업한다는 그는 “내 그림의 궁극적인 고향은 직관적인 표현, 알 수 없고 쓸모없는 기호적 표현, 의미 없는 기호를 보여주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02)720-1020 

[한국경제 / 김경갑기자]


동갑내기 윤광조·오수환 화업 40년 회고전

‘놀다’ 보니 벌써 일흔이네. 동갑내기 일흔의 화업 도반 도예가 윤광조와 서양화가 오수환이 함께 전시를 연다. 스스로 좋아서 스스로 즐거워서 ‘놀이’에 매달린 세월은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었다. 미술의 길이 생계수단이 못 된다는 부모, 선배의 고언에도 막무가내로 내달려 온 길이다. 타고나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거나 긁적이는 사이에 자기표현의 기쁨이 있다고 여겼던 자기몰입의 삼매(三昧)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시제목도 ‘놀다 보니 벌써 일흔이네-유희삼매’다. 분청사기의 형식적 유사성을 탈피한 윤광조와 서예 등 우리 전통을 서양화로 승화시킨 오수환의 40년 화업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윤 작가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시애틀 등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오 화백은 프랑스의 대표적 미술재단인 매그재단 초대로 3개월 동안 전시회를 가졌다. 전시를 기획한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유명 선배작가들이 일본 유학 등으로 해외조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 견주어 두 작가는 순전히 한국 토양에서 연찬에 연찬을 거듭해 온 순국산의 작가정신을 가진 작가들”이라며 “우리 토양에서 우리 특유의 소재를 붙잡아 세계적 척도와도 씨름하게 된 작가들”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27일부터 8월 21일까지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7일 오후 2시엔 김 이사장의 전시연계 강연이 있고, 8월13일 오후 2시엔 도예가 윤광조의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윤광조 ‘산동’(山動,The Mountain Moves,2015, 34x12x51cm,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흘림, 귀얄, 뿌리기)


◆윤광조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 

우리나라의 현재 문화 환경에서 전업 작가가 작업을 계속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 나오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과거 도예문화는 매우 찬란하여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도예는 그 길을 잃고 있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일반인들의 현대도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개인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경제력과 지속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품이란 한 인간의 ‘고뇌하는 순수’와 ‘노동의 땀’이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표현되어 여러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은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쳐야 한다. 그러나 미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머리와 가슴은 구름 위에, 발은 땅을 굳게 딛고 있어야 한다. 이 지극히 상반된, 모순덩어리들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이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이다. 새로운 조형인데 낯설지 않은 것, 우연과 필연, 대비와 조화의 교차, 이러한 것들을 통해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을 공감하고자 한다. 이러한 화두로 꾸준히 공부해 나아가면 언젠가 자유와 자연을 그대로 드러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수환 ‘변화’(變化, 2007, 235x200cm, Oil on canvas)


◆오수환의 화론(畵論)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는 사람에게 상상력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 게 하는 것이다. 그림은 최종적인 상태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문을 여는 것. 동양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는 깊숙이 스며 있는 적막이 있다. 동양의 영원성은 바로 이 적막이다. 그에 비하여 서양의 영원성은 존재의 확실성을 위한 것이다.

동양예술은 격을 존중한다. 참다운 것은 기이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에, 멀리 있는 것보다 근처에 있으며, 한 개의 돌멩이나 한 가닥의 흐르는 물에 있다고 본다. 평범한 몸짓, 붓의 흔적, 물질의 표정 같은 것이다.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에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고 행동은 간소하고 너그럽게 한다”는 글귀가 있다. 이 조용하고 깊은 경지가 중용(中庸)의 경지, 노(老)의 경지이다. 육체를 자연 속에 되돌리고 맑고 밝은 세계로 가는 것. 모양 없는 모양을 발견하는 경지라고 할까. 

나의 그림의 궁극적인 고향은 논리적이 아닌 직관적인 표현, 알 수 없는 쓸모없는 기호적 표현, 의미 없는 기호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의미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운명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세계이다. 


[세계일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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